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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먹이고 보자는 결심은 취약해본 적 있는 인간이 또 다른 취약한 인간을 상상할 때에만 품을 수 있다. 현실 속 인간들은 이렇듯 번거로운 한계 속에서 산다. (44)
책은 묻는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진정한 동료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나의 문제가 개선되는 사이, 누군가의 문제가 악화되는 삶의 역설은 빈번히 발생한다. 이 역설은 수많은 타인을 내 마음에 둘 때만 겨우 논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마음을 지닌 자는 별 도리 없이 겸손해진다. (71)
우리 엄마는 세상 대부분의 문제를 현미밥과 된장국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내가 글을 못 쓸 때에도, 관계를 망치고 있을 때에도, 중대한 계약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에도 엄마의 입장은 한결같다. "요새 현미밥이랑 된장국을 덜 먹어서 그래." 그는 언제나처럼 밥을 안치고 냄비에 된장을 푼 뒤 콧노래를 부르며 제철 채소를 다듬기 시작한다. 못난 딸들이 으레 그러듯이 나는 작가로서 내 결함(충분히 첨예하지 않음, 유치함, 사유의 길이가 짧음 등)이 모두 저 여자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물려준 엄청난 단순함과 명랑함이 아주 보잘것없는 장점 같았다. (103)
우리는 대체로는 어리석게, 때때로 엄청 천재적인 지혜로움을 발휘하며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를 함께 통과했어요. 저는 절대로 그 세월을 단축하고 싶지가 않아요. 앞으로도 이 관계를 느리게 음미하며 맛보고 싶어요. 아끼는 문학 작품을 에이아이에게 요약하라고 말하기 싫은 것처럼, 친구와의 번거롭고 지난한 관계도 그냥 우리의 속도대로 겪고 싶어요. 수고스럽게 얻은 것들을 통해서만 깊은 충만과 쾌락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야속한 규칙 중 하나니까요. (118)
소수작 된다는 건 배제된 자리를 바라본다는 의미니까요. 이제는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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