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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읽었더니.. 책의 쪽수가 나타나질 않는다..!!! ㅠㅁㅠ  그래서 %로 표기해본다.. (쭈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 (4%)

나도 그럴 때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상해 보여?" 일행 중 누군가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러곤 "상관쓰여요"하고 대답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내내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싶은 의젓함과 실은 신경 쓰인다고 고백하고 싶은 속내가 동시에 표출된 표현이었다.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한 채로, 그 아이가 무사히 밥을 다 먹을 수 있게 반찬을 챙겨주었다. (6%)

 

그때 한 선생님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내 계획을 말로 꺼내어 의논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만약에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어떤 일을 하려고 들면 저 좀 말려주세요." 왜 그런 식으로 말을 꺼냈는지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더 듣고 싶어하시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할 심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더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다만 "말리지 않을래요. 그냥 하고 싶은 거 있음 해요. 대신 엉망이 되면 옆에 있어는 줄게요"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해주는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하고 계신다는 게 눈빛으로 전달이 되었다. 그 눈빛은 내게 내내 선물이 되었다. 잘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아니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든든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다행히 엉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옆에 있어줄 필요도 없었다. (중략)
그냥 조금 멀리서 있어주는 그런 어른. 힘이 다 빠질 때마다 찾아가 만나 기댈 수 있는 어른. 그런 어른이 내게는 있었다. (8%)

정말 감사하게도 내게도 이런 어른이 있다. 정말로 내가 사회에서 만난 보석같은 은인! 맥락없지만, 라샘♥♥ 사랑해요♥
그리고 나도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교과 애들에게도, 누구에게든.

 

"너는 어느 쪽이니"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도무지 주는 게 더 좋다고 선택하는 멋진 이들에게 백 프로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을 받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해보고 싶다. 선물은 주거나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되는 것이라고. 선물이 되는 사건. 선물이 되는 시간. 선물이 되는 사람. 선물이 되는 말. 선물이 되는 표정. 선물이 되는 사람이 선물이 되는 말과 함께 선물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자그마하고 사소한 선물 하나를 건넸을 때, 그것은 선물이 되는 시간이자 선물이 되는 사건이다. 그때 손과 손 사이에서 전달되는 사물 하나는 그 무엇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8%)

아 어쩜 이렇게 ㅠㅠ예쁘게...... 작가님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이 사물들을 쳐다볼 때마다 그때의 그 표정과 말투를 떠올리며 자주 웃는다는 걸. 청소를 하며 먼지를 닦아줄 때마다 옆의 사물에게 소개해주듯 말을 건넨다는 걸. 빙그레 웃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선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9%)

그래서 나는 선물하기를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에게 꼭 필요해보이는 것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나 하루 중의 가장 많은 시간 함께 하는 무엇을 선물하기를 좋아하는데, 물리적으로 언제나 같이 있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어서. 깨어있는 네 대부분의 시간이 나(의 흔적들)과 소담소담 지냈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빙그레 웃는 너의 시간이 곧 선물이길 바라며.

 

시를 가르치다 보면,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과 가르침 자체가 불가능한 걸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 때문에, 이 밥벌이를 어쩌면 좋은가 싶을 때가 태반이다. 칭찬으로 용기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수강생들이 쓴 시를 읽고 조목조목 실수들을 짚는다. 낙담해 의기소침해진 수강생들의 표정을 등에 업고 귀가한다. 어떤 식으로든 용기를 얹었어야 했다는 후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12%)

도덕도 비슷하다. 정답을 가려내고 싶지 않은데 성적은 매겨야 하기 때문. 그래서 매 시간마다 폭풍 칭찬을 해주고 싶고 노력하지만, 나도 기력이 달릴 때는 그마저도 힘들어진다. 그럴땐 꼭 저런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사람을 만나면 꼭 그렇지 않으면서도 마지 못해 기뻐한 적도 있고, 기뻐해주길 바라는 게 보여서 애써 기쁨을 드러내 보일 때도 있고, 그저 마냥 기쁠 때도 있다. 그저 마냥 기쁠 때에는 주고받는 것이 숨김없이 깨끗한 상태일 때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고맙다는 말이 온전히 고마웠다. (12%)

 

화끈하고 호탕한 엄마와는 도저히 조화롭지 못할 쩨쩨한 성격을 가진 딸은 점점 더 엄마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섭섭한 딸이 되어갔고, 다정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더더욱 단단해져 갔다. 엄마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에게 엄마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닮고 싶지 않았고 행여 닮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으면 화가 나기 일쑤였다. 엄마와 심하게 충돌을 겪던 이십 대에는 거실에서 한바탕을 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울먹이던 내 옆에 아빠가 와서 한참이나 앉아 계시곤 했다. 쥘 게 없어서 주먹을 쥔 내 손등을 한두 번 어루만지다 "네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14%)

 

좋은 사람. 오십 년을 그렇게 했든 하룻밤을 그렇게 했든,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함께 있어주면 가능해지는 것. 나는 할머니 덕분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쉬운 걸 이제야 알게 됐다. (15%)

 

그림책 선물을 즐기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다. 두껍거나 명철한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분이다.
...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된다는 걸 가장 짧은 시간에 경험할 수 있다. (21%)

나도 그림책 선물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

 

"낮 시간 동안 혼자서 지내는데 외롭더라구." 나는 반쯤 놀리는 표정이 되어 응대했다. "설마... 적적한 거겠지.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친구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건 알지만 혼자 있어 버릇하지 않아 어색했던 듯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는 자기 자신이 어색한 듯했다. (21%)

내가 처음 김소연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혼자를 누리는 일>이라는 짧은 산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작가님만의 '혼자있음'에 대한 생각이 나오면 너무너무 좋았다. 그냥 좋다.

 

친구들과 밤새워 어울려 놀다 집에 돌아왔던 그때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처럼 기억하고는 있지만, 무척이나 골치 아픈 일들과 성가신 말들을 가방 한가득 담아 집에 돌아왔던 때였음을 나는 모를 리가 없다. (21%)

와 정말. 내 마음 이렇게 멋지게 쓰시기 있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시인은 시인입니다ㅠㅠㅠㅠㅠbbbbb
정말 글을 참 맛있고 멋있게 쓴다.

 

그렇게 쓸쓸함은 단지 깊어지기만 할 뿐인데, 어쩐지 쓸쓸함이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알도는 한 아이가 혼자였을 때에만 만나게 되는 친구다.
알도는 마치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혼자 있다는 게 혼자서 쓸쓸하게 지낸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누군가가 곁에 나타나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숨겨둔 친구가 누구에게나 한 명씩을 있는데, 그 친구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면, 당신은 사실상 더 쓸쓸한 사람이 아니겠냐고.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움하고 같이 있지는 말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방문해줄 단 하나의 위대한 친구가 문 바깥에서 서성이다 그냥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외로운 사람이 되는 거니까. (22%)

 

멋쟁이들은 혼자서 옷을 사러 다닌다고 들었다. 충고가 필요없어서다. 충고는 모험을 가로막고 안이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을 띤다. 충고에 의해 우리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자주 놓쳤다. (24%)

나는 멋쟁이가 되어야지!

 

이 좋은 내용을 이렇게밖에 전달할 수 없었던 걸까 하는 아쉬움이 커져갔다. 실망스러움은 언제고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종종 반감부터 생기던 일도 비슷한 경우였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법에 대한 고민을 좀처럼 안 하는 걸로 보인다. 말투가 거슬려서 거부감부터 든다.
옳은 이야기를 한다는 자부심이 너무 큰 뿐이다.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함이 떄로 사랑하는 방법을 궁리할 줄 모르듯이 말이다.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기 위해 옳은 이야기야말로 더 많은 궁리가 필요하다. (25%)

 

혼자 사는 작은 방에 깃든 것들이 누런 벽지와 곰팡이와 무력감과 고독만은 아니라는 걸 차차 알아가겠지. (27%)

 

근사한 디퓨저를 선물로 받았다. 아름답고 무용한 걸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 쪽지와 함께. 갖고 싶기는 하지만 굳이 구입하려 하진 않았던 걸 선물로 받을 때면, 바라던 것이지만 바라는 마음만 품고 있었던 게 눈 앞에 놓여 있다는 의미에서, 작은 소원 하나가 도착한 느낌이 든다. (중략)
쓸모없는 것들만 모아 상자에 담으면서, 취향을 알 수가 없으니 쓸모 있는 선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취향을 너무도 잘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는, 그만큼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에겐 언제나 현금을 선물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막역하다는 것이 이럴 때만큼은 참으로 운치가 없다. 누군가를 아주 잘 알게 된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는 걸 알게 된다는 뜻이 되어버리는 것 같으니까. (29%)

ㅋㅋ 정말 그러네. 운치없다. 요모조모 고민하기를 대신해 가장 좋아할 현금을 주니까 말이다.

 

언제나 불의는 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기 정당화,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 각자의 선의에 입각한 타협이 각자의 침묵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결합하고 서로 도와야 불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30%)

 

가장 오래 탐구해왔고 가장 오래 지속해왔던 일에 대해 오히려 모르겠다는 입장이 될 때마다 두려움과 고단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31%)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노래를 부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술자리의 대화가 때론 피로하다. 원하지 않는 충고가 부재하는 자리에 있고 싶다. (32%)

술자리뿐만 아니고! 어디든! 소취!!!!!!!

 

아이는 자신에게 비밀 기지가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 걸까. 어른들은 어쩌다 그런 감각을 상실하게 된 걸까. 원하던 것들을 하나둘 소유할 수 있게 된 이 어른의 시간. 진심을 드러내어 비밀 일기를 쓰는 시간과 비밀한 장소는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33%)

그러고 보면 그렇다. 식탁 아래, 책상 아래, 혹은 베란다에 의자를 꺼내 이불을 씌운 아래.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누워 있자니, 햇빛과 바람과 사람들의 소리가 은은하게 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40%)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나른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또 한 번 감탄.

 

모두가 사랑하는 사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쨌거나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보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조금 더 앞세우는 순간, 대화는 엉켜들었다. 기념사진을 찍어가며, 여행 중이라는 증거를 어딘가에 남기려 애를 쓸수록, 곁에 있는 사람과 불화했다. 여행을 배려하느라 동행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종일 목격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더 나은 대화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저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지, 싶은 마음은 내게도 마음일 뿐이었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분명코 더했으면 더 했지 했다. 사랑을 표현하고 요구하는 방식에 우리들은 짐작보다 훨씬 더 서툰 것임이 분명했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대화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잘 알면서도 정작 다른 무언가가 더 중요해서 대화가 잘 될 수 없는 사이가, 이 세상엔 어쩌면 더 많을 것 같았다. (42%)

나도 그렇다. 정작 내 상황에서는 바보가 된다. 그저께와 어제도 그랬다.

 

여행지에서 나는 번번이 답답해했다. 식당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가게에서 물 한 병과 생필품 몇 가지를 고르고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번번이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굼뜬 걸까. 이러고도 장사가 가능할까. 의아했더랬다. 굼뜨다고 핀잔을 들으며 살던 나에게마저 답답함을 주던 사람들에게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던 걸까. 서울의 속도감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44%)

지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생각났다. 바쁠 것 하나 없고, 해내야 하는 것도 하나 없는데 마음만은 급했던 기억이 난다.

 

내 얘기를 듣고 나면 웬만해서는 이 주문을 외우고 싶어한다.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친구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주문과 마주치고 활짝 웃고 아이의 얼굴이 된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것과 마주친 듯 활짝 웃게 되는 일. 어쩌면 나는 그게 마법이라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5%)

 

남는 말과 남는 감정을 길모퉁이에 버리기. 용서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밀봉하여 더 이상 노려보지 않는 법. 빈 곳을 그냥 비워두는 것. 기억의 반복으로 모서리를 마모하고 통점을 없애는 것. (47%)

 

갇힌 힘. 갇힌 힘이 남모르게 커져간다는 것. 그리하여 기어이 자신을 가둔 것을 부순다는 것. 뿌리가 커져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가둔 세계를 부숴버릴 수 잇는 힘이 된다는 걸, 오늘 나는 목격했다. (50%)

 

수박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와삭와삭 베어 물며 더위를 잊기에는 최적의 과일이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수박은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하는, 감히 한 통의 수박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사치에 속하는, 덩치가 지나치게 커서 그림의 떡 같은 느낌 또한 주는 과일이다. 게다가 너무 무겁다. (59%)

정말 여름에 누리는 나만의 사치다. ㅎㅎ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하면서, 예정대로였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예정했던 곳에서 예정했던 일을 한 적보다는 예정에 없던 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한 적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61%)

 

그런데 이런 유의 매력들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사람을 튀는 사람 취급한다. 재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그래서 유연한 대인관계를 위해, 자신의 개성 위에 적절한 애교를 조미료처럼 가미하는 행동이 저마다의 몸에 배었다. (88%)

그게 나얌.. T^T

 

언젠가부터 우정이 우정이 아니다. 안부는 이전보다 더 자주 묻고, 대화에 맞장구는 이전보다 더 강도가 높아졌지만. (89%)

 

그 선생님 앞에서 나는 농담을 잘하는 아이였다. 무슨 말을 하든 깔깔 웃어주었고 재미있다고 말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재미있는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핀 적도 없고 불편해해본 적도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고 나를 아주 근사한 사람으로 여겨주었다. 나한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대했다. 그 선생님은 아직도 먼 발치의 엄마처럼 배후에서 함께 살고 계신다. 그 선생님 때문에 내가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잃었고 서로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낙관 하나가 아직도 내게 보존돼 있다. (92%)

 

갖은 스케쥴을 빼곡하게 적어두고 손과 눈이 닿는 곳에 두는 내 탁상달력을, 더 이상 뒷 페이지가 없는 마지막 12월로 넘길 때에 미세하게 긴장이 된다. 무얼 하며 지내야 할지에 대해 유난스레 골똘해진다. 멋진 계획 아래에서 멋진 추억을 남기며 지내본 적이 없으면서, 해마다 12월에는 나의 스케쥴에 대해 야릇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 (93%)

ㅋㅋ맞아. 그래서 괜히 설레고 기다려지는 12월.

 

10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던 그곳에서 잠든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다른 계절을 곳곳에서 찾아냈다. 미미하지만 일교차가 생기기 시작했단 것도 알아챘다. 눈 뜬 아침, 마룻바닥에는 창문과 햇살이 협업하여 그려놓은 백색의 사각형에 영락없이 가을 아침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를 끌어안듯, 나는 그 사각형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모닝 커피를 마셨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해주어도 시시할 뿐인 그 작은 조각의 가을볕을 아침마다 즐겼다. (93%)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또 12월이 다가온다. 다가온다고 적으니 벌써부터 긴장이 감돈다. 물론 가장 아무것도 아닌 12월이 될 것이다. 가장 아무 것도 아닌 선물을 또 누군가에게 줄 것이고 받을 것이다. 가장 시시한 일을 하며 가장 시시하게 지낼 것을 알면서도 해마다 12월은 무작정 설렌다. 왜 그런가를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장 시시함에도 가장 설렐 수 있다는 것은 무조건 축복이고 무조건 내게는 기적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95%)

 

겪고 나서야 거절할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는 나 자신이 늘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미리 헤아리지 못하는 게 나의 특징이려니 한다. 두 번씩 반복하는 일만 없길 바란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인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같은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과 지루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96%)

 

올해를 어떻게 보냈어요? 앞에 앉은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둘러앉은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같이 뭔가를 도모해보고자 만난 자리였다. 옆에 앉은 이에게 당신은 열심히 산 것 같아 보인다고, 그 흔적을 많이 지켜보았다고 말을 꺼냈더니 그 사람은 정색을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다고. 다시는 그렇게 바쁘고 싶지 않다고. 한 사람의 겉과 속을 얼핏 엿보게 되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97%)

 

내가 방황만 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비로소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기억하던 습성이 한 가지 방향으로 나를 왜곡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기억술은 그토록 항진력을 지니는 몹쓸 속성이 있었다. 한번 시작된 왜곡을 멈추는 힘을 글을 쓰는 일에서 얻는다. 몹쓸 한 가지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곁가지들이 생겨나고, 생각해오던 습성 바깥으로 생각이 뻗어나가게 된다. 가까스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건사할 힘을 얻게 된다. (97%)

아.. 정말 다시 봐도 좋다.
건강을 위해 매일 먹는 영양제처럼, 이 글도 두고두고 꺼내 복용하자.

 

대화가 아니라 걸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 같은 장소를 걸으며 우리의 육체가 함께 감각하는 미세한 결들을 내년 12월 31일에는 수첩에 한없이 적어내려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말이 지닌, 그 부실함과 허약함과 손쉬움을 모르는 척하는 허약한 연결이 아니라 같은 경험과 같은 감각을 쌓아가는 결속을 만들고 싶다. 정말이지 말밖에 안 보이는 세상이다. 우리가 해댄 산더미 같은 말들로부터 우리가 입은 내상들이 훤히 보이는 세상이다. 이 먹먹함 속에서 조금 더 막막해지자는 새해 인사를 건네본다. 말이 아니라 발로써 자신을 증명해보자고 새해 인사를 건네본다. (98%)

부실함과 허약함과 손쉬움. 유난히 오늘의 내게 날카롭게 찌르는 단어들 같다. 그것에 매몰되어 나는 더 무거운 어떤 것을 보려하지 않은 건 아닐지.

 

너무너무 좋은 책.
작가님, 시인님, 선생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
제발 책 더많이 내주세요 ㅠㅠ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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