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나는 저 몇 년 동안의 교훈에 의해서 시류가 변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사람에게 세 구절의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과거의 공로, 10년의 고통, 현재의권력. 이것은 그가 입 밖에 낸 말은 아니지만  그의 언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내가 그 비판 대회에서 그에게 실망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실망은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깊다. 그 사람 본래의 장점인 뛰어난 지혜와 능력,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자세 등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과거의 그는 교사나 학생들의 생활에 관심을 보였고 대학 식당의 운영 같은 것은 누구나가 다 칭찬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의 권력밖에 관심이 없다. 지위는 회복되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절반만 회복했을 뿐이다. 저속한 절반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절반만. (30)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녀처럼 쾌활해질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안온하고도 만족스러운 가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었다. 
"그건 내가, 풍파도 없지만 재미도 없도 없는 생활에 안주할 줄 알고, 실현성이 없는 꿈은 꾸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이야. 너, 내 마음이 돌 같다고 생각해? 그야 나 역시 태양은 뜨겁고 얼음이나 눈은 차다는 것, 꽃은 아름답고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라는 것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한 나 자신의 감도를 최저까지 낮출 수 있는 거야." (33) 

얻으며 잃는 것.

 

"그 사람이 겪은 고통만은 당신도 부정할 수 없겠지?" 나는 반문했다. 시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겪은 고통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해.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열하게도 만드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한동안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40)  

 

신기한 일이다. 쑨웨의 언동을 기억해 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맑게 개는 것일까. 쑨웨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떄부터였다. (46) 

 

내 정신 세계는 거의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쑨웨를 기억해 내는일도 없어졌고 나 자신은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의 일이었다. 채석 현장에 발파 담당자로 고용되어 자칫 생명을 잃을 뻔했던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뇌리에 갑자기 무서운 상념이 떠올랐다. '쑨웨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 무서운 상념이 놀라운 용기와 재치를 주었고 나는 폭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도망칠 수 있었던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의 사랑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인간은 사랑할 힘만 있으면 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 속에서 쑨웨의 이미지를 확대해서 나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내가 일기에 토해 냈던 것이 결국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사랑이야말로 내게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나 역시 하나의 인간임을 알게 해 주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54)       

 

확실히 나는 허위만을 말할 뿐 진실은 말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직한 자가 당하게 된다는 진리는 세 살짜리 아이도 알고 있다. 허위는 성숙과 혼동되기 쉬워서, 여간해서는 구별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것을 구별해 내다니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시인할 필요도 부인할 필요도 없다. 잠자코 그가 떠들도록 두는 것이다. (66)

 

그는 나를 향해서 담뱃대를 들었다. 내 머리를 두들기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나 결국은 한숨을 한 번 쉬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감고 슬픈 듯이 말했다.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겠군. 자네는 조금 타격을 받았을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포기해 버리는 것만큼 커다란 슬픔은 없는데." (68)

 

나는 어린 시절에 늘 은하수나 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할머니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에 이슬 방울을 하나 얹고 있단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의 복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야." 할머니는 자주 별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인간도 별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존재할 장소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별은 자기를 받쳐 주는 것이 없어도 하늘에 있다. 인간 역시 손잡아 줄 사람이 없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이 빛나면 지상의 이슬까지도 빛나는 법이다. 이것이 내가 받아들인 최초의 철학이었다. (75) 

 

"내 결론은, 한마디로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어.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지. 인생은 우리들에게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자기에 대해서 공정하지 않으면 안 돼. 자기를 왜 그런 우두머리와 비교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나와 그의 가치가 두 사람의 관계로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처럼 멍청한 이야기는 없어. 설령 죽어서 뼈가 되더라도, 내 뼈의 인 함유량이 그의 것보다 많아서, 귀신불도 그의 것보다 밝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지." (76) 

 

"왜? 인간성과 휴머니즘의 문제는 금지 구역이기 때문에?"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금지 구역인 것은 아니지. 하지만 일부러 거기까지 산보하러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꽃은 적고 가시덤불만 많은 곳이니까. 자네는 왜 소수파 쪽으로 가려 하는 건가. 나무가 수풀보다 빼어나면 바람이 그것을 쓰러뜨리고, 행동이 타인보다 고아하면 대중이 그를 비방하리니. 이런 말들 몰라? 역시 남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구."
"호오, 자네는 개인주의의 꼬리를 정말로 산뜻하게 잘라 내 버렸군. 하지만 말해 두겠는데 자네처럼 소극적인 사람이 있으니까 소수자가 눈에 두드러지게 되는 법이야." (78)  

 

"자네는 그다지 많은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토록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나?"
그의 답은 나를 놀라고 기쁘게 했다.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 경험은 즉 제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에서부터 태어난 모든 문제를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책임이며 권리이기도 하지요."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118)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은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면, 극도의 냉정함을 느낀다. 극단적인 열정과 극도의 냉정함이 어떻게 그의 내부에서 통일될 수 있는가. 알 수가 없다. 열정이 냉정함을 낳는가, 냉정함이 열정을 낳는가. 젊은 친구여, 자네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120)

 

남자는 눈물이 있어도 가볍게 흘리지 말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로 아픔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끼니가 없어 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훨씬 뒤의 일이었다. 사람은 각각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상처도 다른 법이다. (126)

 

"아이고, 선생님의 밑천을 전부 다 먹어 버렸잖아요!" 나는 수박을 다 먹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라서 외쳤다.
선생님은 하하하 웃으면서 자기의 가슴을 두드렸다. "밑천이라면 여기에 있지. 누구에게도 다 먹히지는 않아." (128)

 

조건 여하에 따라서는 란샹 역시 아름답고 고상하며 교양 있는, 쑨웨 같은 여자가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쑨웨와 똑같은 여자가 나를 유혹해서 쑨웨로부터 나를 뺏을 리는 없지만. 모든 것이 신의 섭리다. (153)

 

사소한 고통은 연애의 양념이다.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맛이다. 여학생의 눈물에는 나도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164)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부터 예상 외의 고백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 (168)

 

외부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둔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법이다.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176)

 

언제나 그렇다. 그녀는 나를 그녀의 또 하나의 '자기'로 놓고는, 그녀의 '자기'와 대화를 시킨다. 나는 분명히 그 역할을 다해 낼 수 있어. 나 역시 그녀를 늘상 또 하나의 '자기'로 보고 있으니까. (197)

 

그는, 내가 사랑을 말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지도'에 대해서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 나이의, 우리 같은 경력의 소유자들에게 '사랑해 주겠느냐.' 따위의 문제는 이미 흥미가 없는 주제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말에 의한 고백이라든가 맹세는 필요로 하지 않으며 믿지도 않는다. 자기의 눈과 마음을 믿을 뿐이다. 애정은 느끼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는 거리가 느껴지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경력과 성격이 만들어 낸 것이다. (234)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우는 것이 좋아. 그녀에게 만일 경건하게 신봉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만일 열렬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만일 진지하게 사색한 일이 없었더라면 울 리가 없는 것이다. 승리가 갖다주는 것이 기쁨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박한 인간들뿐이다. 그래, 승리는 자주 고통까지도 갖다준다. 그 맛은 나 역시 일찍이 경험한 일이 있다. (241)

 

사상은 원래 손쉽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확립된 사상은 확고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법을 익히든지, 사상을 단지 하나의 배지로 삼아 옷깃에 달아 두든지 하지 않는 한. (243)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비뚤어진 길을 택한 이상 비뚤어진 삶은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302)

 

결국 인생이 최고의 분장사인 셈이다. 우리들은 눈을 억지로 치켜올리지 않아도 어느덧 주름이 잡히고 말았다. (328)

 

내 청소년기의 정서는 항상 안정되어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고양되어 갔다. 그러나 지금의 정서적 안정이라는 것은 도대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맹목적 낙관, 무지몽매, 우둔, 무감각 등이 이 정서적 안정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한이 또래의 자신감이 없어지고 만다. (340)

 

어느샌가 비가 오고 있었구나. 빗줄기는 너무나 가늘어 온몸을 감싸 버릴 것 같은 안개비다. 엄마는 자주, 이런 비는 몸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비는 가늘어도 옷을 적시고 말은 적어도 급소를 찌른다." (347)

 

그러나 끝까지 그는 자기를 수정주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를 더욱 존경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나는 그에게서 아득한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모든 생활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십수 년 전, 아니 수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 회의실의 석고상이 영원히 저곳에 영원히 저 자세로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를 감상할 수는 있어도 그와 대화할 수는 없다. (410)

그를 감상할 수는 있어도 그와 대화할 수는 없다니.

 

유랑 생활에서는 사람들이 내 영혼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았지. 닫힌 영혼은 죽은 영혼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 무렵에 내 마음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만 있었더라면 나는 내 가슴을 잘라서라도 열어 보였을 거야. 온몸의 뜨거운 피가 남김없이 흘러 버려도 아까워하지 않았을 거야... (434)

 

머리를 절단당하고서야 살아갈 수 있는가. 만화에 그려진 사람이 정말 생각났다. 어떤 책엔가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실렸었지. 어떤 남자가 머리를 절단당하고서도 자기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형장에서 도망쳐 성문을 나와서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배가 고파서 빙쯔(일종의 구운 빵)를 사러 갔다. 빙쯔 장수는 머리도 없으면서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느냐며 팔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가 계속 졸라서 빙쯔 장수는 할 수 없이 하나를 주었다. 남자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비로소 입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쁜 놈, 입이 없는데 머리가 없다고 속이다니. 머리 따위야 없으면 어때. 입이 없으면 큰일이지. 죽을 수밖에 없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슬픈 듯이 밋밋한 자기의 목을 두드리더니 펄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 우스개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머리보다도 입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리든 상관없지만 입만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453)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만일 누군가에게 단순한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일언지하에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요소 때문이라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인간이 있고,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워하는 인간이 가세하고, 거기에 또 머리가 굳은 인간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복잡해지고 말 것이다. 우연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사나 운명은 묘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462)

 

나는 반농담으로 그 아이에게 말했죠. "너는 엄마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인생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명하고 절실한 인식을 가지길 바란다. 절대로 연애를 해서는 안 돼. 우정이라든가 이성에 의한 감정의 고조는 애정과 관계가 있지만 애정 그 자체는 아니다. 진정한 애정은 인간의 영혼과 더불어 성숙되는 것이다." (487)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나는 이 견해에 쌍수를 들어 찬성합니다. 얻어도 거만해지지 않고 잃어도 우울해지지 않는 경지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득실을 따지는 기분에 스스로가 좌우되지 않도록 할 따름입니다. (489)

 

반응형
LIST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르는 강물처럼 :: 셸리 리드  (0) 2024.07.26
가벼운 고백 :: 김영민  (0) 2024.07.18
일인칭 가난 :: 안온  (0) 2024.06.17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0) 2024.05.20
출발선 뒤의 초조함 :: 박참새 외  (2) 2024.04.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