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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문득, 지님보다 지니지 않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필요한 것을 비교적 고루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기보다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가뿐하지 않은가. [각주:1]

 

내 집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의 그 해방된 느낌과 행복, 평온함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따끈한 물의 질감, 그리고 피어오르는 김의 냄새.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어디를 가든 집의 욕실을 그리워한다. [각주:2]

정말 ㅠㅠ

언젠가 나도 꼭 욕조를 살 예정.

몇살때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자연스럽게 욕조 목욕이 좋아졌고 그래서 꼭 여행을 가서는 욕조에서 오래간 목욕을 한다. 온천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따뜻하고 노곤하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정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케이크라는 말에서 환기되는 달콤하고 조촐한 행복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것은 실물로서의 케이크 하나와는 오히려 무관하다.

"뭘 좋아하나요?"

하고 물으면 주저 없이,

"케이크."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함으로, 나는 살아가고 싶다. [각주:3]

 

한편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과 향수, 목욕할 때 머리를 묶는 핀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을 이런 사소한 것에 의존하고 있구나, 하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각주:4]

ㅋㅋㅋㅋㅋㅋ 격한 공감!

나도 어디를 가더라도 꼭 책과 목욕할 때 머리를 묶는 핀과 앞머리를 고정할 핀을 챙긴다. 충전기를 안챙기거나 지갑을 안 챙긴적은 있어도 이 두개를 깜빡한 적은 없다. ㅋㅋㅋㅋ 정말 생활을 아주 사소한 것들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욕심이 지나쳤다는 생각을 또 한다.

 

 

읽던 책에서 꽃이나 잎이 스르륵 흘러 떨어지면, 정말 놀란다. 상상 이상으로 소스라친다.

책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읽는 동안에는 그 세계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꽃이나 잎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것처럼 기묘하게 보인다. [각주:5]

이 부분을 읽고 2017년 여름-가을쯤이 생각났다.

여느날처럼 연신내 알라딘의 중고서점에서 책을 샀고, 꽤 시간이 지나 책을 읽으려고 폈는데 잎이 스르륵.

정말 예쁘게 바래있고 말라있던 잎.

꼭 누군가가 내게 준 선물 같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주인은 누굴까, 언제 어떤 마음으로 잎을 넣어둔걸까, 잎을 넣어둔걸 알지만 그대로 책을 되판 것일까 등등.

 

 

그런 데다 택시 안이라는 게 또 문제다. 그 협소하고, 생활 감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공간. 밤거리를 이동하는 무수한 차들 가운데 한 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운전사란 타인의 인격과 인생. 그리고 운전사와는 아무 관계 없는, 나란 손님의 감정과 그날 하루. [각주:6]

 

프렌치토스트가 주는 행복은 그것이 아침을 위한 먹을거리이며, 아침을 함께할 만큼 소중한 사람이 아니면 같이 먹게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각주:7]

 

자장가란 참 신기한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막 자려는 참에 노래를 불러대면 시끄러워서 잠이 들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아이들에게는 기분 좋게 들린다면, 그것은 역시 어린 아이들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기껏 노래를 불러주는데 들어는 줘야지, 하는 공연한 신경을 쓰지 않는 덕분일 것이다. 그런 것을 천진함의 미덕이라 해야 할까. [각주:8]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늘 우리 아이들에게 배우는 이유. 정말 깨끗하고 예쁜 마음이 가득하니까. 매번 그 마음들이 나를 놀라게 하니까.

 

 

문화와 풍경이 다른 외국에 즐겨 나가고, 다르면 다를수록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런 한편, 돌아가는 길, 대도시 주변의 드넓은 공항에 도착해 번듯하고 충실한 화장실과 커피숍을 보면 왠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 일상적인 안도감이 좋으면 굳이 여행할 게 뭐 있느냐고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조금은 있기에, 공항에서 안도하는 나 자신이 늘 한심스럽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장소에 가고 싶어 떠나왔는데, 그 속을 알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안도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각주:9]

ㅠㅠ나다. 나는 대도시가 주는 안락함이 좋았고, 그래서 지난 유럽여행도 바르셀로나와 특! 히! 마드리드가 좋았다. 리스본도.

작은 도시도 물론 좋지만, 며칠이 지나면 조금은 갑갑?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전면허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핸들을 잡아도 법률 위반이 아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놀라워, 거의 어이가 없을 정도다. 놀이 공원에 가서도 미니카 하나 타지 못했던 아이였는데, 그리고 그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내 운동 능력에 별 차이가 없는 듯한데, 40년 가까이를 살다 보니 어쩌다 운전면허를 따고 만 것이다.

케이크 가게에 들어가서도, 진열된 케이크 가운데 어떤 것이나 얼만큼이든 사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그때마다 놀랍다. 속에서 기쁨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절대 돈의 문제는 아니다. 케이크를 스무 조각씩 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움찔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 꽤나 많이 오는 모양이지, 하고 상상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움찔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마음 편한 일이다. 자유를 그렇게 정의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운전을 하든 말든, 케이크를 몇 개 사든, 다 내 마음이란 사실이 때로 놀랍고, 실제로도 놀란다. 아직도 그 사실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말을 당당히 하는 것은 물론 부끄러운 일이리라. 하지만, 역시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복잡한 전철을 탔을 때면 간혹 생각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 어린애였다. 거짓말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목욕을 싫어하고 잠자다 오줌을 싸고 이를 닦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

어린이에게는 세계가 온통 불합리하다. 내게는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절절하게 남아 있다. [각주:10]

내가 이 책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한 마지막 글.

그리고 역시 에쿠니 가오리구나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나는 올해 어엿한 스물 여섯인데, 저엉말 믿기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흑흑.....

나는 아직 스물 셋, 혹은 스물 넷 같은데.... (혹은 스물 하나?)

 

유난히 기억이 많았던 나이의 나로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정말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과 행세를 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래서 또 아이들에게 쉽게 화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아이들에게 나이와 직위를 이유로 권위를 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뭐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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