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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껍질 속 사랑

이해심 많은 여인이어야 했다. 절대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질문을 해봤자 비참해지는 건 나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바구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것 좀 그냥 놓고 갈게요."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는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쿨하게 별일 아니란 듯이 내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그게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주인아주머니의 직업적인 친절처럼 나도 그에게 애인이라는 직업적 친절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각주:1]

 

 

 


열정의 끝

그런 그의 모습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려는,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를 봤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잊고 잠시나마 여자에게, 아니 나에게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의 느낌을 경험해본 여자라면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알 거다.

그 저릿한 충만감에 취해 한때 나는 그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갔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있게 준비한 채 그를 기다렸다. 그의 스케쥴에 맞춰 살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일보다, 내 친구보다, 내 미래보다 그가 더 중요했다. 맹목적이고 찰나적인 열정에 도취해 살던 시절이었다. [각주:2]

 

 

 


크리스마스이브에 생긴 일

수현은 이런 남자와 사느니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각주:3]

ㅋㅋㅋㅋ 자주 곧잘 하는 생각.

본전도 안 될 거라면 하지 말자는 생각. 내가 유독 가장 차갑게 계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여자들에겐 저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호정은 강조했다.[각주:4]

그래서 궁금해진다. 나는 도대체가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가 뭘까. 그리고 정말 그것만 있으면 나는 괜찮은걸까.

 

 

수현은 공적으로 접하게 되는 못난 남자들은 어떻게든 밟아야 직성이 풀리면서 사적으로 만나게 되는 못난 남자들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웬일인지 루저 앞에선 한없이 관대해지고 기꺼이 용서해주는 자비로운 여자가 되어갔다. [각주:5]

 

 

우진은 흔히 말하는 '좋은 남자'였다.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동성 친구와 얘기하듯 편했고 늘 마시던 커피도 훨씬 맛있었다. 문제는 즐겁고 기분은 좋은데 설레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안함과 공감보다는 설렘과 낯선 이질감이 수현에게는 더 섹시하게 느껴진다.

(중략) 그렇게 잘해주고 잘 이해해주는데도 수현의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수현은 진심으로 자신이 우진에게 푹 빠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각주:6]

 

 

 


친구 이상 애인 미만

그 따뜻한 품에 안기면서 마리는 비로소 자신이 돌아갈 곳을 찾은 듯한 안도감을 아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마리는 그동안의 모든 방황이 오로지 요한이 왜 필요한지 깨닫기 위한 학습 과정이었다는 생각에, 또 오버하면 안 되지 하며 마음을 다졌다. [각주:7]

내가 돌아올 곳은 여기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는 품. 그 품이 가져다주는 신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너무 당연하게 돌아오게 되는 집같은 품.

그래서 참 어려웠고 어렵다.

세상이 무너질듯이 힘든 날에는 어김없이 그 품이 떠오르기 때문.

 

 

 


작가의 말

그녀들은 사랑 앞에서 드라마틱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라고 하면서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욕망과 체념 사이에서,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진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뜨거운 마음이 차가운 머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불안해했고 그것이 드러날까 시니컬하게 자기변호를 했다.

어렵사리 사랑을 시작해놓고는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를 이별을 예감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건조해지고 서늘해져갔다. 그렇지만 애써 숨기려 해도 사랑 앞에선 뼛속 깊이 약해지고 낭만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그녀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들은 물었다. 사랑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고. 해답을 알면서 묻는 그녀들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을 줄 수가 없었다. 나의 우발적인 충동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내가 스스로 용기를 내 소설을 쓰기로 한 것처럼, 그녀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스로 행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설렘과 열정이 머물다 지나가고 이별이 찾아오기까지 그 묵직한 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더 혹은 덜 사랑한 자의 무모함, 잔인함, 치사함, 처연함, 비루함 같은 것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한다고.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나와 그녀들과 당신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 사랑스런 남자들도 함께 조금씩 철이 들겠지. [각주:8]

 

 

임경선님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예전 작품들까지 전부 읽어버리고 있는 나. ㅋㅋ

이런 나를 아시면 무서워하시려나. 근데 그렇게 해서라도 경선님의 생각을 듣고 싶고 알고 싶고, 그것을 두고 나 스스로도 생각해보고 싶었다.

참 신기하다. 경선님의 책을 읽으면 꼭 언젠가 내가 했던 경험들을 마주하게 되고, 또 언젠가 내가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고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경선님만의 해답과 생각을 덧붙여주기 때문에 내가 그녀의 글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야말로 결혼을 꼭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하고. 그리고 또 나야말로 결혼을 급하게 바라보는 게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자주 조급해지고 조급한데에서 서운해지고 서운한데에서 마음이 건조해져 간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마음인걸까 나? '이사람 아니라면 어서 빨리 다음의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

그래서인건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할 시간을, 기회를.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을 다듬어 보완'해나갈'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사람을 찾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어딘가에는 꼭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누군가의 말이 정말 맞다.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할 사람을 찾고, 알아보느냐고.

맞다 맞아.

그렇다면 내가 나를 잘 아는 게 우선인데. 쉽지 않다. 나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 같으니까 흑흑.

 

오늘 본 영화 <어쩌다 로맨스>에서

주인공 냇의 말과 모습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I.. I... I love.. I love.. ME! I LOVE ME!!!!! YES I LO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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