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시험 준비하면서 읽을 땐 잘 안 읽혔다.
내 문제만으로도 너무 복잡하고 더이상 내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었으면 좋겠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래서 더 소설을 기피한 탓도 있겠다.
뒷 부분은 너무 궁금한데, 앞부분을 다시 읽자니 예전의 그날들이 떠올라서 또 읽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읽었던 곳 이후로부터 읽느라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표시해두지 못해 아쉽다. 또 ...... 갑자기 티스토리가.. 업데이트해버려서 인터넷으로 안열린다. 크롬으로 열었더니 임시저장에 내가 몇 구절 적은 부분이 없고.. 그래서 그 부분들까지 블로그에 남겨두지 못해 많이 아쉽다.
"그래서 말야, 때대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한심해져. 어째서 이 사람들은 노력을 안 할까, 왜 노력을 않고 불평만 할까하고 말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가사와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눈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그건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일 뿐이야"하고 나가사와 선배는 간단히 말했다. "내가 말하는 노력이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좀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걸 말해."
요즘 나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꼭 건강하고 옳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게 언젠가부터 명시적인 목적이나 목표라는 것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 오는대로 살아내고, 가는대로 보내고 하는 반복들. 이렇게 징징대다니. 정말 싫어하는 인간군의 모습을 지금 내가 하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답답해서 그런 것을.
오늘 청주가는 게 미뤄졌을 때(엄밀히 말하면 맨 처음 계획했던 시간처럼 가게 되었을 때) 정말 서운했다. 대상이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당연한 건데, 나는 어쩌면 평일 낮에 우리 대학을 둘러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를 했었나보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기대했던 내게 서운한 감정이 움튼 것일테지. 아쉬웠다. 특히나 요즘 날씨,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과 꼭 닮아있어서 더.
"저, 와타나베.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짓을 네게 어울리지 않고, 너답지도 않다고 보는데 어때?" 하고 하쓰미 씨가 말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래요"하고 내가 말했다. "저 자신도 때때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거야?"
"때때로 체온이 그리워지거든요"하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따스한 살갗의 온기 같은 게 없으면 때때로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지는 겁니다." 2
식탁이 치워지고 레몬 샤베트와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다. 나가사와 선배는 어느 쪽에도 조금씩 손만 댔을 뿐, 금방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하쓰미 씨는 레몬 샤베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샤베트를 말끔히 먹은 다음 커피를 마셨다.
하쓰미 씨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쓰미 씨가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두 손도 세련되고 품위 있었으며 고급스럽게 보였다.
나는 나오코나 레이코 씨를 생각했다. 그녀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나오코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레이코 씨는 기타로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속에서, 그들이 있는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격한 그리움이 소용돌이 쳤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3
그녀가 깨끗하게 세트한 머리칼을 훌쩍 뒤로 넘기고, 금귀고리를 반짝이며, 펌프스를 신은 발의 위치를 정하고, 갸름하게 예쁜 손가락을 당구대의 펠트 위에 받친 채 공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우중충한 당구장의 그곳만은 어느 훌륭한 사교장의 한 귀퉁이처럼 보였다.
그녀와 단둘이 있어 보긴 처음이었지만 나에게는 멋진 경험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 인생이 한 단계 끌어 올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외로울 때면 나는 울어 버려.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레이코 언니는 말해. 하지만 외로움이란 정말 괴로운 거야. 내가 외로워하고 있으면 밤의 어둠 속에서 온갖 사람들이 말을 걸어 오곤 해. 밤에 나무들이 바람결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듯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 와. 그럴 땐 기즈키나 언니를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해. 그들 역시 외로워서 말상대를 찾고 있는 거야. 5
하지만 내가 자기에 대해서만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니에요. 난 다만, 다만 외로울 뿐이에요. 오히려 자기는 내게 여러 가지로 친절을 베풀어줬는데, 내가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자기는 언제나 자기 세계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아무리 노크를 해도 잠시 눈만 올려떠볼 뿐,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 같아요. 6
나는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미도리는 입술을 둥글게 오무려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다 천천히 내뿜었다.
"내 헤어 스타일 괜찮아?"
"굉장히 좋아."
"얼마나 좋아?"하고 미도리가 다시 물었다.
"온 세계의 숲에 있는 나무가 다 쓰러질 만큼 멋져"하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나보다도 그녀가 더 마음이 놓인 것처럼 보였다. 7
문제는 내가 나오코에게 그런 상황 전개를 잘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오코에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따위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오코 역시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과정에서인지 이상한 형태로 비뚤어져버린 방식이긴 했지만, 나는 틀림없이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었고, 내 속엔 나오코를 위한 꽤 넓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8
우리는(정상인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다 포함한 총칭이야)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야. 자로 길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 나갈 순 없어. 안 그래?
나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미도리라는 여자는 아주 멋있는 여자인 것 같아. 와타나베가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건 편지만 봐도 잘 알겠어. 그러면서 동시에 나오코에게도 마음이 끌린다는 것도 잘 알겠어. 그런 건 죄도 아무것도 아니지. 이 드넓은 세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날씨가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 9
그러나 어떤 식으로 말하든, 어떤 표현을 빌리든, 결국 말해야 할 사실은 한 가지일 뿐이다. 나오코는 죽었고, 미도리는 남아 있는 것이다. 나오코는 흰 재가 되었고, 미도리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10
생각해 보면 나오코와 둘이서 도쿄 거리를 함께 걸을 때도, 나는 꼭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예전에 나와 나오코가 기즈키라는 죽은 자를 공유하고 있었듯이, 지금 나와 레이코 씨는 나오코라는 죽은 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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