반응형
SMALL

 

우리반 귀염둥이들이 준 생일선물 두 번째 책!

ㅎㅎ지들이 책 추천해달라고 상담인척 와서 말했던 책들을 죄다 선물해줬네. 고맙고 귀엽게. ♥

 

 


'멋진 하루를 보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라며 일일이 따지고 비교하지 마세요. 때로는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가 매 순간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각주:1]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사이 마음은 단단해져요

괴롭다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망치기만 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하지만 큰 시련을 이겨내고 나면 그만큼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각주:2]

 

 

 

 


행복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요

행복은 우리 눈앞에 있지만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행복은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우리 자신만이 찾아낼 수 있죠. [각주:3]

내가 행복을 바라보고, 궁극적으로 그리는 줄 알았는데 웬걸. 행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니. 따뜻한 말이다.

행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찾기만 하면 된다. 한결 가볍고 신나는 말.

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마음이 너무 아플까봐 진짜 진짜 고민하다가 구입.

다음날 바로 배송이 되어서, 수업시간 틈틈이 읽었더니 하루만에 다 읽었다.

한 자 한 자 너의 숨따라 읽느라 내가 다 저릿했어. 그치만 이제는 그리워서 슬프고 아픈 마음보다, 너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 훨씬 커.  

그리고 또 다시 드는 생각은, 이렇게나 다정한 너였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또.

 

 


하루의 끝

"향초와 진공관 전축이라... 고상한 취미네요."

"글쎄요. 어둡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게 좋아요. 저에게 있어서 향초를 켜고 전축을 예열하는 건 '오늘 하루도 끝났다'라는 노골적인 의식입니다."[각주:1]

괜한 의미부여일지는 몰라도,

나돈데!! 종현아!!!!!!!!!!!!!!!!!!!!!!!!!!!!!!!

나는 집에 불이 없냐는 소릴 들을 만큼 향초만 켜고 있는데!!!!!! 그나마 켜는게 침대 옆 스탠드 정도!!!!! 이것도 할로겐 등인데!!!!!!!!

나랑 잘 맞는다 너!!!!!!!!!!!!!!!!!!!!!!!!!!!!!!!!!!!!!!!!

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 괜히 불 환하게 다 켜면, 다시 또 피곤해지고 뭔가 열심히 해야할 것만 같아서 어둡게 지내. (((합리화))) 일을 마치면 정말 네 말처럼 오늘 하루는 끝난 것 같아서 잘 쉬고 싶거든. 캔들워머 덕분에 따뜻한 향초랑 향기가 나. 노골적인 의식이라는 너의 말이 정말 좋다. 맞아 노골적이게 '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야'라는 걸 드러내는 것 같다. 이담에 더 큰 집에 살게 되면 대형 캔들 워머를 꼭 살거야! 그리고 꼭 욕조를 가질거야!

너도 반신욕을 좋아했구나. 향초를 좋아했구나. 진공관 전축을 좋아했구나.

진짜진짜 멀리 있어도 비슷한 사람은 이런거구나.

 

 

"건강한 외로움이라, 재밌는 표현이네요."

"그런가요? 전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위로법. 어느 날은 외롭고 어느 날은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할 수도 있죠. 물론 즐거운 날도 많지만요. 중요한 건 살아갈 날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어떤 감정이든 중화시켜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쁜 날이든 슬픈 날이든 전 저것들을 거르지 않아요.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하루의 컨디션 그래프가 어느 정도 평균치로 돌아오거든요. 극적인 걸 즐기지만 시작과 끝은 중간이 좋겠죠. 기자님도 뭐든 좋아요. 저처럼 복잡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방식이든 매일 비슷하게 하루를 정리하며 마무리하면 마음이 편해요."

(중략)"감정을 중화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 공감 가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 하나 추천해 주세요. 외롭고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바보 같고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날, 그런 날 듣기 좋은 노래로요."

"외롭고 지치고 힘들 때라... 그래요, 이 곡이 좋겠네요. 오늘 나눈 이야기하고도 통해요. 제 노래 중에 '하루의 끝'이라고 있는데요, 그걸 들어보세요. 누군가 이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해 준다면 참 뿌듯할 것 같습니다."[각주:2]

여깄어!!!!!!!!!!!!!!!!!!!!!!!!!!!!!!!!!!!!!!!!!!!!!!!!!!

하루의 끝으로 하루를 얼마나 내가 마무리 많이 했는데!!!!! 응? ??

임고 준비할 때 정말 이 노래 없이, 너 없이는 그 깜깜한 기숙사 가는 길을 못 견뎠을 거야.

때때로 힘들었던 날들에 무너졌을 거야.

지금도 그래 사실. 오늘도 그렇고 종현아. 고마워.

 

 

'어느 날은 외롭고 어느 날은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할 수도 있죠.'

마치 그녀의 이야기 같았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할 때,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억울한 일에 함께 웃어주거나 화내 줄 사람이 곁에 없단 사실에 여자는 외로웠다. 또 어느 때는 붙잡는 시늉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던 이를 그냥 떠나보내 버린 자신이 너무도 바보 같고 한심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널을 뛰고 지쳐가던 여자였다. [각주:3]

 


늘 그자리에

 

당신에게

 

오랜만이에요.

예전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SNS다 뭐다 굳이 긴 글을 남기지 않아도 가볍게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세상 참 편해졌죠?

 

그만큼 우린 조금 무뎌진 것 같긴 하지만, 뭐 어때요.

가끔 이렇게 긴 글로 서로의 마음을 간지럽힐 수 있으니, 그거면 된 거죠.

 

어떻게 지내나요?

매일같이 보는 우리지만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겠지'라는 짐작으로 당신을 담아 두기엔 내 궁금증의 불길은 끝도 없이 번져서 날 열병에 시달리게 해요.

 

그러니 어서 대답해 줘요.

일상의 순간순간을 방울로 모아 나를 적셔 줘요.

나의 열벙을 당신이 잠재워 줘요.

 

물론 그 행복한 열벙에 시달리는 것도 좋지만,

시원하고 포근하게 젖어 드는 당신과의 시간도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하다 여기지만, 익숙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가끔 원치 않게 상처를 주곤 하죠.

혹시 내가 줬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눈치채지 못해서. 그러니 어서 내게 보여 줘요.

내가 낸 상처라면 나만이 고칠 수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거예요.

서로의 흉터를 바라보며 아파하죠.

그래도 내가 슬플까봐 흉터를 가리진 않았으면 해요.

그것마저도 우리의 일부이고 추억이고 사랑의 증거예요.

 

만약 당장 상처를 전부 보이기 민망하다면 날 꽉 껴안아 줘요.

상처를 보진 못하더라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난 온전히 당신을 알고 싶고, 당신도 그럴 거라 믿어요.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앞으로 더 긴 시간을 보낼 거예요.

대답해 줘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길게도 돌려썼네요.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언제가 당신이 내게 읽어 준 시의 한 구절처럼

당신이 필요해요.[각주:4]

"어떻게 지내?"

다정한 인사. 매일 보아도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에 괜히 혼자 울컥.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또 울컥.

 

그리고 나는 많이 민망했었나보다. 매일 그렇게 안아달라고만 했었으니. 내 마음이 들킨 것 같다. 이야기 하기 부끄럽고 속상하고 그러니까 그냥 안아주길 바랐다. 꽉 안아주길. 그거면 됐다.

 

사랑한다는 말을 길게도 돌려썼다. 진짜 이쯤에서는 읽으면서 어쩜 좋으냐며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건지..

 

 

 


버리고 가

 

물론 남자가 인생에서 외로움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종종 찾아오는 외로움을 두 팔 벌려 환영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외로움의 노골적인 요구에 꽤 당황했다. 당장 이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그의 중심에 눌러 붙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원망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혀 그의 가슴속을 헤집으며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런 흉포한 외로움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각주:5]

 

 

그런 적당한 사람이 필요했다.

연락처를 뒤적이던 그는 잠시 멈칫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녀의 번호. 통화 버튼을 누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서로가 편해지기 위해 떠났는데 이제 와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자고 연락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랑은 보답을 모른다. 차라리 외로워 죽고 말지 배은망덕한 사랑의 부모가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각주:6]

 

 

 


줄리엣

 

"단, 봤어?"

단이는 갸웃했다. 그는 비에 젖은 단이를 꽉 끌어안았다.

"요놈, 춘향이 데려오라고 향단이라 이름 지었더니 줄리엣을 데려왔네."[각주:7]

끄에그에개엑애ㅡ게애그ㅔ애게개ㅔㅇ개ㅓ개ㅓㅔㄱ애ㅓ게애거ㅔㅇㄱ

날 죽여라 김종현. ㅠㅠ

미쳐 응이갸베개제갸21게ㅑ21ㅜ게21ㅑㅜ레ㅜㅏㅁ너엦어ㅔㅈㅂ9ㅇ21기아.ㅁ암ㄴ ㅣ나.

정말 태생이 다정하고 달콤하구나.

 

 

 


알람시계

여자는 침대로 향했다. 내일도 일이 있으니 이제 그만 자야 한다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알람을 맞췄고,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나눌 수 있길. 그리고 그에게 이상한 꿈을 꿨다고, 우리 둘이 이별하는 말도 안되는 그런 꿈이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랐다.[각주:8]

 

 

 


내일쯤

 

어쨌든 오늘 하루 고생하신 모든 분들, 뭔가에 지쳐서 힘이 쭉 빠지신 분들.

수고하셨구요. 항상 '우리 힘냅시다. 내일은 더 좋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로 마무리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네요.

내일쯤 힘내면 돼요. 아니 모레쯤이라도 좋습니다.

한동안 우울해도 괜찮아요.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전 여기 있을 테니까요. [각주:9]

너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야. 위로를 위로 받는 사람의 시선에서 해줄 줄 아는 사람.

나도 내일쯤 힘낼게. 오늘은 조금 많이 지쳐.

 

 

 


산하엽

 

다음 날,

그는 하루 만에 5년의 시간과 기억을 비워낸 채 집으로 향했고,

그녀도 평범한, 하지만 조금은 섭섭한 하루를 시작했다. [각주:10]

평범한 하지만 조금은 섭섭한 하루,  끝.

 

 

 

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사람들 반응이 다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데도 굳이 내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거죠. 말을 해봤자 듣지 않을 거 같은 사람들을 피하는 것도 나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어요. [각주:1]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생각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만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이렇게요. 남의 생각, 남의 경험을 훔쳐 와서 말이죠.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사람은 다 입체적이에요. 겉으로는 멋져 보여도 뒤에서는 더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내가 부풀려서 기대해놓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오히려 '저 사람도 숨 쉬고 사는구나, 별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나한테도 관대해질 수 있어요.[각주:2]

네 여깄습니다.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생각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만 얻으려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여야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하는 사람.

ㅜㅜ 흑..

 

 

마치 제3자의 관점에서 쓴 거 같은 기록이에요. 힘들 땐 무조건 내가 제일 힘든 거예요.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어떤 조건이 좋다는 건, 가기 전까지만 좋은 거예요. 직업이든 학교든 마찬가지죠. 합격하는 순간까지만 좋고, 가고 나면 불만이 시작돼요. 처음부터 끝까지 '난 여기가 너무 좋아!'하는 게 가능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할지 몰라도 정작 나는 아닐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왜 즐겁지 못한 거야'하며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어요. [각주:3]

힘들 땐 내가 제일 힘든 것. 그 감정에 충실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코너로 몰아넣고 '흑과 백' 둘 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네요. 사람을 사귀거나 안 사귀거나, 아주 친하거나 다시는 보지 않거나, 터뜨리거나 참는 거요. 늘 예스 아니면 노의 선택지만 존재하고, 중간 단계는 아예 없네요. [각주:4]

나도 이런 점이 확실히 강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점이 나의 깔끔한 성격(?)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쓰고도 민망하네. 그래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나조차도 살면서 아직까지 이 점에 대해 후회나 불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몇몇이 이 점을 이야기했던 게 떠오른다.

나는 이런 부분을 이와 같이 해석하고 가져왔다. '현아는 이 선까지 잘 지키면 한없이 좋은 사람. 그런데 이 선을 넘으면 얄짤없다.' 라고? 가장 확실히 적용되는 대상은 단연 학생들이다. 아직은 짧지만 그동안의 교육 경력으로는 이점이 아이들에게 잘 인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적당히 예의를 지키며 잘 지낸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나 사이에서는 이것이 건강한 관계맺음일지는 몰라도.. 나의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까.

하긴. 나와 대면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학생과 나 사이처럼 특수한 관계는 아니니까. 그저 대등한 인간 대 인간일 뿐이니까.

직업병도 독하게도 걸렸다는 생각. ㅋㅋ 허허 (이러니 교사들 쨍알쨍알댄다고 소개받기를 싫어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는말이라 할 말이 없다)

 

 

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그 여름

 

수이와 함께 있을 때 이경은 자신이 다른 몸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경과 코로 들이마시는 숨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까지도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기관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었다. 수이를 만나기 전의 삶이라는 것이 가난하게만 느껴졌다. [각주:1]

그 이전의 삶이 가난하게 느껴진다. 정말 예쁜 문장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삶은 충만하다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정말 사랑스럽게도 묘사했다 이 작가.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그런 수이에 비하면 은지는 얼마나 가볍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는 얼마나 쉽게 지울 수 있는 허상에 가까운가. [각주:2]

애인이자,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자, 곁에 있을 때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

그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히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랑에는 정말 다양한 모양이 있나보다. 나는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모양이 있고 또 여러가지 정답도 있겠구나.

 

 

 


601, 602

 

엄마는 거짓말을 했어. 엄마는 늘 친구를 도와야 한다고 했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슬픔 속에서도 엄마의 반응에 분노를 느꼈다. 외로움이 서린 분노였다. [각주:3]

옳은 일을 가르치고, 강요하는 나에게 혹시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을런지. 내가 늘 일관적이었을런지..

 

 


지나가는 밤

 

"언니, 내가 잘못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윤희에게 주희는 다시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언니. 내일은 나랑 놀아줄거지? 그러기다. 응?"

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런 주희가 짐처럼 느껴졌다. 또래나 언니들과 놀고 싶은데 자기에게 꼭 붙어 있으려 하고, 덜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희는 윤희에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각주:4]

내가 정아에게 갖는 부채감을 여기서 만났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매번 드는 건, 그리고 특히 눈을 볼 때 속상한 건.

모든 첫째들이 갖는 동생에 대한 마음일까? 나만 유달리 강하게 느끼는 것일까.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각주:5]

그래서 내가 더 슬퍼했던 거야.

 

 


모래로 지은 집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각주:6]

 

처음 내가 들었던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니가 멀 알아" 그 애의 카톡에서 나는 머리가 쿵. 그렇다 정말 내가 뭘 안다고. 할 말이 없어졌고, 그 애의 슬픔과 속상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이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이다. 였다.

구김살 없는 사람. 쉽게 말해 꼬이지 않은 사람. 해가 거듭될수록 만나기가 드물다.

 

 

나는 이제 서른다섯이고 그때의 일을 자주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본 적도 없다. 누구나 살면서 몇 개의 다리를 건너듯이, 그때의 나도 공무와 모래와 함게 어떤 길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넜는지도 모른다. 다리의 끝에서 각자의 땅에 발을 내디뎠고, 삶의 모든 다리가 그렇듯이 그 다리도 우리가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사라져버렸다. 다리 위에서 우리가 지었던 표정과 걸음걸이, 우리의 목소리, 난간에 몸을 기댔던 모습들과 함께.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각주:7]

살면서 누구나 몇 개의 다리를 건넌다 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걸까. 너무너무 아름다운 문장.

사랑의 모양 그 자체가 그러하다. 씁쓸하지만 공감이 되는 일.

 

 


고백

 

셋이란 이런 거구나. 미주는 종종 자신이 주나와 진희의 특별한 관계에 딸린 부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의 관계에는 미주가 개입할 수 없는 단단한 지점이 있었다. 그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진희는 자기야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잖아. 너희 둘은 허물이 없다고 해야 하나. 편해 보여. 내가 낄 수 없을 때가 있어." "아니지. 내가 깍두기지. 너희끼리 책 빌려 읽고 얘기하고 그러잖아. 그럴 때 난 할말 없었어." 주나까지 이렇게 말했을 때 셋은 싱긋이 웃었다. 셋이라는 숫자 안에서 모두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은 가볍게 느껴져서였다. [각주:8]

 

 

"네가 날 피했었잖아." 겨우 꾹꾹 욱여넣었던 서운함이 억울함으로 터져나왔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보기 싫었으니까. 네 얼굴." 주나가 미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울음이 치받쳤지만 지고 싶지 않아서 미주는 주나가 상처받을 만한 말을 머릿속에서 고르기 시작했다. [각주:9]

 

 


손길

 

그렇게 여자를 미워하던 시간도 지나갔다. 이제 혜인에게 여자는 아낌없이 사랑을 줬던 큰사람만도 ,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로 자신을 떠났던 잔인하고 비겁한 사람만도 아니었다.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기도 했다. 여자는 그저 좋기만 한 사람도, 미칠 듯이 미운 사람도, 가족도 친구도,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혜인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죽어버렸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다시 살아나는 오래된 타인이었다. [각주:10]

 

 

 

고모의 말을 들으면서, 엄마와 함께 거실 한구석에서 접은 다리를 끌어안고 혜인은 누워 있었다. 어른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같이 증오할 사람 하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숙모와 제대로 대화 한번 해본 적도 없으면서, 숙모가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는지도 모르면서, 삼촌이랑 어마나 즐겁게 사는지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 숙모가 삼촌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각주:11]

무능력하기 싫다.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있고 싶다. 타인의 불행을 어림짐작 하고 싶지 않다.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 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 번으로 사라지듯이.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그저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 [각주:12]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농담과 웃음과 천연덕스러운 행동으로 자기를 지켜오고 관계를 맺어왔다면, 그저 그런 방법으로밖에 혜인을 대할 수 없었으리라고. [각주:13]

 

 

 

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난 그 애한테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 앨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드는 곳에 있게 될 모든 이들에게 미안해.[각주:1]

 

그건 친구에게 묻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서로 '다르다'라는 불편한 기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애셔는 매일 아침 약을 먹었고 조너스는 약을 먹지 않았다. 그런 일보다는 두 사람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낫고 덜 무례한 일이었다. [각주:2]

서로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 관계에서 정말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건 몰라도 나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이 '커뮤니티'라는 사회에서는 이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모두가 준수한다는 점이 맘에 든다. 유토피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

 

 

  조너스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 안에 있었다. 방은 따뜻했으며 벽난로에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창밖으로 어두운 밤하늘에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 빨강, 초록, 노랑 등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된 전구들이 나무에서 반짝였다. 하지만 나무는 이상하게도 방 안에 서있었다. 식탁에는 번쩍거리는 황금 촛대에 꽂힌 촛불들이 깜박거렸다. 음식 냄새가 방 안 가득 풍겼으며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란색 털이 난 개가 마루 위에 잠들어 있었다.

  마루 위에는 밝은 색종이에 싸인 채 번쩍이는 리본으로 묶인 꾸러미들이 있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그 꾸러미들을 들고 방 안에 있는 다른 아이들, 분명히 부모처럼 보이는 어른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함께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는 나이든 부부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꾸러미를 받아든 사람들은 한 명씩 리본을 풀고 밝은 색종이를 벗겨서 상자를 연 다음 장난감이며 옷이며 책을 꺼냈다. 그때마다 사람들을 즐거운 함성을 지르면서 서로 끌어안았다.

  어린아이가 나이 많은 여인에게 다가가 그 무릎 위에 앉았다. 늙은 여인은 아이의 몸을 꼭 끌어안고 흔들며 뺨을 아이의 뺨에 비볐다. (중략)조너스는 말했다. “이 기억은 정말 좋았어요. 왜 이 기억을 기억 전달자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지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 기억 전체에서 오는 느낌에 대한 적당한 단어는 알 수 없었어요. 방 안에 아주 강하게 퍼져 있던 느낌 말이에요.” 기억전달자가 조너스에게 대답했다. 그건 사랑이야.”[각주:3]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정말 좋다. 점점 지금의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 이를테면 색깔에서부터 감정, 욕구, 자연까지.

이미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준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애들 독서골든벨 문제로도 냈다. ㅎㅎ샘의 블로그를 안다면 이 문제를 맞출텐데. 킬킬

 

 

기억을 품는 게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그러니까 기억은 함께 나눌 필요가 있어. [각주:4]

 

 

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이런 과정이 비단 글씨체에만 일어나는 일일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의 문체를 닮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개성을 훔치고 싶어 했는지. 내가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내 마음에 꼭 들었는지. 수많은 실패 끝에, 나는 오늘도 나밖에 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각주:1]

 

그들은 우리가 꾸며 놓은 집을 보는 순간, 단숨에 우리의 선언을 이해했다. 그때 알았다.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망원호프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이 되어버렸다. [각주:2]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

정말 밑줄 쫙쫙 긋고 싶었던 구절. 너무너무 맘에 와닿아 두근두근하기까지 하는 말.

내가 정말 마땅히 존중하는 '취향'과 책임감을 오롯이 짊어지며 독립적인 '살아버린다'는 말까지. 어느 하나 안 좋은 곳이 없는 예쁜 말.

 

그렇다. 우리에겐 언제나 멋진 언니들이 있었다. 물론 우리가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내 친구들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1학년들이 생겨났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불과 1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여고생들에게는 멋진 언니가 필요했으니까. 멋진 언니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심하게 멋 내는 법을 배웠고, 세련되게 말하는 법을 배웠고, 똑부러지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각주:3]

나의 대학교 1학년이 조금은 더 슬펐던 이유. 그래도 진은이언니를 만나고 어느 정도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늘 좋은 점은 있기 마련.

이 부분을 읽고 나의 사랑 영아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따라 머리도 자르고, 살도 찌고 싶고 등등. 타인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나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질문들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진다. 어떤 나를 골라야 하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이지? 그 모든 나 사이에서 힘겹게 외줄타기를 하며 다들 겨우 '나'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각주:4]

모두가 나의 조각들인 것이니까.

 

여러분의 심장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받은 상이니까요.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각주:5]

 

학생의 세계에서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세계로 편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이 허용하는 수많은 경험들의 세계로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3천원짜리 학교 앞 밥집에서 1만 2천원짜리 파스타의 세계로, 천원짜리 커피에서 5천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물 흐르듯 입장했다. 못 먹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각주:6]

 

겁이 덜컥 났다. 불과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넓어진 취향으로 누군가의 취향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뾰족해진 취향으로 누군가를 콕콕 찌르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나. 이러다 나중에는 누군가 고수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치즈를 한 입만 먹고 뱉어버리면,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 사람과 나는 안 맞다, 라고 섣불리 결론 내려버리면 어쩌나. 그러다 결국 "도대체 나와는 맞는 사람이 없어'라고 습관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나는 내가 걱정되었다.

하루라도 마음이 말랑할 때 누군가를 만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이제 막 고수를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그 누군가에게 "고수 한번 먹어볼래요? 저도 엄청 겁냈는데, 먹어보니 괜찮더라고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감싸며 취향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사람. [각주:7]

어쩜 이렇게 낭만적인 말이 있을까. 그렇게 서로를 감싸며 취향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사람. 세상에..

나랑 함께 서로 감싸며 취향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우리 부부는 서로 말 거의 안 해. 할 말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술 한 잔을 처방으로 내려주고 싶어진다. 평소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안 하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마주앉아야 한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술이 아니라면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오늘 하루를 말해야 한다. 당장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쌓이면 견고한 '우리'가 되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울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넘을 것이다. 오해가 쌓일 틈은 없을 것이다. 서운함이 쌓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앉아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상. [각주:8]

마주앉아서 오늘을 이야기한다.

소소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내 온 몸으로 겪은 오늘의 하루를 타인과 섞는 시간. 크고 작은 일들의 감상이 일치하면서 신뢰도 쌓인다고 생각한다. 차곡 차곡.

 

싫어하는 사람에 마음 쏟지 말기. 싫어하는 것에 애쓰지 말기. 그것을 싫어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기. 물론 이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해버리기엔 내가 너무 아깝다. 술 마실 때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때에도, 멍하니 있을 때에도 아깝지 않은 내 인생이지만, 싫어하는 감정에 내 인생을 낭비하는 것만은 참으로 아깝다. 물론 그 사실을 나도 자꾸 까먹고 자꾸 분개하고, 자꾸 화를 내고, 자꾸 발을 동동 구른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자꾸자꾸 말해준다. '저 사람에겐 마음 한 톨도 아깝다'고. [각주:9]

 

스물여섯 살의 어린 나는 그게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때는 몰랐다. 어떻게 선배의 남편은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 어휴, 선배 힘들겠어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문제점을 십이지장부터 새끼발톱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어휘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숨부터 나온다. "요즘은 집안일 안 도와주면 큰일 나죠. 남자가 살기 더 힘들다니까요." 혹은 "그래도 우리 남편은 집안일 잘 도와주는 편이에요." 남자도 여자도 일상 속에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그 말에 숨겨진 폭력.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각주:10]

십이지장부터 새끼발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휴 !!! ㅋㅋㅋㅋㅋ뭘 도와주냐!! 그리고 대체 집안일에 칭찬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단한번도 나는 내가 만든 설거지거리를 설거지를 했다고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단 말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즐겁다. 이 혼돈의 시기를 살게 되어서. 어쨌거나 이 혼돈의 시기가 다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그 이전의 시기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테니까. 그때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을 테니까. 나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힘들더라도, 답답하더라도, 더디게 보이더라도, 분노가 머리카락 끝까지 뻗쳐오는 날에도 끝까지 즐거울 셈이다. 기를 쓰고 즐거울 셈이다. 보란 듯이 끝까지 즐겁게 싸워볼 셈이다. [각주:11]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어서, 다 이해되지 않아서,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엔 있다. 효율로만 평가하려고 하는 이 세상에 비효율로 남아 있어서 고마운 것들. 우리를 간신히 인간답게 만드는 것을 사실 그런 비효율들이다.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너무 무심히, 모든 것에 효율을 들이대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단 한 번의 심벌즈를 위해 한 시간 넘게 준비하고 있고, 누군가는 단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무대를 움직이고 있고, 또 누군가는 0의 존재가능성을 밝히느라, 우주 탄생의 가설을 세우느라, 한 문장으로 우리를 구원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마음 어딘가가 편안해진다. 따뜻해진다. [각주:12]

 

"저 사람 완전 부끄러울 것 같지 않아?"

"왜?"

"오늘 우리 앞에서 완전 자기가 무능하다고 다 이야기해버린 셈이잖아."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사람일걸?"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한다라. 그건 정말 생각해본 적도 없는 옵션이었다. 나의 거울에 대한 믿음은 조금씩 금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게도, 거울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간혹 내 앞에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명백한 자기 잘못 앞에서, 자신을 가장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보면서는 인간의 자기방어 기제에 대해 탄복했다. 저 상황에서도 자신을 가장 먼저 보호하다니. 인간이란. [각주:13]

 

그렇다. 마침내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별 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의 시간과 달리, 별의별 게 다 별 일인 여행에서의 시간. 어제의 모양과 오늘의 모양은 완전히 다르다. 내일의 모양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또 다를 것이다. 일상에서는 아무 고민 없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 타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또 일을 하고, 아무런 방황도 없이 집에 도착했다. 매일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간은 화살로 갔다. 정신 차려보면 한 달이 후딱 가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간은 연결이 아니라 분절이었다. 매 순간, 나의 선택에 따라 제각각의 시간은 제각기 살아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오롯이 내 것이 될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감정적으로도 나는 아주 먼 곳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정직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많이 걷고, 많이 말하고, 해와 함께 뜨고 지는 날들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기어이 여기까지 온 참이었다. [각주:14]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정말 정직한 시간들. 시간의 흐름이 온 몸을 관통하는 느낌.

결국 이또한 내 취향.

 

 

반응형
LIST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0) 2018.09.06
The Giver :: 로이스 로리  (0) 2018.09.03
달콤한 작은 거짓말 :: 에쿠니 가오리  (0) 2018.06.04
회색 인간 :: 김동식  (0) 2018.05.31
우먼카인드 vol.2  (0) 2018.05.28
반응형
SMALL

 

루리코는 그 곁에서 책을 읽었다. 같은 공간 안에서라면 각자 다른 일을 해도 마음이 참 편하다고, 온천욕으로 노곤하게 달아오른 다리를 뻗으며 루리코는 생각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러 갈 수 있으니까, 라고.[각주:1]

 

물론 그것이 사랑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루리코는 알고 있었다. 전화를 걸고 마는 것도, 금세 다시 걸어오는 것도.

그 증거로, 루리코는 샅사토시의 목소리를 들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반가움조차 일지 않았다.[각주:2]

 

침실 옷장에서 청바지와 남방을 꺼내 입는 동안에도 루리코는 곁에서 뭔가 말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회식은."

사토시가 묻자 루리코는 단박에 입을 다물고는 놀란 듯이 말했다.

"전혀 안 들었구나. 아까부터 내내 그 이야기 했는데."[각주:3]

 

"방해돼?"

"그런 건 아니지만."

"곁에 있고 싶었어."[각주:4]

 

그렇게 말하면 루리코는 우선 침묵하고, 이윽고 알았다고 말한다. 희한하게도, 늦는 이유는 아무려나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잔업이든 술자리든 데이트든.

-질투는 꼭 여자한테만 하는 게 아니야.

라고 아내는 말한다.

-난 당신회사에도 책상에도, 상사에게도 동료에게도, 술집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여자에게도 질투를 느껴.

라고.[각주:5]

 

이번에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버밍엄은 지금 오후 1시다.

"루리코?"

애너벨라는 지난달보다 한층 더 놀란 목소리였다.

"틀림없이 아주 안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그녀 특유의 담담한 어조다.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

"안 좋은 일?"

루리코가 되물었다.

"그래, 전에도 그랬잖아. 네가 나한테 자주 전화하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

아니, 하고 대답했다. 전화기를 쥔 채 창가 의자로 돌아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너, 결혼해버렸어."

루리코는 아주 조금 웃었다.

나도 풉 하고 웃었던 대목. 동시에 상아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내게도 애너벨라와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건 상아일 것이다.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날 때에 늘 상아를 찾았다. 상아에게 가 내 결정과 선택에 확신을 얻고 용기를 얻곤 했었다. 그랬었다.

 

남자란, 좋아하게 될 거라 생각하면 언제든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면은 있고, 그건 그 사람만의 장점이므로.[각주:6]

 

루리코는 이렇게 하루오의 품 안에 있는 것이 좋았다. 여전히 잔뜩 어질러진 방, 열어놓은 창문, 나뒹구는 앙투안.

"지난번이랑 같은 화랑?"

맞아,라고 대답하고 루리코는 눈을 감는다. 하루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작년과 같은 장소에서, 3월 3일부터 19일까지."

이러고 있으면 거역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루리코는 생각한다.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각주:7]

 

시호는 확실히 귀엽지만, 시호와 함께 있으면 사토시는 왜 그런지 루리코의 좋은 점만 떠오른다. 루리코의 좋은 점. 미인에, 눈치 빠르고 머리가 좋다. 낯가림이 심하고 타인에게 경계심이 많은 만큼, 사토시만은 무서울 정도로 신뢰한다. 화를 내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다. [각주:8]

 

쓸쓸함은 아마도 인간이 안은 근원적인 문제이지 사토시 탓은 아닐 것이다. 자기 스스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설사 남편이라도-구원해줄 수 있는 성격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토시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깎으면서 루리코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루오와 함께 있을 때 쓸쓸하지 않은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토록 충만감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은. [각주:9]

 

루리코는 간신히 입을 연다. 오싹하리만치 쓸쓸한 목소리가 나왔다.

"왜 거짓말을 못하는지 알아?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루리코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자신의 심장이 얄팍한 종이처럼 간단히 찢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각주:10]

 

하루오가 만드는 공기, 하루오가 선택하는 언어, 그 방에서 마시는 커피. 하루오의 손목뼈, 발바닥 모양. 목이 좀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엿보이는 쇄골. 갑자기 활짝 웃는 얼굴. 토라진 말투, 담배를 피울 때 찡그리는 눈썹. 루리코를 끌어안는 힘 있는 팔, 입술이 녹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키스, 하루오의 살냄새.[각주:11]

 

 

총평.

뭐가 됐든,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과 상태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 또 사랑이 식어가는 사람의 마음과 상태에 대한 묘사도 돋보이는 책.

 

 

반응형
LIST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iver :: 로이스 로리  (0) 2018.09.03
하루의 취향 :: 김민철  (0) 2018.08.21
회색 인간 :: 김동식  (0) 2018.05.31
우먼카인드 vol.2  (0) 2018.05.28
쇼코의 미소 :: 최은영  (0) 2018.02.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