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른 과오에 비해 지나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교사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친구들 앞에서 벌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망신과 창피를 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서 아이의 인격이 무시되기 십상이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외면적인 규제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렵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이는 반성하려 하지 않는다. 잘못에 대한 지적을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에서는 반발심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성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의 과오를 까발리고 비난하는 상사는 업무 성과는 높이지 못한 채 앙심만 살 가능성이 높다. 1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모멸은 '모욕'과 '경멸'(또는 멸시)의 의미가 함께 섞여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에 가깝고, 경멸 또는 멸시는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가깝다. 모욕에는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경멸에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 2
어느 언어에나 외국어로 쉽게 옮길 수 없는 단어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단어가 무엇인지 선정해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그 결과 아프리카 콩고의 'Ilunga'란 단어가 꼽혔다. 그 의미는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용서하고 두번째도 인내하지만 세번째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3
그 속에서 삶은 희미하고 왜소해진다. 사람과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기준으로만 가치를 매기는 것, 내면세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외형적인 비교에 매달리며 우쭐대거나 주눅 드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습관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4
'귀'는 '고귀하다'는 뜻이고, 영어로 풀이하면 'noble'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와 달리 객관적으로 금방 드러나거나 비교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양의 구속을 받지 않고 질로 평가된다. 당사자를 직접 만나거나 함께 지내면서 그 고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삶을 가꾸고 마음을 연마함으로써 고귀해질 수 있다. 비록 다른 복을 받지 못했다 해도, 귀(貴) 만큼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학문을 닦음으로써, 어떤 사람은 예술이나 종교를 통해, 어떤 사람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베풂으로써 삶을 고양시킬 수 있다. 5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들을 기준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매기고 귀천을 따지는 것이 우리의 속물적 문화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귀중함을 깨닫고 서로의 존엄을 북돋아주는 관계가 절실하다. 그러한 관계가 자라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귀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의문에 부치면서 무엇이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지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6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지만, 귀족적 차별의식은 오히려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근대적인 신분 질서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한다. 감정노동을 혹독하게 만드는 의식구조도 거기에 맞물려 있다.
한국인은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상해나 살인 등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에는 매우 민감하지만, 무형의 폭력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다. 오만과 모멸의 사회체제는 그런 무딘 감수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7
개인주의는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에는 그런 의미에서의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남에 대해 신경을 너무 곤두세운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는데, 한편으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 8
그렇게 남의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자라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한 가지 사회적인 징후로, 언제부터인가 '굴욕'이라는 표현을 남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유명인이 어정쩡한 옷차림으로 등장하면 '굴욕 패션'이라고 명명하고, 잘 팔리던 명품의 매출액이 급감하자 '굴욕적인 현상'이라고 묘사한다. 그냥 스타일이 어수룩한 것이고 단순히 판매가 부진한 것뿐인데, 거기에 자존심을 결부시키면서 모멸감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 풍조가 만연하면서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업신여긴다. 9
저마다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화약고를 가슴에 재워 넣고 있다가 신경질과 화풀이라는 총탄으로 연신 쏘아대는 사회에서 사람다움이 들어설 자리는 매우 비좁다. 타인의 인격을 부정하는 풍토는 결국 자신의 존엄성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0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망신을 주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잔인한 학대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굴욕을 강요하거나 부끄러운 부분을 까발리는 행위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치욕스러운 경험은 사람을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매우 폭력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11
내 눈에는 하찮은 것이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에 사로잡혀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대로 간단하게 상황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심경을 외면한다. 12
왜 우리는 소통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성실하지 못할까. 우선 내가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거기에는 인간적 오만함이나 사회문화적 통념 같은 것이 깔려 있지 않은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내가 나름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얼떨결에 무시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나의 사례처럼, 상대방을 업신여길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다른 일에 마음이 쏠려 결과적으로 박대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말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의 대화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는 느낄 수 있다. 앞의 사례에서는 키보드 소리가 들려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말투나 반응의 타이밍으로 직감할 수 있다. 정보 환경이 대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사회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빨라지고 일상의 흐름도 날로 숨 가빠지면서 느긋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져 있기에 종종 다른 일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건성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몸으로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줄 때 자신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경청하고, 하나 마나 한 말들만 늘어놓으면 자존감이 상한다. 그렇게 겉도는 만남과 대화 속에서 심성은 자꾸만 건조해지고 냉랭해진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부주의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섭섭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3
사회학에 '예의 바른 무관심(civic inattention)'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공공장소에서는 신경을 끄는 것이 곧 배려인 경우가 많다. 14
철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정의'에 대해서는 오래 다루어져왔지만, '품위'에 대한 논의는 아직 생소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의가 실현되었다 해도 인간적인 품위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꼭 순차적으로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마갈릿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이상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정의보다 더욱 시급할 뿐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성취 가능한 아이디얼이다." "품위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전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과 아주 다를 가능성도 크다. 품위 있는 사회는 그 자체로 실현할 가치가 있는 이상이다." 15
과잉 친절에 손님들은 기고만장해지고 더욱더 응석받이가 된다. 노동자는 울분을 참느라 속병이 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서양에도 감정노동이 있지만, 우리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가 훨씬 잘 보장된다. 16
감정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이는 은근히 기분을 상하게 하는 고객들이다. 퉁명스러운 말씨, 안하무인의 태도, 경멸하는 듯한 표정,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 반말투... '심증'은 있으나 '물증'을 잡기가 어려운 상황들이다. 그래서 문제 삼기가 무척 힘들다. 결국 그 부분은 고객들의 양심과 소양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의 생각과 태도가 변해야 한다. 18
손님이 '나는 왕이로소이다'하면서 스스로를 드높여 상대방 위에 군립하기 위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이 겸손의 말로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그에 대해서 "맞아요. 당신이 뭐 한 게 있나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당신은 결점투성이로군요"라고 대꾸한다면 얼마나 민망하고 무례한 일인가. 겸손과 공경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해지거나 강요될 때, 그것은 횡포가 된다. 19
'모욕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해본다. 젠더 감수성, 장애 감수성처럼 인권 감수성 등은 이제 익숙한 말이 되었다.
결국 감수성의 문제다. 상대방에게 입힌 손해의 명백한 증거가 있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모욕죄에 해당하는 언사는 그냥 기분이 좀 상했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둔감하기 쉽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이나 느낌은 대부분 문화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마음의 회로가 있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 사회는 순조롭게 작동하지만, 그 질서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당한 권력, 부조리한 제도, 일상 속에서의 차별과 억압 등은 그 의미체계를 통해서 지속된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지배한다. 21
자원봉사 점수를 따러 곳곳에 파견되는 청소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준비가 제대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보니 하나 마나 한 일을 시키게 되고, 누구도 그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시간만 때우게 되는데, 그런 푸대접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기 쉽다. 22
그대는 삶을 위엄으로 견디어 낼 수 있다. 마음 좁은 자들만이 삶을 보잘것없게 살 뿐
공간은 마음이 담기는 그릇이다. 몸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생각, 사회적 관계, 권력의 구조 등을 반영하거나 재생산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도시의 구조나 취락의 형태가 당대의 우주관을 함축하는 것, 주거지의 공유 공간이 이웃들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는 것, 조직 내의 지위에 따라서 집무실의 크기가 다른 것 등이 그 증거다. 자존감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의식하든 못하든, 생활환경은 인간의 정체성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하려면 적절한 물리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4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극한 상황에서도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그 몸부림은, 매일 샤워를 할 수 있고 온갖 화장품으로 외모를 가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타인에게 당당하고 스스로의 위엄을 지니고 있냐고. 몸을 아끼면서 그 안에 얼을 담고 있느냐고. 25
사람은 타자에게 매우 의존적인 동물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가 하루하루의 풍경,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색깔을 결정한다. 아무것도 아닌 말이나 표정, 몸짓 하나에 희비가 교차하고 행복과 불행의 화살표가 바뀐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를 갖고 있다. 누구를 괴롭히겠다고 작정한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나 무심코 지은 표정이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인 불구자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26
우리가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사랑, 배려, 존경, 지혜, 열정 등을 화폐로 저울질할 때 존재는 우스워지고 만다. 앞의 이야기에서 친구가 돈으로 용서를 구하려 할 때 느끼는 뜨악함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듯한 세상이지만, 그런 정도의 '순수함'은 거의 모두에게 아직은 남아 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27
돈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내어줄 수 없는 것이 많다. 그 목록이 길수록 잘사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28
돈이 너무 많은 일을 좌우하고 돈 때문에 모멸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에서, 나의 자존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에 착목해야 한다. 돈의 논리로 포섭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가치에 눈떠야 한다. 29
원주민에게 최수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약점을 들춰냄으로써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며, 그럴수록 점점 무력해지고 모멸감에 더욱 취약해진다. 30
우스갯소리 삼아, 한 가지 특이한 단체를 소개하겠다. 미국에 있는 'The Procrasination Association'으로 '미루는 사람들의 협회'라고 풀이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나 일을 자꾸 미루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천성일 수도 있고 경험 속에서 몸에 밴 성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중시되는 세상에서 미루는 습관은 치명적이다.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낙인이 찍히기도 하고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협회를 만든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서 자기들이 문제시되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느긋하게 미루다 보면 더 좋은 발상이나 기회를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자꾸만 뭐라고 하지 말라면서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지켜내려는 것이 그 협회의 설립 취지다. 그런데 이 협회를 결성하기로 합의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발기인 대회조차 지금까지 계속 미루고 있다고 한다. 31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에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33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렇듯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 지위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은 언제까지나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34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가 드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35
불교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석가가 어떤 승려에게서 욕설을 들었는데, 그에게 화를 내는 대신 질문을 했다. "만일 그대가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음식을 내놓았는데 그가 그것을 먹지 않는다면 누가 먹는가?" 승려는 자기가 먹는다고 했다. 그러자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방금 그대가 내게 욕을 했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만일 나도 욕을 했다면 주인과 손님이 함께 식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그대가 내놓은 음식을 들지 않을 것이다." 상방이 화를 낼 때 화를 내지 않으면, 나를 이기고 또한 그를 이기는 것이다. 36
우리의 일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소한 것들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양보 운전을 했는데 상대방이 아무런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일기예뽀가 빗나가는 바람에 우산 없이 비를 흠뻑 맞으면 세상이 미워진다. 직장 상사의 짜증 섞인 잔소리에 사표 쓸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도 오랜만에 친구의 안부 인사를 받고 생기를 회복한다. 그날따라 화장을 잘 받은 피부에 기쁨을 느낀다. 이웃집에서 가족들끼리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또는 참혹한 삶을 이어가는 난민들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인간은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그 생각들의 종류만큼이나 감정의 색깔도 다채롭게 스쳐 지나간다. 37
실존주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롤로 메이는 조언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자동 회로를 차단해보라고. 거기에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간단한 원리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몸을 단련하듯 꾸준히 연습해서 조금씩 체득해야 하는 요령이다.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그 방법을 탐구해왔다.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매몰되지 말고, 감정 자체를 주시해보자.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의 감정과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어떤 사건이나 상대방의 언행이 나의 반응(행동)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상황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38
멋있는 사람은 통상적인 감정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 분명히 소리를 버럭 지를 거야 하고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누가 보아도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무섭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의 자극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는 내공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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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평정심을 갖게 되면 누군가가 내게 가하는 모욕이나 공격에도 덜 흔들릴 수 있다. 내가 엄청나게 잘못한 것이 아닌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다그치는 사람, 타인에 대한 시기와 경멸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신 상황 자체를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상대방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리고 자비심을 가질 수 있다. '저 사람 지금 많이 아프구나. 다른 사람한테 저렇게 할 정도니 자기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모질까.'
타인에게 하는 말은 곧 자기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 자기를 혐오하기에 남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을 알면, 연민이 싹튼다. 40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우선, 다소 왜곡되어버린 그 개념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는 오히려 불명예스럽다고 볼 수 있는 퇴직을 '명퇴'라고 명명하는데, 명예의 본뜻은 무엇인가. 부와 권력과 함께 맹렬하게 추구되는 명성인가. 명예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희소재가 아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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