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모든 것은 늘 상상하는 편이 더 근사하고 낭만적인 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러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다. 1
그래도 공항에선 한껏 버티다가 이윽고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 그 규격화된 비좁은 공간에서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면,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고 중립적인 공간에서 한껏 감상적인 기분에 빠졌다. 2
이 문장을 읽고, 작년에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무수한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던 때 그래도 공부방 내 자리에-엄밀히 말하면 그 좁은 칸막이 안으로-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지금도 그 공간이 절실하다. 그리운 내 공간 내 시간.
그때 마음을 다스린 후의 이상하게도 비릿한 뒷맛이 '스스로에 대한 실망'의 맛이었음은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당시 내가 통제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생각한 것도 하찮은 자의식 과잉이었다. 이것은 단지 그가 나의 모든 것에 눈을 감아주었던 것뿐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이렇게 빚지며 살아간다. 3
호텔을 나와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메마른 자갈밭 해변을 혼자 거닐었다. 과거의 모습을 전혀 알 길이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어쩐지 내 모습 같았다. 눈을 감으니 바람 냄새가 났다. 비릿하면서도 매운 냄새, 세상 끝의 냄새였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 장소에 있다는 현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이질적이었지만 여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때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도 한다는 진부한 운명론적인 말을 결코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 겨울과 봄을 거치며 시간의 흐름이 확실히 나를 그 이전과는 다른 장소에 가져다 놓았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냥 '묵혀 내야'하는 시간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세월의 흐름이 안겨준 재생력에 겸허히 감사해야만 했다. 스물 두 살의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4
아마 내 열아홉, 스무 살 언저리의 마음이지 않을까? 비릿하면서도 매운 냄새. 그래서 나는 그런 향이 나는 가을이 여전히 무섭다.
우아하고 쾌적한 호텔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는 일은 거칠었다. 입사하자마자 한 달 만에 팀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같은 팀의 동료는 나를 견제했다. 본부장은 하루에 한 번은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며 나를 닦달했다. 판촉팀의 한 남자 과장은 내가 일본어를 한다는 이유롷 자기 일을 떠넘기려고 책략을 썼다. 5
그러다가 별 기대 없이 신청한 한국정치사 수업에서 교수님이 대뜸 칠판에 주제를 써놓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길래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과거에 경험했던 토론 수업의 희열감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학생들 서너 명이 열심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 '오프닝 쇼'가 끝나자 교수님은 딱 흐름을 자르더니 이내 자신의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을 우렁차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교수니까 당연히 논리도 그럴싸했고 학생들은 다 기가 죽어 큰 강의실에는 이내 정적이 흘렀다.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말을 정답으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다고 느껴져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뭐라고 대꾸할 만큼 아는 것도, 용기도 없었다. 6
나또한 '오프닝 쇼' 같은 '학생중심수업 쇼'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신나게 힘껏 떠들면 뭐해, 오늘만 해도 다시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 하고 닫힌 텍스트로 회귀해버렸는데.
이쯤 되면 고백할밖에. 나는 '오덕(오타구)' 기질의 남자를 좋아했다. 그리고 대개 좋아하는 타입이라는 것도 습관인지라, 나의 오덕 편애 성향은 그로부터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독특하고 이상한데, 다른 것도 아닌 그 독특하고 이상한 기질에 중독되었다. 그들에겐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예민하게 작용하는 결핍이 있었는데, 그들이 가진 결핍을 나만 발견할 수 있고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로는 그 결핍이야말로 그가 가진 놀라운 장점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왜 굳이 그런 남자를 만나니?"
주변에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만류해도 적어도 나만은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재능과 결핍을 알아보고 보듬을 수 있다고 감히 생각했다. 나의 결핍과 그의 결핍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저 그늘진 지점에서 만나, 우리가 가진 외양의 모든 피상적인 조건들은 벗어던진 채 서로의 밑바닥에 깔린 진짜 모습을 마침내 알아보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와 내 안에는 과거의 아픔을 채 처리하지 못한 저마다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혹시나 주변에서 알아차릴가 호흡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안에 수줍고 외롭게 숨어 있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활짝 열 것처럼 보였던 그 마음의 문은 미약한 상처에도 확 굳게 닫혔고 내가 사랑했던 그의 결핍은 자주 나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7
이상한 남자에게 끝까지 두 눈 다 뜨고 코 베이고 휘말려버리는 것,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알아서 먼저 비굴해지는 것, 나에게 못 되게 잔인하게 굴어도 불필요하게 관대해지는 것. 그것들이 그의 탓이 아닌 나늬 결정적인 결핍 탓임을 알았을 때 깨달았다. 정작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은 사실 나라는 여자였다는 것을. 8
연애가 정말 그렇게 좋은 것일까라는 의심도 함께 들었다. 사실 연애는 위태위태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연애 못한다며 불안해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더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통감하고 있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어쩌면 이리도 적응과 변화에 더딜까? 좀 '드라이'하게 살아볼까 다짐해봐도, 다시 말하지만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이것은 놓인 정황에 따라 때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저주임을 알면서도 또 한 번 강을 건너고 만다. 9
드라이하게 라니..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 아닌가. 담백하기 혹은 드라이하기.
혹시 나세요.. ㅠ_ㅠ
그들의 아버지가 모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점이었다. 보수적 가치가 소박함과 만났을 때 나오는 반듯함과 공정함(부모님의 영향)이 독창성, 자유로움(본인의 자발성)과 함께 섞이면 그거 무척 매력적이었다. 난 그들을 사랑한다기보다 그들에게 반해 있었다. 10
자상하고 애매하고 소심하고 섬세한 남자는 나의 애정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들이었다. '자상'과 '애매'가, '소심'과 '섬세'가 동전의 양면처럼 오락가락했던 남자들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친절하지만 경계선을 건드리면 신경질적이었고, 지적이지만 완고했고, 유머 감각이 있지만 독을 섞으면 가장 고역스러운 비아냥을 내뿜었다. 내 마음을 나보다도 더 잘 아는 듯했지만 그만큼 역으로 나의 무심함을 비난했다. 단순 무식한 마초 남자들의 센 척이 지겹고 우습게 느껴질 때, 그래도 자신의 취약점에 정직한 이런 남자들이 차라리 더 건강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11
어둡고 깊은 우물 속에 혼자 다리를 끌어안고 벌서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아무리 그의 결핍을 사랑하고 병적인 면에 끌려도 그 부분이 나를 괴롭히면 감당이 안 되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12
유부남과 연애하는 여자를 가리키며 흥분하며 욕할 순 있지만, 그런 유혹은 어느 날 불현듯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우리는 어쩌면 홀리듯이 감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감정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상대에게 푹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연애 초짜도 아니다. 이토록 잘 맞는 상대를 만난건 하필 난생처음일 수 있다. 13
Fuzzy한 기운이 극대화되면 '쟤랑은 언젠가 자겠구나...'라는 막연한 직감이 스멀스멀 부끄럽게 올라오기도 했다. 신은 가만히 엿듣고 있다가 절묘한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윽고 그 영롱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시고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할 때임을 알았다. 14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은 얼마나 자의적인가.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 겪어나가는 감정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각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랑이란 혼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으로 서로를 바꿀 수 있다는 데에 애초에 비관적인 것일가. 그 사람이 그랬던 건 많은 경우 내 탓이 아니었다.
열정적인 연애를 하던 사람은 늘 열정적이었고, 담백한 상대를 골라놓고도 그를 상대로 열정적이었다. 담백한 사람들은 열정적인 상대를 앞에 두고도 늘 담백함 이상의 것을 주지 못했다. 늘 나만, 나 혼자만 그 당연한 사실을 못 보고 있었다. 15
나는 칠판 앞에 혼자 서서 삼 분 안에 눈앞에 앉아 있는 저 많은 아이들을 향해 날 부디 내치지 말아달라며 소속감을 구할 때 속수무책으로 혼자구나, 싶었다. 16
한 시절의 왕따가 또 다른 시절의 스타가 될 수 있는 현실은 다행스럽기도, 가소롭기도 했다. 그러나 히죽 혼자 숨어서 비웃을 수만은 없었다. 호기심 어린 호감이 이질감이나 배타심으로 바뀌는 것은 내 운의 문제였다. 17
바깥에 자리한 자는 많은 것들이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안에 있는 사람은 시선을 돌려 바깥까지 살피려면 애써야 하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은 싫어도 중심과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18
한국인인 것보다, 여자인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남과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개별적인 인격체를 가진 개인으로 태어났다. 그런 우리가 서로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공히 받아들여야 우리가 다름에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나의 조금은 쓸쓸한 개인적인 특수성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었다. 19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도, 내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없었다. 제일 억울한 건, 하필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한테 무리했던 것.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이상한 심리라니, 생각해보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20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애초에 그들이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짧든 길든 심리적으로 외톨이였던 시절이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책의 힘을 빌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월급날이 되면 그간 사려고 별렸던 책들을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가는 사람들이 참 사랑스럽다. 21
나는 체육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체육 시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고등학생에게 있어서 체육 시간은 꽤 날것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후천적 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선천적 재능과 매력의 시험대가 되는 시간, 신이 빚어낸 수작과 실패작을 여실히, 가감 없이 보게 되는 시간이다.
마치 아름답게 태어난 여자 아이가 아무도 항의하지 못할, 타고난 힘을 지니게 되는 것처럼. 한데 세상은 웬일로 공평해서 공부 잘하는 D반 아이들은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할 정도로 체육을 못했다. 22
하루는 어설픈 반항기에 방과 후 도서관에서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학교 도서관에서 만화만 봤다.(비밀)
그러자 야마자키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이렇게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어떤 만화인데요? 실은 나도 만화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그녀의 대답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 빨간 문장을 몇 번이고 손으로 만져보았다.
나는 그녀로부터 자발성의 소중함을 배웠다.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으로서 그녀는 원한다면 충분히 선을 넘어 학생들을 휘두를 수 있었지만, 늘 적정선에서 멈추고 학생들이 먼저 생각을 일으키기를 바랐다. 혼자 힘으로 끌어올린 관심과 흥분이었기에 수업 후 학생들에겐 늘 충만감 뒤의 잔열이 남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뉴욕 외곽의 작은 교실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그 경험 때문이었다. 24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의 숨 막힘. 이 모든 것이 다 아무 소용없고 궁극에는 우리 모두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말 거라는 개인주의적인 체념.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정착할 장소와 사람을 찾아 방황을 거듭하는 삶. 25
비단 전학생 과거가 아니라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타인을 때로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의 상처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상처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나와는 전혀 다른 해맑고 경쾌하고 산뜻한 존재가 한층 더 위안이 될 때가 많았다. 때로는 모르는 편이 도움 될 수 있었다. 상대의 상처를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사실상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별로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며 이용했다. 자기만의 어둡고 깊은 세계 혹은 동굴에 들어앉으면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속수무책으로 가장 먼저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져야 했다. 26
그래서인지 상아가 내게 해준 말이 오래간 맴돌았었다. "현아 니가 있어야 될 곳은 여기야."
여전히 나에게 크게 작용하기도 하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말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삶의 크고 작은 성취들은 모두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낸 것들이었다. 무엇 하나 잔소리하지 않는 부모 손에 자라 대신 '사랑'이 공부나 일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그냥 에너지가 펄펄 끓었다. 27
우리는 처음 본 순간 직감적으로 서로를 좋아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지 않고, 대개는 첫눈에 반하지 않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던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아, 지금 이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으면 안 돼, 라는 본능이 서로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근사한 기적이라니. 28
둘 다 식어가는 채소 수프를 앞에 두고 손 댈 생각도 안 했다. 그는 테이블 너머로 쉴 새 없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가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것이 정말 좋았는데 그런 걸 보면 그는 나를 길들이는 데에 성공한 것 같았다. 29
가끔 이토록 악감정이나 미움이 안 남는 걸 보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남들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몇 년씩이고 힘들어하고 하물며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 같다는 둥,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둥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던가. 그냥 그 남자가 아니라 연애 감정을 좋아한 것이고 그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남자를 차례차례 이용한 게 아닐까? 심지어 그 남자들을 이렇게 글 소재로 써먹고 있지 않은가. 30
게다가 사람은 대개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의 그림자를 계속 따라가게 되는데, 이렇게 엇비슷한 사람만 좋아하게 되니 계속 비슷한 이유로 차이고, 고로 그 징후들이 절로 학습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상황은 또 데자뷔처럼 반복.
그가 변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주었던 시선과 언어들은 예의상 약간 변형은 하되, 고스란히 다른 여자한테 곧 안길 테니까. 31
그런데 몇 번 편지를 주고받고 나서 어느덧 의무감에 회신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자신의 속내를 '일개' 팬인 나한테 털어놓는 것을 보고 부담감을 느꼈다. 내가 상상했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이제 와 '아, 사람 잘못 봤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그럴 때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32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로 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이별만이 최선이었다는 것뿐이다.
마음속으로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건만 실제 이별을 순탄치가 못했다.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몸이 납득을 못했다. 헤어지자고 했으면서도 그 후 몇 번을 더 만났다. 오늘 저녁식사를 끝으로 저 문을 열고 나가면 각자의 삶을 살아야지, 했음에도 밖의 날씨가 너무 추워 정신을 못 차린 건지 함께 택시를 타버렸다. 택시 뒷자리에 같이 탔던 게 우리가 저지른 첫 잘못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지 잠시 기억상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이젠 진짜 관두자고 해놓고서 만나고 또 만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두 사람의 감정을 더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을 수도, 더 격정적인 연애를 하기 위해 이별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결코 오래갈 수가 없다. 하루는 이게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었는데 급기야는 대판 싸우고 말았다. 감정이 남아 있는데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노여워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점차 자리 잡았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름답게 이별할 궁리만 했던 것이 무리수였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며 아슬아슬해졌을 때 결국 폭발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3월에 휘날리는 눈보라를 멍하니 바라보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세상의 그 어떤 이별도 가슴 아프고 먹먹하기만 했다. 모든 이별에는 어김없이 혼란과 격한 감정이 동반됐다. 물론 그것은 그만큼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33
나는 스스로의 불행에 대해서는 징징거릴 수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품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는 무지했다. 34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다. 사별한 아내와 상관없이 그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그의 상실의 깊이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극한의 것이었음을. 35
남자친구나 남편은 물론 사랑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그와는 다른 친밀감을 공유하는 이성친구가 우리의 기나긴 인생을 따뜻하게 보살펴준다. '속 깊은 이성친구'라고 해서 털털한 남자와 여자가 중성적인 느낌으로 왁자하게 노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자 지수 혹은 남자 농도, 여자 지수, 여자 농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들끼리 팽팽하게 만나야 유지될 수 있는 것 같다.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워하고 다른 형식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런 관계를 충분히 향유하고 보존할 줄 안다. 감정의 저울질도, 타산도 필요 없다. 속 깊은 이성친구가 소중한 이유는 연인이나 남편과는 달리 어떤 의미에선 나를 가장 나다울 수 있게 해주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더 잘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가 결코 이해 못할, 서로를 알아가려고 하는 일처럼 세상에서 무모하고 짜릿한 것은 없지만, 성숙하고 자상한 남자와 여자라면 즐거움 이상으로 어느덧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대화의 온기, 정보를 나누는 것을 넘어 각자의 성취에는 칭찬을, 슬픔과 좌절엔 위로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낸다. 36
사람은 누구나 '하던 가닥'같은 것이 있어서, 변화를 시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이 익숙한 곳으로 다시 끌려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십여 년에 걸쳐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탈피해서 새로운 일이나 삶의 방식을 나에게 입힌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오롯이 혼자, 타인의 통제 없이 관철하는 것을 상상 이상으로 힘겨웠다. 37
어떨 땐 어느 게 머리의 소리고 어느 게 마음의 하소연인지 분간이 안 되기도 했다. 사실 마음과 머리는 물리적으로 한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38
나는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고 싶었을 때 집착과 몰입, 더불어 이미 그것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꿈에 대해 나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불가사의했다. "너는 꿈을 꾸고 있다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거 아니야?'라고 찬물을 끼얹는, 자상하지 못한 나였다. 39
나도 같은 실수를 했었던. 조언에 조언을 거듭하는(사실 조언일지도 의심이 되지만) 쾌감에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마지막 말이었다.
사람들은 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싫다.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서 인생의 변화를 꿈꾸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실천은 안 한다. 왜냐하면 '싫다, 싫다'하는 그 상태를 사실은 아주 그렇게 싫어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현재에 놓인 내 상황이 싫으면 무엇보다도 몸이 반응한다. 식욕이 떨어지고 수면 장애를 일으켜서 급기야는 어디엔가 제대로 병이 터진다. 때로는 마음보다 몸이 훨씬 더 정직하다. 사실은 어느 정도 할 만하니까 큰 변화를 스스로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모험하는 것보다는 안 하고 버티는 게 쉽다. 40
내 책을 읽은 그들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자애로운 미소를 보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온 누구길래 이런 따뜻한 시선을 주는 걸까? 박수 소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는 서로에게 따스한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조용히 친밀감을 나누고 있었다.
항상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너희는 대체 어디에서 온 천사들이길래 별 것도 아닌 나를 그렇게나 좋아해주는거니. 열심히 듣는 척, 열심히 사랑하는 척하는 나인데 너희들이 주는 진심에 또 반성한다. 그리고 나의 그런 척들을 알아주는 말들에 또 반성한다.
짧은 주말 여행이었기에 공항에서 바로 이십여 년 전 다니던 학교로 향했다. 캠퍼스 한가운데에 있는 느티나무 가로수길에 우두커니 서서 아직은 냉기를 머금은 봄바람을 느꼈다. 바람과 공기의 습도는 늘 그 계절에 내가 가지던 어떤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재생해냈다. 41
만약 다시 대학생이 되어도 그 특유의 20살 캠퍼스 첫 공기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리는 순간 쌉싸름하고도, 살짝 나른한 그 공기가 떠올랐다)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아쉬워라.
아름다움의 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면 특히나 햇살이 강의실로 잘 들어왔던 것 같다. 내리쬐는 햇살과 밥을 먹으러 혹은 밥을 먹고 사과대를 지나는 학생들 소리는 지금 떠올려도 아득해진다. 이 공간에 있으면서 마치 이 공간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그때 처음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이 달랐던 그 시간들도 참 그립다. 작년(4학년)부터는 줄곧 점심시간이 정해져있어서 그런지.. 정말 정말 그리운 것들 중 하나다. 점심시간이 같은 상아나 친구를 찾으며 점심먹자며 뭘 먹을래(이미 내 마음 속에는 뭐가 먹고 싶은지 사실 확고하다) 묻는 그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때만큼 지금 이 시간들도 그리워지겠지? 머리로는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그때가 너무나 그리운 오늘의 나다. 바보멍청이.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그날의 고민들까지도 기억할까? 그렇게 즐겁지도,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었는데. 또 여름방학의 날들도 군데군데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 후로는 하루에 오롯이 전념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지. 몇년 후에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까.
'상처'라는 단어는 '나 바빠'라는 말만큼이나 내가 금기시하던 것이었다. 스스로를 과대하게 보는 자기중심성처럼 느껴져 민망했기 때문이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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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쪽 [본문으로]
- 229쪽 [본문으로]
- 241쪽 [본문으로]
- 245쪽 [본문으로]
- 252쪽 [본문으로]
- 256쪽 [본문으로]
- 267쪽 [본문으로]
- 27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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