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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유학 생활을 마쳐갈 때쯤 되뇌는 생각이 있다.

- 지식은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
- 재산은 부족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 기회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
-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이것이 지성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57)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 병목현상에 도달했다면 당장 일시적으로 처리량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생각하여 지금 짊어진 짐 중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병목현상이 오기까지 거절을 하지 못해서 혹은 포기하는 방법을 몰라서 계속 받아들이다 보니 처리해야 할 책임이 고조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거절과 포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59) 

 

솔직히 시간을 빼앗겨서 짜증이 나는 진짜 이유는 빼앗긴 시간 자체가 아까워서가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내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진짜 원인이다. 낮에 해결하지 못한 일을 저녁에 잠을 줄여가며 해야 한다든지 주말에까지 일을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우울 모드가 축적이 된다. (71)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상치 못했던 자투리 시간을 보너스로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73)  

 

제니퍼가 말하듯이 나도 "그냥 힘드니까" 지금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떠나면 짓눌려 있던 무게가 스프링처럼 다시 살아날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것이다. 일시적인 도피를 하려다 해결의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다. 사람의 무게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계속 간직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건에도 제자리가 있듯이, 모든 일은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 사람의 무게에도 제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 대신에 먼저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146)

 

브리아나가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그냥 얻은 게 아니듯,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그냥 잘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지금무엇인가 잘 안돼서 힘들다면, 그래서 포기하고 싶다면, 혹시 내가 그냥 잘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이란 없기 때문이다. (158)  

 

그 문을 두드리기까지 망설였던 이유는 완벽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준비 과정에 완벽이란 없다. 준비는 준비일 뿐 완성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영원히 준비만 하다가 말것이다. (189) 

 

가끔 포기하고 싶을 때 이날 여행가방 끌어안고 울었던 날을 회상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아직 더 해볼 여지가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한계가 어디쯤인지 모를 때는 최악의 상황을 그려본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멈추는 순간, 뒤에서 입 벌리고 있는 악어에게 잡아먹힌다는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잡혀먹히기 싫어서라도 조금 더 뛰게 만든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는 지금 내가 납치되어 수용소에 있다고 상상해 본다. 누군가 총을 들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 일을 꼭 해야만 한다면 어떨까. 가끔 이러한 얼토당토않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나를 상상할 때면 한계를 뛰어넘어 더 한 것도 하게 된다. 그러고는 깨닫는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거였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네. 생각대로 되네? (193)

 

아무리 쉬운 일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충분히 가능한 일도 포기하게 된다. 주변에서 애들 데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에 내가 동조할 필요는 없다. '너는 못해도 나라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니 정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이 힘이 솟앗다. 왠지 나만이 해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것은 진짜 한계에 다 달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194)  

 

그때는 교수가 되라고 하는 남편이 정말 미웠다. 그래도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그 신념이 참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움츠리고 있는 기간에도 높은 지점을 바라보며 뛰어오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214) 

 

내가 공부를 시작하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유학생 배우자였고 동반비자의 한계를 느낀 상태에서 찾아왔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었다. 최소한 그들은 날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진심을 담아 상담해 주고 서슴없이 자료를 공유했다. 안타깝게도 막상 공부에 도전한 사람은 없었다. 나이, 집안, 육아, 재정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꿈이 있다면 잠시 접어두었던 날개를 다시 펴서 날갯짓을 해보길 응원한다. (227) 

 

하고싶은 게 없을 때 무기력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사실 둘러보면 늘 해야할 일들이 있다. 단지 우울모드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에 매우 단순한 일이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잠시 무기력해질때면 이때다 싶어 적어두었던 단순하고 사소한 일들을 실천한다. 가령 전등 닦기, 물 다섯 잔 마시기, 스트레칭 10분하기, 책상 서랍 정리, 창문 블라인드 달기, 문짝 손잡이 교체, 핸드폰 사진 정리, 이메일 샂게, 창틀 닦기, 화장실 서랍 저일, 두 명의 친구에게 안부문자 보내기... 
 적어두었던 일들을 보면 의욕이 생기고 움직이게 된다. 작은 일이지만 완성했을 때 느끼는 자부심이 매일 조금씩 축적된다. 여기서 배운 점이 있다. 대단한 목표만을 세울 필요는 없다. 단기간에 실천이 가능한 목표를 많이 세울 수록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다. 그럴수록 성취감을 느끼는 빈도수가 잦기때문에 자주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조금 더 행복해지려면 행동도 생각도 더욱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255)

 

학생들에게, 내 아이들에게, 영상을 통해 개인적으로 연락해 오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칭찬을 하고 나면 어느새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고 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감정 노동으로 피곤해진 상태를 영어로 'I am drained"라는 표현을 쓴다. 배수라는 뜻의 'drain'에서처럼 내 몸에서 모든 기가 다 빠져나가듯 몹시 탈진한 상태를 뜻한다. 이럴 때 급속 충전이 필요하다. "Be kind to yourself!" 나를 조금 더 돌아보며 챙겨주고, 아껴주고, 존중해주고, 칭찬해 주고, 남들에게 하는 것만큼 나에게도 친절해 보기로 했다. (중략) 그래서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줄 수 있게 알람을 맞춰놓았다.

- 6:00 굿모닝! 오늘도 잘할 거야.
- 6:30 운동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 7:00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 7:30 괜찮아. 난 잘하고 있다.
- 15:30 나를 사랑하는 딸들 데리러 가기.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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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매일매일 내 옆에서 같이 걸으며 나에게 용기를 주려고 애썼다. 부모님은 나를 달래서 학교에 보내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 토니는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주었어. 그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다,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말이야. 정해진 길을 가라고 윽박지르기만 했지.하지만 토니가 해준 말 덕분에 나는 매일 학교에 가서 그 암흑을 견딜 수 있었다. 답을 몰라 머릿속은 텅 빈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짐작하겠지만, 난 토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나도 내가 정말 멍청하다는 걸 잘 안다고 토니에게 알릴 수는 없었어. (51)

 

"곧 와요, 금방 올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는 만족스럽게 등을 기대고 앉았지만 이초가 지나면 또 물었지. "토니는 어디 있니?" 어머니를 더 일찍 데려가는 게 더 자비로운 처사였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정신으로 지냈던 세월 동안 어머니가 남편의 죽음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하구나.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고 어떻게 견디느냐고 어머니에게 한 번도묻지 않았어. 어머니라는 사람을, 어머니의 인간적 단점을 전부 받아들여준 사람을. 어머니를 조건 없이 사랑했던 사람을. 언제나 팔을 뻗으면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사람을. 물어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85)  

 

"음주는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이 못 돼요, 해니건 씨." 그가 대답했지.
상실ㅡ그 의사가 그것에 대해 뭘 알겠냐? 세상에, 테일러는 이제 겨우 기저귀를 뗐어. 그가 겪은 상실에 가장 가까운 경험은 아마 동정을 잃은 거겠지, 그럴 나이는 됐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 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걸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 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264)  

 

또다시 외로움, 우리 유한한 인간에게 난동을 부리는 그 빌어먹을 외로움. 외로움은 그 어떤 질병보다도 나빠서 자는 동안에는 뼈를 갉아먹고 깨어 있을 때는 우리 마음을 괴롭힌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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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맛이 좋아지지만, 단순히 시간만 지난다고 해서 맛있어지지는 않는다. 적절한 환경에서 충분한 시간을 견딘 차는 빛을 발하지만, 안 좋은 환경에서 보관한 차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당연히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사람처럼 스물부터 예순까지 가장 맛있게 무르익고, 이후엔 맛이 떨어지기 시작해 백 년이 넘은 차는 마시지 않는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너무 적은 양의 차를 따로 오래 보관하면 그 맛과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하물며 차도 혼자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27)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처럼 엉망이었다. 쓰면 쓸수록 내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만 제대로 알게 될 뿐이었다. 나를 쓰는 일도 자꾸 실패하는데 남은 어련할까. 그러니 계속 쓰려는 마음은 실패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한다. (33)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만 마을 하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위해 누구에게나 마을이 필요하다. 한 지붕 아래서 큰일이 나면 뛰쳐나갈 다른 지붕이, 함게 먹고 입고 사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눌 말벗이, 위험을 헤쳐 나가고 문제의 대안을 고민할 팀이 필요하다. (47)

 

종일 한 글자도 못 썼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떠오르는 문장이 모두 지루하고 낡게만 느껴진다. 문자들이 모래처럼 부서지고, 화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미래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친다. 당장 한 글자도 쓰기 어려운데 앞으로는 어떤 걸 쓸 수 있을까. 빈 문서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보이는 것 같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에 숨어 살고 싶다. 스르르 잠에 들어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 그렇게 온몸의 세포가 격동하고 있는데도 겉으로는 땀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여전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사람이다. (50) 

 

한번 쌓인 내공과 요령은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일이 완전히 몸에 익으면 몸은 일하게 두고 영혼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깔끔했다. 밥도 맛있었고 잠도 달았다.
그러한 신성한 반복이 글에서는 종말과 같은 것이었다. 어제의 나를 반복하는 것은 어떤 것보다 경계해야 할 일, 동어 반복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이었다. 매번 백지 앞에서 길을 헤맸다. 헤매는 것 자체가 글의 본질이었다. 종일을 매달려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몸이 자유로워도 마음은 어딘가에 결박된 듯이 초조했다. (51)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친구도 아니요, 엄마도 아니었다. 바로 친구의 엄마였다. 나에겐 아주 작은 힘이 필요했다. 꿉꿉한 방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듯 타인이 가져다주는 산뜻함이 필요했다. 너무 지쳐서 말 한마디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땐 누군가 어깨를 톡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킬 힘이 생기곤 했으니까. (87) 

 

맛있다는 것은 때로 몸과 마음을 삶으로 완전히 불러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내 손이 그런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무적처럼 느껴졌다. 내 속을 채우고 데우는 음식을 만들고, 나를 살려내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부엌에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단순해졌다. 나는 살고 싶고, 그것도 아주 맛있게 살고 싶어서 거기 있었다. (중략) 배가 든든하게 불러오고 등줄기로 땀 한 줄기가 훅 흘러내릴 즈음, 얼굴은 새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날 것이다. (89) 

 

수백 번 달려나갔을 마음과 한없이 더디기만 한 몸, 순간에 벌어졌다가 사라지는 문의 틈새 같은 것이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하루 종일 문이 열리길 기다린 사람이 그걸 놓쳤을 때 눈빛이란,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어."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꼭 그 눈을 앞에 둔 것처럼 무너진다. (138)

 

"어떤 사람은 지금 집에 세 살짜리 애가 혼자 있다고, 자기가 얼른 가서 봐줘야 한다고. 막 다급해. 빨리 가야 하니까 어서 문 열어달라고."
엄마는 뜸을 들인다. "그 애가 세 살이었던 때의 기억만 머릿속에 살아 있는 거지."
엄마는 조금 더 천천히 말한다. 우리는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다. 나는 어떤 기억은 살고, 어떤 기억은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 그런데 매일 문 앞에서 기다리던 그 아저씨가 이제는 침대에 누워만 있어."
침대 위에 수평으로 포개어진 한 늙은 남자의 몸을 떠올린다. 그것은 절망의 모양과 비슷할까. 그것을 방 안에 앉아 있는 내 모습과 나란히 두어본다. 아저씨가 그토록 원하는 밖으로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밖이 있다는 확인일까. 밖으로 갈 수 있다는 확인일까. 
나는 묻는다. "엄마는 어떤 기억이 살아남을 것 같아?" 
노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이 이야기를 열 번 정도 더 들은 적이 있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노인의 얼굴은 생생하기만 하다. 영화처럼, 돌림노래처럼 정해진 레퍼토리와 멜로디가 반복되는 동안, 나는 훗날 내가 어떤 이야기를 돌려 부르게 될까 상상해 보고는 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과거는 지나간 것일 뿐이고, 어떤것이 특별히 크거나 작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떤 시기를 그토록 강렬하게 기억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140)   

 

엄마와 내가 이렇게 다른지 몰랐다. 불쑥 불쑥 엄마와 불통하는 순간, 가장 자주 들었던 감정은 놀랍게도 '귀찮음'이었다. 
바야흐로 좋아하는 것만 보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알고리즘은 입안의 혀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알려준다. '말하지 않아도' 나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잘 파악한다. 기분 나쁘고, 다르고, 불편한, '보기 싫은' 것들은 손가락으로 '관심 없음', '싫어요'를 누루는 것으로 쉽게 치울 수 있다. 시선은 초 단위로 나뉘어 기록되고, 클릭 몇 번은 다음을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결정할 것은 점점 더 줄어든다. 하나의 거대하고 확고한 선호를 만든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 된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불편함, 갈등은 사라진다. 어쩌다 나와 완전히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문득 말문이 막힌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좀처럼 마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해 온 신념, 사용해 온 언어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타인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 어디서부터 말하기 시작해야 할까. (162) 

 

가끔 궁금했다. 길을 걷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쌀 수 있는 삶이. 웃통을 벗으면 등목을 해주고, 아랫춤을 벗어던져도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타이르는 삶이. 노팬티나 노브라로 밖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고민과 자기검열에 휩싸이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와 그들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사는가 하고. 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줌을 싸는 상상을 했다. 온 세상이 나의 화장실이라니. (218) 

 

오래전 일인데도 어제 겪은 것처럼 끔찍하게 생생했다. 슬픔에 뿌리를 둔 것들은 그랬다. (224)

 

엄마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하나씩 확인할 때마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가 나중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삶은 아주 작은 몇 가지 변수만으로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엇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버스가 두 번 오거나, 재봉틀이 너무 크고 무겁거나, 옷에 구멍이 나지 않거나, 몇 년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 정도로 망할 수 있었다. 그런 사소한 변수들로도 지각변동을 맞을 수 있는 것이 가난이었다. (227)

 

무대 위 코미디언의 말이란 오래 길들인 무사의 칼처럼 날카롭게 반짝인다. 말함으로써 다시 생을 다짐하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가 지금 막 떠오른 것을 마구 떠드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말이다. (270)

 

그렇게 노래 두 곡을 들고 오는 대신 무언가를 두고 왔다. '왜 보잘것없는 저 따위를 보러 오셨나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을. 그것이 나를 낮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를 보러 온 사람마저 낮추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283)

 

넓고 넓은 유튜브에서 이런 수상한 영상을 함께 보다니. 이순와 나는 깔깔 웃는다. 이런 의외의 공통 시청 기록을 발견하는 것은 21세기의 우정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었다. 모두 각자의 취향과 알고리즘 안에 꼭꼭 숨어 사는 시대의 흔치 않은 우연이었다. 이 감정을 반가움이라고만 불러야하나 아리송했다. 반가움과 기쁨 사이 어딘가에 이를 위한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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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버님 농장가는 깜깜한 길에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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