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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어본 줌파 라히리 책.
묘하게 임경선 작가님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담백하고 현실적이지만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은.
올해 교사독서회 첫 책으로 내가 추천한 이 책이 지정됐다.
다소 현실적이어서 선배 교사님들..(a.k.a 교장샘..)의 반응이 걱정되지만, 뭐 ㅎㅎㅎㅎㅎㅎㅎㅎ

 


일시적인 문제

거기서 둘이 함께 처음 식사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 마침내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바보처럼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먹는 것보다 사랑을 나누는 것을 더 갈구했다. (27)

 

결혼 일주년 때는 쇼바가 오직 그만을 위해 저녁 식사를 열 가지 코스로 준비했다. 그에 비한다면 조끼는 그를 우울하게 했다. "아내가 결혼 기념으로 스웨터 조끼 하나만 사주던데요." 코냑으로 정신이 몽롱해져 바텐더에게 푸념했다. "그럼 뭘 기대하시는데요?" 바텐더가 대꾸했다. "이미 결혼하셨잖아요." (39)

그러게. ㅋㅋㅋ

 

그겨는 소리 없이 울었고, 그의 이름을 속삭였고, 어둠 속에서 손가락으로 그의 눈썹을 더듬었다. 그는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 다음 날 밤에는 그녀에게 무엇을 말할까, 그리고 그녀는 무엇을 말할까, 생각했다. 그 생각에 흥분됐다. "꼭 안아줘." 그가 말했다. "두 팔로 꼭 안아줘." (40)

손가락으로 눈썹을 만졌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어느 날.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그날 밤 그가 시계의 태엽을 감고 커피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을 때, 낯선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에게는 다카에서의 삶이 우선임을 깨달은 것이다. 피르자다 씨의 딸들이 잠에서 깨어나 머리에 리본을 묶고,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우리의 식사와 우리의 행동은 이미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피르자다 씨가 정말로 속한 곳의 뒤늦은 허상일 뿐이었다. (59)

 


질병 통역사

"방금 전에 얘기한 것에 대해서요. 내 비밀에 대해서, 그 때문에 겪는 이 심란하고 무거운 기분에 대해서 말이에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라지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무거워요. 카파시 씨, 내 마음속엔 이것들을 내던져버리고 싶은 끔찍한 충동이 있어요. 어느 날, 내가 소유한 것을 모두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텔레비전, 아이들, 그 모든 것을 말이에요. 병적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109)

 

남편도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는,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을 말이다. (110)

 

어쩌면 다스 씨에게 진실을 고백하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랐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정직은 분명 그녀의 표현대로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부부 간의 대화를 중재하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문제의 핵심에 이르기 위해 가장 분명한 질문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건 정말 고통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입니까?" (111)

 


섹시

미랜더는 자신이 만난 사람 가운데 콧수염을 길렀는데도 잘생겨 보이는 남자는 그가 처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45)

선바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늘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갖는 생각인 것 같다. 나는 좋아해야 할 점을 잘 찾아내니까. 하하하

 

미랜더가 자라고 대학까지 다닌 미시간에 남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보스턴으로 떠나온 것을 존경한다고 했다. 미랜더가 자신이 보스턴으로 떠나온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므로 전혀 존경할 게 못 된다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외롭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 그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 순간 미랜더는 그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꼈다. 퇴근하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들러 잡지를 읽거나 매일 한두 시간씩 에일와이프 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락스미와 술 한잔 하고 나서 전차에 몸을 싣는 밤에 자신이 느끼는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147)

 

자신에게는 서투른 글씨일 뿐이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랜더는 충격을 느꼈다. (158)

 

"그림 그려주세요."
그녀는 파란색 크레용을 골랐다. "뭘 그리면 좋을까?"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이게 좋겠어요." 아이는 거실에 있는 소파, 감독 의자, 텔레비전, 전화기 같은 물건들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하면 기억할 수 있어요."
"뭘 기억한다는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낸 날." 아이는 다시 쌀 과자를 집었다.
"왜 기억하고 싶은 거니?"
"우린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요." (168)

 

 

전날 울면서 미랜더는, 자기는 그동안의 일들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벵골어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법까지도 말이다. (176)

가장 좋았던 부분.
나는 모든 걸 잊고 싶고 내 안팎으로 그 어느것도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미랜더는 나와 전혀 다르다. 절대 잊지 않고, 그 속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그러하기를 택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쩌면 미랜더에게 나도 위로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소중한 나의 것들을 잊고 떨쳐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센 아주머니의 집

"하지만 오른쪽에서 오는 차는 어떡하고? 보이지? 그 뒤엔 트럭이 있잖아. 아무튼 센 아저씨 없이 나 혼자 큰길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
"회전한 다음에 속도를 높이면 돼요." 엘리엇에게 말했다. 엄마는 그렇게 했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엄마 옆에 앉아서 해안가 집으로 돌아갈 때 보면 아주 간단해 보였다. 길은 길일 뿐이고 다른 차들은 풍경의 일부일 뿐이었다. (195)

 


축복받은 집

그녀는 뜻밖에도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왜 대낮에 침대에 누워 있느냐고 묻자, 지루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 산지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삿집 상자를 풀 수도 있엇을 텐데. 다락방 청소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화장실 창턱의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그 위에 시계를 올려놓지 말라고 내게 주의를 줄 수도 있엇을 텐데. 어질러진 것, 정리되지 않은 것에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옷장 앞에 어떤 옷이 걸려 있든, 주위에 어떤 잡지가 놓여 있든, 라디오에서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든 만족하는 것 같았다. (226)

으으.. 역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지난한 일.....

 

산지브는 주말에 트윙클이 피우고 나서 짓뭉갠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를 발코니에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가 방문을 앞두고서야 그녀를 맞이하려고 재떨이를 비우고 아파트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침대보를 세탁했다. (228)

왠지 흔적만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니까, 언제든 매일이고 함께 할 수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그 여섯 주 동안 나는 그녀가 미국에 오는 일을 새 달, 혹은 새로운 계절이 오는 것처럼 필연적이지만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297)

아, 굉장히 좋은 표현. 헐.

 

"이 집엔 누가 살아요?"
"나이 많은 할머니가 살아."
"가족과 함께?"
"아니, 혼자."
"그럼 할머니는 누가 돌봐요?"
나는 대문을 열었다. "대부분은 혼자 스스로 챙기면서 살아." (303)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 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글머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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