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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자 나는 어렵지만 양손으로 세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봄이 한창이었다. 나는 병원 정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처음으로 안양천에 가봤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노란 나비들이 꽃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야생의 생명력이 가슴으로 흘러 들어 왔다. "너무 예뻐!"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자연과 그늘 없는 관계를 맺었다.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스페인 내전에서 총상을 당한 뒤 조지 오웰이 한 말이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은 세상이었다." 회복되려면 슬플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또 슬픈 일을 겪게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나는 이 상처투성이 지구를 엉뚱하게도 회복의 장소로 경험한 셈이다. (6)
내 평생 가장 많이 해온 말이 있다.
"그 이야기 참 좋다."
이 말의 힘을 나는 백 퍼센트 믿는다. 이야기가 좋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면서 마음이 환해진다. 감탄할 때 현실이 달리 보였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게 분명 존재한다고 느껴졌고, 사는 것이 더 재미있어지고 더 좋아지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알 것 같았다. 그때는 세상은 따라 해야 할 일투성이로 보였고 세상 또한 사랑할 만한 것으로 보였다. 감탄 속에 있을 때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힘이 필요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르게 시작하는 이야기가 있어."
공허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야기가 필요해."
지겨울 때도 그렇게 말했다. 변화가 필요할 때도 그렇게 말했다. (9)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동물로 진화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면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고 나눌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야기하는 공동체로서 좋은 이야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야기하는 공동체로서 좋은 이야기를 돌려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적 정체성의 핵심이다. (11)
"아까 네가 한 말 중에 앎의 지도라는 말 있잖아. 그 말 네가 만들었어?"
"뭐, 그냥 지금 생각났어."
"그 말 진짜 좋다."
"그래?"
"사실 요새 내 앎의 지도에 들어온 것은 모조리 추한 것들뿐이야."
(중략) 어쨌든 앎의 지도라는 말을 들으니 소설가 존 쿳시가 생각이 난다. 그가 자주 쓰는 문장 중에 "앎을 살아낸다"는 문장이 있다. 그에게 삶은 그냥 삶이 아니고 어떤 앎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23)
맹목 중에서도 가장 무자비한 맹목, 주변 세계를 다르게 볼 기회를 막고, 자신을 새롭게 알 기회, 회복의 기회마저 막아버리는 것, 너무 자주 두려움에 빠지거나 공허하거나 외롭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너무 자주 우리 삶을 그토록 취약하게 만드는 것, 너무 자주 우리 삶을 그토록 취약하게 만드는 것, 바로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다. 이 자기중심주의가 세상을 성스럽게 경험하는 것을 막고, 세상을 풍요롭게가 아니라 그 정반대로 세상을 빈곤하게 경험하게 한다. (69)
더 좁은 세계, 더 작은 사랑을 주제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고 수치심을 떨치기 힘들다. 그렇게 살았고, 이제 더는 그렇게 살기 싫기 때문에, 나 자신이 좀 큰 그릇의 사람이 되면 어떨까 싶은 소망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사랑과 더 큰 세상의 일부"라는 말이 내게 중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르 귄의 말이 나에게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굳이 우리가 살 수 있었던 세상 중 가장 작은 세상에 맞춰져 있다. 우리는 세상을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소유물로 축소시켰지만 그런 세상에 맞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이런 세상에 맞게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마치 맞게 태어난 것처럼 살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에너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살 수 있었던 세계보다 더 작은 세계의 한 부분으로 맞춰 살려면 좁은 틀에 자신을 억지로 구겨 넣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꽤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 결과는 좋지 않다. 억지로 맞추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자신이 진짜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게리 퍼거슨도 회복은 "현실을 작게 만들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는 표현을 쓴다. 어쨌든 "더 큰 사랑과 더 큰 세상"은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입 밖으로 나가기만 기다리던 말들이었다. (75)
지금은 인간 정신을 극도로 왜소하게 만드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는 시대다. 적응의 동물인 우리는 이런 분위기에도 익숙해져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 보면 우리가 영영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불행, 슬픔과 상실,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인 희망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 적응하느니 최선의 것에서 위안과 기쁨을 얻을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런 정도의 정신적 붕괴를 감당할 수 없다. 유족들을 조롱하는 사람들 자신도 사랑과 이해를 원한다. 그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90)
어떤 날은 아예 내가 두리가 된다. 피로와 자신 없음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힘을 내야 할 때. 그러나 일단 힘을 내면 잠깐이라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113)
그의 사진을 보면 동물들에 '대해서' 말하지만 동물들을 '위해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무엇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좋고 아름다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117)
'00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 이 문장에 내 인생 전체가 담겼으면 좋겠다.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시간과 삶이 준 가장 큰 선물이고 삶의 의미는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므로. 그리고 삶은 결국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할 줄 알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118)
이사는 나이 든 농장 동물들과 함께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래의 나에게 닥칠 일에 대해 계속해서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이 동물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초연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최후의 쇠락을
마주하고 싶다. (119)
나의 새로운 목소리가 나의 오래된 목소리를 이기길 바란다. (121)
<바다의 숲>의 미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단 꿈꾸고 모험하는 것을 완전히 긍정해준다. 찬 바다에 365일 들어가는 것은 크레이그 스스로 만들어낸 즐거움이다. 크레이그는 진정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발명해낸 셈이다. 나는 이런 발명-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삶은 소중하다'는 말이 뜻하는 바라고 느낀다. (131)
이런 진실한 기쁨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기쁠 수 있고, 이 말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고, 나는 기쁨을 맞볼 준비가 되어 있다. 즉, 기쁨을 위해 살자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 뭐 하세요?", "놀라고 기뻐합니다." (152)
외롭지 않고 싶다는 것은 우리 모두 열망하는 감정이지만 외롭지 않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가 외롭기를 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므로. 무관심, 무책임, 외면, 조롱, 무시, 냉소, 혐오가 많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구 생명이 겪고 있는 위기 때문에 뭔가 '포기'하는 사람, 뭔가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189)
행복해지려고 그렇게 했다고?
좋아. 행복해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외로워 보이는군
솔직히 말해도 될까?
네가 예전처럼 근사해 보이진 않아.
네가 행복하려고 한 선택 때문에
너는 내가 예전에 알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야
너의 행복이라는
그 헛소리를 다 뒤집으면 거기에 희망이 있어
그럴 마음이 들면 전화해
전화번호는 같아
_미상(<바뀌지 않는 전화번호>, 파르테논이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에서 본 시)
우리의 삶은 점차 많은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나는 '외로움'이라고 부른다. (202)
이본 쉬나드와 더그 톰킨스와 릭 리지웨이는 모험을 떠나 텐트 안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그들의 텐트 안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 "이 땅과 저 땅이 연결되면 진짜 아름답겠지", "이 땅과 저 땅이 연결되면 저 큰 나무 밑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피크닉을 즐기겠지?" 솔직히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삶을 돈에 통째로 팔고 싶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큰 나무 그늘 아래 쉬는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이야기가 필요한 한 인간으로서, 지구를 자원뿐만이 아니라 경이롭고 성스러운 선물로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가 그립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텐트 속이 내 서식지 같다. (218)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디 엔드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의 답을 보았거나,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그런 셈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는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았다. 그리고 느낌만으로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73)
무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바를 정리한 코치 형은 떴다방의 직원이 되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사람이 달라졌다. 비록 중고차지만 승용차를 구입했고, 돈의 씀씀이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내가 알던 코치 형과 유사한 인물이란 느낌만 간간이 들 뿐이었다. 유사한 것을 무사하다고 말할 순 없는 거니까, 즉 그런 거니까. (89)
그후의 기억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회사를 상대로 밀렸던 두 달치 임금을 받아냈고, 이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고, 이런저런 서류를 마련해 할머니를 관인 <사랑의 집>으로 보내고, 이 또한 정말 까다롭고 힘든 일이었으며, 경찰서와 병원을 꾸준히 오고, 가고, 또 여전히 일을 했다, 해야만 했다.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91)
위화는 삶이란 이 원론과도 같은 사랑과 우정을 힘으로 운명, 역사적 현실 앞에 때로는 물러서기도 하지만 결코 늦출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이마를 맞대고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295)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나는 내 몸속 타자를 원시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동물적 본능에 집착하는 그 원시인의 시스템에 점점 적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은 더이상 종족 보존을 위해 섹스하지 않는다. 나의 태어남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몸의 시스템은 내가 아직도 빙하기 인간과 다를 게 없는 동물적 존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종족 보존의 본능에 저항한 쾌락적 인간이 왜 지방을 저장하는 본능의 쾌락에는 굴복하는가. 쾌락을 얻는 것만을 우성으로 삼아 진화하는 것인가. (33)
어린애들은 솔직해서 눈에 띄는 점이 있으면 그것을 빤히 바라보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천진함에 대한 아이들의 권리만 인정할 뿐 그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은 타인의 자존심에 대해서는 교육하지 않는다. (36)
지도 중독
딸의 가출에 대해 자신보다 더 나쁜 역할을 내가 담당해줘야 자신이 덜 무책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역할 떠맡기기에 열중했다.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해결해볼 수 없는 불행한 상황 앞에서 한없이 막막하고 고독했을 아이의 심정이나, 그 아이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사생활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그다지 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애송이 학원 선생뿐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107)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해지기까지의 절차가 갈수록 귀찮아지는 데 비한다면 거기에서 얻게 되는 신선함이나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서로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오랜 친구들끼리 앉아서 주고받는 시효 짧은 화제 또한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
그것을 경륜이라고 좋게 보든 보수화되었다고 비난하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 (202)
1시 20분쯤 신입사원들이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방안이 답답하고 공기가 탁해지는 기분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겠지만 각자의 젊음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두서없는 에너지와 욕망 또한 만만찮게 방안을 휘젓고 다녔다. (209)
괴수 아키코
내 말에 그는 잠시간 걸음을 멈췄고 나를 한번 봤다. 그러더니 불쑥 붓꽃이라는 것을 아느냐며 물가로 가 그 꽃을 가리켰다.
"붓꽃의 뿌리는 서로 단단히 얽혀서 한 송이만 꺾는 건 힘들어서요." (38)
오늘의 일기예보
하지만 나는 고모를 닮는 게 좋았다. 잔뜩 꾸미고 나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들어와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누워만 있어도 캐묻듯 질문하지 않는 고모. 누구나 가끔씩은 모든 걸 답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잘 아는 고모. 그러니까 내가 궁금하지 않아서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나는 고모랑 사는 걸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97)
'너 되게 매정하다. 내가 알던 애가 아니야.'
할머니와 고모가 결혼을 꺠겠다는 내 말과 동의해주었을 때부터 그는 누구에게인지 모를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사과에도 내가 결심을 바꾸지 않자 결국 그는 정말 모르겠다며 저런 말을 했다. 여태 무작정 그저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만 했다는 것은 전혀 모른다는 듯 나의 매정함에 서운함을 토로하는 그 얼굴은 아주 말갛고 참으로 무해해 보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103)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잠시 말이 없던 그들은 곧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그땐 그들도 되고 싶어 하던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절대 상상하지 않았을, 되고 싶은 게 있던 시절.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상상력이었다. (231)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안나는 경준을 보며 심각한 게 아닌 진지한 사람이란 얼마나 편안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258)
도시에서 여성 보행자로 걷다 보면 전투적이고 피곤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 책임자라는 점을 상기하게 되고 그것은 항상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31)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은 반공과 통일을 목표로 단일민족의 혈통과 공동운명을 강조하는 '일민주의' 이념을 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자신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이었다. 부계혈통 가부장제에서 아내가 외국인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국적법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의 처가 된 자'는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혼혈'을 모두 해외로 보내려고 할 정도로 '순혈'을 강조하면서도 남성의 피만을 고려하는 부조화가 그때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지 않았나보다. (80)
때때로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태어날 아이의 불행을 예고하는 염려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출산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온정적인 염려와 경고를 보냄으로써, 세상의 차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임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 출산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들을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91)
당시 정부 측은 한센인들이 수술에 동의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동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동의는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 교육,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동의는 사실상 공권력에 의한 강제라고 보았다. (93)
흔히 한국의 전통으로 떠올려지는 남성 중심의 대가족도 지배계급인 양반이 추구하던 모습일 뿐이다. 예컨대 천민계급인 노비는 소유주인 양반의 필요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 실상 1인 가족이 많았다고 한다.
근대에 들면서 한국에서도 '능력 있는 가장'과 쌍을 이루어 '전업주부'라는 이상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장경섭의 표현에 따르면 "가족문화의 귀족화"를 추구한 결과였다. 바꿔 말하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가족모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105)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시하면서도 여전히 성별분업의 이념을 버리지 않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이런 이율배반 속에서 고용상의 불평등을 계속되고, 여성에겐 일도 가족도 불안한 삶의 조건이 된다. (118)
통상 교육이란 학생이 지식을 배우고 관심을 갖고 탐구하게 돕는 과정이다. 하지만 성교육만큼은 성에 관해 두려워하게 하고 호기심을 없애려 했다. 성적 발달이 왕성한 시기지만 성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소년을 만드는 이 어려운 과업을 성교육이 맡아왔다. 그런데 성을 둘러싼 이 익숙한 공포가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126)
사실 사람들이 가족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면서 머릿속으로 '결혼 가능성'이나 '거래'를 계산하고 있을 리 없다. 다만 알게 모르게 당연하다고 믿어온 오래된 가족질서에서 벗어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불안의 감정이 덮치는 건 사실이다. 이러한 분노와 배척은 가족제도로부터의 일탈을 통제하는 무력이고, 궁극적으로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정교한 톱니바퀴다. 그러니 단순히 여성의 교육과 고용의 증진으로 가부장제가 간단히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면 서툰 기대가 아닐까. 가부장제는 가족이 가족에게 행하는 성적인 통제와 잔인한 폭력을 통해서도 연명하고 있다. (140)
동질혼 경향은 전소득계층에서 나타나지만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동질혼은 불리하게 작용한다. 남편의 소득이 낮으면 여성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이때 여성의 일자리는 주로 비정규직으로 가구소득을 크게 끌어올리지 못한다. 반면 고학력 동질혼을 한 여성은 남편의 소득이 높아서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생길 수 있다. (157)
가족을 통한 계층 세습은 가족기리 재산을 공유하게 돕는 이런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인 사회관계와 달리 가족 사이에는 부양의 명목으로 돈이 상당히 자유롭게 이동한다. 노동의 대가로 소득을 쟁취하는 치열한 사회에서, 당당하게 불로소득을 요구하는 세계가 가족이다. 이렇게 설계된 제도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족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한다. 가령 교육비에 지출할 재려이 충분한 가족은, 교육비에 대한 세금도 감면받으며 부모로부터 자식에게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부모는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를 충실히 수행한 훌륭한 양육자라는 인정도 받는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세금을 면제받거나 공제받는 게 무슨 혜택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통상 국가가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만을 지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때때로 국가는 세금을 감면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는다. 연말정산에서 부양가족공제를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부양비용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후자의 방식은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이라야 혜택을 누린다. 그렇지 않은 이는 혜택과 무관하다. 게다가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가족에게 받을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얻어야 하는데, 그럼 이자든 세금이든 지출해야 할 수 있다. 가난해서 돈이 더 많이 드는 아이러니다. (162)
이런 제도가 가족 간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까? 가족부양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은, 마치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 것과 같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가족의 실패'가 사회보장의 전제요건이 되면서,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후의 '고아'와 '미망인'부터 오늘날의 장애인, 노숙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에 오고, 또 시설이 있기에 자유로이 가족을 형성할 수 없는 덫에 빠진다. (165)
'가족관계'로써 신분을 증명한다는 말은, '나'라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면서 내 정보를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83)
수많은 아동들이 가족 배경을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겪는다. 아동이 겪는 온갖 놀림과 괴롭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형태, 가족소득,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 가족에 관한 이유 때문인 경우들이 많다. 가족의 상황이 아동들 사이에 권력관계를 만든다. 흔히 그렇게 태어났은 어쩔 수 없다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이는 가장 부정의한 불평등이기도 하다. 어느 가족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누구는 존중을 받는 반면 누구는 무시를 당하고, 누구는 풍족한 기회를 얻는 반면 누구는 생존도 어렵다면, 벌거벗은 아기 때부터 우리의 몸에 계급이 새겨져 있다는 뜻인 거다. (191)
장경섭은 '가족도덕'의 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조의 이면에, 국가가 사회보장 책임을 축소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중략) 한국은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199)
이 모든 불행의 이야기 속에서 거의 언제나 원인은 가족이었다. 가족이란 제도가 아니라, 온전치 못한 그 가족이 문제라는 생각. 그래서 해결을 구하는 지점도 그 '문제적' 가족이었다. 제도나 관습으로서의 가족은 바꿀 수 없는 상수이고, 자의든 타의든 모범가족의 모습을 따르지 못한 개별 가족들이 변화의 대상이었다. 가족의 기능을 정상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많은 경우 이미 시작부터 실패한 기획이었다. 가족의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건, 애초에 불평등을 만든 바로 그 가족모델을 정당화하고 유지시키는 회로의 일부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경제위기가 몰아치고, 더 많은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흩어지고 있었다. (205)
부모찬스를 비판하던 이들도 가족에게 돌아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최대치의 권력을 사용하는 일을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거나 숭고하게 여긴다. 단지 각자가 가진 '최대치의 권력' 수준이 다를 뿐, 누구든지 기회가 허락하는 만큼 부모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공정성이란 가치는 얼마나 유효한가. (206)
이 책을 쓰며 인용한 문헌들에서 보듯, 이미 수많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가족제도를 비판적으로 연구해왔다. 놀랍도록 풍부한 연구들을 감탄하며 읽고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가족제도에 대한 논의는 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하는가? 가족 생활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경제, 국방, 교육 등 다른 의제보다 가족을 덜 중요하게 다루는 관념 자체가 말해주는 현실이 있다. 가족은 여전히 국가를 위해 유용한 인력을 생산하는 수단이며, 헌법이 요구하는 가족생활의 보장은 아직도 국가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의 시대는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아이를 낳으라는 불가능한 요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없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 아닌데, 이 두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회를 또 반복하며 우리 삶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제 우리, 가족각본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