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입 날짜를 보니 17.09.20.
봉부장님과 우리 부장님과 함께 본청에서 하는 박웅현씨의 강연을 듣고서 산 것.
그가 말하는 것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듣는 능력 또한 내가 본 그 나이대의 사람들 중 손에 꼽혔다.
개인이 멋있으니 책을 자연스레 사게 된 것.
엄마 집에는 대학생때 읽다 만 <책은 도끼다>가 있을텐데, 이번 설에 가면 읽고 와야지. (포스팅도 물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어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총수, 최고 대학의 총장, 대통령까지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불완전해요. 다만 그들의 직책이나 직위 때문에 완벽해 보일 뿐이죠. 그들은 완전한 면만 부각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완전한 면만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차이가 나 보이는 것뿐입니다. 누구나 단점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남은 유기체들인데 어떻게 단점만 있겠습니까? 분명히 장점도 있죠. 그러니 내가 가진 장점을 보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존중해야 하는 거이죠.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못났다고 외로워하지도 마세요.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마다 기회는 달라요. 왜냐하면 내가 어디에 태어날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각기 다른 자신의 인생이 있어요. 그러니 기회도 다르겠죠. 그러니까 아모르 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뭘 보았나요? 계속 변하는 기술들을 보았습니까? 저는 사람을 봅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Everything Changes,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입니다. 사람들의 웃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본질의 시대고 '변하지 않는' 그것을 잡아야 해요.
고스톱이나 애니파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한테 진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그들이 한창 사랑을 나눴을 때 축복을 내리던 햇살은 아직도 따뜻하게 머리 위를 비추고 있죠.. 인간은 이 세상의 덧없는 길손일 뿐입니다. 영원한 것은 돌이고, 청동이고, 햇살이죠.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제가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서 선생님들께 부탁이니 딱 한 번만 효율을 포기하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에게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라고 했습니다. 분명 그중 반 이상은 감동을 받아 소름이 돋을 것이고 그러면 그걸로 됐다고, 그 이후로는 스스로 찾아 들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많이 가르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을 꼭 읽고 외우지 않아도 인생은 얼마든지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방법만 알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알아서 찾을 테니까요.
내가 늘 고민했던 부분이랑 비슷해서 와닿았던 부분. 사실 우리 아이들은 내 전공이 무엇인지, 내 과목이 얼마나 고상하고 위대한 학문인지 관심이 없다. 정말 1도 없다. 그리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아이들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니, 지식 전달은 무용할 뿐더러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학교 4학년 때 경기도 선배님의 특강을 듣고서부터 한 생각이지만 아직까지 변함은 없다) 그래서 여유롭고, 놀며, 쉬며 가더라도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진한 활동들을 하자-고 다짐하게 됐다. 그리고 내 욕심이 너무 커 모든 친구들이 전부 감동을 받거나, 영감을 얻거나, 깨달았으면 하지만 이조차 나를 옥죄는 것이더라. 그리하여 이 중 단 한 명이라도 감화받으면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하게끔 혼자 늘 다짐한다. (그럼에도 나는 17년 너무 예쁜 아가들만 만나서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좋아해줘서 교사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하하)
그러니까 준비할 수 있어야 해요. 클래식, 고전을 만나기 위해서는, 함부로 씹다 버린 껌처럼 여기지 않으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아랑야 할 것을 가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우리는 첨성대를 알고, 비발디를 알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압니다. 하지만 진짜 알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고전을 궁금해 하세요. 여기저기 도움도 받고, 책을 통해 발견해내면서 알려고 하세요. 클래식을 당신 밖에 살게 하지 마세요. 클래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즐길 대상입니다. 공부의 대상이 아니에요. 많이 아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얕게 알려고 하지 말고, 깊이 보고 들으려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흘려 보고 듣느냐, 깊이 보고 듣느냐의 차이. 결국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의 경쟁력이 되어준 단어는 '見'이었습니다.
見, 아마 통찰력이 아닐까. 혹은 감수성. 혹은 진심.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조은, <언젠가는> 중에서
네 명이 술을 마실 때 그냥 마시는 사람과, "창 밖 좀 봐. 가을비가 내린다"하는 사람의 삶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다섯 개의 촉각을 가진 동물이 되는 걸 목표로 삼으세요.
나 스스로 기억하기에 2016년 3월에는 박웅현씨가 말하듯 순간을 온전히 살았던 것 같다. 당시 블로그 일상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꽃에 내린 햇살에 감동하고 볕에 훌쩍 크는 개나리들에 황홀해했다.
왜일까? 이 책의 이 장을 읽으며 그 때가 가장 많이 떠올랐고, 이유가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심신의 평온과 평정심, 안정감 등이 있겠지만 그때 나를 지배하던 주된 생각은 '이 개나리도 내년이면 못 보겠구나'였다. 아마 이번 내가 보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모든 것이 그토록 아름답게 다가온 것일까? 충만한 일상과 행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나날들이었다. 언제쯤 또 경험할 수 있으려나..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사유를 연습하라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선택을 하고 나면 답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니면 없습니다.
갈 수 있었겠어요? 못 가죠. 명백하게 못 가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인데 미련이 안 남았겠어요 폴 고갱 같은 의미 있는 삶이 있을 텐데, 나도 뭔가를 누리고 싶은데, 그냥 이렇게 살면 평범해질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박웅현씨 같은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는 구나.
판사증후군, 대학증후군 이 이야기는 우리 생각 저변에 '아, 저 학교 간 사람은 다 똑똑해, 의사가 된 사람은 다 존경할 만해'라는 식의 생각이 깔려 있다는 거죠. 이런 단순 도식이 있을 수 있나요? 아니 인새이 이렇게 단순한가요? 인생은, 사람은,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판사 중에 후진 판사는 정말 후져요. 의사 중에 무식한 의사도 많고요. 뉴스 사회면에 나오지 않습니까? 멋지고 말고의 문제는 직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 정도는 다 알고 있어요.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깨지고, 무너진 나의 잘못된 신념이 이것이 아닐까. 교사증후군. 내가 힘들게 준비했고 힘들게 된 것이니 만큼 이미 이 일을 너무나도 훌륭히, 잘, 그것도 오래 수행해온 대상들에 대한 맹목적 기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그마한 인격적 흠결에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게 아닐까. 또 슬퍼한 게 아닐까.
정말 멋지고 말고는 사람 본연의 문제다. 향기가 나는 사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압니다. 나는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매카트니라는 스타 입장에서도 그렇고 '나'라는 입장에서도. 매카트니는 자기 이름을 딴 별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대중적인 스타와 나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잘 못하는데, 나는 나를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스타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때로는 감격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서 '난 내 이름을 딴 해성도 있지'라고 하진 않죠. 난 여전히 리버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빅이슈>6월호, 폴 매카트니 인터뷰 중에서
이것이 워라밸의 일종일까? 멋있다. 이뤄내고 성취한 그것들 없이도 저렇게나 곧고 자존하는 사람이라니. 멋지다.
엘리베이터에서 사장님이나 회장님 만나면 당당하게 인사도 하세요. 어쩔 줄 모르고 구석에 서 있지 말고, 이야기 나누면 되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하게 굴복하지 마세요. 똑똑한 젊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너무 슬퍼지는 것 같아요.
우리를 무서워하게 해야 해요.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하진 않아요. 회장님에게도 건의할 수 있는 거예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어요. 상대 눈치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일 텐데, 우리는 공짜로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쪽의 시혜를 받는 게 아니란 말이죠. 정당하게 일을 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니 할 말은 해야 하는 겁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이 먹어 윗것이 되었을 때 권위를 부리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권위는 우러나와야 하는 거예요. 내가 이야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감화가 돼서 알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게 권위입니다. 절대 긴 복도가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중등 교사로서의 권위. 소리 지른다고, 인상 쓴다고, 점수를 깎는다고 권위가 서지 않는다. 그에게 내가 인정을 받고 나로인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때 권위가 서는 게 아닐까.
아직은 나도 잘 모르지만, 아직까지의 내 생각.
그리고 옳은 게 이긴다는 걸 믿으세요. 옳은 말은 힘이 셉니다.
내가 믿는 두 가지.
1. 진심은 전해진다.
2. 옳은 말은 힘이 세다.
어떻게 해서든 아랫사람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윗사람들이 할 일이에요. 그래야 서로 소통이 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요즘 영화는 뭐가 재미있니? 어제 드라마는 어땠어?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쳐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렇게 말이 오고 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막힘 없이 소통이 가능한 사이가 되는 게 아닐까요?
처음에는 준비한 게 없어 시작한 도덕쟁이(DJ)가, 위와 같은 역할로도 기능할 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든 아이들의 모든 쉬는 시간을 관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비슷한 상황 속에 자연스레 내가 있으면서 더 알게 되는 것들은 확실히 있다. 진도나 교과적인 측면에서 무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봐주고 들어주고 품어주는 게 도덕과 전혀 별개의 일일까? 교과서를 펼쳐보아라.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타인, 그대를 위한 덕목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또 덧붙여 내가 수업시간에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긴 하다. 이야기라는 것조차 상당히 일방적인 구조인 점이 스스로에게 의문으로 다가오기 때문.
어렵다. 여전히 모든 게.
그렇다면 전인미답의 길을 즐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들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실수에 휘둘리지 않는 겁니다. 전인미답이잖아요.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완벽하겠습니까? 길을 걸으며 당연히 실수할겁니다. 그러니 실수를 못 견디고 좌절하지 마세요. 나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바깥에 선을 그려놓고 누구 누구의 인생은 이런 실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에요. 전인미답(全人未踏), 누구의 인생이나 같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너무 안달복달하지 않는 태도가 정말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나와 먼 이야기고, 불행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내 뜻대로 일이 풀릴 거라는 전제 하에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패하면 하늘이 무너진 듯 좌절하죠. 아쉽게도 인생은 종종 내 뜻과 무관하게 실패와 마주하게 됩니다.
우린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우린 언제든지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