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은 중요하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다만 틈을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1
먹는 사과의 당도가 중요하듯, 말로 하는 사과 역시 그 순도가 중요하다.
사과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하지만'이다. '~하지만'에는 '내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네 책임도 있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사과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변질되고 만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 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인 듯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3
그들은 위로를 정제한다. 위로의 말에서 불순물을 걸러낸다고 할까. 단어와 문장을 분쇅디에 넣은 뒤 발효와 숙성을 거친 다음 입 밖으로 조심스레 꺼내는 느낌이다. 4
그가 자신의 혀로 휘두르는 채찍은 제자들의 귀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후려친다.
누군가 내게 "플래처 교수처럼 학생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더라도 잠재력을 끄집어내기만 한다면 뭐 그만아닌가요?"하고 묻는다면, 난 "반대일세"라고 답할 것이다. 노력은 스스로 발휘할 때 가치가 있다. 노력을 평가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5
나이가 들수록 시간에 얽매이고 또 지배당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종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것 같다. "바빠서 못해" "시간이 부족해"같은 어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그 바쁨에 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겠다. 정말 바쁜 것인지, 아니면 '바쁘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것인지... 6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자 울음을 그쳤다. 어머니는 아기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피며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순간 내 머릿속은 '헤아림'과 '염려' '애틋함'같은 단어로 가득 찼다. 난 별것도 아닌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세상이 시끄럽고 번잡할수록 순수하고 꾸밈없는 광경을 목격하면 좀처럼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 이날도 그랬던 것 같다. 7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8
'프로'는 프로페셔널의 준말로, 그 어원적 뿌리는 '선언하는 고백'이란 뜻의 라틴어 프로페시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그리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9
앞차 꽁무니만 주시하며 핸들을 잡고 있던 나는 환기도 시킬 겸 조수석 창문을 슬며시 열었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빠져나가자 바통 터치를 하듯 상쾌한 바람이 창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바람에 이끌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란 하늘은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가을의 햇살을 머금은 강줄기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뭐든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이는 것 같다.
강물만 해도 그렇다. 버스를 타고 달리다 새카만 한강을 한참 바라보면 알게 된다. 강 위를 떠다니는 게 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바람이 흐르고 있고, 햇살도 내려앉아 있다는 것을. 10
시인의 말처럼 우린 종종 슬픔에 무릎을 꿇는다.
그건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조아려 내 슬픔을, 내 감정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일 터다. 11
만약 밤이 밀려오는 속도가 평소와 다른 것 같고 창으로 스며드는 공기의 서늘함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 싹틀 때 우린 새로운 풍경이 아닌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므로... 12
나는 입은 벌리지 않았지만 귀는 더 크게 열었다. 어르신이 내뱉은 문장과 내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사연과 한숨에는 회한과 슬픔과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13
이정도 읽었는데, 사실 나는 완독하지 못하겠다.
그냥 아직 지금의 나로서는 크게 재밌는(?) 와닿는(?) 책인지 잘 모르겠다..
굳이 다 읽지 않는 것도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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