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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14)
자기가 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기 시작하지. 자기 맞은편에 서 있는 인간은 동등하게 대우할 존재가 아니라고,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네. 검은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검게 보이는 거랄까. (25)
흑화한 다음에 하는 말들도 다들 비슷하다네. 후배들에게 마치 후일담처럼 말하지. "그때 많이 배웠다"고. '그때'는 자신이 승진 명단에서 누락돼썩나, '조직의 쓴맛'을 봤을 때를 말하네. 그럼, '많이 배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자신이 흑화한 것이 아니라 성장한 것이라고 말하는 거라네. 진정한 '프로 직업인'으로 거듭났다는 거지. (26)
생존자. 범죄의 고통에 갇힌 피해자가 아니라 그 고통을 이겨낸 생존자다. 생존자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 견뎌낸 한순간 한순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33)
나는 성폭행을 당한 순간 피해자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이름을 갖고 있디만 그 사실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 '생존자'보다는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록산게이, <헝거> 중) (34)67_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빈곤함이 그리고 빈곤의 재생산 구조가 이들 삶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39)
소현은 고개 들어 저항하지 않는다. 모호한 대답으로 피해가려 한다.
"그냥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잘못했어요."
'그냥'은 자기 세계가 뚜렷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부사다. (54)
젊은 세대의 기억이 비슷하다는 것은 자기소개서에서도 드러납니다. 신입사원 공채에 참여했던 한 전형위원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그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우리소개서'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65)
그렇습니다. 모든 건 당신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의미 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 세상과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정확하게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말입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고통받은 만큼만 진실입니다.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67)
어떻게 성공하느냐보다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때로는 더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실패한 원인을 알아야 다음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실패학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실패에 주목하는 이유는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휴머니티, 인간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69)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진리가 아니라-'사랑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사랑도 결국은 자유의 이야기, 성장의 이야기다. 진정한 사랑은 러브 스토리를 넘어선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만남을 통해 성장했고, 그 성장한 마음으로 서로의 꿈을 격려하고 서로의 자유를 지지했다. 상대가 진정 원하는 걸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85)
그때 그 기자들은 왜 겉늙었던 것일까. 기자들은 연식이 좀 돼 보이는 게 취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그것은 기자가 되어 접해본 직업들, 그러니까 판사나 검사, 정치인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 든 척 발언하고 행동했다. (104)
그 서열의 고리 속에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인간형들이 차고 넘친다. 젊지만 나이 든 척 행동하는 '애 늙은이'와 나이 들었지만 철들지 않은 '늙은 애'들이 공생하고 있다. '애 늙은이'들은 조직의 문제점에 패기 있게 도전하지 않는다. 기존 체제에 기민하게 적응하려고만 한다. '늙은 애'들은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채 냄새만 맡으면 무섭게 달려든다. 이 '애 늙은이'와 '늙은 애'들의 세상에서 어른다운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106)
이렇듯 작은 사회에서 아웅다웅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직역이기주의의 늪에 빠져든다. 기자들은 기자들 사회에, 검사들은 검사들 사회에, 의사들은 의사들 사회에 갇혀 산다. 그 세상이, '자기들만의 리그'가 전부인 줄 안다. 기자가 최고인 줄 알고, 검사가 최고인 줄 안다. 자신들이 가장 고생하는 양 집단적으로 자기연민에 빠진다. (142)
하기야 나도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막말은 참아도 감각 후진 것은 정말 못 참겠다. 그렇다고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그거야말로 감각이 후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147)
영화 <기생충>의 박 사장은 냄새에 극도로 민감하다. "냄새가 선을 넘지." "왜,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 그는 냄새가 싫어서 코를 막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는 왜 역겨움을 참지 못한 것일까. 그건 역겨움을 표현하는 것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176)
케빈 카터라는 사직작가가 있었다. 그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소녀와 그 옆에서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기아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카터의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촬영 후 카터는 독수리를 멀리 쫓았지만 그는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왜 그 아이를 곧바로 구하지 않았느냐." "사진을 찍는 게 아이보다 중요했느냐." 그는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0)
미국 역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폭정: 20세기의 스무가지 교훈>(52)에서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재판 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 정권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잔혹 행위를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195)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건 큰 병을 앓았거나 내면이 부서지는 좌절을 경험했을 때다. 자기 자신에게 걸려 넘어졌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은 마주하지 못했던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208)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다시 쓰여야 한다.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라는 유령이."
'긱 이코노미'가 무서운 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기 땜누이다. 나를 고용한 사용자도 나고, 내가 고용한 근로자도 나다. '디지털 기기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프로젝트별로 수수료를 받는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 같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다.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저임금 중노동일 따름이다. (250)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이것이다. 힘든 일이라고, 중요한 일이라고 꼭 인상을 찌푸리며 할 필요는 없다. 늘 눈앞을 가로막는 적은 자기연민이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고, 뒷담화는 남들에게 맡기고, 성큼성큼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 된다. 내가 가보고 싶은 대로 가보면 된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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