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야 하는 말을 안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29)
엄마 말대로 사서 고생이지. 사서 고생이긴 한데 미안하지만 엄마랑 같이 살 때보다는 좋아. 엄마는 내가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에 집을 나왔다고 생각하지? 맞아. 그런 것도 있었어. 낮에는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전시 보고 공연 보고 영화관이나 서점에 가볍게 들르고 짬짬이 인문학 강좌도 들으면서 교양 있게 살고 싶었어. 우리 집 근처에는 그런걸 할 수 있는 데가 없잖아.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하나 없는데. 물론 지금도 내가 꿈꾸던 대로 살고 있지는 않아. 그럴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43)
사실 좀 속상하더라. 네가 그 미친놈이냐고 남자의 멱살을 잡아줄 사람, 피해자한테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경찰서를 뒤집어 놓을 사람, 당장 이사 나갈 거니까 보증금 내놓으라고 고함을 칠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야. 괜찮냐고 놀랐겠다고 마음 편안해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어. (49)
그당시에는 이것이 나도 너무 필요했다. 그래서 그렇게 매진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와서 2019년의 4월에 내가 깨달은 점은 또 다르다. 막상 그당시에 내 곁에서 물리적으로 함께 해주고, 분개해주어도 음.. .... 뭐랄까 성가셨다. 그냥 혼자하는게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요즘 나를 지배하는 가장 큰 생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
그제야 은순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결혼이 하고 싶은가. 아니다. 그런데 왜 조급한가. 스물아홉이라서? 은순이 겪은 모든 일들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고 스물 아홉이기 때문에 벌어진 불행은 아무것도 없다. 서른 아홉에도 마흔 아홉에도 쉰 아홉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60)
입사 후 첫 회식이 떠올랐다. 신입사원이고 나이도 가장 어려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는 내게 선배들은 술을 권하고 노래를 시켰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데 참을 수 없게 수치스러웠다. 집에 와서 밤새 울었다. (93)
나의 스무 살이 떠올랐다. 술은 마셨겠다, 조금 취했겠다, 마침 룸메도 없었겠다, 이참에 엉엉 울어버렸다. 왜 울었던 건진 모른다. 근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 싫었던 것 만큼은 또렷하다. 그래서 아직도 술을 즐기지 않는 건지도. 고작 한 두살 차이로 귀여움을 시키고 술을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배울 점 조차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들이.
후자의 부분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자는 여전히 고수하는 생각이다.
"형부가 눈치가 좀 없네."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95)
"천천히 와."
힘내라거나 응원한다는 말보다 더 든든한 한마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는 내내 천천히 오라는 남편의 짧은 인사를 생각했다. (150)
정말 정말 배려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말.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남자는 급기야 저 나쁜 사람 아닌데, 했다.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17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그랬다. 그 나쁜 놈이 정말 자기 나쁜 사람 아니라고 했었다. 으윽 소름.
결혼 전 나는 작은 마을 금고에서 일했다. 경력을 쌓아서 규모도 크고 안정적인 금융회사로 옮길 계획이었다. 그러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맞선 자리에서 남편을 만났고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었다. 후회하지 안흔다.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성실하고 능력 있고 가정에 충실하다. 나 역시 매일의 시간을 촘촘히 계획해서 보내는 편이고 모든 일정을 마친 저녁에는 혼자 조용히 쉬는 것을 좋아한다. 부족한 것도 불편한 것도 없고 힘들거나 속상한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이게 오순도순 다정하게 사는 건가. (185)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다 큰 딸들은 더 이상 나에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달래달라고 위로해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은이는 이혼하고 정아는 결혼했다.
내 일상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는 주민센터 요가 교실에 다녀오고 낮에는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은 거의 매일 혼자 먹는다. 오늘도 남편은 약속이 있고 나는 길 건너 새로 생긴 초밥집에 가볼까 싶다. 살면서 한 번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내일은 혼자 영화를 보러 갈 것이고 주말에는 혼자 한강변을 산책할 것이다. (190)
그런데 우리들 역시 서로를 '초딩'이라고 부르면서 놀립니다. 이제 스스로 무시하는 말을 쓰지 맙시다. 잘못이 있다면 잘못한 사람만,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만 지적해야 합니다. (260)
이 부분은 뭐랄까,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타인 존중 단원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텍스트다. 이번 수업에 꼭 써봐야지. 초등학교 전교회장 후보 연설이지만, 정말 정독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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