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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작자들에게는 여느 때보다 '뛰어남' 혹은 '유명세'가 요구되는 듯싶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창작자로 하여금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7)

 

저마다의 새롭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긴장되며, 징그럽고, 끝없이 계속되는 출발 앞에서 느끼는 당연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한 의연함 역시 없음을 말하는 대화이다. (9)

 

무언가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여전히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두렵고 초조하다. (10)

 

당장의 그가 너무나 빛나 보였던 나머지, 그의 처음 같은 것을 상상해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18)

 

약간 미치겠는 거예요. (웃음) 그날 엄청나게 긴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실수 없이 잘 끝났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그냥 해야죠, 뭐. (29)

나에게 부족한 것은 맹목과 단순함일지도. 

 

그런데 일을 줄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불안으로 다가오지 않았나요?

(바로) 불안하죠. 되게 불안하죠. (40)

 

다른 인터뷰에서 "영상과 글에 있어서만큼은 자책하지 않는다."라고 하신 걸 보았어요. 저는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저는 완전 자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웃음) 그러면서 "못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덧붙이기도 하셨어요. 저도 동의해요. 완전 전적으로 동의하고 알지만...

(웃는다)

알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잘 안 돼요.

자책의 굴레를 극복할 때 스스로에게 자꾸 주문을 걸었다고 하셨는데, 그 주문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왜냐하면 저 같은 분들이 되게 많을 거예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만든 거, 너무 형편없잖아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계속하면 아무것도 안 되겠는 거예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내 길을 만들겠어요. 피드백도 받아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 나의 못남을 좀 견뎌야 하는 거죠. 어쨌든 못하는 게 안 하는 거보다는 결과적으로 나의 발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런 조언을 저도 봤었어요. 그런 거 있죠, 미완성 곡이나 글을 두 편 쓰는 것보다, 못났지만 완성된 하나를 만드는 게 훨씬 더 많이 성장하게 한다는 말이요. 그런 조언을 보면서 많이 다짐했죠. 진짜 별로인 거라도 하나 완성하자, 그래서 하나하나 쌓아가자. 어쨌든 다음에 더 잘하면 되잖아요. 뭔가를 계속 쌓아 나가는 일이 결국 스스로에게 더 도움이 될 거고, 아무리 '이건 완벽하게 만들겠어.' 해봤자 그걸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많이 했었죠.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별수 없다.

영원히 완벽해지지 않아요. 누구든지 포기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해요. '여기서 포기다. 타협해야겠다.'는 순간을 맞이해야만 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유튜브로 책 권하는법>에도 그런 구절을 썼는데, 언제든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내가 지금 개떡같이 했어도, 이걸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내 인생에 아직 무엇이든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46)  

 

그런데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창작의 완성은 노출이잖아요. 하지만 세상에 나의 것을 내보이는 일에는 만드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를 드러내 보이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별로라는 인정. (64)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다 못하는 시절이 있어요. (65)

 

수년간 단련된 그의 근육에 질문이 무색해질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하는지, 버티는지, 쉬는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지 묻는 때에 그랬다. 그것도 자주. 왠 훈련에 익숙해진 선수처럼, "그냥 한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강인함을 느꼈다. (71)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 처음엔 조금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이다음 무언가가 있어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쌓는 마케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니까, 그때그때 재밌는 일이 들어오면 하고 지루하면 안 하게 되었어요.(82)

 

저도 뭔가를 많이 하잖아요.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도, 많이 올리니까 그래요. 하나를 해도 막 열 번씩 말하니까. 그런데 저는 참새 님을 비롯한 분들을 보면 확실히 콘텐츠의 힘을 믿게 돼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저것 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자기의 매력을 막 뿜어내는 시기가 저마다 있는 것 같아요.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받을지라도요. (88)

 

그래도 제일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도 취향이 있으니까 어떤 게 별로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별로인 건 절대 어디에 올리거나 평하지 않아요. (95)

 

당시에는 제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갑자기 큰 사랑을 받아서 감당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 해보면, 애초에 완벽한 준비는 없는 것 같아요. 준비가 안 되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힘들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138)

 

그런데 저는 이걸 딱 멈추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이런 생각 회로를 '자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저를 해치는 거죠.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평가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부분에서 휩쓸리는 게, (143)

 

어떻게 보면 '깊이에의 강요'는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거든요. 내가 잘하고 싶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근거가 없으니까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차곡차곡 하나씩 쌓아올리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생긴 거죠. 그래서 깊이에 대해서는 예전만큼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초반엔 스스로의 자격이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것보다는 '성실함'과 일에 대한 '진실함'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결과물과 시간이 쌓이면, 나머지 재능은 그냥 따라오게 된다고 생각해요. 근거가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는 거죠.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할 때 느끼는 막연함이나 두려움 중에서 어떤 부분은,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146)

 

어릴 때는 예술적 능력이 있어야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오래 하는 사람이 ... 최고다. (147)

 

그래서 뭔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떄, '내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기획이라는 게, 생각은 누구나 하잖아요. 사적인서점 처음했을 때도, 저희 서점 인터뷰가 나가면 무조건 있었던 댓글이 "아, 이거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

나도 생각했던 건데!

정말 많았었거든요.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실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거죠. (151)

 

첫 번째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전부가 아니라고요. 선택 앞에서 절박해지는 이유가, 여기서 망하면 끝장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움직이거나 시도하는 게 아니라요. 잘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도전이나 모험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요. (170)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와 맞바꾼 거잖아요. 자유라는 것과 안정감을 맞바꾼 거죠. 사실 자유는 너무 크고 귀한 건데, 이미 갖고 있는 거니까 당연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건 못 보고 나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만 크게 보는 거죠.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172)

 

맞아요, 공포가 있었죠. 매일 글 쓰는 거는, (한숨) 별로 안 어려워요. 매일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는 게 어렵죠. 일기를 쓰는 건 쉽잖아요. (207)

이슬아도 무섭다는데.

 

용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창작자가 용기를 잃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만과는 또 다른 것인데, 일말의 용기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잖아요. (209)

 

문학작품을 보면 진짜 다양한 사람의 온갖 구질구질한 삶이 있지 않습니까. 조금 먼 시선에서 보면, 사람들이 되게 애처롭고 귀엽잖아요. 그래서 어쨌거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치사하고 힘들고, 음, 그리고 변태 같다는 것을 잊지 않고 쓰거든요. 그러면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210)

 

그래도 너무 ... 좋은 글 쓰고 싶잖아요. (웃음) 너무 잘하고 싶잖아요.

맞아... 너무 잘하고 싶지.

그래서인지 언제나 초조하고 아쉽고 그렇지만, 이 모든 생각을 하면 한 자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별로 안 하는 편이에요. (221)

 

제가 감히 미슬 님께 한 말씀 올려보겠습니다. 미슬 님께서는 저보다 현명한 존재이실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미슬이가 두 가지 함정에 빠질까 봐 걱정이에요. 너무 많은 사람들 얘기 듣다가 겁쟁이가 되거나 너무 오만해지고 고집스러워져서 사람들 말 안 듣는 미슬이가 될까 염려돼요. 그러니까 겁쟁이도 아니고 잘난척쟁이도 아닌 사람으로 재밌고 좋은 것을 쓰기를 바라고 있어요. (236)

 

용감해지렴. 용기야말로 생명의 열쇠니까. 결코 자신을 비하하지 마. 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언제나 당당히 기억하기를.

고우야, 외롭니. 고독은 너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란다.

건강하렴.

너의 친구로부터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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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덕 님은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라고 말한 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48) 

 

내가 신지한테 맨날 그래. 주는 게 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는 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베풀라고. 금을 쥐고 있다고 해도 영원히 내 거는 아닌 기야. 불난 일 겪고 나서는 나도 자꾸 더 베풀고 싶어져. (96)

 

제가 신지 언니 책 읽으며 너무 놀랐던 부분이 또 있어요. 스트레스에 관한 인숙 씨의 대사였죠.

어느 날 퇴근길의 버스에서 인숙 씨의 전화를 받았다. 
"딸, 어디."
"버스. 이제 집에 가."
"아홉 시 넘었는데 인제 퇴근했나?"
"어. 야근했어."
"목소리에 기운이 없네."
"저녁도 못 먹었어. 요새 일이 너무 많아. 아, 스트레스 받아..."
"어마야. 니 스트레스를 왜 받나. 그거 안 받을라 하믄 안 받제."
"..."
아니 무슨 스트레스가 전화인가. 안 받을라 하믄 안 받게.
-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17쪽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97)

 

나는 손님 옷 버린 적이 없어.

비결이 뭐예요?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일해. 서둘러서 대충하지 않아. 손이 빠르니까 두세 시간 만에 완성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여유 있게 일정을 잡고 시작해. 그럼 편안한 마음으로 완벽하게 할 수 있잖아. 손님이 찾으러 왔을 때 자신이 있어. 자신 있게 입어보라고 할 수 있어. (249)

 

가끔은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내 삶이 필름처럼 돌아가

주마등처럼요?

응.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촤악 스쳐 가는 거야. 젊었을 땐 남편이랑 바람 피우고 살림 차린 젊은 여자도 참 미워했고, 우리 시어머니도 미워했어. 이제는 아무도 밉지가 않아.

왜 안 미우세요?

몰라. 어느새 이해가 돼. 안 미워. 그 여자들도 안쓰러워.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닐 거야. 그 사람들 삶도 기가 막혀. 그래서 안 밉더라고. (267)

 

 

이슬아의 인터뷰집은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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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배불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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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우리가 각자 살면서 나눠본 대화 중에 가장 흡족한 대화를 나누고, 우리 둘 다 그걸 단 일주일이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토록 강렬하게 이끌리는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느끼는 방식이니까. (7) 

 

이런 여정에선 걸으면 걸을수록 시공간의 성격이 자꾸만 바뀌었고 '시간'이란 개념도 증발해버렸다. 거리는 기다란 리본처럼 한없이 펼쳐졌고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확장되어 어린 시절에 그랬듯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언제나 빠듯하고 언제나 촉박한, 정서적 안정을 위한 덧없는 척도일 뿐인 지금의 시간과는 달리. (24)

 

자기 최선의 자아. 이는 몇백 년간 우정의 본질을 정의할 때면 반드시 전제되는 핵심 개념이었다. 친구란 자기 내면의 선량함에 말을건네는 선량한 존재라는 것. 치유의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런 개념은 얼마나 낯선가! 오늘날 우리는 서로 최선의 자아를 긍정하기는커녕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ㅡ공포, 분노, 치욕ㅡ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28) 

 

콜리지와 워즈워스가 두려워했던 그런 식의 자기폭로를 오늘날 우리는 아주 좋아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28)

 

순간 우리 셋은 눈을 마주치고, 곧 한꺼번에 깔깔 웃어젖힌다. 웃음이 멈추자 다 같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수행은 다 같이 했고 수용은 각자가 했다. (34)

이 책은 진짜 죽비같다.

 

나는 성욕이 강한 사람이지만 성욕이 제일 중요한 사람은 아니며, 오르가슴으로 천국을 맛보기는 했어도 지구가 흔들리지는 않았고, 반년 남짓 진이 빠지도록 성적 쾌락에 탐닉할 수는 있어도 늘 그 말초적 자극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을 나누는 일은 숭고했지만 거긴 내 거처가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더 많은 걸 깨달았다. (36)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 자릴 찾는다. (43)

 

이제 미드타운 6번 애비뉴 쪽으로 걸어가는데 문득ㅡ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 극작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ㅡ배터리파크시티 해안 공원 난간 살에 철로 활자를 만들어 주욱 끼워놓았던 프랭크 오하라의 근사한 문구가 떠올랐다. "녹음을 만끽하겠다고 뉴욕의 경계를 벗어날 필요가 전혀 없다. 요 앞 지하철이든 레코드 가게든, 뭐가 됐든 사람들이 인생을 송두리째 후회하진 않는다는 신호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풀 한 포기도 마음 놓고 감상할 수 없으니." (55)

 

엄마는 어둠침침한 방 소파에 누워 한 팔은 이마에 걸치고 다른 팔은 가슴에 올려놓은 채 "외로워!"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면 사방팔방에서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달려와 동네에서 잘난 사람 취급을 받던 이 영혼의 괴로움을 달래보겠다고 쩔쩔맸다. 하지만 엄마는 정신을 놓아버린 듯한 불만 속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등을 돌렸다. 엄마가 바란 건 거기 있는 누구도 건네지 못할 영혼의 위로였다. 그 사람들은 임자가 아니었다. 엄마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한때 딱 한 사람 있었지만, 이제 그는 죽고 없다. 
엄마는 사랑을 성배의 자리에 올려둔 상태였다. 사랑을 찾는다는 건 단지 성적인 희열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머물 자리를 잡는 일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했을 때 영혼에서 모호함이라는 먹구름이 걷혔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표현했다, 모호함이라는 먹구름. 너희 아버진 마술 같은 사람이었지. 눈길, 손길, 그리고 날 이해해주는 게 그랬어. 엄마는 이 문장을 끝맺을 때쯤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해는 부적 같은 단어였다. 엄마 말로는, 이해를 받지 못하면 당신이 살아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고 이해를 받으면 마음이 정돈되며 세상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아빠 곁에서 엄마는 당신에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깊이로 반응했다. 시든, 정치든, 음악이든, 섹스든 모든 것에. 감정에 북받친 듯 엄마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말했다. "모든 것"이 아빠와 함께 가버렸다고. 엄마 영혼에 드리웠던 구름이 다시 나타났고,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검었다. (63)

 

나는 자라서 영락없는 엄마의 딸이 되었다. 꼬마 때부터 똑 부러지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도통 흥미를 못 느꼈다. 내 마음과 주파수가 딱 맞는 사람들이 필요했지만 주변의 어떤 누구도 내가 꼭 듣고 싶어하는 그 말을 돌려주지 않았다. (64)

 

한참 전부터 나는 부르짖고 다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엄마가 느끼던 종류의 그 결핍감에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이상적인 친구'를 빼앗기는 바람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결핍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만 남은 사람처럼. (65)

 

엄마가 심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나온 엄마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엄마에게 그런 구석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목소리에선 비판과 불평이, 얼굴에서는 불만이 사라졌다. 엄마에게는 모든 게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버스에 무사히 올라타고, 두 뺨에 햇살이 비치는 것, 입에 빵을 넣는 것까지도. (95)

 

이것이 볼턴에게 "미쳐 돌아가는 일들이 줄줄이 밀려드는 와중에도 뚜벅뚜벅 걸어나가본 적이 있는 가장 고독한 개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외로움이었다. 
다음 순간 볼턴은 역설적인 상황을 맞닥뜨린다. "세상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혼자 됨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우리가 베풀지 못한 건, 우리 자신을, 우리의 고독한 영혼을 위해 움켜잡고 낚아채고 그러모을 것들이 뻗으면 닿을 거리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쓸 당시 볼턴은 칠순이 다 됐었다. 번잡한 도시의 아름다운 단절 속에 비친 현대의 삶ㅡ말로 다 못 할 엄청난 자유가 있는 그 삶이 다른 시대가 한 적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보여주었다는 걸 알 만큼 오래 산 것이다. 볼턴 역시 프로이트가 알았던 걸 알고 있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불가해하게도 우리는 그 외로움을 포기하길 망설인다. 심리적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야말로 갈등 간의 갈등이다. 이것이 볼턴의 통찰이자 유일한 깨달음이었다. (105)

 

그곳에 입소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있는 앨리스의 모습이 너무 기진맥진해 보여서 나는 덜컥 겁이 났더랬다. 그래도 맞은편 의자에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서 안부도 건너뛴 채 그와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내 목소릴 몇 분쯤 듣노라면 그의 얼굴, 몸, 손짓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내 책과 뉴스 헤드라인과 지인들에 관한 대화를 언제나처럼 신나게 나누었지만, 언쟁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 그 기적 같은 변환의 광경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고도의 지성이 작동하자, 반송장 같던 사람이 생생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본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이나 다름없는 변신을 목격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여긴 대화가 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한번은 내가 그렇게 물었다.
"없지 그럼." 그러면서 앨리스는 덧붙였다. "잡담이야 되지. 잡담은 많이 나눠요. 하지만 대화? 없어요. 그런 건.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는 당연 없고말고." 
앨리스는 매일같이 귓속을 채우는 잡담 때문에 자기가 죽어간다고 했다. 침묵만도 못해, 훨씬 못해, 그렇게 말했다. (115)

매일같이 귓속을 채우는 잡담 때문에 자기가 죽어간다니. 침묵만도 못하지 정말.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그게 대체 뭔 소린데?"라고 따지기보다는 "뭔 말인지 딱 알지"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색하게 되는 기질. 그런 공통의 기질이 있으면 대화는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흐름을 어지간해선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기 마련이다. 
언쟁이 항상 과열되면 나는 이런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려 안간힘을 쓴다. "잘 봐, 그냥 서로 주파수가 어긋난 거야, 그게 다라고, 주파수가 안 맞는 거야." (127)

 

나대로 탐색할 수 있어야 마땅했던 것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점점 방어적으로 변해갔고 고립된 채 닫혀버린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128)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알면서도 늘 잊고 지내는 게 무언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성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실제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서로의 내적 욕망을 자극하는 능력으로 사랑받는 것이란 걸. 매니가 욕망했던, 내게 할당됐던 그 권력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누군가를 영원토록 매혹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의 머릿속 생각이나 영혼의 직관뿐인데, 내가 품은 그것들을 매니는 사랑하지 않았다. 매니에겐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와 감각으로만 연결된다는 건,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내던져져서, 취약해지다 못해 곧 자기회의에 빠져 죽어갈 거라고 느끼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129)

 

이 사안의 진실은 울슨도 제임스도 우정이라는 과업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둘 다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마음을 사로잡혔던 건 신경증적 우울이었고, 각자가 그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자기를 위해서도 못 하는 일을 상대방을 위해 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134)

 

믿거나 말거나, 젊고 약삭빠른 여러분 가운데 내 얘기를 믿는 사람이 있거든 나를 불쌍히 여겨주기를.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뭐가 되고 싶은지' 도통 모르겠으니. (...) 
우리 위층에 있는 그 푸닥진 델리에서 나는 열세 살 때와 다를 바 없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열려 있다. (...)
나와 비슷해 보이는 저 수많은 사람도 영혼의 폭동에 어울리는 전문적인 외피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신세다. 많은 이가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 이건 추측이라기보단 상처와 별들이 내는 목소리다. 나도 그런 삶을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살아낼 것이다. 그러다 결국 사람들이 내 핫도그[재주]마저 채가겠지. (...)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 사회에서 당당하고도 탐구심 넘치는 '실패자'이고, 우리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에서 모순적인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을 시도했고 지금은 왜 취약해졌는지 안다는 건 현명하고도 명예로운 일이다. 한때 빛나는 포부를 망토처럼 두른 당신을 보았지만 지금은 그저 흐린 날 어수선한 이부자리와 거친 나무 탁자에 놓인 더러운 컵들밖에 보지 못하는 이들이 주는 충격에 왜 이토록 취약해졌는지를. (143)

 

내 친구들도 만화경 같은 매일의 경험을 잘 흔들어 섞어야만 친밀함에서 오는 고통, 공공장소의 활기, 낯선 이들의 터무니없는 간섭 따위를 적당히 희석될 만하게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6)

 

그 모든 일 중 무엇 하나라도 잘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 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확실히 할 줄 아는 건 몽상으로 세월 흘려보내기였다. 그저 '상황'이 달라져서 나도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는 것. (165)

 

특히나 엄마는 내게 가슴속 맺힌 한을 풀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어떤 의미에선 이런 이웃이 우리 엄마 같은 뉴요커를 만든 셈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엄마가 한세상 내가 알아온 바로 그 여자, 고집스레 인생에 화를 내는 여자로 남아 있단 뜻이기도 했다. (168)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관심을 건넬 만한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는 노동자 계급 이민자들의 자녀였던 우리는, 거리에 나와 서로가 서로에게서 끌어내는 반응 속에서 자기 존재를 감지하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우리의 놀이는 사실 진짜 놀이였다기보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했던 그 사회의 가치와 존중이란 위계 속에서 힘과 요령, 술수와 기발함으로 매일 각자가 설 자리를 정하는 연습에 가까웠다. 길바닥 아이들의 놀이란 그런 것이었다. (174)

 

외로움이라는 습관은 질기다. 레너드 말로는 외로움을 쓸모 있는 고독으로 바꿔내지 않는 이상 난 영영 엄마의 딸일 거란다. 물론 그 말도 맞기는 하다. 사람은 이상화된 타자의 부재로 인해 외롭지만, 그 쓸모 있는 고독 속에 스스로를 상상의 동반자 삼아 침묵에 생명을 불어넣고 지각 있는 존재라는 증거를 방 안 가득 채워 넣는 '내'가 있다. 이런 통찰의 기틀을 마련하는 법은 에드먼드 고스로부터 배웠다. 그는 탁월한 회고록 <아버지와 아들>에서 아버지의 거짓을 발견한 여덟 살 아이가 내면의 혼란에 빠져드는 과정을 묘사한다. 아이는 속으로 질문한다. 아빠라고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면, 아빠가 아는 건 대체 뭐지? 사람들이 하는 말이랑 그 사람이랑은 무슨 관계일까? 뭘 믿고 뭘 믿지 않을지 어떻게 결정할까?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는 문득 자기에게 말을 걸고 있단 걸 깨닫는다. (185)

외로움을 쓸모 있는 고독으로 바꿔내는 일인 독립. 

 

로다의 화법에 담긴 열정과, 피와 살이 있는 현실이 요구하는 바 사이에는 시험해본 적 없는 신념이라는 미지의 중간지대가 놓여 있다. 될 대로 되라지!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외치기란ㅡ로다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ㅡ얼마나 쉽던가! 반면에 이런 반항적 단순함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위력을 경험한다는 건 얼마나 호된 시련인지. 실패의 순간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로다는 그야말로 이론과 실제의 간극을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우리 중 수많은 사람도 수시로 놓이게 되는 그 간극.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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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삶이 얼마나 수련과 절제의 연속이어야 겨우 유지되는지, 그럼에도 언제라도 사다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당신이 들려준 피아니스트의 삶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혹했어.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걸 자제하고 오로지 피아노 연습만 한다고 했지. 틈이 나면 악보를 공부하거나 자거나 책을 읽는 정도가 다였어. 손을 다칠가 봐 격한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잖아. (85) 

 

사랑에 보태진 연민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섬세한 당신과 기 싸움을 해서 당신을 피로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혹자는 내가 당신의 시무룩함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고 맞추려는 게 다 휘둘리는 거라고 손가락질하겠지. 하지만 상대에게 연민을 느낀느 순간 이미 지는 거잖아. 그렇잖아. (86)

 

'바쁘다'라는 단어를 당신이 처음 썼던 날을 기억해. (97)

 

나는 당신이 언제 시간이 날지, 아니 시간을 내줄지 알 수 없어서 그동안 출장 준비도 틈틈이 미리 해왔는데. 그래서 남아서 야근을 얼마나 했는데. 당신의 연주회, 당신의 연습에 비해 나의 일이 얼마나 밀려나 있었는데... 같은 말들이 입 안에서 감돌기만 하고 밖으로 나가진 못하고 있었어. 엄밀히 따지면 누가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니니까. (101)

 

내 바람대로 아침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음에도 나는 놀라울 정도로 황량한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불편하게 자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낀 나를 위해서 다시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 그런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것대로 또 얼마나 쓸쓸할까. (114)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랑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121)

 

"미안해요."

화를 내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대응하면 화를 내는 이유가 없어져. 상대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화내는 것이 효력을 발휘해. 하지만 상대가 나한테 바라는 게 더 이상 없다면 화내는 사람은 더 비참해지기만 하지. (144)

 

나를 향한 당신의 일시적인 몰입은 패배감과 불안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함이었던 것.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다른 무언가에 몰두해서 메우고 싶었던 것. (153)

 

인간의 자기 보존 능력은 참 대단해. 그리워하는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몸이 부서져버릴 것 같으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만은 막으려고 마음이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더라.

어쩌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사랑은 당신이 야기한 것이지.)
 
당신은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에 그려낸 당신의 이상화된 모습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누군가가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는 건 또 아니지 않나.)

나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까. 막상 돌아오면 기쁨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지는 않을까. 최고의 시간은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들잖아. (여우와 신 포도의 정신 승리!)

지금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당신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내 통제 욕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집착 말이야. 나야말로 권태로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현실도피를 하기 위해 당신을 이용했는지도 몰라. 나의 공허함을 당신에게 몰입하는 것으로 메꾸려고 한 것. (사랑과 통제 욕구가 혼동되는 감정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내 탓으로 돌린들 뭐가 달라질까.) (158)

 

"많이 힘들었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세상의 무게가 어깨에 느껴지는 게 당연해요." 

그 여자는 내가 늘어놓은, 주관이 다분히 섞인 상황에 대해서 그 무엇도 자기 의견을 보태지 않았어. 마치 그런 건 요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어떤 괴로움도 공부가 돼요. 잃는 건 없어요." (173)

 

흐릿한 희망 고문이 선명한 이별로 결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심장에선 콸콸 피가 쏟아져 나왔어.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말의 모호한 가능성을 끌어안고 있는 편이 더 고통스러운지, 아니면 더 이상 보지 말자는 이별을 정확하게 선고받는 쪽이 더 고통스러운지 점점 더 알 수가 없었어. (187)

 

자기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상대를 덜 사랑할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내가 상대를 많이 좋아하면 어쩐지 내가 늘 더 그를 좋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러다 보면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하고 싶지만 못 하는 말이 생기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말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진심을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한 모험처럼 여겨지고, 도중에 상처를 작게라도 한번 받으면 자발적으로 눌변이 되어간다. (212)

 

그렇다 해도 사랑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조금 더 혹은 덜 사랑한 사람이, 조금 먼저 사랑하기를 그만두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멈추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213)

 

이 마음이야말로 어쩌면 사랑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 행복했던 것만큼 사랑으로 고통을 받으면 그 낙차에 놀라서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그 고통이 사라지면 마냥 기분이 좋지만도 않다. 상처가 회복되기를 바라면서도 완전히 회복되어서 기억조차 남지 않는 건 또 원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마음 아픈 것을,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감각을 그리워하다니! (215)

 

 

오랜만의 임경선.
지난 언젠가 정말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 모두 그대로여서, 높이서 이전의 나를 관조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딘가 부끄럽기도 했다. 

오늘 퇴근하면서 앙보에게 가져다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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