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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보러가려고 했엇더라,
김천에서 공주랑 영화보러 메가박스에 갔다가 커피 한 잔 사서 보려고 거기 옆에 있는 작은 토프레소에 들렀다.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잠깐 집었던 책인데, 괜찮은 것 같아서 서울 올라오는 길에 바로드림으로 샀었다.

 

삶은 문제가 있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으니까요. 사실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무겁습니다. (8)

 

이런 질문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필요치 않아. 난 너무 만족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겁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한마디를 담고 있습니다. "도와줘!" 우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을 찾으리란 희망으로 책장을 들춥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반드시 삶의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야만 하는 겁니다. (9)

책을 읽는데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의 본질적인 이유랑 같아서 참 반가웠다.

 

그런데 영혼이 이렇게 잠들어 버리면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뭘까요? 아주 간단히 말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겪는 일이겠죠. 그러니 세상을 잘 알수록 좋겠죠. 그러나 세상을 알고 싶다고 생각해도 혼자서는 제대로 탐구할 수가 없습니다. 대화 상대가 필요합니다. 책은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은 자꾸 일어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만 자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생각 못 한 게 있다고 알려줍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보여 줍니다. (15)

'영혼이 잠들어버린다' 내가 생각하기만 했던 것을 정제된 표현으로 만났을 때의 기쁨.

 

저는 책을 읽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사랑만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됩니다. (중략)
우리에겐 오늘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 아닐까요?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애쓰고 있다는 것. 그것도 네 옆에서 너와 함께 너의 영향 아래서. (19)

 

우리에겐 일정표가 있습니다. 월요일엔 친구를 만나고, 화요일엔 미장원에 가고, 수요일엔 사우나에 가고, 목요일엔 한잔하고, 금요일엔...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하나의 흥미에서 다른 흥미로 끝없이 관심사를 옮겨 가기만 하는 그런 삶을 '코미디'라고 불렀습니다. (33)

그러게 코미디다 정말. 참 잘 꼬집고 잡아낸다. 작가들은..

 

그런 헛수고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나날의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것이 목적인 시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목적인 시간, 삶에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이 목적인 시간들로 촘촘히 일정표를 짠다면 우리 삶도 비극이자 코미디가 되어 버리는 걸까요? 그렇다면 "웃길 궁리" 대신 무엇에 몰두해야 할까요?

어떻게 삶의 일정표를 짜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바쁘다 바쁘다 하는데 대체 어떻게 일정표를 짜는 걸까요? 저는 이 단편을 읽은 후 풀지 못한 많은 궁금증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라디오 가게 주인의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기쁨'에 몰두해 본다면 어떨까 하고요. 기쁨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고요. 그 시간 동안 돈을 벌지 못해도 충분히 휴식하지 못해도 우린 자기 자신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는 그 가게 주인을 본 뒤로 자율성의 시간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린 내 자아의 장인이 되어 보는 겁니다. 우린 장인이란 말을 노동에 관해서만 쓰고 있지만 이번엔 장인이란 말을 자기 자신의 영혼에 써 보는 겁니다. 오래되어 부서진, 쓸모없게 된 라디오를 연구하듯 자기 자신을 연구해 보는 겁니다. 영혼에도 납땜질을 해 보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더 나은 소리가 나오도록 자신이 이미 알던 것들, 익숙한 것들을 이리저리 재배치해 보는 겁니다. (중략)
우리도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워 보는 겁니다. 우리에겐 이렇게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삶 전체가 원하지 않는 시간들, 아무 재미도 없는 무의미하고 무료하고 피로한 시간들, 비극이자 코미디인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은 내가 원한 삶이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무관심하다 보면 사회나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저 자신은 희생자이자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동정에 숨거나 억울함이나 자기 연민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나를 키우는 시간'은 더더욱 필요합니다. (36)

 

그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귀신에라도 홀린 듯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지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도망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N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붕 뜬 채로 살게 되었습니다. (37)

내가 꽤 오래간 겪은(겪고 있는?) 붕붕 뜬 상태.

토요일, 일요일, 짧은 여행, 혹은 퇴근 후의 시간, 이런 짧은 여유 시간은 내일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휴식의 시간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잘 먹고 푹 자 둬야 하는 시간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비참함과 모욕을 참아야 하는 순간, 굽실거려야 하는 순간,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흘려 보내는 시간도 있지만 밤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녘에 깨어 있는 시간도 있습니다.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다는 것, 명령에 따라 꾸역꾸역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 나도 꿈을 펼치고 싶다는 것, 내 손으로 기쁨을 창조해보고 싶다는 것, 어떻게 해서든 인간적으로 좀 더 훌륭해지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 갈망 안에는 이런 마음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39)

하정우의 <걷는 사람>이 떠올랐다.

 

우리에겐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지가 어떻게 생기는가 깊이 성찰했던 사람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리자면 의지는 명령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 즉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의 무게로 치자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맘껏 세상에 흩뿌려 보지 못한 사랑의 무게, 열정의 무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지 때문에 편안함을 잃게 될 수도 있고, 단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고, 수입이 줄어들 수도, 쓸쓸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리고 그것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현실을, 그리고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합니다.
배워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삶 속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에너지들이 시간을 채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성공이나 명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요. 결국 나를 키우는 시간에는 내가 '한 성공한 인간으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중략)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골라서 읽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스스로 '굳이' 해보는 경험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키워 보는 경험입니다. 나를 키우는 시간은 내가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낄 만한 시간입니다. (45)

우리는 하나하나 다른 행성이래. 다른 중력, 다른 무게로 살고 있는 행성.
엄청 예쁜 생각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두 사람이 만나 셋이 되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동안 나머지 한쪽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어떤 것, 새로운 세계관이든 잊을 수 없는 경험이든 진리든 뭐든 제3의 것이 태어납니다. 이것은 최초의 만남에 뭔가를 계속 덧붙일 때 가능합니다. 최초의 만남, 감탄, 호기심에 계속 뭔가를 더하는 것, 나와 뭔가가 만나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자의 능력입니다. (55)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새롭게 만난 것들, 새롭게 창조한 것들 속에서 잠들기를 꿈꾸면 됩니다. (56)

 

책을 읽는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능력들이 있긴 합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자신을 채웠던 반복과 습관의 타율성을 비우고 새로운 리듬과 질서를 받아들이는 능력 같은 겁니다. (57)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남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무시합니다. 이 무시는 말로는 겸손의 모습을 띱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할 수 없어요. 저 같은 인간이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를 무시하는 인간은 속으로 남도 무시하고 싶어 합니다. "너도 별수 없는 인간이잖아."란 말이 바로 그런 겁니다. "너도 별수 없잖아." "인간은 누구나 그래." 이런 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말에서 전 생애에 걸친 변명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58)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라니.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갈등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니 가족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거나 아프게 할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자니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고. 카프카의 일기는 사실상 이런 긴장과 불안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약혼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타협이었습니다. (64)

 

실제로 우린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 중엔 알고 한 것도 있고 모르고 한 것도 있습니다 . 그런데 그것이 무언가를(가장 중요하게는 자기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중략)
세계 속에 던져진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것, 그래서 뭔가를 선택하는 게 바로 삶입니다. (69)

 

삶에서 선택이란 쇼핑할 자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 안에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78)

슬프지만 어느 정도 크게 공감되는 부분. 쇼퍼홀릭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겠지.

 

우리는 그런 책들을 읽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당장 고쳐야 할 것, 과감히 포기해야 할 것의 목록을 만듭니다. 그런 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빽빽한 시간 계획표를 만들고 보람찬 방학을 보낼 것 같은 환상에 젖는 아이처럼 말이죠. (110)

 

우리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보는 대로 자기 자신을 봅니다. 세계를 실리 위주로 본다면 자기 자신도 실리 위주로 봅니다. 타인을 쓸모 여부로 본다면 자신에게도 그런 시선을 돌립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란 말을 자기 입 밖으로 내뱉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관점'이란 것입니다.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보는 바로 그 눈은 자신을 볼 때의 눈과 다르지 않습니다. (114)

 

진짜 잠재력은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 "아, 불안해, 불안해."라고 하는 것과 왜 불안한지 묻는 것은 다릅니다. "아파, 아파!"라고 하는 것과 왜 아픈지 묻는 것은 다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믿음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불안 속에만 있는 것과 불안 속에만 있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다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불안하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프기 때문에"가 아니라 "아프지만 그러나"라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략)
다른 존재가 되려면 자신의 경험을 좀 더 큰 맥락 안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변화가 충분히 크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117)

 

"채송화의 다른 이름은 일락화예요. 하루만 폈다가 싹 져버려요. 시들지도 않고 깨끗하게 져요. 이 나이가 되니까 그렇게 깨끗하게 피어 살다가 지는 것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120)

일락화.

 

우리는 때로 남들의 이야기, 관심도 없고 심지어 경멸했던 타인의 삶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바로 그런 일이 책을 읽을 때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파스칼 키냐르는 <떠도는 그림자들>에서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독서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책 속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무모한 경험이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 세계에 뛰어듭니다. (중략)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고 정리해 둘까요. 고대인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아의 자세로 주검을 매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저는 책이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마치 타인의 모습인 양 나타나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합니다. (125)

 

제가 애써 묵살했던 여러 사람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었어도 조금밖에 반응을 하지 않으면 우린 누군가를 슬픈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겠죠. (132)

나는 학교에서 숱한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 건 아닐까?

 

책은 읽는 동안 뭔가 덧붙이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일과 새로 읽은 것을 연결하게 합니다. 책은 책과 아직 책으로 쓰인 적 없는 것들(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서)을 연결하게 합니다. (137)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이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나 모두 당장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에 마음을 열어 보다가 자기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140)

너무 좋은 말.

 

그러나 공통성은 가십 거리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공통성은 같은 루이 비통 가방을 들고 다니는 데서, 같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데서 발견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공통성은 서로를 더 깊이 더 잘 알게 만들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남과 나를 갈라놓고 구별 짓기 위해 애써 마련한 자기들만의 공통성은 제가 말하는 공통성이 아닙니다. (142)

 

자기 곁에 있는 세상 만물을 생생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모든 것을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무엇에도 무관심한 사람이 결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생생함'일 겁니다.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괴테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본 것들을 옛날의 상념들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기억, 경험, 세상을 연결시켜 본단 뜻입니다.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사고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144)

 

능력에 대해서 다시 말해 본다면,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 보는 경험은 (그것이 한 권의 책 읽기에 불과하더라도) 무능력한 사람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 쪽으로 우릴 옮겨 놓습니다. 무능력은 재능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일을 지속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능력자입니다. 우연히 태어난 이 삶을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려고 하니까요. (144)

 

이렇게 책을 읽고 분리된 것들을 연결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면 우린 심지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책의 접어 놓은 페이지마다 새로운 탄생이 있습니다.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가 그들을 세상에 내놓은 그날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은 삶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우린 사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145)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낀다고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볼 때만이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146)

 

파스칼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640년 일본 나고야. 당시엔 부모가 나이 들면 산에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효자 아들은 차마 아버지를 버리지 못해 구덩이에 숨겨 둡니다.
포악한 원님이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누가 손을 대지 않아도 혼자서 울리는 북을 가지고 싶도다.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는 북을 가져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새파랗게 질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묻습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습니다. "아버지 왜 웃으세요?" 아들이 묻자 아버지는 답합니다. "이것이 우리들 인간 모두의 기원에 관한 비밀이기 때문이란다. 서로 포옹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되는 거야. 서로 껴안음으로써 서로 두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울리는 거란다. 포옹으로 옛날 얼굴들과 옛날 몸들이 뒤섞이고, 그렇게 해서 그것들이 재생되고, 그렇게 해서 다시 젊어지는 거야." (147)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함께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죠.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와 위대한 작가들의 의견이 같다면 "그렇지, 그렇지.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하고 자신감을 얻고 그들을 앞에 앉혀 놓고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고 싶어집니다. (150)

나도 이 느낌이 참 좋다. 내가 맞다고 확인받기 위해 매번 좋은 책을 기다린다.

 

우린 사방이 막힌 어딘가에 갇혀 있습니다. 숨구멍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루쉰은 자신이 책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숨구멍을 넓혀 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56)

나는 정확히 그 반대.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그 숨구멍을 넓혀 주기 위해서.

 

몇 년쯤 있다가 자기가 썼던 서평들을 보면 그것이 아무리 우스워도 이 싯구 같은 마음이 절로 들 것입니다.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 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 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세사르 바예호, <트릴세 15> (169)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주변의 소리와 향기까지 읽는 것입니다. 읽던 책을 덮을 때, 책장에는 주변의 소리와 향기까지 딸려 들어옵니다. 며칠 후 책장을 열면 그때의 소리와 향기까지 함께 펼쳐지는 것입니다. (171)

 

저는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사이 수많은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저는 죽도록 고생하고 살아온 겁니다. 저도 제가 그렇게 열심히 산 줄 몰랐습니다. 배신도 알고, 권태도 알고, 의식의 흐름도 알고, 여자의 운명이란 건 그것이 타락처럼 보일지라도 여자의 품성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된 것입니다. (185)

 

그때부터 정보보다는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보로 변하는 세상이지만 저는 자신과 제가 좋아하는 것만큼은 정보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여행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란 것, 결국은 정신의 여행이란 것, 그 깨달음은 제 여행기에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상을 뚫고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었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190)

 

축제에 가면 우린 재미있게 놀든지 아니면 재미있게 노는 척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참을 만하다고 여기면서.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소년의 동굴처럼 내가 숨을 쉬면서 세상을 관찰할 만한 곳이 있느냐, 깊게 더 깊게 숨 쉴 만한 곳이 이 도시에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그곳은 장소일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너는 나를 숨 쉬게 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중 하나입니다. (200)

이 부분, 쓰고 보니 내가 오빠한테 보냈던 부분이구나. 카톡방을 뒤져보니 6.26.에 보냈네.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한다. 오빠는 나를 숨 쉬게 해.

 

영어로 "I miss you." 이것은 "나는 네가 그립다."는 뜻이지만 "내게서 네가 빠져 있다."는 뜻도 됩니. (중략)
저는 제게 없는 것이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제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일 터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하숙집에서 나와 어두운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럼 반드시 술 취한 학생들이 업혀 가거나 울면서 토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가로등 아래 풍경은 늘 그랬습니다. 희미한 빛 아래 누군가 울고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울고 있는 등 너머로 번번이 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질문이 드는 것입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210)

 

그런데 모방도 힘인지라 자꾸 따라 하다 보니 저도 조르바처럼 깜짝깜짝 잘 놀라는 사람이 된 듯합니다. "벚꽃이 떨어져!" "구름이 움직여!" "초승달이 떠 있어!" 암만 생각해도 참 놀라운 일 투성이입니다. (217)

 

"제가 읽었던 책들도, 그리고 제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영혼도 이렇게 제 혈관 어딘가에 흐르게 해 주십시오. 그것들을 지금 당장은 제가 불러내지 못한다고 해도 때가 되면 그것들이 '네, 저 여기 있어요.'하고 나오게 해 주십시오. 절 혼자 가게 버려두지 마세요." 그래요. 제 기도는 절 혼자 가게 버려두지 마세요, 였던 겁니다. (219)

 

헨리 소로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건강한지 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책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아주 약해져 있을 땐 귀뚜라미가 합창을 해도 들리지 않고 책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220)

 

저는 책에서 배운 가장 빛나는 것을 사람에게서 볼 때가 있습니다. 책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인간 세계에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227)

 

리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세상은 우리가 사랑하지만 경멸도 하는 연인같은 존재라고 했을 때부터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염두에 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한 번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동경, 우울, 경멸, 순결. 우리의 사랑 안에는 이런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 안에는 심장과 함께 이런 게 들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저 안쪽 가슴 깊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생산적일 수 있다면 우리의 동경, 우울, 경멸, 순결이 서로 어렵게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일 겁니다. (231)

그랬다. 어느 하나라도 없을 때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때였다.

 

그렇지만 가장 콤플렉스가 강한 인간은 주어진 것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가장 냉소적인 사람은 인간의 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책은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은 정말 지루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지루한 사람도 존재합니다. 지루하단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성공이나 이익 말고는 추구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232)

 

방송도 제게 반복에 대해 알려 줬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매일 똑같은 음악을 신청합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들을 다시 듣고 싶어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계속 새로운 곡만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각자 비슷한 모티프, 비슷한 정서, 비슷한 음률의 음악을 반복해서 즐깁니다. (중략)
이렇게 반복되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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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일일까. 오랜 시간 무심한 표정으로, 하지만 애정만큼은 꾹꾹 눌러 담아 한 땀 한 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고 기성 제품처럼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애초에 효율이나 세련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수 만들어서 주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테다. (14%)

어쩜 이렇게.. 낭만적인 감정도 담백하게 써내려갈까.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실감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혹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죽음 앞에 백전백패다. 사랑은 우리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고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해주는 유일한 가치이다. (32%)

 

자식도 저마다 겪은 부모가 다른 것이다. (33%)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이렇게 마주하니 생경했다. 그리고는 정아가 겪은 우리 부모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또 나라는 딸을 엄마와 아빠가 겪은 것이 다르겠지? 신기하다.
우리는 결국 상대의 일면이 전부인 양 보고 살 수밖에 없다는게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감사했던 것은, 단 한 번도 자식들 앞에서 엄마와 다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내가 나중에 결혼 생활을 직접 꾸려가면서 새삼 깨달았다. (34%)

우리 부모님도 그렇다.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싸운 적이 없었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음..
대답은 "자신없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이득과 손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 것만 같다. 누구는 그런 성질을 두고 어눌하다 하겠지만 나는 지금 그런 다정한 너그러움을 그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었다. (44%)

나는 이 어눌하지만, 다정한 너그러움을 참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 끌리고 매료되는 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은데, 잘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리스본의 인스피라 산타 마르타 호텔을 먼 훗날 회상한다면 아마도 나는 조식 식당의 키가 훌쩍 큰 남자 직원을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다. (중략)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서 격차를 깨닫고 나면, 세상엔 '단순 업무'란 사실상 없고 타인의 일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88%)

이 부분을 읽고 나도 이번에 갔던 코타키나발루에서 만난 호청년이 떠올랐다. 공주와 나는 씨푸드를 먹으러 차이나 타운? 같은 곳을 갔고 거기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는 청년을 보았다. 둘다 보자마자 "와 진짜 열심히다. 저사람 유노윤호 아니냐."할 만큼 열심히 그리고 친절히 진심으로 일하는 청년이었다. 또 공주가 그곳에 지갑을 두고 왔을 때조차 우리는 택시에서 불안했지만 "그래도 그 청년이 있으니까 왠지 보관해두었을 것 같아."라며 서로를 달랬고 실제로도 지갑은 카운터에 보관되어 있었다. 공주와 나는 그 청년을 보면서 "우리도 한국 돌아가면 정말 성의 있게 일하자. 저런 태도가 다 눈에 보이고 괜히 나마저 기분 좋아지네."하는 대화를 나누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까먹은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만나니 참 좋다.
또 이렇게 블로그에 옮겨적는 오늘(2019.09.25.)에야 생각나는 정반대의 인물로는 정동의 ㅅㄷㅁㅇㄴ 카페 알바생들이다. 사실 알바생인지 직원인지 잘 모르지만, 나또한 알바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알바생에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좀 심하다. 진짜로. 내돈내산인데도 불구하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어주고, 계산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손님인 나는 위축되는데 그 감정이 정말 불쾌하다고 매번 느낀다. 접근성이 좋아 학습공동체의 모임 장소로 그곳을 자주 가는데, 가는 때마다 정말 별로다.
결국 나의 태도가 정말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정말 ㅅㄷㅁㅇㄴ 카페 알바생 얘기 쓰다보니 기분이 잡쳐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 스츄레스
그러므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자!!!
적어도 나는 코타키나발루 씨푸드 가게에서 만난 호청년처럼, 보는 이마저 기분 좋을 수 있게 살자!!!!!! 그리고 그런 태도는 절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오빠가 말한 기민샘도 호청년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열심히인 태도가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가끔은 리스본에 살던 시절의 부모님보다도 지금의 내 나이가 더 많다는 게 불가사의한 기분이 든다. 나이상으로는 분명히 내가 더 어른이어야 할 터인데 그들 앞에서는 영원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다. (92%)

나도 비슷한 경험! 우리 엄마가 결혼한 나이는 26이고 나를 낳은 나이는 27인데, 나는 벌써 엄마가 결혼한 그 나이에 살고 있다. 내년이면 첫 딸을 낳겠네? 허허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생각을 하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엄마도 매번 어렸겠구나. 내가 때때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때문이겠구나. 그래도 잘 해내온 걸 보면 멋있고 대견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들.

 

그러니까 윤서야.
이제는 너의 시대야.
인생의 모든 눈부신 것들을 다 너에게 넘길게. (92%)

윤서를 현아라고 읽어보았다.
든든한 응원을 받는 기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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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척하려고 하지도 않고,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나는 이게 선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3%)

아 정말 맞아. ㅋㅋㅋㅋㅋ순돌이로서 인정!!ㅋㅋㅋㅋㅋㅋㅋ

 

모: 모난 사람일수록
순: 순진하다

살면서 느낀 것은 성격이 모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순진하다는 것이다. 흔히들 모난 사람을 두고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봐'라고 하는데 정작 진짜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런 풍파에 다 깎여버려서 둥근 사람이 된다.
모가 났고 또 그걸 티를 내는 사람들은 그냥 순진해 보인다. (19%)

 

나는 좋든 싫든 살아 있는 동안
나와 평생 살아야 한다.
그러니 좀 못 미덥고 못해도 보듬어주며 살아가자. (27%)

 

"이거 서로 윈윈이야"라는 말을 하며 제안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이기고 있을 때 윈윈이란 말을 쓴다. (30%)

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긴데 정말 맞는 말.

 

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며 살면 참 좋다. 좋고 말고를 떠나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에도 문제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굴면 굉장히 억울해진다는 점이다.
"아니 나는 이렇게 예의 바르게 구는데 당신은 왜?" (37%)

 

<뒷담에 대처하는 방법>
누가 자꾸 네 뒤에서 말을 하면
방귀를 뀌어라. (43%)

ㅜ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참 웃었는데 정말 귀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유겠지만, 개의치 말라는 말인 거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웡..

 

특수한 상황에도 일반적인 규칙이나 말할거면 그냥 십계명이나 지키고 살면 되는 거다. (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통쾌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십계명이나 황금률이나 지켜라~!~!~!~!~! 에잇 퉤

 

우리는 돈을 믿는다. 사실 돈은 그저 숫자가 써져 있는 종이 쪼가리지만 만 원을 보면 그걸로 어디서든 따뜻한 밥 한 끼에 간단한 간식까지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믿는다. 그 믿음 때문에 돈은 힘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함을 믿는다면 어떨까? 만 원을 보고 만 원어치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믿는 것처럼 선함을 베풀면 언젠가 그만큼 다시 돌아온다고 모두가 굳게 믿는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54%)

내 신념이기도 하고 소망이기도 하다.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직까지 유의미한 신념인 것 같다.

 

선행을 베푸는 것과 수동적인 것은 다르다.
수동적인 것은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선행은 어렵다. (55%)

이건 정말 예리한 통찰이다. 흔히 교실에서 일어나는 분쟁? 갈등? 에서 아이들은 수동적인(여론이나 시류에 따르는) 것을 택하고 그것이 나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 자위하곤 한다. 물론 또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선행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지는 부차적으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같은 것을 좋아할 때보다 같은 것을 미워할 때, 사람들은 더 잘 친해지고 돈독해진다.
그래도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뭔가를 억지로 미워하지는 말자.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게 진심으로 미워지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싫어하는 뭔가가 많아질수록 인생은 고달프다. (56%) 

맞다. 정말 주옥처럼 다 맞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무얼 하느냐보다도 무얼 안 하느냐인 것 같다.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나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남이 나에게 바라는 일을 나도 남에게 한다는 건 좀 부담스럽다. (59%)

ㅋㅋㅋㅋㅋㅋ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혼자 있으면 위축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삼삼오오 혹은 적어도 둘씩 짝지어 다니는데 나 혼자 있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 자신과 친해진다면 어떨까? 혼자서 어딜 가더라도 죽마고우와 동행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게 말이다. (60%)

선바가 이걸 '아싸'라고 마무리 지으며 웃음을 줬지만, 뼈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우리는 윤이 나는 단단한 외로움과 마주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응원을 받고 있다면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면 그것 역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62%)

 

하지만 답 없는 상황보다 더 힘든 건 질문이 없는 상황이다.
답이야 찾아내면 괜찮지만 질문이 없으면 우린 나아갈 방향 자체를 잃어버린다.
답은 없어도 괜찮다. 질문은 잊지 말자. (64%)

격하게 동의하는 부분. 고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명증적인 이유가 된다.

 

<내가 정말로 힘들 때>
내가 가짜로 느껴질 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보다는 다른 사람을 신경 써서 다른 사람 입맛에 나를 맞추는 일을 한다거나 어쩔 수 없어서(예를 들면 돈을 벌기 위해)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그럴 때는 나 스스로가 뭔가 껍데기만 남은 허상처럼 여겨지는데 그게 정말 견디기 힘들다. (93%)

정말 그렇다. 그래서 처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이것이 그렇게 서러웠더랬다. 보고싶어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게 얼마나 힘든지, 나를 고갈시키는지 알게 된 나의 인생 공부.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지금은 어찌 저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서 마이웨이를 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와 생각이 시선이 비슷한 사람과 글을 만나며 '진짜'인 나를 다져가고 있다. 그렇게 아주 위태롭지만 지혜롭게 나는 지내고 있다.

 

선바넴!!!!!
학교 도서실 책구매에도 주문했음다^^77777
이것이 성덕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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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읽었더니.. 책의 쪽수가 나타나질 않는다..!!! ㅠㅁㅠ  그래서 %로 표기해본다.. (쭈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 (4%)

나도 그럴 때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상해 보여?" 일행 중 누군가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러곤 "상관쓰여요"하고 대답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내내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싶은 의젓함과 실은 신경 쓰인다고 고백하고 싶은 속내가 동시에 표출된 표현이었다.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한 채로, 그 아이가 무사히 밥을 다 먹을 수 있게 반찬을 챙겨주었다. (6%)

 

그때 한 선생님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내 계획을 말로 꺼내어 의논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만약에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어떤 일을 하려고 들면 저 좀 말려주세요." 왜 그런 식으로 말을 꺼냈는지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더 듣고 싶어하시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할 심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더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다만 "말리지 않을래요. 그냥 하고 싶은 거 있음 해요. 대신 엉망이 되면 옆에 있어는 줄게요"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해주는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하고 계신다는 게 눈빛으로 전달이 되었다. 그 눈빛은 내게 내내 선물이 되었다. 잘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아니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든든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다행히 엉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옆에 있어줄 필요도 없었다. (중략)
그냥 조금 멀리서 있어주는 그런 어른. 힘이 다 빠질 때마다 찾아가 만나 기댈 수 있는 어른. 그런 어른이 내게는 있었다. (8%)

정말 감사하게도 내게도 이런 어른이 있다. 정말로 내가 사회에서 만난 보석같은 은인! 맥락없지만, 라샘♥♥ 사랑해요♥
그리고 나도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교과 애들에게도, 누구에게든.

 

"너는 어느 쪽이니"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도무지 주는 게 더 좋다고 선택하는 멋진 이들에게 백 프로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을 받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해보고 싶다. 선물은 주거나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되는 것이라고. 선물이 되는 사건. 선물이 되는 시간. 선물이 되는 사람. 선물이 되는 말. 선물이 되는 표정. 선물이 되는 사람이 선물이 되는 말과 함께 선물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자그마하고 사소한 선물 하나를 건넸을 때, 그것은 선물이 되는 시간이자 선물이 되는 사건이다. 그때 손과 손 사이에서 전달되는 사물 하나는 그 무엇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8%)

아 어쩜 이렇게 ㅠㅠ예쁘게...... 작가님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이 사물들을 쳐다볼 때마다 그때의 그 표정과 말투를 떠올리며 자주 웃는다는 걸. 청소를 하며 먼지를 닦아줄 때마다 옆의 사물에게 소개해주듯 말을 건넨다는 걸. 빙그레 웃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선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9%)

그래서 나는 선물하기를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에게 꼭 필요해보이는 것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나 하루 중의 가장 많은 시간 함께 하는 무엇을 선물하기를 좋아하는데, 물리적으로 언제나 같이 있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어서. 깨어있는 네 대부분의 시간이 나(의 흔적들)과 소담소담 지냈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빙그레 웃는 너의 시간이 곧 선물이길 바라며.

 

시를 가르치다 보면,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과 가르침 자체가 불가능한 걸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 때문에, 이 밥벌이를 어쩌면 좋은가 싶을 때가 태반이다. 칭찬으로 용기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수강생들이 쓴 시를 읽고 조목조목 실수들을 짚는다. 낙담해 의기소침해진 수강생들의 표정을 등에 업고 귀가한다. 어떤 식으로든 용기를 얹었어야 했다는 후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12%)

도덕도 비슷하다. 정답을 가려내고 싶지 않은데 성적은 매겨야 하기 때문. 그래서 매 시간마다 폭풍 칭찬을 해주고 싶고 노력하지만, 나도 기력이 달릴 때는 그마저도 힘들어진다. 그럴땐 꼭 저런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사람을 만나면 꼭 그렇지 않으면서도 마지 못해 기뻐한 적도 있고, 기뻐해주길 바라는 게 보여서 애써 기쁨을 드러내 보일 때도 있고, 그저 마냥 기쁠 때도 있다. 그저 마냥 기쁠 때에는 주고받는 것이 숨김없이 깨끗한 상태일 때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고맙다는 말이 온전히 고마웠다. (12%)

 

화끈하고 호탕한 엄마와는 도저히 조화롭지 못할 쩨쩨한 성격을 가진 딸은 점점 더 엄마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섭섭한 딸이 되어갔고, 다정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더더욱 단단해져 갔다. 엄마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에게 엄마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닮고 싶지 않았고 행여 닮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으면 화가 나기 일쑤였다. 엄마와 심하게 충돌을 겪던 이십 대에는 거실에서 한바탕을 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울먹이던 내 옆에 아빠가 와서 한참이나 앉아 계시곤 했다. 쥘 게 없어서 주먹을 쥔 내 손등을 한두 번 어루만지다 "네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14%)

 

좋은 사람. 오십 년을 그렇게 했든 하룻밤을 그렇게 했든,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함께 있어주면 가능해지는 것. 나는 할머니 덕분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쉬운 걸 이제야 알게 됐다. (15%)

 

그림책 선물을 즐기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다. 두껍거나 명철한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분이다.
...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된다는 걸 가장 짧은 시간에 경험할 수 있다. (21%)

나도 그림책 선물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

 

"낮 시간 동안 혼자서 지내는데 외롭더라구." 나는 반쯤 놀리는 표정이 되어 응대했다. "설마... 적적한 거겠지.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친구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건 알지만 혼자 있어 버릇하지 않아 어색했던 듯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는 자기 자신이 어색한 듯했다. (21%)

내가 처음 김소연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혼자를 누리는 일>이라는 짧은 산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작가님만의 '혼자있음'에 대한 생각이 나오면 너무너무 좋았다. 그냥 좋다.

 

친구들과 밤새워 어울려 놀다 집에 돌아왔던 그때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처럼 기억하고는 있지만, 무척이나 골치 아픈 일들과 성가신 말들을 가방 한가득 담아 집에 돌아왔던 때였음을 나는 모를 리가 없다. (21%)

와 정말. 내 마음 이렇게 멋지게 쓰시기 있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시인은 시인입니다ㅠㅠㅠㅠㅠbbbbb
정말 글을 참 맛있고 멋있게 쓴다.

 

그렇게 쓸쓸함은 단지 깊어지기만 할 뿐인데, 어쩐지 쓸쓸함이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알도는 한 아이가 혼자였을 때에만 만나게 되는 친구다.
알도는 마치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혼자 있다는 게 혼자서 쓸쓸하게 지낸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누군가가 곁에 나타나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숨겨둔 친구가 누구에게나 한 명씩을 있는데, 그 친구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면, 당신은 사실상 더 쓸쓸한 사람이 아니겠냐고.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움하고 같이 있지는 말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방문해줄 단 하나의 위대한 친구가 문 바깥에서 서성이다 그냥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외로운 사람이 되는 거니까. (22%)

 

멋쟁이들은 혼자서 옷을 사러 다닌다고 들었다. 충고가 필요없어서다. 충고는 모험을 가로막고 안이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을 띤다. 충고에 의해 우리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자주 놓쳤다. (24%)

나는 멋쟁이가 되어야지!

 

이 좋은 내용을 이렇게밖에 전달할 수 없었던 걸까 하는 아쉬움이 커져갔다. 실망스러움은 언제고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종종 반감부터 생기던 일도 비슷한 경우였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법에 대한 고민을 좀처럼 안 하는 걸로 보인다. 말투가 거슬려서 거부감부터 든다.
옳은 이야기를 한다는 자부심이 너무 큰 뿐이다.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함이 떄로 사랑하는 방법을 궁리할 줄 모르듯이 말이다.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기 위해 옳은 이야기야말로 더 많은 궁리가 필요하다. (25%)

 

혼자 사는 작은 방에 깃든 것들이 누런 벽지와 곰팡이와 무력감과 고독만은 아니라는 걸 차차 알아가겠지. (27%)

 

근사한 디퓨저를 선물로 받았다. 아름답고 무용한 걸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 쪽지와 함께. 갖고 싶기는 하지만 굳이 구입하려 하진 않았던 걸 선물로 받을 때면, 바라던 것이지만 바라는 마음만 품고 있었던 게 눈 앞에 놓여 있다는 의미에서, 작은 소원 하나가 도착한 느낌이 든다. (중략)
쓸모없는 것들만 모아 상자에 담으면서, 취향을 알 수가 없으니 쓸모 있는 선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취향을 너무도 잘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는, 그만큼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에겐 언제나 현금을 선물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막역하다는 것이 이럴 때만큼은 참으로 운치가 없다. 누군가를 아주 잘 알게 된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는 걸 알게 된다는 뜻이 되어버리는 것 같으니까. (29%)

ㅋㅋ 정말 그러네. 운치없다. 요모조모 고민하기를 대신해 가장 좋아할 현금을 주니까 말이다.

 

언제나 불의는 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기 정당화,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 각자의 선의에 입각한 타협이 각자의 침묵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결합하고 서로 도와야 불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30%)

 

가장 오래 탐구해왔고 가장 오래 지속해왔던 일에 대해 오히려 모르겠다는 입장이 될 때마다 두려움과 고단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31%)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노래를 부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술자리의 대화가 때론 피로하다. 원하지 않는 충고가 부재하는 자리에 있고 싶다. (32%)

술자리뿐만 아니고! 어디든! 소취!!!!!!!

 

아이는 자신에게 비밀 기지가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 걸까. 어른들은 어쩌다 그런 감각을 상실하게 된 걸까. 원하던 것들을 하나둘 소유할 수 있게 된 이 어른의 시간. 진심을 드러내어 비밀 일기를 쓰는 시간과 비밀한 장소는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33%)

그러고 보면 그렇다. 식탁 아래, 책상 아래, 혹은 베란다에 의자를 꺼내 이불을 씌운 아래.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누워 있자니, 햇빛과 바람과 사람들의 소리가 은은하게 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40%)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나른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또 한 번 감탄.

 

모두가 사랑하는 사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쨌거나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보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조금 더 앞세우는 순간, 대화는 엉켜들었다. 기념사진을 찍어가며, 여행 중이라는 증거를 어딘가에 남기려 애를 쓸수록, 곁에 있는 사람과 불화했다. 여행을 배려하느라 동행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종일 목격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더 나은 대화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저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지, 싶은 마음은 내게도 마음일 뿐이었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분명코 더했으면 더 했지 했다. 사랑을 표현하고 요구하는 방식에 우리들은 짐작보다 훨씬 더 서툰 것임이 분명했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대화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잘 알면서도 정작 다른 무언가가 더 중요해서 대화가 잘 될 수 없는 사이가, 이 세상엔 어쩌면 더 많을 것 같았다. (42%)

나도 그렇다. 정작 내 상황에서는 바보가 된다. 그저께와 어제도 그랬다.

 

여행지에서 나는 번번이 답답해했다. 식당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가게에서 물 한 병과 생필품 몇 가지를 고르고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번번이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굼뜬 걸까. 이러고도 장사가 가능할까. 의아했더랬다. 굼뜨다고 핀잔을 들으며 살던 나에게마저 답답함을 주던 사람들에게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던 걸까. 서울의 속도감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44%)

지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생각났다. 바쁠 것 하나 없고, 해내야 하는 것도 하나 없는데 마음만은 급했던 기억이 난다.

 

내 얘기를 듣고 나면 웬만해서는 이 주문을 외우고 싶어한다.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친구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주문과 마주치고 활짝 웃고 아이의 얼굴이 된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것과 마주친 듯 활짝 웃게 되는 일. 어쩌면 나는 그게 마법이라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5%)

 

남는 말과 남는 감정을 길모퉁이에 버리기. 용서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밀봉하여 더 이상 노려보지 않는 법. 빈 곳을 그냥 비워두는 것. 기억의 반복으로 모서리를 마모하고 통점을 없애는 것. (47%)

 

갇힌 힘. 갇힌 힘이 남모르게 커져간다는 것. 그리하여 기어이 자신을 가둔 것을 부순다는 것. 뿌리가 커져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가둔 세계를 부숴버릴 수 잇는 힘이 된다는 걸, 오늘 나는 목격했다. (50%)

 

수박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와삭와삭 베어 물며 더위를 잊기에는 최적의 과일이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수박은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하는, 감히 한 통의 수박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사치에 속하는, 덩치가 지나치게 커서 그림의 떡 같은 느낌 또한 주는 과일이다. 게다가 너무 무겁다. (59%)

정말 여름에 누리는 나만의 사치다. ㅎㅎ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하면서, 예정대로였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예정했던 곳에서 예정했던 일을 한 적보다는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한 적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61%)

 

그런데 이런 유의 매력들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사람을 튀는 사람 취급한다. 재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그래서 유연한 대인관계를 위해, 자신의 개성 위에 적절한 애교를 조미료처럼 가미하는 행동이 저마다의 몸에 배었다. (88%)

그게 나얌.. T^T

 

언젠가부터 우정이 우정이 아니다. 안부는 이전보다 더 자주 묻고, 대화에 맞장구는 이전보다 더 강도가 높아졌지만. (89%)

 

그 선생님 앞에서 나는 농담을 잘하는 아이였다. 무슨 말을 하든 깔깔 웃어주었고 재미있다고 말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재미있는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핀 적도 없고 불편해해본 적도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고 나를 아주 근사한 사람으로 여겨주었다. 나한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대했다. 그 선생님은 아직도 먼 발치의 엄마처럼 배후에서 함께 살고 계신다. 그 선생님 때문에 내가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잃었고 서로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낙관 하나가 아직도 내게 보존돼 있다. (92%)

 

갖은 스케쥴을 빼곡하게 적어두고 손과 눈이 닿는 곳에 두는 내 탁상달력을, 더 이상 뒷 페이지가 없는 마지막 12월로 넘길 때에 미세하게 긴장이 된다. 무얼 하며 지내야 할지에 대해 유난스레 골똘해진다. 멋진 계획 아래에서 멋진 추억을 남기며 지내본 적이 없으면서, 해마다 12월에는 나의 스케쥴에 대해 야릇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 (93%)

ㅋㅋ맞아. 그래서 괜히 설레고 기다려지는 12월.

 

10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던 그곳에서 잠든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다른 계절을 곳곳에서 찾아냈다. 미미하지만 일교차가 생기기 시작했단 것도 알아챘다. 눈 뜬 아침, 마룻바닥에는 창문과 햇살이 협업하여 그려놓은 백색의 사각형에 영락없이 가을 아침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를 끌어안듯, 나는 그 사각형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모닝 커피를 마셨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해주어도 시시할 뿐인 그 작은 조각의 가을볕을 아침마다 즐겼다. (93%)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또 12월이 다가온다. 다가온다고 적으니 벌써부터 긴장이 감돈다. 물론 가장 아무것도 아닌 12월이 될 것이다. 가장 아무 것도 아닌 선물을 또 누군가에게 줄 것이고 받을 것이다. 가장 시시한 일을 하며 가장 시시하게 지낼 것을 알면서도 해마다 12월은 무작정 설렌다. 왜 그런가를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장 시시함에도 가장 설렐 수 있다는 것은 무조건 축복이고 무조건 내게는 기적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95%)

 

겪고 나서야 거절할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는 나 자신이 늘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미리 헤아리지 못하는 게 나의 특징이려니 한다. 두 번씩 반복하는 일만 없길 바란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인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같은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과 지루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96%)

 

올해를 어떻게 보냈어요? 앞에 앉은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둘러앉은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같이 뭔가를 도모해보고자 만난 자리였다. 옆에 앉은 이에게 당신은 열심히 산 것 같아 보인다고, 그 흔적을 많이 지켜보았다고 말을 꺼냈더니 그 사람은 정색을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다고. 다시는 그렇게 바쁘고 싶지 않다고. 한 사람의 겉과 속을 얼핏 엿보게 되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97%)

 

내가 방황만 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비로소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기억하던 습성이 한 가지 방향으로 나를 왜곡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기억술은 그토록 항진력을 지니는 몹쓸 속성이 있었다. 한번 시작된 왜곡을 멈추는 힘을 글을 쓰는 일에서 얻는다. 몹쓸 한 가지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곁가지들이 생겨나고, 생각해오던 습성 바깥으로 생각이 뻗어나가게 된다. 가까스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건사할 힘을 얻게 된다. (97%)

아.. 정말 다시 봐도 좋다.
건강을 위해 매일 먹는 영양제처럼, 이 글도 두고두고 꺼내 복용하자.

 

대화가 아니라 걸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 같은 장소를 걸으며 우리의 육체가 함께 감각하는 미세한 결들을 내년 12월 31일에는 수첩에 한없이 적어내려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말이 지닌, 그 부실함과 허약함과 손쉬움을 모르는 척하는 허약한 연결이 아니라 같은 경험과 같은 감각을 쌓아가는 결속을 만들고 싶다. 정말이지 말밖에 안 보이는 세상이다. 우리가 해댄 산더미 같은 말들로부터 우리가 입은 내상들이 훤히 보이는 세상이다. 이 먹먹함 속에서 조금 더 막막해지자는 새해 인사를 건네본다. 말이 아니라 발로써 자신을 증명해보자고 새해 인사를 건네본다. (98%)

부실함과 허약함과 손쉬움. 유난히 오늘의 내게 날카롭게 찌르는 단어들 같다. 그것에 매몰되어 나는 더 무거운 어떤 것을 보려하지 않은 건 아닐지.

 

너무너무 좋은 책.
작가님, 시인님, 선생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
제발 책 더많이 내주세요 ㅠㅠ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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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나?"
"576에 1455예요."
"5761455라고? 정말 멋진 수가 아닌가.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정확히 일치하는군."
사뭇 감격스럽다는 듯이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 전화번호가 뭐가 그리 멋진지는 이해할 수 없어도, 그의 말투에 담겨 있는 온기는 느낄 수 있엇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려는 의도보다는 오히려 조심스러움과 솔직함이 엿보였다. 어쩌면 우리 집 전화번호는 특별한 운명을 지니고 있고, 그 수를 소유한 자의 운명 또한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온기였다. (14)

임용 공부를 하면서, 학자들의 논리가 정연하게 이어질 때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논리가 너무나도 명료해 따로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리에 도식화될 때 정말 기쁘고 좋았다.

 

문득 소맷자락에 붙어 있는, 어제까지는 없었던 새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숟가락으로 스튜를 뜰 때마다 꼭 스튜에 빠질 것 같았다.
'새 가사도우미'
조그맣고 힘없는 글씨였다. 뒤에는 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짧은 머리에 얼굴은 동그랗고 입술 옆에는 점이 있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애 수준의 그림이었지만 내 얼굴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22)

최근에 본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이와 비슷한 간지러움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놓고 과시하며 너를 사랑한다 따위의 것이 아닌, 조용히 몰래 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온 것을 '내'가 만났을 때의 기분좋은 놀라움과 심장의 간질임. 신기하게도 매번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나지만, 이렇게 만난 표현들은 참 오래 오래 내게 남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내 마음까지도.

 

학교에 다닐 때부터 수학은 교과서만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는데, 박사가 가르쳐주는 수학 문제는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직업상 고용주의 관심사에 부응하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이 좋아서였다.  수식 앞에서 그가 내쉬는 감탄의 한숨 소리와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언어와 빛나는 눈동자는 그 자체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36)

나조차 도덕이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이 단원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면 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부분! 그러니 내가 진심으로 아끼고 믿는 가치를 알려주자.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질테니까.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42)

루트라는 기호를 이렇게나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구나. 내가 알던 그냥 루트랑 다른 루트같다. 나도 애기들에게 한 번 이런 애칭을 지어줘봐야지. 그럼 그 아이도, 그 공간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좀 더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사랑, 정직, 신뢰, 칸트 ㅋㅋㅋㅋ

 

박사는 루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하느라 시간만 흘러 숙제에 진전이 없어도 전혀 허둥대지 않았다. 루트가 아무리 엉뚱한 실수를 해도 강바닥의 모래에서 사금 한 알을 캐내듯 잘한 점을 찾아내었다. (54)

 

"순서대로 하나하나 식으로 만들어봐도 돼요? 학교 선생님은 한 개의 식으로 정리해야지, 안 그러면 화내는데."
"틀리지 않게 신중하게 하고 있는데 화를 내다니, 이상한 선생님이로구나." (56)

그러게요. ㅠㅠ 왜이렇게 기다리는 게 힘들까요. ㅠㅠ

 

옛날에, 고용주의 심보에(보는 데서 준비한 음식을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 게으르다고 잔소리를 해대고) 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어린 루트는 곧잘 나를 위로해주었다. (78)

나도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위로를 받곤 하니까.

 

"음, 아주 좋은 지적이군. 바로 쌍둥이 소수지."
평소 사용하는 언어가 수학에 등장하는 순간 낭만적인 울림을 띠는 것을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애수도 그렇고 쌍둥이 소수도 그렇고, 적확함은 물론 시의 한 구절에서 빠져나온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그 속에서 숫자들이 서로 포옹하기도 하고, 똑같은 옷을 차려입고 손을 마주 잡은 채 서 있기도 한다. (92)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된 수학 개념들인데, 정말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예쁠일인가. ㅎㅎㅎ

 

소수를 발견했다고 해서, 또는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제조번호가 몇이든 냉장고는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고, No.341 결산신고서를 제출한 사람은 지금도 세금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것이다. 득은 커녕 오히려 손해가 난다. 냉동고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녹고, 바닥 닦기는 진전이 없고, 회계사의 짜증은 심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2311은 소수이고, 341은 합성수라는 진실은 퇴색하지 않는다.
"실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수학의 질서가 아름다운 거지." (165)

!!!!!!!!!

실리적인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참 소중한 것들이 많다.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그러나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지.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어."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사무실 바닥을 닦고 루트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는 박사가 말하는 영원하고 옳은 진실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넓이도 없이 장엄하게 어둠을 뚫고 한없이 뻗어 나가는 한 줄기 진실한 직선. 그 직선이야말로 내게 잠시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자네의 그 영리한 눈을 뜨게나."
박사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둠을 응시했다. (167)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단단하게 나를 잡아줄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필요하다. 꼭. !!! 특히나 요즘같은 때는 더ㅋㅋㅋ

 

계단을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았지만 수학 코너는 여전히 한산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18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쓴 책에, 아이를 걱정하는 것이 부모에게 부과된 최고의 시련이란 말이 있었지." (200)

 

 

(물론 소설이지만) 내가 읽어본 첫 수학 책인 것 같다. ㅎ_ㅎ

그것만으로도 뿌듯. 쓰담쓰담 현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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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탁월한 기술과 굳은 의지 그 두가지 모두 지니고 있었다. 단지 그녀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필요할 뿐이었다.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언젠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이었다. (9)

나도. 나를 스스로 시험하고 싶어서.

 

그녀는 그 순간 너무도 간절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에 관한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제스는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저 수다스러운 친구 대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 (79)

 

그녀는 눈을 바다에서 떼지 못한 채 소년 옆에 앉았다.
"저렇게 멀리까지 보일 줄은 몰랐는데. 이건 마치... 마치..."
그녀는 마치 성스러운 장소에 있는 사람처럼 소리 죽여 속삭이고 있었다.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일생이라고?"
그녀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그의 눈은 수평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은 여깅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어떻게?"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그녀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말했다.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그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192)

 

그렇다,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지금은 괜찮지 않지만, 그리고 한동안은 괜찮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처럼, 특히 아빠가 그렇듯이 깊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그 슬픔은 깊고, 그것이 일으키는 아픔은 클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슬픔을 원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이 괴팍하고 위대한 노인의 죽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그리고 제스에게는 더 많은 내일이 놓여 있는 것처럼. 그녀는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앞으로 더 많은 내일을 살 것이고 더 성장할 것이다. (227)

 

또다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단지 때가 되면 누그러질, 건강한 슬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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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어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라도 우리는 그 친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6)

 

대화란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 주고받는 것이 꼭 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이런저런 대화 스킬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7)

 

그런데 과연 그들이 당신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유창한 말솜씨로 당신을 위로하고 어루만졌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가만히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8)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가 자신의 슬픔을 날것 그대로 표출하기 시작했을 때, 그 상황을 불편하게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주제, 즉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18)

ㅠㅠ 뼈맞음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면서 자신의 경험에 공감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인정해달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20)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난 후,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본능을 줄이고 상대방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나는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듣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7)

나와 같은 마음 !!!
너랑 내가 입을 모아 말했던 것이기도 하다. ㅎ_ㅎ 맞나보다.

 

그리고 대화의 나머지 절반도 말하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 상대의 말에 공감해 주기 위해 굳이 내 얘기를 꺼낼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공감력을 발휘한 것이다. (28)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처음엔 그러려니 하다가도 나중에는 짜증이 난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것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는다는 것은 지루함을 넘어 괴롭기까지 하다. (31)

ㅋㅋㅋㅋㅋ조심하자능..

 

본격적으로 대화에 임하기 전에, 특히 당신 자신과 다른 신념을 지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라.
'이 대화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길 바라는가?'
'대화가 끝날 무렵 어떤 기분을 느끼길 바라는가? (38)

중요한건 내 마음이니까. 다치지 않게 됴심됴심 ㅎㅎㅎ

 

내가 20여 년 동안 저널리스트 생활을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가르쳐줄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41)

 

질문은 당신의 배려를 나타내고, 상대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들로부터 말을 이끌어내고, 아이들을 격려하며, 간과된 사실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질문을 활용해 왔다. (49)

 

"듣는 사람에게 일련의 단어나 소리를 들려준 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하면, 그들의 뇌 속에 있는 특정한 세포군이 신호를 찾아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일정한 시간 동안 신호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침묵 상태는 뇌 속에 있는 흥분 중추와 감정 중추를 자극하기 시작하지요. 이처럼 침묵은 의사소통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그 가치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52)

 

당신이 부모라면 아마도 아이에게, 거짓말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가르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은 성인들 사이의 대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고 당신의 남편(아내)에게 그의 노래 실력이 어떤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56)

맞아 나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솔직한 고백을 통해 신뢰를 얻고 정직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57)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MBA 과정의 학생들이 '마치 해답을 아는 것처럼 꾸미는 것'에 매우 능숙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성공할 때까지 속이자"는 식의 정신 자세가 완전히 비생산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태도가 직업을 한 주나 한 달 정도 더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목적은 좋은 사람이 되고, 성장하고, 배우고,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아는 척하는 태도가 단순히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장할 경우,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잠재력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신뢰에서 오는 혜택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65)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들고 가는 건 바로 '존중'이라는 태도다. 당신이 귀를 기울일 때,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걸 느낀다. 당신이 이야기를 들어주므로, 그들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71)

맞아!!

 

우리는 말을 하려는 성향을 타고났다. 말하기는 사실 유용하기도 하다. 말하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강화해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즐겁게 만들어 준다. 최근 하버드의 과학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두뇌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섹스와 코카인, 설탕과 같은 것에 반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목격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섹스를 하거나 초콜릿을 먹을 때와 유사한 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74)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고는 hearing 있지만 귀 기울이지 listening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내 경우 상대가 나에게 듣지 않는다는 불평을 할 경우 말하는 것을 중단하는 훈련을 지속해 왔다. 누군가가 내게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거의 대부분 그들이 옳기 때문이다. (77)

 

더 똑똑해지고 싶다면 더 많이 들어라. 결혼 생활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친구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고 싶다면 능동적으로 들어라.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인다면 생각은 열리고 관계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83)

 

상대는 대부분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이해력이 떨어지지도 않고, 무식하지도 않고, 편협하지도 않다. (86)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런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다른 누군가의 '할 일 목록'이 적힌 200쪽 분량의 책을 사서 보겠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104)

 

나는 동료의 행동이 단순히 짜증나는 수준을 넘어 학대에 가깝에 변질되어버렸다는 점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는데, 결코 쉽지 않으리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당신 물건을 훔치거나, 당신을 건드리거나, 좋지 않은 단어로 공격한다면 그냥 그것을 지적하면 된다. 하지만 행동에 배어 있는 미묘한 태도에 대해 지적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184)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설명하라"
이것은 내가 저널리스트 생활을 하면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 중 하나이다. (207)

내 앞의 긴장하고 있는 그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행동.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상대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런 편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편견을 갖는다" (220)

나조차도 말이다.

 

나는 존중이야말로 모든 의미 있는 의견 교환의 초석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보다, 상대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를 존중하려면 상대방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공감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해보라. (222)

 

나는 나의 공감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전을 활용하곤 한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누군가가 내 앞으로 끼어들거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릴 때, 내가 느끼는 첫 충동은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양육 환경 등을 깎아내리는 것이다(가끔 큰 소리로 혼자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그들이 왜 그토록 서두르는지, 왜 그토록 기분이 나쁜지 상상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쏟아내고 싶어 하는 욕설들 대신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안 좋은 하루를 보냈을 거야'.'
'아마도 아이를 보려고 집에 서둘러 가는 중일 거야.'
'아마도 무슨 중요하고도 바쁜 일이 있었을 거야.'
내가 상상한 시나리오가 사실인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연습의 요점은 다른 사람을 나처럼 일상의 도전들에 직면하는 한 개인으로 바라보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이기 떄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가 욕하곤 했던 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항상 교통법규를 지켰는가? 나는 언제나 상대 운전자를 배려하면서 운전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여기서 핵심이 되는 건 다른 사람을, 이 복잡한 세상과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훈련은 다른 누가 아닌 내 자신에게 혜택을 가져다준다. (224)

 

정말로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듣기만 하라. 당신이 상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모든 대화가 공감이나 포옹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화 과정을 그저 즐기려고 노력해보라. (226)

 

내가 해주고 싶은 마지막 조언은 모든 대화 상황에 해당 되지만, 어려운 대화 상황에 특히 잘 적용된다. '끝맺음을 잘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끝맺음을 잘한다는 것이 마지막에 멋진 말로 정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런 충동은 내려놓는 것이 좋다.
또 대화에 응해준 상대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이제 막 만난 사람이든 친한 사람이든 누구에게든 대화가 즐거웠다고, 고맙다고 표현하라. (227)

 

하지만 잊지 말자. 감정은 성격상의 결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적인 동물이었다. 따라서 당신은 가끔씩 감정의 드라마에 굴복하기도 할 것이고, 품고 있던 선한 의도를 잃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당신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입 밖에 냈다면, 즉시 사과하라. 당신의 언급이 잘못됐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임을 인정하라. 그러면 당신은 실수를 과거에 남겨둔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28)

 

사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과는 고통스럽고 어색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사과를 할 때, 상대방은 고심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연민 어린 반응을 나타내 보이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과가 화해를 촉진시키는 강력한 촉매로 작용하는 것이다. (228)

사과는 할 줄 알아야 하고, 누가 누구에게든 마땅히 해야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임에도 학생에게 사과할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나도.

 

배려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태도가 바로 배려다. 하지만 그러한 의지와 태도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어야 한다. 주변을 보면 자신의 만족이나 명성을 위해 배려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한 배려는 궁극적으로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34)

진심의 가치.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주는 또다른 예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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