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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결론은 '구획화'되지 않은 시간은 통째로 지나간다는 것이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주중과 주말로 나뉘지 않으니 내 인식 속에 시간의 기준점이 없다. 그렇게 되니 물 흐르듯 훌렁훌렁 말 그대로 시간이 나를 스쳐지나가버린다. 어딘가에 말뚝을 박고 고삐를 매어야 밀도 높은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아무 계획도 구분도 없이 글을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써야지, 했더니 결국 시간의 대부분은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불안해하는 데 소비하고, 항상 막판에 시간에 쫓기며 글을 쓰느라 허덕이게 되었다. 
인간이란 놀라울 만큼 충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다. 스스로 알아서 척척 일과 여가의 배분을 황금비율로 최적화하며 자유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에게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에게는 여가가 필요 없겠지만.
판사를 할 때는 매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재판 일정에 맞추어 살면서도 그 사이사이 짬을 내 이것저것 참 많은 글을 즐겁게 썼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힘겹게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가고, 그 시간의 대부분을 글을 써야 할 텐데... 라고 불안해하며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여가를 이용해 무엇을 하느냐. 채집생활을 한다. 
넷플릭스를 켠다. 새로 나온 작품들을 스캔한다. 아카데미상 받은 명작들 중 못 본 것을 서치한다. 인터넷에서 믿을 만한 고수들이 추천한 작품들을 찾아본다. 열심히 채집한다. 내가 찜한 목록은 점점 늘어나고 그것만 봐도 흐뭇하다. 흐뭇하니까 실제로 보지는 않는다. 넷플릭스를 끈다. 그리고 유튜브를 켠다...
결국 프리랜서로서 두번째 삶을 시작해보고서야 깨달은 첫 번째 이치는, 자유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스스로를 구속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려우니까 학교나 직장 같은 조직의 규율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외부의 규율에 결코 뒤지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 자유에는 자율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으면, 스스로 시간에 고삐를 매고 올라타야 한다. 
(중략) '자율'이 어려운 만큼 적절한 '타율'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중략) 재미있는 것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다른 생활습관과 일하는 습관이 마치 패키지처럼 서로 연동된다는 점이다. 특히 하루의 전반부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일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자동으로 계속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고, 그 반대로 시작하면 '이왕 버린 하루'가 되더라. 못 참고 과자 한 봉지 먹은 것을 시작으로 해야 할 일은 미룬 채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들고 '채집생활'로 소일한 날이 많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며 스스로 자꾸 핑계를 대는 것이다. 고통을 지연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고통의 총량만 늘릴 뿐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 글쓰기, 책 읽기, 이렇게 세 가지다. 경험상 하루를 낭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일들이다. 잠깐이라도 이런 일들로 하루를 시작하면, 모드가 전환되면서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99)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연출에게 거절당하고 배우에게 거절당하고 채널에 거절당하고 제작사에 거절당하고. 과한 자신감으로 동시에 여러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보겠다며 달려들었더니 동시에 여러 편의 드라마를 거절당하는 경험만 쌓여갔다.
(중략) 하지만 그 사이에 나 자신이 고장나 있었다.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한참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대신 스스로에게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작업 계획만 정교하게 세웠다 고치길 반복했다. 정작 실제 작업 자체는 안간힘을 다해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가 즐겁고 좋아서 새 인생을 시작했는데,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글 쓰기가 두려워졌다. 재미있는 글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누군가를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글에서 도피하려는 비겁함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작을 하지 않고 준비만 하고 있으면 아직은 실패한 것이 아니니까. 영원히 차기작을 준비하는 작가로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138)

 

솔직히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평소 내 입버릇은 '어떻게든 되겠지, 뭐'였다. 이 말의 이면에는 '닥치면 어떻게든 해낼 거야'라는 '내일의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녀석을 믿고 게으름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져버렸다. 드라마든 책이든 글 작업에 유의미한 진척 없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고만 있는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내일의 나'는 한심한 '오늘의 나'를 더이상 구해주지 않았다. 
(중략) 아주 오랜 시간 후에야 결국 그걸 직시하고 인정한 후, 내가 한 일은 그냥 집밖으로 나가서 걷기였다. 그동안은 막상 쓰고 있지도 않으면서 작업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외출도 줄이고 집에만 처박혀 있기 일쑤였다. 모든 자기합리화와 도피와 핑계를 다 내려놓고, 심플하게 나 지금 망했구나, 인정하고 나니 외려 맘이 편해졌다. 머리를 비우고 지면을 두 발로 누르며 걷고 있다보니 오랜만에 뭔가 새로운 생각이 샘솟는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를 종일 멍하니 넘겨보고 있을 때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공간이 머릿속에 없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 결심했다. 어차피 망한 거, '쓰레기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거나 써보자.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이게 쓸 만한 물건이 될지도 걱정하지 말고 그냥 커서만 깜빡거리는 빈 A4용지 크기 화면을 검은 글자로 채우기라도 해보자. 명작이 아니라 쓰레기를 쓰는 게 목표니까 그 정도는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백팩에 챙겨서 햇볕 좋은 날 한강을 걸거 천장이 높은 북카페를 찾았다. 그러고도 이틀, 사흘, 딴짓만 하면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고통스러운 느낌을 회피하려는 나 자신에게 패배하고, 패배한 끝에 어느 순간 문득, 드디어 아무거나 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단 한 번 쓰기 시작하니까 어떻게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이 절로 움직이더라.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인간 행동 습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다. (140)

 

실패를 두려워하며 숨어 있기보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맞으려 한다.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만 있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142)

 

결국 '대중의 취향'은 어차피 아무도 맞출 수 없으니 우선 작가 본인이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쓰는 게 맞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부담감과 불안감에 짓눌린 상태에서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슬프게도 창작의 순수한 기쁨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다. 남들이 이걸 좋아할지 말지 먼저 걱정하게 되는 상황에서 글쓰기를 즐기기란 어렵다. (149)

 

여행도 휴식도 일과 일 사이의 재충전일 때 꿀처럼 달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똑같은 일상일 뿐이었다. 그것도 왠지 모를 불안과 초조함, 무력감 속에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듯한 일상. 나는 법원생활 내내 내가 베짱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일개미였던 것이다. (154)

 

하지만 최소한 이제는 안다. 재테크도 여행도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과 삶의 균형이란 일도 치열하게, 삶도 치열하게 살아낼 대 찾아온다는 것을. (158)

 

작가생활 초기에는 일부러 인맥을 넓혀가려고 애쓴 적도 있다. 콘텐츠업계는 인맥으로 돌아간다는 속설에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다. 언젠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잘나가는 제작자, 잘나가는 감독, 잘나가는 스타와 알고 지낼 기회가 있으면 개인주의 성향을 참아가면서 열심히 자리에 나가곤 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허술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프로의 세계는 철저히 성과주의다. 내가 큰 성과를 내면 너도나도 일하고 싶어서 줄을 서지만 그러지 못하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사람 좋다고 누구와 일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성격 더럽다고 뒤에서 욕하면서도 제발 같이 일하자고 매달리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결국 일은 일일 뿐이다. 지금은 완전히 구별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일로 만난 사이는 철저하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협업에만 충실히 임한다. 친절하게 대하되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한다. (164)

 

아무리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대사, 뻔한 이야기만 떠오를 때의 절망감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그것은 공포에 가깝다. 일단 시작한 이야기를 끝맺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다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애초에 나는 재능이 없었구나 하는 두려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톱 중의 톱인 작가도 대본을 집필하던 중 프로듀서에게 밤마다 전화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재능이 없어. 난 이제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라면서. 
이런 시기가 오면 글쓰기는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앞에서 이야기했던 '쓰기 싫다병'이 찾아온다. 현실도피다. 이 병에는 약도 없다. 피해 갈 방법도 없다. 오직 고통 속에서 스스로 극복해야 할 뿐이다. 다시 재미있는 글이 나올 때까지 쓰고 또 쓰면서 견뎌낼 수밖에.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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