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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아빠는 어디 갔대? 언제나, 돌아서기도 전에 어른들은 아이가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니 그애가 보이긴 보이는데 반쯤만 보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소리 낮춰 쉬쉬하며. 쯧쯧 혀를 차며. 아이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어른들 이야기를 주워듣는다. 눈먼 이야기들을 훔쳐온 오늘은 평소보다 호주머니가 무겁다. 그애는 도둑질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자신만의 비밀을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비밀은 어른들도 친구들도 경찰들도 결코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144) 

 

나는 사장 아들의 결혼식 답례품으로 쓰일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포장하면서, 직원들 모두가 군말 없이 결혼식 안내를 맡거나 뒷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장이 오십 인분자리 케이크를 검도하듯 큰 칼로 썰어나갈 때 관객처럼 박수치는 우리를 보면서, 다음날 아침이면 어제를 잊은 듯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통근 버스를 기다리며 줄 서 있을 때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거나 자기 발끝만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완전한 각자라고 느낀다. 돈을 번다는 것, 이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각자라는 고독을 철저히 견디는 일임을 느낀다. (181)

 

우리는 부재가 채워지기를 열망하지만, 정작 빈자리가 채워진 뒤엔 그것이 우리가 원하던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딸이 중학생이 되던 해 집으로 잠시 돌아왔는데, 건넌방을 쓰기 시작한 그 남자가 오자 내가 기다리던 나의 아버지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187)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됐나. 생각 있는 애들은 다 거리로 나오고 별것 아닌 것들이 죄 보신해 한자리씩 차지했지. 그것들이 지금 젊은 사람들 윗사람이 되어버렸고. 그게 큰 실수였어.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멀리 내다볼 안목은 없었고. (202)

 

그 비닐하우스 어딘가에서 그들은 왔다. 종점에서 회차하는 이 버스 안에 탄 젊은 사람은 오직 먼 곳에서 온 그들뿐이었다. 버스 운전사나 그곳 출신일 늙은 승객들에게 외국인 남자들은 익숙한 존재처럼 보였다. 떠나간 아들딸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검은 유령들. (222)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

커튼을 젖혔습니다. 찬란한 햇빛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커튼을 열어도 사방 어둠뿐이었던 반지하의 실내에서 나는 이 집의 주인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우리가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은. (267)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철교 위 열차 안으로 겨울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왼손에 낡은 갈색 서류가방을 든 채,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유리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쉴새없이 풍경이 흘러갔다. 미래로부터 과거를 향해 한 사람이 복사되고 있는 것처럼. (272) 

 

그녀는우리가 글 쓸 때, 사진가가 피사체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 했다. 이야기를 타인에게서 가져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또한 모든 소설은 얼마간 자전적이며 많은 작가의 초기 작품은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보세요. (277)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강도로 누군가 듣고 있음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진심으로 듣는다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강도로 상대가 말하고 있음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화자는 청자를 향해 말함으로써, 청자는 화자를 향해 귀를 기울임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나타나게 한다. 장은 그렇게 생겨나며 그때 표현은 표현으로서 성립한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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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그러나 여기저기서 나타날 수많은 시민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다. 작가 강남규는 저서 <지금은 없는 시민>에서 '시스템주의자'와 '의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스템주의자는 "어떤 위기 상황을 극복할 책임은 시스템에 있으니, 자신에겐 뭘 요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의인은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누구보다 앞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의인의 이야기를 전해 듣길 좋아하는 동시에 시스템주의자처럼 말하길 좋아한다고 강남규는 통찰한다. 그가 주목하는 건 시스템주의자와 의인 사이의 시민들이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공백의 영역에 시민들이 자리한다. 의인처럼 해낼 여유가 없는 시민들도 문제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동참할 수는 있다. 선의를 모으고 책임을 나누고 서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서로에게 좋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시민의 존재와 그들 사이의 연쇄 작용을 희망한다. (18)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덧셈의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마그나손은 자신의 아이에게 묻는다. 아직 살아 계신 증조할머니의 나이와, 아이가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연도와, 세월이 흘러 아이의 증손녀 역시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연도를. 그럼 아이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가며 계산한다. 2008년에 태어난 자신이 아흔네 살이 되고, 자신의 증손녀가 다시 아흔네 살이 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그리고 마그나손은 다시 묻는다. 증조할머니가 태어난 해에서 아이의 증손녀가 증조할머니의 나이가 되는 해까지는 전부 몇 년일지. 덧셈을 마친 아이는 262년이라고 대답한다. 마그나손은 아이에게 말한다.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은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24) 

 

'마리'라는 단위에 대해 <물결> 2021년 여름호에서 한승희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소개한다. 인간 동물에게 적용할 수 없는 단어는 비인간 동물에게도 쓰지 않을 것. '암컷 원숭이 한 마리' 대신 '여성 원숭이 한 명'이라고 쓸 것. 한승희의 글에서 윤나리는 이렇게 말한다. "수를 세는 단위인 '명'은 현재 '名(이름 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命(목숨 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44)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절멸하지 않고 싶다는 의지였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소망이었다. (59)

 

모두 추출주의(extractivism)에 기반하여 되풀이되는 악습들이다. 기후정의 활동가 김선철의 해석에 따르면 "지구와의 비호혜적인 관계, 온전히 취하는 관계"가 추출주의다. 나무와 화석연료를 비롯한 지구의 자원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원을 쥐어짜내는 추출주의는 결국 모든 존재를 대상화하고 위계를 만들어낸다. 계속 성장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 또한 수단이 되고 모든 것이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추출주의에 대한 비판은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66)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생의 숙명이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젊거나 늙거나 어리다. 우리는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또 다른 성별일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어떤 국가의 어떤 지역에서 어떤 민족으로 태어나,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어떤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국적을 든든한 울타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신체를 가졌다. 우리 중 누군가는 장애인이며, 장애인이 아닌 누군가도 언제든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또한 언제든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 우리는 혼자 살거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 우리는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군가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다. 우리는 원하는 종교를 가질 수 있다. 각자의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자일 수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며 다양한 형태로 고용된다. 누군가는 교육받을 기회가 충분했고 누군가에겐 그 기회가 없었다. (116)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합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비되어왔다. 스스로를 차별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차별에 관한 기준을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지 않는다면 구시대적인 차별 발언과 행동을 무심코 저지르기 쉽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섬세해질수록, 억울하게 배제되는 시민의 수가 줄어든다. 차별금지법은 이를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제도다. (118)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자연현상이 된다(홍은전, 그냥 사람, 2020; 25). (120) 

 

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쓰이는표현이 바뀐다. 우선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됐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내걸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즐겨 쓰는 '자유'란 주로 시장과 기업과 자본가와 노동시장 상층부를 장악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노동시장의 하층부, 빈곤층,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어린이 등의 자유에 대한 무관심은 노골적일 지경이다. 노동하는 사람을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는 '노동자'라는 말도 개정안에서 사라졌다. '성평등'과 '성소수자'도 사라졌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그간의 치열한 투쟁을 지우는 변화다. 이를 두고 인권위는 인권 담론을 후퇴시킨다며 우려했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천여 명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결정권은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갔다. 근 미래의 교과서는 세계의 커다란 일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필독서가 될 터다. (139)

 

김행숙 시인의 시 <눈과 눈>의 한 구절이었다.
 
너는 눈이좋구나, 조심하렴, 더 많이 보는 눈은 비밀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쓴 문장을 받아 적었다. 나는 말했다. 더 많이 보는 사람의 황홀과 고통에 대해. 그리고 비밀을 가진 사람의 불안과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를 괴롭히는 동시에 구원하기도 할 다양한 비밀들에 대해. 부디 글쓰기라는 작업이, 그 비밀을 혼자 품느라 너무 크게 다치지 않도록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해야 한다면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말. 그러다 보면 더 많은 걸 수호할 수도 있게 된다는 말.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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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실패했다." 로즈가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엄마는 정말 좋은 어머니였어요."
"난 실패했어." 이번에는 에멀라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줄리아는 어머니에게서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줄리아는 어머니 안에 네 딸의 목소리가 전부 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에멀라인의 진지함, 줄리아의 또렷한 지시, 세상을 이루는 색색의 팔레트에 대한 세실리아의 흥분, 실비의 낭만적인 갈망. 어쩌면 로즈가 걸걸한 말투로, 뒤틀린 분노와 실망으로 딸들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을 뿐 전부 거기에, 엄마 안에 묻혀 있을지도 몰랐다. (95)

 

"우리는 우리의 모자와 신발 사이에 갇혀 있지 않다." (109)

 

난 누구지? 윌리엄은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무도 안 보이는지 몰랐다. 실비는 마지막으로 로즈 앞에 섰을 때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죽은 후 실비는 매 순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실비는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준 것이, 그녀가 실비일 수 있도록 지켜준 것이 아버지의 관심이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기 때문에 지금 윌리엄에게 크나큰 연민을 느꼈다. 실비는 이런 느낌이 든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도 끔찍했다. 이 원고의 분량, 그리고 한 장 한 장에 담긴 노력은 윌리엄이 그런 느낌을 가진 지 아주 오래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20) 

 

그녀는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이 새로운 외로움이 찾아왔다. (181)

 

"우리가 도울 건 없어?" 에멀라인은 창가에 서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난 뒤 창밖을 내다보며 언니들을 찾았던 것처럼 실비를, 또는 윌리엄을 찾고 있었다. "저녁 만들어줄까? 우리가 여기서 자고 갈까?" (209)

 

하지만 실비는 줄리아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새로운 삶을 향해서. 줄리아는 자신을 재구성하고 싶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다. (286)

 

실비는 벽화를 보면서 용감함은 상실과 맺어져 있는 걸까 생각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333)

 

하지만 이제 줄리아는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를 떠올렸다. 그 미래에서 줄리아는 스틸레토힐과 비싼 정장 차림으로 최고 책임자의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가능할지도 몰랐다. 실비가 윌리엄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쟀든 일어났다. 분명 인생은 줄리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동적이었다. (351)

 

실비는 그 당시 이야기를 쓰면서 사랑하는 이지가 세상에 나온 날 찰리가 떠난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앨리스가 태어난 날에는 로즈가 시카고를 떠났다. 
실비는 자신의 죽음이 무엇을 불러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연달아 일어날까? (435)

 

난 그냥 알아, 실비가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소리 내서 말하는 대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가 똑같다는 듯이, 둘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똑같은 거리를 가로지른다는 듯이. (441)

 

실비는 어렸을 때 친구들이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무시당해서 기분이 상했을 때 엄마를 보자 마자 눈물을 터뜨리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애들에게는 엄마가 안전한 곳이었고, 따라서 엄마가 곁에 있으면 자기감정을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느꼈다. 실비에게는 항상 줄리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로즈는 너무 변덕스러웠고, 실비가 너무 어릴 때부터 서로 기질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실비는 항상 엄마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줄리아의 품에 뛰어들었다. 실비가 눈물로 줄리아의 교복을 적시며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줄리아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런 적이 너무나 많았다. 실비가 자기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면 언니의 존재가 명쾌함을 주었다. (456)

 

그는 부재와 침묵으로 앨리스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바로 그 부재로, 그 침묵으로 앨리스를 형성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깨달음에 충격을 받아 "미안해"라고 소리 내서 말했다. 그의 가정이 틀렸다. 윌리엄은 자신이 또 뭘 틀렸을까 생각했다. (479)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하나는 바로 월트 휘트먼의 세계이다. 제사에서부터 등장하여 찰리와 실비를 통해 계속 언급되는 월트 휘트먼의 시와 그의 시집 <풀잎>은 이 소설의 외연을 넓힌다. 초월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휘트먼은 "나이든 어미들의 하얀 머리에서 비롯"된 풀잎, 즉 죽은 생명체 위에서 자라는 새로운 생명체라는 은유를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노래한다. 자연에서 죽음과 삶이 계속 겹쳐지며 순환하듯이 이 소설에서도 찰리의 죽음과 손녀의 탄생, 소중한 이의 죽음과 끊어졌던 관계의 회복이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휘트먼의 시와 찰리가 실비에게 했던 말은 우리가 "내 모자와 신발 사이에 갇히지 않"는 존재, 육체라는 테두리를 넘어 세상과 연결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상처를 주고, 치유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유기적인 관계는 월트 휘트먼을 통해 가족에서 인류로 확장된다.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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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든 빠르게 잊는 편이다. 기쁨이나 분노, 증오나 슬픔 따위의 감정을 오래 품지 못하고,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 몇 년이고 알아온 친구, 사랑하던 사람과 나눈 대화마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머리가 나쁜 것인지 그저 관심이 없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수치심만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사소한 부끄러움부터 몸이 떨릴 정도의  치욕까지 크고 작은 수치심을 느낀 순간들이 나의 기억의 대부분을 이룬다. 옛날 일을 떠올리면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끝없이 줄지어 걸려 있는 회랑을 걷는 것 같다. (47) 

 

그렇게 조금씩 빗물이 땅에 스미듯이 옷에 향이 배듯이 선생님과의 수업 시간은 저에게 쌓여 있었습니다. 결국 배움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자세가 닮아가는 일이 배움이겠지요. (71)

 

아무튼 다시 여름으로 돌아온다면, 영원한 여름이란 그런 것이다. 영원한 청춘이나 영원한 생명력이면서 성장 불가능의 세계이며 죽음의 세계인 것. 이 여름의 이미지에 영향을 짙게 받은 내게 여름이란 청춘이면서 파국을 품고 있는 것이고,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면서 이미 끝나버린 무엇이기도 하다. 바글거리는 생명력과 속절없는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해야 할까. (85)

 

현관에서 우리는 매일 모종의 감정적 낙차를 느낀다. 이를테면 뜨거운 여름날, 밖에서 더위에 시달리다 현관에 섰을 때 느끼는 서늘함과 안도감이나, 바쁜 일과가 끝나고 겨우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느껴지는 노곤함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런 격차를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해왔다. 운동의 방향이 전환될 때, 순간 힘이 0이 되는 것처럼, 그런 기묘한 진공상태가 현관에는 있는 것이다. 긴장 상태가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공간이자 그 긴장이 감춰진 공간이라고 할까. (111)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의 머리를 밀어내지 못함

수학여행의 밤, 아이들은 이불을 펴고 누운 채로 잠들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공중을 떠돈다

예전에 여기에서 선배가 죽었대
아니야 죽은 게 아니라 자퇴를 한 거래
여기 주인이 교장이랑친구래 그래서 매년 여기로 온대
 
아이들은 흐린 어둠을 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고백을 하지는 않고 말들만 떠도는 수학여행의 밤

옆 반 반장이 혼자 우는데 걔네 담임이 안아줬대
매점 아줌마가 원래 이 학교 졸업생이래
아니야 죽은 딸이 여기 학생이었대 그래서 온 거래

저 모든 일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작게 속삭인다면, 그것이 고백의 형식을 갖춘다면 그것은 더욱 진실처럼 들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의 손가락이 옆에 누운 아이의 손가락에 닿아 있다 실수로 그런 것처럼 (115)

 

자본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기만 한 시가 자본의 폭력 앞에서 낭독된다면, 그때 시는 다른 곳에서 읽힐 때와는 다른 의미를 품을 수 있었다. 시 한 줄을 읽는 일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힘으로 직접 이어질 수는 없으나,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시를 함께 읽고 나누는 일은 작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143)

 

먼 옛날, 아이가 없는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아끼며 선량하게 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를 하러 간 할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한 샘물에서 목을 축였는데, 그러자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샘터로 데려가 샘물을 마시게 했고, 둘은 모두 젊은이가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옆집에 살던 욕심 많은 노인 또한 샘물에 찾아갔는데, 그는 욕심을 부려 아기가 되고 말았다. 젊어진 부부는 욕심 많은 노인이 보이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샘터를 찾아갔고, 거기서 혼자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였다. 부부는 이를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여겨 그 아이를 키우기로 하였다. (중략)
그런데 <젊어지는 샘물>에서 욕심 많은 노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욕심 많은 노인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 그것도 선량한 부모의 밑에서 자라는 기회가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새로운 인생에서는 욕심 많은 노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이 내가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대부분의 옛이야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상이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젊어지는 샘물>이야기를 통해 흥미롭게 느낀 것도 이런 맥락일것이다. 새로운 인생과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이야기, 그것도 악인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그런 이야기가 내 마음을 끈 것이겠지.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이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마음에 든다. '이번 생은 틀렸어' 운운하는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젊어지는 샘물> 쪽에는 그러한 절망의 기미가 없지 않은가. 반성할 마음조차 없던 이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는 이 자비로움은 뭐랄까, 21세기에는 좀처럼 떠올리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느낌이다. (155) 

 

그러니 시가 '너'를 그토록 오래도록, 열심히도 불러왔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즉물적인 대상으로서의 '너'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아직 시에도, 연애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냥 '너'가 생각나고, '너' 없이 못 살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중가요가 충분히 해오고 있고, 더 잘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시는 무엇일까. 시란 멀어지는 것이다. '너'가 선행하지 않으면 '나'가 불가능하듯이, 의미는 차이가 없으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시란 동일성의 세계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80)

 

'둘만의 세계'까지 분해된 세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세계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의 공동체라거나 두 사람의 공동체라거나 하는 어떤 논의들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다. 그러한 논의들은 너무 관념화되었고, 너무 실체와 멀어졌고, 너무 이해와 인식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2의 사랑, 2의 다름, 2의 관계는 '의미'를 창출하지만, 의미 자체가 세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184) 

 

그래서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중략) 그런 말들을 끝없이 덧붙이면서, 그 실체 없는 말이 나를 뒤덮기를 바라며, 그 쥐떼 같은 말들이 불현듯 찾아오는 허탈함과 자기혐오를 가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 
결국 언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말을 줄임으로써 숨겨지는 것이 있지만, 드러난 말로 인해 가려지는 것도 있다. (199)

 

숭고함을 선택하는 인간이란 결국 무엇인가에 두려움을 가진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으나, 동시에 그것을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시인에게도 있었으리라. (201)

 

언어가 축소되는 시대다. 언어는 넘쳐나는데, 언어에 채 이르지 못하는 말의 조각들뿐인 시대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고 그 무엇보다 나의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 역시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 무엇이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아무 말이나 하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일이 거대한 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시대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망 역시 축소되고 있다. 삶에 대한 전망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고, 그러한 우려는 견고한 현실이 되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을 짓누르고 있다. '나'에 대해 꿈꾸는 일이 어려워지는 만큼, 우리는 '나'에 대해 끝없이 말과 이미지를 덧붙일 수밖에 없다. 자꾸 흘러내리는 그 언어를 다시 덧바르면서, 그러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며. 욕망은 축소되고 언어는 과잉되어 오히려 왜소해지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다. (202)

 

누군가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먼 미래를 그린다. 그것은 조금도 특이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가닿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상상하곤 하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현재와 조금 어긋난 곳에 위치해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자꾸 다른 시간을 그리게 된다. (210)

 

미래의 책

이제 너에게 비밀을 말해줄게
이 책에는 너의 미래가 적혀 있고

그 일은 모두 다 일어날 거야

언젠가 네가 바닷가에 갔을 때
너는 혼자가 아닐 거야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거야
수면은 빛을 받아 눈부시게 산란하고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바다를 보며 이상한 농담을 던지지
그때 나눈 농담은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계속 되풀이되며
두 사람을 웃음 짓게 할 거야

아침이 오면 식탁 위에 올려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을 거고 밤이 오면 포근한 어둠 속에서 낮 동안의 일을 이야기할 거야

그러다 깜빡 잠들어버리겠지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로
두 호흡을 교환하며

부드러운 꿈속에 빠져드는 거야
그건 아주 평화로운 밤일 거야

가끔 슬픔이 찾아올 때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결코 혼자가 아닐 거야

갓 구운 빵을 나누며 그 순간 서로가 같은 온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이 삶의 위로가 된다는 당연한 사실에 놀라며 잠시 서소를 끌어안을 거야

그거면 된 거야
다 괜찮아지는 거야

너에게는 더 많은 기쁨이 있을 거야 딸기밭에 딸기가 매달린 것을 보며 웃을 거고 강아지가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웃을 거야

물론 아무 일이 없어도 웃을 수 있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면 말이야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235)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좋은 점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어긋난 상상조차 이미 두 사람의 미래의 책에는 적혀 있으리라고 믿었다. 꼭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가끔은 슬퍼하거나 괴로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멋진 점 아니겠는가.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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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교과서 등 이리저리 마감에 치여 살아보았더니.. 너무 재밌게 읽었던 책.😭
맞아!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심지어 권여선 작가님처럼 대작가님도 글쓰는 것, 마감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하니.. 묘하게 위로가 됐다.

 


마감 근육 :: 김민철

  기본적으로 미래의 나를 신뢰하지 않고, '심신미약 숙취만땅'의 상태일 거라 가정하고 일에 착수한다. 2주 후에 마감이 있다면 2주 전 주말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2주 전이니 실패할 시간은 많다. 다시 쓸 시간도 충분하다. 맘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말이 되든 말든 써놓는다. 중간에 글이 막혀도 애써 그곳을 뚫지 않는다. 그냥 엔터키를 몇 번 눌러서 몇 줄을 비운 다음에 또 생각나는 것을 써둔다. 그러다 보면 매번 유혹이 손을 뻗는다. '좀 썼으니 놀자! 주말인데 놀아도 된다!' 나는 맥없이 굴복한다. 한심하게도 매번. 하지만 이미 '그 일'을 시작했다는 뿌듯함에 마음은 편한다. 이제 시간이 날 때(보통 2~3일이 지나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 글을 완성하면 된다. 이런 패턴으로 나는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12)  

 

  마감 근육은 마감 기한까지 밤을 새워서 달릴 수 있는 말 다리 같은 근육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 근육은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감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 쉽사리 "오늘은 야근하지, 뭐"라고 말하지 않도록 돕는 근육. 어렵사리 잡은 약속을 일 핑계로 취소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면서 할 일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이다. (17)

 

  세상에 이보다 정직한 도미노도 없다. 
  결국 마감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나의 마감이 늦어지면 다음 사람이 마감을 맞추느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 나의 일상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더 고민해보고 싶고, 더 써보고 싶고, 끝까지 붙들고 해보고 싶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지금까지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는 것. 다음 사람을 믿고,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것이 마감의 규칙이다. 
  중요한 지점은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못 던진 대단한 공'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구도 못 쓴 대단한 글, 지금까지 누구도 못 그린 대단한 그림, 지금까지 누구도못 이룬 대단한 목표. 이런 목표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 목표들이 가끔은, 정말 가끔은 다른 차원의 결과물로 데려다주기도 하니까. 다만 그 야망은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그리고 진행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내내 미루기만 하다가 왜 갑자기 마감 직전에 그 야망을 불태우냐는 거다. 왜 불타는 야망으로 남들의 일상도 불태워버리냐는 거다. (20) 

 

  그럼 여기서, 마감을 위한 나의 필살기를 살짝 공개해볼까?

  첫 번째 필살기는 바로, 메모. 
  회사 일을 할 때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부터 생각나는 것들은 무조건 노트 귀퉁이에 써둔다. 단어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느낌일 수도 있다. 그게 아무리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무조건 써둔다. 그러니까 일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작은 영감이 어떤 눈덩이가 되어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중략) 기본적으로 내 기억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단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게 찾아와주신 영감이므로. 

  나의 두 번째 필살기는, 리스트 만들기. 
  (중략) 하지만 내 집중력은 개미 한 마리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취야하고, 일하기 싫다는 마음은 저 하늘을 뚫을 정도로 강력하기만 하니. 착착착착은 거의 불가능한 리듬이다.  하지만 '5분 핸드폰 보고, 1분 일하기'의 패턴일지라도 해나간다. 꾸역꾸역. 리스트의 할 일을 가능한 한 지워나간다. 꾸역꾸역.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끝에 결국 빈 리스트와 엄청난 해방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못 한 일이 있어도 한 일이 훨씬 많을 테니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리스트는 언제나 내게 유용한 틀이다. (25)

 

  한때 나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지, 라며 회상하는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부지런히 그 꿈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그때에 쓰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는 써야 한다. 쓰는 근육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직장인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출퇴근이라는 루틴이 있어서 더 부지런히 쓸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바꾸며 써나가야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답다'라고 느끼니까. 이것이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이나 '작가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씩 점심시간에 혼자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아무리 귀찮아도 가끔씩 청탁을 수락하고 마감을 하는 이유다. (29)

 

 


숨바에서 온 편지 :: 이숙명

  살아남은 자, 혹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자들은 그 맹목성을 감내하는 데도 인이박인 자들이죠. 그들은 자신의 당위를 실천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똑똑한 후배들을 업계에 붙잡아두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다른 삶을 기웃거릴 틈을 안 주는 거죠. 다시 말해, 내일 전쟁이 나건 말건 마감을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바닥에 남는다는 겁니다. (49)  

 

  다시 글을 쓸 자신이 없을 정도로 글 때문에 상처받고도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다는 게 이 직업의 비극입니다. (55)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 권여선

  그때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무엇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그 마감 앞에서 혼자여야 한다는 걸, 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 그것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누구에게 엿보이거나 들켜서도 안 되는 나만의 내밀한 직면이어야 한다는 걸. 
  요즘도 나는 크고 작은 마감을 앞두면 약속을 없애고 관계를 지우고 혼자가 될 준비를 한다. 그 텅 빈 시간을 홀로 관통해 마감으로 간다. 세상과 나 사이에 그때만큼 선명한 경계가 지어지는 적도 없고, 내 능력과 자유와 한계가 그토록 명료해지는 시간도 없다. (80) 

 

  놀라운 일이었다. 늘 과도한 어리광과 예민한 반응만 일삼던 내 못된 심성도 무시무시한 마감의 압박에 의해 저도 모르게 적절히 고삐가 당겨진 듯했다. 속세의 온갖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속박에서 벗어나 나는 마감의 삶이 요구하는 극단적인 단순함 속에서 살았다. 삶이 아무리 발을 걸고 훼방을 놓아도 나는, 죄송합니다만 마감이 있어서요, 마감만 아니면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곧 마감이거든요, 하고 간결하게 대응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89)  

 

  요즘도 소설을 쓰기 힘들 때면 언제나 마지막인 줄 알았던 단편을 마감한 후에 내가 느꼈던 행복과 슬픔을 상기한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그때 그 벼랑의 시기에만 가능했던 내 삶의 가장 강한 정서의 근육을 얻어낸다. (90)  

 

 


마감, 유감, 쾌감 :: 권남희

  에세이 번역을 마감해서 방금 이메일로 보냈다. 옛날에는 이렇게 책 한 권 마감하고 나면 사전을 책꽂이에 꽂고, 작업하던 상을 접어 치웠다. 언제 또 일이 들어올까 하는 착잡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럴 때, 맥주 한잔하고 책 한 권 읽는 것이 나름의 마감 의식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마감 의식 따위 없어졌다. 어제 한 그다음 페이지 번역하듯 새 책을 꺼내서 태연히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전혀 불만은 없다.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하는 일상 속에 '번역하고' 하나 더 들어간 것뿐인걸. 왜 나는 밥을 세 끼씩 먹어야 해! 하고 불평하는 사람 없듯이 나도 종일 번역만 하는 데는 불만이 없다. 다만 숨을 쉴 때마다 "아이고, 내 팔자야"하는 탄식이. (114)  

 

  하지만 삶과 죽음도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초조와 초연은 습자지 한 장 차이. 한껏 초조해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초연해진다. '그래, 하나씩 하자, 차근 차근 하자, 몸은 안 아프잖아'하고 책상에 앉는다. (115)  

 

 


알콩달콩하고픈 마감에 나는 항상 앓고 닳고 :: 강이슬 

  우리 엄마는 걱정과 불안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좋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걱정을 하며 산다고, 건강하고 싶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좋은 물건을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발품을 파는 것처럼 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수고와 부지런함은 실은 실패에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거라고 했다. 쓰는 동안 이유 모를 불안함에 뒷목이 서늘해질 때마다 삶을 더 괜찮은 쪽으로 끌어당겨주는 걱정의 힘을 믿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불안한 거라고, 그러니까 걱정 없이 마음껏 걱정하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123) 

 

  남이 쓴 아름다운 문장들을 두 눈으로 꼭꼭 씹어 소화하듯 읽으며 마음의 균형을 찾다 보면 이제는 써도 괜찮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때 노트북을 펴고 한글파일의 빈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짐한다.
 
  *무엇을 쓰든 실망하지 않기.
  *방금 읽은 책과 스스로의 글을 비교하지 않기.
  * 대단한 문장을 쓰려고 조급해하지 않기.

  언제나 실망하고 비교하고 조급해하므로 다짐씩이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도움이 되는 과정이므로 거르지 않는다. (125) 

 

  배 속이 울렁거릴 때 그러하듯 마음이 울렁거릴 때도 게워내는 과정이 필요한가 보다. 내가 게운 문장들을 천천히 읽을 때면 시끄럽던 속이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둔하고 고요해진다.  뱉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마음에 쌓아뒀더라면 커다란 응어리가 되어 나를 아프고 불편하게 짓눌렀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날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자주 브레이크가 걸린다. 한 문장마다 미련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좋은 한 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미련이 다음 문장을 가로막을 때면 난간 없이 뱅글뱅글 꼬여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든다. 얼마만큼 왔는지도 모르겠고 얼마만큼 더 올라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오르게 되는 계단. 운이 좋으면 계단 끝에서 드디어 만난 옥상 문을 열고 개운한 공기를 맛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이 계단을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올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답답한 벽을 마주하기도 한다. (127)    

 

  인간은 대체로 나약하지만 그중에서도 감정을 소화시키는 기관이 최고로 약해 빠졌다. 행복처럼 순하고 무르고 말랑말랑한 좋은 감정은 아쉬울 정로도 빠르게 잘도 소화시키면서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감정을 그러질 못한다. 가슴 언저리에 얹힌다. 굳은 감정에 체한다. 뾰족한 바늘로 손끝을 찔러봤자 묵은 체기는 내려가지 않는다. 덜 소화된 그 감정을 소처럼 되새김질하며 곱씹는다. 그 행위가 어쩌면 후회일 것이다. (141)  

 

 


마감이라는 캐릭터 :: 임진아

  "할 만큼 했다"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끝내 "우리 다 했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라고 말해버렸다. 오늘 다 하려고 출근한 거 아니잖아. (148)

 

  쌓여 있었지만 끝내 마무리한 일들은 결국 나를 쉬게 했고, 예전에 모르던 내가 되었다. 매일의 무거움이 다음의 나를 만드는 장아찌 같은 삶을 오늘도 지속 중이다. (150)

 

  나는 무언가 매일 해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걸 꼭 나에게, 또 다수의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는 마음이 슬슬 생활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마음은 작업하는 마음에 동력이 되어준다. 곧 선보이게 될 일이지만, 그렇게 큰 프로젝트도 아니지만, 작업 내내 비밀로 품으면서 남몰래 이벤트를 준비하듯이 일을 가꾼다. 그러면 마술처럼 조금 신나는 기분이 든다. (150)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할 거야'라는 농담도 점차 나에게 던지지 않게 되었다. 잠깐, 하면서 손을 내밀고 '그 일이라는 거... 지금 하면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웃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곤 한다. 물론 충분한 쉼으로 힘이 채워진 상태라면 더욱 쉽게 일어날 수 있다. (172) 

 

 


어느 5년 차 출판편집자의 '마강 증후군' :: 이영미 

  휴, 저자랑 통화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네. 사람 쪼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 줄 아시죠? (18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 저자만 힘든 줄 알았지, 이건 또 몰랐지ㅠㅠㅠㅠㅠㅠ 삶 앞에서 항상 배웁니다ㅠㅠㅠㅠㅜㅠ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세희

   소설 쓰기에서 필요한 끈기는, 좀 아닌 것 같아도 밀고 나가는 힘이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며 계속 궁리하고 뒤엎고 다시 쓰는 끈기라는 게 지금까지 내가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생각이다. 일상생활에서 매사 통제와 관리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점이 어렵고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202) 

 

  연재는 9월 첫 주까지 이어졌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다음 마감할 원고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있던 나날이었다. 그건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싸여 있는 것과 비슷했다. 길을 걷고 사람들과 함께 벚꽃을 보며 웃을 때도 나는 그 막 속에, 정적 안에 있었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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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치욕과 다르다. 부끄러움은 사람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돌아보게 함으로써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발판이 되도록 한다. 그러나 치욕은 사람의 부족한 점을 남들이 억지로 들춰냄으로써 도리어 감추고 외면하게 만든다. (38) 

 

한문 교사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특히 냉소와 부정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서 앎을 확장하는 삶만큼이나, 삶을 확장하는 앎도 중요함을 어떻게 일깨워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고전 속에 담긴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팔 걷어붙이고 잡초 뽑고 씨 뿌리며 우직하게 밭을 가꾸면 된다. 병충해를 두려워하며 씨 뿌리기를 주저하는 농부는 없잖은가? 힘들 때 서로 부축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절망적일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일, 아이들의 가슴에 긍정의 낟알 하나 심어주는 일, 작은 불씨에 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주는 일이 한문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62)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곱씹으며 준서에게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걸어가는 거기까지를 목표로 삼았던 동하 같은 선배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울러 멀리 나부끼는 깃발을 끝까지 응시하며 한 발한 발을 신중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자신이 직접 깃발을 들고 '내가 이 깃발을 들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설레어하며 경쾌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충분히 본받을 가치가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74)  

 

그러던 어느 날 한시 수업 때 이양연의 <눈 쌓인 들판에서>를 다루게 되었다.

눈 쌓인 들판에서

눈을 뚫고 들판을 걸어갈 적에
모른지기 어지러이 걸어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 내가 걸은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97)

 

저는 죽음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냉엄한 사실 덕분에 죽음이 갖는 역설적인 따뜻함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조화는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조화의 향기를 맡지 않잖아요. 죽음이 특수하고 예외적이었다면 세상에 존귀함 같은 건 없었을 거예요. 살아 있는 생명이라서 소중한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기에, 너무나 소중한 것 같아요. (127)

 

여느 때처럼 공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뛰놀고 있다. 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던 노래라 제자 중 몇몇은 덩달아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네." 그런데 공자께선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저노래를 들으시곤 잠시 발걸음을 멈추신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가. 공자께서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신다.
"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없니?"
제자들은 그제야 지금껏 생각 없이 흥얼거렸던 노랫말을 곱씹어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 무슨 느낄만한 게 있겠는가?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더 하신다.
"저 노래 속에 삶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단다. 어리다고, 잘 모른다고, 유치하다고 무시하는 저 아이들이야말로 시대가 목구멍으로 삼키는 말들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내뱉는 존재임을 명심하렴."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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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진구 형처럼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지우는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임을 깨달았다. (215)

 

내가 좋아하는 김애란 보다는 조금은 싱거운 김애란作.
그래도 김애란 작가님 덕분에, 다정 씨 덕분에 내 사랑 신형철 교수님을 뵙게 되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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