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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과 달리 윤리학은 착하게 사는 법을 족집게처럼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도덕적 직관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분해하는 작업에 가깝다. 귀찮다는 이유로 부상자를 무시하려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이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왜 잘못된 걸까? 당연히 잘못된 태도이기 때문에? (22)

 

이것만이 합당한 대응인가?  혹시 나는 개인적인 분노를 정의감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도, 악인처럼 보이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그 자체로 정의로운 일인가?
철학자 오언 플래너건은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홀로코스트를 멈추기 위해 히틀러를 죽이겠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의 대답은 이렇다. 
"누군가는 히틀러를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히틀러를 상대할 때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더라도 선행을 하거나 악을 막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의분으로 인해 악해지기도 한다. (29)

 

선은 악에 분노하고 악인을 벌하는 것 이상의 복잡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타인의 결점에 과한 관심을 쏟는 건 악질적인 스포츠일 뿐이지 선행이 아니라는 것. (30)

 

교도소 수감자조차 판사와 변호사를 탓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를 남겨둔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오해였다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거나 하고. 형량이 결정된 후에도 똑같은 주장을 관철하는 것은 진심의 증거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료 재소자의 한탄을 내심 비웃고,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도덕과 정의의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스티븐 핑커가 도덕화 간극Moralization gap이라부른 현상이다. (46)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 지적한 것처럼, 세탁기와 청소기가 가사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란 전망과 달리 실제로는 가사의 기준을 높였던 것처럼,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수록 저력 사용량이 더불어 증가하는 것처럼, 발전과 혁신은 새로운 욕망을 빚어낸다. 그리고 이따금 욕망은 개선과 해결을 막는다. (58)

*석탄 에너지의 효율이 증가할 경우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이로 인해 신규 자본이 유입되어 결과적으로는 석탄 사용량이 증가하는 반동효과Rebound effect가 나타난다.

 

물론 '서비스가 공짜라면 바로 당신이 상품이다'라는 격언처럼 디코럼의 컨설팅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숨어 있다. (67)

 

영원한 성장이란 공허한 수사학에 불과하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시작과 끝이지 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71)

 

뉴욕대학교 사회문화연구대학 교수인 앤드루 로스가 지적한 것처럼 필수적인 사회재를 부채로 조달하게끔 하는 경제는 비도덕적*이다. 취직을 위해 대학에 가야 하며, 대학에 가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그 일례다. (73)

*크레디토크라시 

 

수레바퀴는 이런 일들에 까다로운 태도를 보여준다. 필요한 행동이 아니라면 자제하라는 것이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걸 빌미로 으스대서는 안 되고, 퉁명스러운 직원을 만난 뒤 친구에게 푸념을 털어놓는 건 괜찮지만 방송 출연자에게 욕설 댓글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실제로 사악하고 멍청해서 결코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은 부류여도 마찬가지다. 악인을 비난하는 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위일지라도 모든 악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비난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98)

 

심술궂은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태도는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것이다. 실제로 수레바퀴 대응 센터의 행동 지침은 다음과 같은 권유 사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 타인의 잘못을 찾아다니거나 깎아내리며 자부심을 느끼지 마세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세요.
- 타인이 언짢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 언짢음의 이유를 천천히 점검한 후, 사실관계와 논리만을 침착하게 반박하세요.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마세요. 조롱하거나 으스대거나 과도하게 분노하지 마세요. 혹은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공격임을 떠올리세요.
- 실질적인 피해가 있다면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경찰을 부르세요. 급한 상황에서는 정당방위도 허용됩니다.
- 그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이 사실을 떠올리세요, 누군가가 정말로 악한 일을 하고 있다면 지옥에 갈 겁니다. 지옥에 함께 따라 들어가지 마세요. 여기에 남아 있으세요. (104)

 

물론 그런 악덕이 오로지 개인의 소관이라 볼 수는 없다. 고통과 역경은 인간을 단련시키기 전에 꺾어놓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부를 겪은 사람은 거짓말과 탐욕이 많아지고, 각박해지고, 분란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가 될 확률도 크다. 그러다가도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하면 도리어 보통 사람들보다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못브은 보여준다는 연구는 수레바퀴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의 도둑질을 용서한 것처럼, 장발장이 회개한 것처럼 우리가 맺는 관계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111)

 

하지만 타인을 조롱하는 건 선행이 아니고, 열등감이 부끄러운 것이라면 우월감도 부끄러운 것이어야만 한다. 최소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둘 모두를 버려야 한다. 수레바퀴가 요구하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고,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려 하는 태도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옛 기억이 얽힌 문제들은 제3자가 함부로 말을 얹을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124)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인간을 품에 안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의무들이 있다. (156)

 

인간은 통계상의 수치보다도 내러티브에 더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인식 가능한 피해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라 불리는 현상이자 수레바퀴 컨설턴트들이 결연을 권장하는 이유다. 지구 반대편에 또 다른 아들딸이 있다면, 자신의 상실이 그 아이에게는 축복이 된다면 거부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167)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예시를 통해 "이처럼 불의를 행하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람은 마음껏 사익을 추구할 것이며, 따라서 정의 자체에는 구속력이 없다"는 논변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 제기는 시간이 흐르며 도덕성의 정당화Justification for morality 문제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도덕인지는 알겠으니, 거기에 실제적인 구속력을 부여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큰 돈을 주웠다고 가정할 경우, 그냥 챙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주인을 찾으려 애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순환논증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을 근거로 삼는 논증은 건전하지 않지요. 따라서 스터바James P. Sterba는 도덕성의 정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논증이, 도덕과 무관한 외부적인 이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93)

 

 

단요, 단요. 숱하게 들어온 작가였어서 그런지 대출해 놓고도 쉽게 펴지 않았던 책.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봄 부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김동식 작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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