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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끈적끈적한 뜨거운 감정도 질척질척한 음울한 감정도 없다. 애초에 가게 주인은 자전거가게의 주인아저씨처럼 손님에게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다. 보관하고 싶으시면 맡아드리지요. 이런 분위기다. 그렇다고 일을 아무렇게나 대충하는 타입은 아니고 잔잔한 성실함이 있었다. 그런 곳이다.
그래, 가게 주인의 손에서 느껴지던 것이 그거다. 성실함은 왠지 차갑고 납작한 느낌이다. 자전거가게의 주인아저씨에게 느꼈던 것은 좀 더 일그러지고 울퉁불퉁했다. (74)

 

나는 가게 주인의 성실한 손에 이끌려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가게 주인은 그냥 맡아만 주지 않고 저 고물 자전거를 관리해주었다. 눈도 안 보이고 자전거 가게 주인아저씨 같은 프로가 아니니까 시간을 담뿍 들여서 닦았겠지.
그 성실한 손으로.
성실함은 소중하다. 공평하니까. 팥색에게도 내게도 가게 주인의 성실함은 꼼꼼히 배분된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성실함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좀 더 뜨거운 것이다. 그게 어떤 색이고 어떤 형태인진 잘 모르겠어도. (79)

시간을 담뿍 들인다는 것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쓰요시는 팥색 자전거를 좋아하게 된 거지, 내가 싫어졌거나 질려서가 아니다. 원래부터 나와 쓰요시는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으니까. (93)

 

주인아저씨는 이미 샀다고 생각했는지 내 핸들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성실하지 않으나 울퉁불퉁하고 일그러진 무언가. 뜨겁고 강압적이며 반응이 있는 무언가다.
이것이 '사랑'이다. (97)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노력에는 끝이 없소.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지. 본인도, 주변 사람도." (116)

나도 그 끝없이 노력했던 한 사람을 안다. 매번 나는 속상해했다. 너에게는 오늘이 없냐고, 오늘의 우리가 내일의 우리를 만드는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내일만 바라보고 살아서 나를 못 보는 것 같았기 때문. 그래서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노력은 나만 하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도 함께 해야하는 것임을. 물론 나는 그것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갑자기 코골이가 멈췄다. 오, 죽었나? 그런데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두워!"하고 불평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구나. (120)

눈이 보이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됐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참이나 했다.

 

"다음 날에 보니까 신기하게도 이혼 서류가 사라졌지 뭐야."
"헤에."
"아마 아빠, 밤중에 몰래 돌아왔다가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아서 나갔었나봐. 걱정돼서 전화했더니 이혼 서류 따위 모른다는 거야. 틀림없이 어딘가에 버렸겠지. 이 사람은 헤어질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확 풀렸어. 그래서 오늘 저녁은 어묵탕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아빠는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서 돌아왔지."
"그걸로 끝이야?"
엄마는 잠시 불단을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마치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부부는 사소한 일로 싸우고 사소한 계기로 화해하거든." (166)

피식.
아주 작지만 믿음이 주는 힘. 그리고 상황을 너무 어렵고 무겁게만 바라보지 않는 태도.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는 분노가 없었다. 그저 괴로울 뿐이다. 그러니까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 그냥 그뿐이다. 그래도 엄마가 화를 내주어서 조금은 마음이 든든하고 훈훈했다. (172)

맞아! 누군가 내 일처럼 펄펄 뛰고, 길길이 뛰어주면 내가 다 웃음이 난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귀엽고 따뜻해서.

 

한참 걷다가 깨달았다. 벌써 단풍이 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보인다. 내일도 또 다른 무언가가 보일까? (175)

 

'잘 다녀오세요'에는 힘이 있다. 나는 등을 떠밀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그 길로 구청에 가서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빠뜨린 부분도 없고 도장도 찍혀 있어서 완벽한 서류였다.
몸이 너무도 가벼워져서 둥실둥실하다. (185)

가끔 내 옆자리 샘이 '네~ 다녀오세요'라고 하시면 엄청 기분이 좋다.
물론 그 분이 가진 힘과 다정함 때문이겠지만, 왠지 돌아와도 그곳에 계실 것 같아서 좋다.

 

그런데 고양이 털이 붙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손님은 그 상태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 털 역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여행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191)

너무 예쁜 상상력이다. 나의 일부가 여기 저기로 가는 일이 여행이라니, 이 문장이야 말로 가슴을 콩닥 콩닥 뛰게 만든다.

 

나는 아시타 마치 곤페이토 상점가의 여러 가게를 훔쳐보고 다니는데, 주인 같은 사람은 없다. 다들 조금씩 남자 냄새나 여자 냄새를 풍긴다. 그렇다. 모두 냄새를 가지고 있다. (195)

여기 책에서는 냄새와 자신의 성별은 무관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나는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어린 시절에 나는 굳게 믿었다. 고양이는 모두 인간의 손바닥에서 태어난다고. 10년이나 살다 보니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서, 이제 고양이가 고양이에게서 태어난다는 걸 안다. 고양이의 출산을 본 적도 있다. 상점가 이발소의 도라가 아기를 낳았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는데 그게 진실이다. 아무래도 나만 주인에게서 태어난 것 같다. 나는 특별한 고양이다.
특별. 이 발음, 진짜 멋지지? 여왕이 된 기분이야. (196)

ㅠㅠ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내겐 엄마의 첫사랑인 셈이니 겸연쩍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하다. 게다가 걱정이다. 주인이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199)

나의 아가들이 남친 혹은 여친이 생겼을 때 내가 드는 마음. ㅠㅠ 복잡한 마음인데, 그냥 가장 큰 마음은 내 아가가 상처받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

 

주인의 표정이 꼭 어린애 같았다. 상점가에서 종종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애들처럼. 어른을 전적으로 믿고 뭐든지 맡긴다. 그런 표정으로 아이자와 아줌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은 내게 충격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주인은 처음부터 어른이었다. 냉정하고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공평하고 다정하게 대하서도 어딘가 차가웠다. 고집이나 갈등, 집착 같은 격정적인 감정과는 무관했다.
지금은 다르다. <어린왕자>에 푹 빠졌다.
그리고 아이자와 아줌마의 목소리에 의지했다.
처음 보는 주인의 어린애 같은 표정.
주인은 드디어 엄마를 얻은 것이다.
사람은 엄마를 얻어야만 어린애가 될 수 있다. (228)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지막 문장.

 

주인은 기다리지만, 비누 아가씨는 오지 않는다.
혹시, 내 탓인가?
배 속에 모래가 들어찬 것처럼 괴롭다.
이게 미안하다는 감정, 죄책감이구나. 비누 아가씨가 책을 훔친 죄책감을 품고 살아온 것처럼, 나도 이 감정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233)

배 속에 모래가 가득 찬 것 같은 느낌. 죄책감. 내가 정말 싫어하고 경계하는 마음.

 

책을 읽는 동안 참 따뜻했다.
읽으면서 나도 위로받는 기분.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내가 너에게 선물했던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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