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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그래야 할까? 왜 굳이 고통과 불편과 두려움을 겪으면서도 뭔가를 보려고 할까? 스스로 이 질문을 많이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다. 아름다움을 직관하고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할 만한 게 있다면 오직 이런 것뿐이기 때문이다. (9)

 

지질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구는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판은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움직인다. 판은 서로 부딪혀 더 무거운 판이 가벼운 판 아래로 잠기기도 하고(수렴 경계), 서로 멀어지며 그 틈에서 새로운 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발산 경계),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보존 경계). 고요해 보이는 물 아래에 해저 화산과 산맥, 깊은 골짜기, 평원, 동굴 등이 있고, 느리지만 끊임없이 지구를 이루는 땅이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상을 살아가며 편협해졌던 시야가 한껏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17)

 

"미나야, 나 진짜 잘 뚫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계속 다그치고 있었으니까. 나는 나한테 계속 실망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들은 밍 언니의 그 말 한마디가 무척 위로가 됐다. 누군가 내 실패에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 그 짐을 같이 들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를 기다려준 적이 별로 없었다. 밍 언니가 계속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그날의 다이빙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66)

 

어느 날은 공원에 누워 있다가 옆자리에 누워 있던 현에게 우울증 작업을 한 뒤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고 고백했다. 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박에 말했다.
"말도 안 돼! 나는 젊은 시절에 베트남 전쟁 작업을 했잖아. 그러면 나는 뭐, 맨날 아이고 아이고 흑흑 너무 슬퍼요 하면서 울고 있어야 되냐? 네가 할 일은 책을 펴낸 걸로 끝난 거야. 나머진 세상의 몫이지. 발끝에서부터 차곡차곡 기쁨을 채우는 연습을 해. 그렇게 채운 힘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게 해줘. 혹시 모르지. 그 힘으로 네가 나중에 세상을 구할지도.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도 그 강아지의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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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심장에서 시작되어 모든 세포로, 모든 혈관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한번 덮치고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땅도, 하늘도, 심지어 자기 손바닥마저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209)

 

세스의 지독한 성질과 그로 인한 슬픔이 내 기억을 잠식해 버린 나머지 어머니에게 사과의 선물로 줄 버드나무 십자가를 정성껏 만들었을 그 꼬마를, 나는 하마터면 떠올리지 못할 뻔했다. 어머니는 그 십자가 두 개를 다 소중히 간직했다. 그래서인지 왠지 나도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십자가 두 개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부엌으로 들고 가 쓰레기통 안에 떨어트렸다. (267)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그건 윌이 가르쳐주고, 거니슨강이 가르쳐주고, 내가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마주했던 곳인 빅 블루가 끊임없이 가르쳐준 진리였다. (281)

 

"나한테 숨기는 게 무엇이든, 말하든 말든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그렇지만 두 가지만 얘기할게요. 하나, 빅토리아가 강한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요. 나무도 구하고 농장도 운영하고 열심히 일하고 걷고... 뭐든 혼자서 척척 잘 해낸다는 거. 그래도 슬픔을 혼자 짊어지고 사는 건 강인한 게 아니에요, 빅토리아. 그건 누가 봐도 벌이야.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든 자신을 비난하는 것만큼은 멈췄으면 해요." (340)

 

서늘한 소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닥에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흙 두 줌을 퍼 올렸다. 퍼 올린 흙에는 시커먼 흙, 솔잎, 조약돌, 잔가지, 나뭇잎, 자그마한 달팽이 껍데기, 솜처럼 하얀 깃털이 들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탄생, 성장, 그리고 죽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 쓰러진 나무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 모든 굴곡을 이겨내고 틈을 뚫고 빛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간 생명들을 둘러보았다. 숲에 깃든 태곳적 혜안은 너무 깊고 복잡해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게 꼭 필요했던 지혜를 다시금 떠올릴 만큼은 헤아릴 수 있었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415)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윌이 가르쳐주었듯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을 무릅쓰며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는 게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강물처럼 나 역시 나를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면서 살아 왔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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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보면, 불행 속을 걷는 어린 주인공이 쓰러진 나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지 알아? 이 나무는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거든."
산책길에서 쓰러진 나무를 볼 때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쓰러질 때마다, 이 대사가 떠오른다. (25)

 

성사를 집전하는 종교 시설에 앉아 있어도 큰 울림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일부로 하되 나보다 큰 어떤 것이 있다고 느낀다. 그 점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93)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 삶을 더 잘 누리기 위해서다. 허겁지겁 살 때 채 누리지 못한 삶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삶의 깊은 쾌락은 삶의 질감을 음미하는 데서 온다. 그러니 공부가 어찌 쾌락이 아닐 수 있겠는가. (107)

 

부재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독해력이 달라진다. 침묵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텍스트에 대한 독해력이 달라진다. (108)

 

학문의 길을 가고 싶으나 그 길이 멀고 위험해 보여,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른 일에도 동시에 손대는 것은 공부를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흔히 취하는 위험 분산 전략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학문의 길은 그런 전략상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하찮게 만들 정도의 결기, 훈련, 격려가 필요하다. (115)

 

너희가 고통을 사랑하느냐. 적성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를 찾는다는 것이다. (116)

 

입시를 위한 공부, 부과된 공부, 연구비를 위한 연구비에 의한 연구비의 공부, 발주된 프로젝트 따위에는 에로스가 없다. 그런 공부에는 지적 성욕을 느낄 수 없다. (148)

 

학자는 자신의 분야가 사유를 연마하는 분야thinking discipline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입에 걸리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하는 분야나, 자료 수집에 불과한 분야는 사유의 훈련장이 아니다. (149)

 

책의 두께는 부차적이다. 과연 그 연구가 질문을 가지고 있기나 한지, 혹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연구자들은 현재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혹은 질문을 만들기나 하는지. (161)

 

다들 강해지고 싶어 하지 않나. 강해지는 좋은 방법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다. 강해진 다음에 상대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강해진다. (182)

 

햄버거에서 패티만큼이나 빵이 중요하듯, 만두에서 만두소만큼이나 만두피가 중요하듯, 붕어빵에서 단팥만큼이나 붕어빵피가 중요하듯, 피자에서 토핑만큼이나 도우가 중요하듯, 논문에서는 본문만큼이나 서론과 결론이 중요하다. (187)

 

미국의 작가 매릴린 로빈슨은 고교 시절 선생이 해준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음은 평생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니 아름다워야 한다." (204)

 

완성된 것은 그 나름의 심미성을 갖는다. 그래서 완벽한 천박함은 더 이상 천박하지 않다. 완벽한 멍청함도 더 이상 멍청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많은 이가 많은 일을 대충 한다. 대충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언젠가 대충주의를 완성하길 바란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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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몇 년 동안의 교훈에 의해서 시류가 변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사람에게 세 구절의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과거의 공로, 10년의 고통, 현재의권력. 이것은 그가 입 밖에 낸 말은 아니지만  그의 언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내가 그 비판 대회에서 그에게 실망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실망은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깊다. 그 사람 본래의 장점인 뛰어난 지혜와 능력,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자세 등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과거의 그는 교사나 학생들의 생활에 관심을 보였고 대학 식당의 운영 같은 것은 누구나가 다 칭찬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의 권력밖에 관심이 없다. 지위는 회복되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절반만 회복했을 뿐이다. 저속한 절반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절반만. (30)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녀처럼 쾌활해질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안온하고도 만족스러운 가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었다. 
"그건 내가, 풍파도 없지만 재미도 없도 없는 생활에 안주할 줄 알고, 실현성이 없는 꿈은 꾸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이야. 너, 내 마음이 돌 같다고 생각해? 그야 나 역시 태양은 뜨겁고 얼음이나 눈은 차다는 것, 꽃은 아름답고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라는 것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한 나 자신의 감도를 최저까지 낮출 수 있는 거야." (33) 

얻으며 잃는 것.

 

"그 사람이 겪은 고통만은 당신도 부정할 수 없겠지?" 나는 반문했다. 시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겪은 고통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해.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열하게도 만드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한동안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40)  

 

신기한 일이다. 쑨웨의 언동을 기억해 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맑게 개는 것일까. 쑨웨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떄부터였다. (46) 

 

내 정신 세계는 거의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쑨웨를 기억해 내는일도 없어졌고 나 자신은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의 일이었다. 채석 현장에 발파 담당자로 고용되어 자칫 생명을 잃을 뻔했던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뇌리에 갑자기 무서운 상념이 떠올랐다. '쑨웨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 무서운 상념이 놀라운 용기와 재치를 주었고 나는 폭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도망칠 수 있었던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의 사랑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인간은 사랑할 힘만 있으면 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 속에서 쑨웨의 이미지를 확대해서 나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내가 일기에 토해 냈던 것이 결국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사랑이야말로 내게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나 역시 하나의 인간임을 알게 해 주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54)       

 

확실히 나는 허위만을 말할 뿐 진실은 말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직한 자가 당하게 된다는 진리는 세 살짜리 아이도 알고 있다. 허위는 성숙과 혼동되기 쉬워서, 여간해서는 구별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것을 구별해 내다니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시인할 필요도 부인할 필요도 없다. 잠자코 그가 떠들도록 두는 것이다. (66)

 

그는 나를 향해서 담뱃대를 들었다. 내 머리를 두들기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나 결국은 한숨을 한 번 쉬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감고 슬픈 듯이 말했다.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겠군. 자네는 조금 타격을 받았을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포기해 버리는 것만큼 커다란 슬픔은 없는데." (68)

 

나는 어린 시절에 늘 은하수나 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할머니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에 이슬 방울을 하나 얹고 있단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의 복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야." 할머니는 자주 별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인간도 별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존재할 장소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별은 자기를 받쳐 주는 것이 없어도 하늘에 있다. 인간 역시 손잡아 줄 사람이 없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이 빛나면 지상의 이슬까지도 빛나는 법이다. 이것이 내가 받아들인 최초의 철학이었다. (75) 

 

"내 결론은, 한마디로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어.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지. 인생은 우리들에게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자기에 대해서 공정하지 않으면 안 돼. 자기를 왜 그런 우두머리와 비교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나와 그의 가치가 두 사람의 관계로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처럼 멍청한 이야기는 없어. 설령 죽어서 뼈가 되더라도, 내 뼈의 인 함유량이 그의 것보다 많아서, 귀신불도 그의 것보다 밝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지." (76) 

 

"왜? 인간성과 휴머니즘의 문제는 금지 구역이기 때문에?"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금지 구역인 것은 아니지. 하지만 일부러 거기까지 산보하러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꽃은 적고 가시덤불만 많은 곳이니까. 자네는 왜 소수파 쪽으로 가려 하는 건가. 나무가 수풀보다 빼어나면 바람이 그것을 쓰러뜨리고, 행동이 타인보다 고아하면 대중이 그를 비방하리니. 이런 말들 몰라? 역시 남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구."
"호오, 자네는 개인주의의 꼬리를 정말로 산뜻하게 잘라 내 버렸군. 하지만 말해 두겠는데 자네처럼 소극적인 사람이 있으니까 소수자가 눈에 두드러지게 되는 법이야." (78)  

 

"자네는 그다지 많은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토록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나?"
그의 답은 나를 놀라고 기쁘게 했다.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 경험은 즉 제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에서부터 태어난 모든 문제를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책임이며 권리이기도 하지요."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118)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은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면, 극도의 냉정함을 느낀다. 극단적인 열정과 극도의 냉정함이 어떻게 그의 내부에서 통일될 수 있는가. 알 수가 없다. 열정이 냉정함을 낳는가, 냉정함이 열정을 낳는가. 젊은 친구여, 자네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120)

 

남자는 눈물이 있어도 가볍게 흘리지 말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로 아픔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끼니가 없어 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훨씬 뒤의 일이었다. 사람은 각각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상처도 다른 법이다. (126)

 

"아이고, 선생님의 밑천을 전부 다 먹어 버렸잖아요!" 나는 수박을 다 먹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라서 외쳤다.
선생님은 하하하 웃으면서 자기의 가슴을 두드렸다. "밑천이라면 여기에 있지. 누구에게도 다 먹히지는 않아." (128)

 

조건 여하에 따라서는 란샹 역시 아름답고 고상하며 교양 있는, 쑨웨 같은 여자가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쑨웨와 똑같은 여자가 나를 유혹해서 쑨웨로부터 나를 뺏을 리는 없지만. 모든 것이 신의 섭리다. (153)

 

사소한 고통은 연애의 양념이다.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맛이다. 여학생의 눈물에는 나도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164)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부터 예상 외의 고백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 (168)

 

외부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둔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법이다.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176)

 

언제나 그렇다. 그녀는 나를 그녀의 또 하나의 '자기'로 놓고는, 그녀의 '자기'와 대화를 시킨다. 나는 분명히 그 역할을 다해 낼 수 있어. 나 역시 그녀를 늘상 또 하나의 '자기'로 보고 있으니까. (197)

 

그는, 내가 사랑을 말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지도'에 대해서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 나이의, 우리 같은 경력의 소유자들에게 '사랑해 주겠느냐.' 따위의 문제는 이미 흥미가 없는 주제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말에 의한 고백이라든가 맹세는 필요로 하지 않으며 믿지도 않는다. 자기의 눈과 마음을 믿을 뿐이다. 애정은 느끼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는 거리가 느껴지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경력과 성격이 만들어 낸 것이다. (234)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우는 것이 좋아. 그녀에게 만일 경건하게 신봉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만일 열렬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만일 진지하게 사색한 일이 없었더라면 울 리가 없는 것이다. 승리가 갖다주는 것이 기쁨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박한 인간들뿐이다. 그래, 승리는 자주 고통까지도 갖다준다. 그 맛은 나 역시 일찍이 경험한 일이 있다. (241)

 

사상은 원래 손쉽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확립된 사상은 확고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법을 익히든지, 사상을 단지 하나의 배지로 삼아 옷깃에 달아 두든지 하지 않는 한. (243)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비뚤어진 길을 택한 이상 비뚤어진 삶은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302)

 

결국 인생이 최고의 분장사인 셈이다. 우리들은 눈을 억지로 치켜올리지 않아도 어느덧 주름이 잡히고 말았다. (328)

 

내 청소년기의 정서는 항상 안정되어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고양되어 갔다. 그러나 지금의 정서적 안정이라는 것은 도대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맹목적 낙관, 무지몽매, 우둔, 무감각 등이 이 정서적 안정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한이 또래의 자신감이 없어지고 만다. (340)

 

어느샌가 비가 오고 있었구나. 빗줄기는 너무나 가늘어 온몸을 감싸 버릴 것 같은 안개비다. 엄마는 자주, 이런 비는 몸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비는 가늘어도 옷을 적시고 말은 적어도 급소를 찌른다." (347)

 

그러나 끝까지 그는 자기를 수정주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를 더욱 존경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나는 그에게서 아득한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모든 생활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십수 년 전, 아니 수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 회의실의 석고상이 영원히 저곳에 영원히 저 자세로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를 감상할 수는 있어도 그와 대화할 수는 없다. (410)

그를 감상할 수는 있어도 그와 대화할 수는 없다니.

 

유랑 생활에서는 사람들이 내 영혼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았지. 닫힌 영혼은 죽은 영혼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 무렵에 내 마음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만 있었더라면 나는 내 가슴을 잘라서라도 열어 보였을 거야. 온몸의 뜨거운 피가 남김없이 흘러 버려도 아까워하지 않았을 거야... (434)

 

머리를 절단당하고서야 살아갈 수 있는가. 만화에 그려진 사람이 정말 생각났다. 어떤 책엔가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실렸었지. 어떤 남자가 머리를 절단당하고서도 자기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형장에서 도망쳐 성문을 나와서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배가 고파서 빙쯔(일종의 구운 빵)를 사러 갔다. 빙쯔 장수는 머리도 없으면서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느냐며 팔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가 계속 졸라서 빙쯔 장수는 할 수 없이 하나를 주었다. 남자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비로소 입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쁜 놈, 입이 없는데 머리가 없다고 속이다니. 머리 따위야 없으면 어때. 입이 없으면 큰일이지. 죽을 수밖에 없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슬픈 듯이 밋밋한 자기의 목을 두드리더니 펄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 우스개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머리보다도 입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리든 상관없지만 입만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453)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만일 누군가에게 단순한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일언지하에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요소 때문이라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인간이 있고,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워하는 인간이 가세하고, 거기에 또 머리가 굳은 인간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복잡해지고 말 것이다. 우연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사나 운명은 묘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462)

 

나는 반농담으로 그 아이에게 말했죠. "너는 엄마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인생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명하고 절실한 인식을 가지길 바란다. 절대로 연애를 해서는 안 돼. 우정이라든가 이성에 의한 감정의 고조는 애정과 관계가 있지만 애정 그 자체는 아니다. 진정한 애정은 인간의 영혼과 더불어 성숙되는 것이다." (487)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나는 이 견해에 쌍수를 들어 찬성합니다. 얻어도 거만해지지 않고 잃어도 우울해지지 않는 경지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득실을 따지는 기분에 스스로가 좌우되지 않도록 할 따름입니다.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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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냉대와 마뜩잖은 동정의 눈빛은 한번 겪으면 잊기 힘들다. 나는 그 눈빛이 어리는 전조를 파악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 눈빛은 미간에서 시작했다. 억지로 웃는 입꼬리로는 숨길 수 없는 가난에 대한 혐오가 서린 미간. 눈이 먼 아빠를 부축해 행정복지센터에 가는 날마다 진지함을 가장한 그 미간을 보았다. 직원은 초등학생인 나를 자기 자리 앞에 세워두고 질문했다. 아버지가 진짜 눈이 안 보이는 게 맞지? 어머니가 진짜 교통사고 때문에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시는 것도? 지난달에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은 쌀은 진짜 네가 먹었고? 너 진짜 이 집에서 사는 거 맞지, 그치? 
그들은 내게 진짜가 맞느냐고 되풀이해서 물었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

 

침묵했더라도 나는 떨었을 것이다. 분해서. 떨리더라도 말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엔 많다. 젠더와 가난이 그렇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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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그가 왜 그렇게 두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자살하듯이 모험적으로 두고 있는 것을 어쩌면 그들은 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도 장과는 달리 그 젊은이가 하듯이, 당당하게 승리를 확신하면서 둘 수 있기를 바랐다. 나폴레옹처럼 말이다. (26)

 


장인 뮈사르의 유언

마음의 평화가 소중하게 생각되면 내가 하는 말에서 도망쳐라! 무지는 수치가 아니며, 오히려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실 이 세상에서 가능한 유일한 행복은 그것뿐이다. 행복을 경솔하게 버리지 말라! (44)

 

그곳에서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돌조개의 형태로 최후의 안식을 찾게 된다. 
상상하는 것이거나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주장하고 있다고 여기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해가 거듭될수록 네 몸이 화석처럼 굳어 가고 무감각해지며 육체와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너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가? 어린 시절에는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구부렸으며, 하루에도 열 번 넘어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열 번 일어났던 사실을 이제 잊었는가? 너의 보드라운 피부, 유연하면서도 건장한 근육, 양보하면서도 제압당하지 않는 생명력이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가? 지금 네 모습을 한번 보아라! 피부는 크고 작은 주름살로 우글쭈글하고 얼굴은 식초병처럼 울퉁불퉁한 데다가 마음의 고통으로 여위었으며, 네 육신은 뻣뻣하게 굳어 신음 소리를 낸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고 한 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다. 바닥에 쓰러져 오지그릇처럼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한다. 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네 힘줄 여기저기서 그것, 네 안의 조개를 감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것이 네 심장을 공격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은 벌써 네 심장을 반이나 에워싸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58)

 


문학의 건망증

그런데 이런, <아주 훌륭하다!>라고 긁적거리기 위해 연필을 들어대자, 내가 쓰려는 말이 이미 거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기록해 두려고 생각한 요점 역시 앞서 글을 읽은 사람이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내게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내 자신의 필체였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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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작자들에게는 여느 때보다 '뛰어남' 혹은 '유명세'가 요구되는 듯싶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창작자로 하여금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7)

 

저마다의 새롭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긴장되며, 징그럽고, 끝없이 계속되는 출발 앞에서 느끼는 당연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한 의연함 역시 없음을 말하는 대화이다. (9)

 

무언가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여전히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두렵고 초조하다. (10)

 

당장의 그가 너무나 빛나 보였던 나머지, 그의 처음 같은 것을 상상해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18)

 

약간 미치겠는 거예요. (웃음) 그날 엄청나게 긴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실수 없이 잘 끝났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그냥 해야죠, 뭐. (29)

나에게 부족한 것은 맹목과 단순함일지도. 

 

그런데 일을 줄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불안으로 다가오지 않았나요?

(바로) 불안하죠. 되게 불안하죠. (40)

 

다른 인터뷰에서 "영상과 글에 있어서만큼은 자책하지 않는다."라고 하신 걸 보았어요. 저는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저는 완전 자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웃음) 그러면서 "못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덧붙이기도 하셨어요. 저도 동의해요. 완전 전적으로 동의하고 알지만...

(웃는다)

알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잘 안 돼요.

자책의 굴레를 극복할 때 스스로에게 자꾸 주문을 걸었다고 하셨는데, 그 주문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왜냐하면 저 같은 분들이 되게 많을 거예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만든 거, 너무 형편없잖아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계속하면 아무것도 안 되겠는 거예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내 길을 만들겠어요. 피드백도 받아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 나의 못남을 좀 견뎌야 하는 거죠. 어쨌든 못하는 게 안 하는 거보다는 결과적으로 나의 발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런 조언을 저도 봤었어요. 그런 거 있죠, 미완성 곡이나 글을 두 편 쓰는 것보다, 못났지만 완성된 하나를 만드는 게 훨씬 더 많이 성장하게 한다는 말이요. 그런 조언을 보면서 많이 다짐했죠. 진짜 별로인 거라도 하나 완성하자, 그래서 하나하나 쌓아가자. 어쨌든 다음에 더 잘하면 되잖아요. 뭔가를 계속 쌓아 나가는 일이 결국 스스로에게 더 도움이 될 거고, 아무리 '이건 완벽하게 만들겠어.' 해봤자 그걸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많이 했었죠.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별수 없다.

영원히 완벽해지지 않아요. 누구든지 포기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해요. '여기서 포기다. 타협해야겠다.'는 순간을 맞이해야만 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유튜브로 책 권하는법>에도 그런 구절을 썼는데, 언제든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내가 지금 개떡같이 했어도, 이걸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내 인생에 아직 무엇이든 무마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46)  

 

그런데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창작의 완성은 노출이잖아요. 하지만 세상에 나의 것을 내보이는 일에는 만드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를 드러내 보이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별로라는 인정. (64)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다 못하는 시절이 있어요. (65)

 

수년간 단련된 그의 근육에 질문이 무색해질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하는지, 버티는지, 쉬는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지 묻는 때에 그랬다. 그것도 자주. 왠 훈련에 익숙해진 선수처럼, "그냥 한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강인함을 느꼈다. (71)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 처음엔 조금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이다음 무언가가 있어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쌓는 마케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니까, 그때그때 재밌는 일이 들어오면 하고 지루하면 안 하게 되었어요.(82)

 

저도 뭔가를 많이 하잖아요.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도, 많이 올리니까 그래요. 하나를 해도 막 열 번씩 말하니까. 그런데 저는 참새 님을 비롯한 분들을 보면 확실히 콘텐츠의 힘을 믿게 돼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저것 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자기의 매력을 막 뿜어내는 시기가 저마다 있는 것 같아요.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받을지라도요. (88)

 

그래도 제일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도 취향이 있으니까 어떤 게 별로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별로인 건 절대 어디에 올리거나 평하지 않아요. (95)

 

당시에는 제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갑자기 큰 사랑을 받아서 감당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 해보면, 애초에 완벽한 준비는 없는 것 같아요. 준비가 안 되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힘들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138)

 

그런데 저는 이걸 딱 멈추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이런 생각 회로를 '자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저를 해치는 거죠.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평가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부분에서 휩쓸리는 게, (143)

 

어떻게 보면 '깊이에의 강요'는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거든요. 내가 잘하고 싶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근거가 없으니까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차곡차곡 하나씩 쌓아올리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생긴 거죠. 그래서 깊이에 대해서는 예전만큼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초반엔 스스로의 자격이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것보다는 '성실함'과 일에 대한 '진실함'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결과물과 시간이 쌓이면, 나머지 재능은 그냥 따라오게 된다고 생각해요. 근거가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는 거죠.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할 때 느끼는 막연함이나 두려움 중에서 어떤 부분은,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146)

 

어릴 때는 예술적 능력이 있어야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오래 하는 사람이 ... 최고다. (147)

 

그래서 뭔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떄, '내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기획이라는 게, 생각은 누구나 하잖아요. 사적인서점 처음했을 때도, 저희 서점 인터뷰가 나가면 무조건 있었던 댓글이 "아, 이거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

나도 생각했던 건데!

정말 많았었거든요.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실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거죠. (151)

 

첫 번째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전부가 아니라고요. 선택 앞에서 절박해지는 이유가, 여기서 망하면 끝장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움직이거나 시도하는 게 아니라요. 잘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도전이나 모험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요. (170)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와 맞바꾼 거잖아요. 자유라는 것과 안정감을 맞바꾼 거죠. 사실 자유는 너무 크고 귀한 건데, 이미 갖고 있는 거니까 당연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건 못 보고 나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만 크게 보는 거죠.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172)

 

맞아요, 공포가 있었죠. 매일 글 쓰는 거는, (한숨) 별로 안 어려워요. 매일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는 게 어렵죠. 일기를 쓰는 건 쉽잖아요. (207)

이슬아도 무섭다는데.

 

용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창작자가 용기를 잃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만과는 또 다른 것인데, 일말의 용기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잖아요. (209)

 

문학작품을 보면 진짜 다양한 사람의 온갖 구질구질한 삶이 있지 않습니까. 조금 먼 시선에서 보면, 사람들이 되게 애처롭고 귀엽잖아요. 그래서 어쨌거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치사하고 힘들고, 음, 그리고 변태 같다는 것을 잊지 않고 쓰거든요. 그러면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210)

 

그래도 너무 ... 좋은 글 쓰고 싶잖아요. (웃음) 너무 잘하고 싶잖아요.

맞아... 너무 잘하고 싶지.

그래서인지 언제나 초조하고 아쉽고 그렇지만, 이 모든 생각을 하면 한 자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별로 안 하는 편이에요. (221)

 

제가 감히 미슬 님께 한 말씀 올려보겠습니다. 미슬 님께서는 저보다 현명한 존재이실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미슬이가 두 가지 함정에 빠질까 봐 걱정이에요. 너무 많은 사람들 얘기 듣다가 겁쟁이가 되거나 너무 오만해지고 고집스러워져서 사람들 말 안 듣는 미슬이가 될까 염려돼요. 그러니까 겁쟁이도 아니고 잘난척쟁이도 아닌 사람으로 재밌고 좋은 것을 쓰기를 바라고 있어요. (236)

 

용감해지렴. 용기야말로 생명의 열쇠니까. 결코 자신을 비하하지 마. 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언제나 당당히 기억하기를.

고우야, 외롭니. 고독은 너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란다.

건강하렴.

너의 친구로부터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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