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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교과서 등 이리저리 마감에 치여 살아보았더니.. 너무 재밌게 읽었던 책.😭
맞아!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심지어 권여선 작가님처럼 대작가님도 글쓰는 것, 마감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하니.. 묘하게 위로가 됐다.

 


마감 근육 :: 김민철

  기본적으로 미래의 나를 신뢰하지 않고, '심신미약 숙취만땅'의 상태일 거라 가정하고 일에 착수한다. 2주 후에 마감이 있다면 2주 전 주말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2주 전이니 실패할 시간은 많다. 다시 쓸 시간도 충분하다. 맘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말이 되든 말든 써놓는다. 중간에 글이 막혀도 애써 그곳을 뚫지 않는다. 그냥 엔터키를 몇 번 눌러서 몇 줄을 비운 다음에 또 생각나는 것을 써둔다. 그러다 보면 매번 유혹이 손을 뻗는다. '좀 썼으니 놀자! 주말인데 놀아도 된다!' 나는 맥없이 굴복한다. 한심하게도 매번. 하지만 이미 '그 일'을 시작했다는 뿌듯함에 마음은 편한다. 이제 시간이 날 때(보통 2~3일이 지나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 글을 완성하면 된다. 이런 패턴으로 나는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12)  

 

  마감 근육은 마감 기한까지 밤을 새워서 달릴 수 있는 말 다리 같은 근육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 근육은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감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 쉽사리 "오늘은 야근하지, 뭐"라고 말하지 않도록 돕는 근육. 어렵사리 잡은 약속을 일 핑계로 취소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면서 할 일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이다. (17)

 

  세상에 이보다 정직한 도미노도 없다. 
  결국 마감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나의 마감이 늦어지면 다음 사람이 마감을 맞추느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 나의 일상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더 고민해보고 싶고, 더 써보고 싶고, 끝까지 붙들고 해보고 싶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지금까지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는 것. 다음 사람을 믿고,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것이 마감의 규칙이다. 
  중요한 지점은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못 던진 대단한 공'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구도 못 쓴 대단한 글, 지금까지 누구도 못 그린 대단한 그림, 지금까지 누구도못 이룬 대단한 목표. 이런 목표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 목표들이 가끔은, 정말 가끔은 다른 차원의 결과물로 데려다주기도 하니까. 다만 그 야망은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그리고 진행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내내 미루기만 하다가 왜 갑자기 마감 직전에 그 야망을 불태우냐는 거다. 왜 불타는 야망으로 남들의 일상도 불태워버리냐는 거다. (20) 

 

  그럼 여기서, 마감을 위한 나의 필살기를 살짝 공개해볼까?

  첫 번째 필살기는 바로, 메모. 
  회사 일을 할 때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부터 생각나는 것들은 무조건 노트 귀퉁이에 써둔다. 단어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느낌일 수도 있다. 그게 아무리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무조건 써둔다. 그러니까 일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작은 영감이 어떤 눈덩이가 되어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중략) 기본적으로 내 기억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단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게 찾아와주신 영감이므로. 

  나의 두 번째 필살기는, 리스트 만들기. 
  (중략) 하지만 내 집중력은 개미 한 마리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취야하고, 일하기 싫다는 마음은 저 하늘을 뚫을 정도로 강력하기만 하니. 착착착착은 거의 불가능한 리듬이다.  하지만 '5분 핸드폰 보고, 1분 일하기'의 패턴일지라도 해나간다. 꾸역꾸역. 리스트의 할 일을 가능한 한 지워나간다. 꾸역꾸역.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끝에 결국 빈 리스트와 엄청난 해방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못 한 일이 있어도 한 일이 훨씬 많을 테니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리스트는 언제나 내게 유용한 틀이다. (25)

 

  한때 나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지, 라며 회상하는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부지런히 그 꿈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그때에 쓰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는 써야 한다. 쓰는 근육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직장인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출퇴근이라는 루틴이 있어서 더 부지런히 쓸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바꾸며 써나가야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답다'라고 느끼니까. 이것이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이나 '작가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씩 점심시간에 혼자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아무리 귀찮아도 가끔씩 청탁을 수락하고 마감을 하는 이유다. (29)

 

 


숨바에서 온 편지 :: 이숙명

  살아남은 자, 혹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자들은 그 맹목성을 감내하는 데도 인이박인 자들이죠. 그들은 자신의 당위를 실천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똑똑한 후배들을 업계에 붙잡아두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다른 삶을 기웃거릴 틈을 안 주는 거죠. 다시 말해, 내일 전쟁이 나건 말건 마감을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바닥에 남는다는 겁니다. (49)  

 

  다시 글을 쓸 자신이 없을 정도로 글 때문에 상처받고도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다는 게 이 직업의 비극입니다. (55)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 권여선

  그때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무엇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그 마감 앞에서 혼자여야 한다는 걸, 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 그것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누구에게 엿보이거나 들켜서도 안 되는 나만의 내밀한 직면이어야 한다는 걸. 
  요즘도 나는 크고 작은 마감을 앞두면 약속을 없애고 관계를 지우고 혼자가 될 준비를 한다. 그 텅 빈 시간을 홀로 관통해 마감으로 간다. 세상과 나 사이에 그때만큼 선명한 경계가 지어지는 적도 없고, 내 능력과 자유와 한계가 그토록 명료해지는 시간도 없다. (80) 

 

  놀라운 일이었다. 늘 과도한 어리광과 예민한 반응만 일삼던 내 못된 심성도 무시무시한 마감의 압박에 의해 저도 모르게 적절히 고삐가 당겨진 듯했다. 속세의 온갖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속박에서 벗어나 나는 마감의 삶이 요구하는 극단적인 단순함 속에서 살았다. 삶이 아무리 발을 걸고 훼방을 놓아도 나는, 죄송합니다만 마감이 있어서요, 마감만 아니면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곧 마감이거든요, 하고 간결하게 대응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89)  

 

  요즘도 소설을 쓰기 힘들 때면 언제나 마지막인 줄 알았던 단편을 마감한 후에 내가 느꼈던 행복과 슬픔을 상기한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그때 그 벼랑의 시기에만 가능했던 내 삶의 가장 강한 정서의 근육을 얻어낸다. (90)  

 

 


마감, 유감, 쾌감 :: 권남희

  에세이 번역을 마감해서 방금 이메일로 보냈다. 옛날에는 이렇게 책 한 권 마감하고 나면 사전을 책꽂이에 꽂고, 작업하던 상을 접어 치웠다. 언제 또 일이 들어올까 하는 착잡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럴 때, 맥주 한잔하고 책 한 권 읽는 것이 나름의 마감 의식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마감 의식 따위 없어졌다. 어제 한 그다음 페이지 번역하듯 새 책을 꺼내서 태연히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전혀 불만은 없다.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하는 일상 속에 '번역하고' 하나 더 들어간 것뿐인걸. 왜 나는 밥을 세 끼씩 먹어야 해! 하고 불평하는 사람 없듯이 나도 종일 번역만 하는 데는 불만이 없다. 다만 숨을 쉴 때마다 "아이고, 내 팔자야"하는 탄식이. (114)  

 

  하지만 삶과 죽음도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초조와 초연은 습자지 한 장 차이. 한껏 초조해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초연해진다. '그래, 하나씩 하자, 차근 차근 하자, 몸은 안 아프잖아'하고 책상에 앉는다. (115)  

 

 


알콩달콩하고픈 마감에 나는 항상 앓고 닳고 :: 강이슬 

  우리 엄마는 걱정과 불안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좋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걱정을 하며 산다고, 건강하고 싶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좋은 물건을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발품을 파는 것처럼 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수고와 부지런함은 실은 실패에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거라고 했다. 쓰는 동안 이유 모를 불안함에 뒷목이 서늘해질 때마다 삶을 더 괜찮은 쪽으로 끌어당겨주는 걱정의 힘을 믿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불안한 거라고, 그러니까 걱정 없이 마음껏 걱정하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123) 

 

  남이 쓴 아름다운 문장들을 두 눈으로 꼭꼭 씹어 소화하듯 읽으며 마음의 균형을 찾다 보면 이제는 써도 괜찮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때 노트북을 펴고 한글파일의 빈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짐한다.
 
  *무엇을 쓰든 실망하지 않기.
  *방금 읽은 책과 스스로의 글을 비교하지 않기.
  * 대단한 문장을 쓰려고 조급해하지 않기.

  언제나 실망하고 비교하고 조급해하므로 다짐씩이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도움이 되는 과정이므로 거르지 않는다. (125) 

 

  배 속이 울렁거릴 때 그러하듯 마음이 울렁거릴 때도 게워내는 과정이 필요한가 보다. 내가 게운 문장들을 천천히 읽을 때면 시끄럽던 속이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둔하고 고요해진다.  뱉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마음에 쌓아뒀더라면 커다란 응어리가 되어 나를 아프고 불편하게 짓눌렀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날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자주 브레이크가 걸린다. 한 문장마다 미련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좋은 한 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미련이 다음 문장을 가로막을 때면 난간 없이 뱅글뱅글 꼬여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든다. 얼마만큼 왔는지도 모르겠고 얼마만큼 더 올라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오르게 되는 계단. 운이 좋으면 계단 끝에서 드디어 만난 옥상 문을 열고 개운한 공기를 맛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이 계단을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올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답답한 벽을 마주하기도 한다. (127)    

 

  인간은 대체로 나약하지만 그중에서도 감정을 소화시키는 기관이 최고로 약해 빠졌다. 행복처럼 순하고 무르고 말랑말랑한 좋은 감정은 아쉬울 정로도 빠르게 잘도 소화시키면서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감정을 그러질 못한다. 가슴 언저리에 얹힌다. 굳은 감정에 체한다. 뾰족한 바늘로 손끝을 찔러봤자 묵은 체기는 내려가지 않는다. 덜 소화된 그 감정을 소처럼 되새김질하며 곱씹는다. 그 행위가 어쩌면 후회일 것이다. (141)  

 

 


마감이라는 캐릭터 :: 임진아

  "할 만큼 했다"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끝내 "우리 다 했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라고 말해버렸다. 오늘 다 하려고 출근한 거 아니잖아. (148)

 

  쌓여 있었지만 끝내 마무리한 일들은 결국 나를 쉬게 했고, 예전에 모르던 내가 되었다. 매일의 무거움이 다음의 나를 만드는 장아찌 같은 삶을 오늘도 지속 중이다. (150)

 

  나는 무언가 매일 해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걸 꼭 나에게, 또 다수의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는 마음이 슬슬 생활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마음은 작업하는 마음에 동력이 되어준다. 곧 선보이게 될 일이지만, 그렇게 큰 프로젝트도 아니지만, 작업 내내 비밀로 품으면서 남몰래 이벤트를 준비하듯이 일을 가꾼다. 그러면 마술처럼 조금 신나는 기분이 든다. (150)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할 거야'라는 농담도 점차 나에게 던지지 않게 되었다. 잠깐, 하면서 손을 내밀고 '그 일이라는 거... 지금 하면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웃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곤 한다. 물론 충분한 쉼으로 힘이 채워진 상태라면 더욱 쉽게 일어날 수 있다. (172) 

 

 


어느 5년 차 출판편집자의 '마강 증후군' :: 이영미 

  휴, 저자랑 통화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네. 사람 쪼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 줄 아시죠? (18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 저자만 힘든 줄 알았지, 이건 또 몰랐지ㅠㅠㅠㅠㅠㅠ 삶 앞에서 항상 배웁니다ㅠㅠㅠㅠㅜㅠ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세희

   소설 쓰기에서 필요한 끈기는, 좀 아닌 것 같아도 밀고 나가는 힘이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며 계속 궁리하고 뒤엎고 다시 쓰는 끈기라는 게 지금까지 내가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생각이다. 일상생활에서 매사 통제와 관리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점이 어렵고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202) 

 

  연재는 9월 첫 주까지 이어졌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다음 마감할 원고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있던 나날이었다. 그건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싸여 있는 것과 비슷했다. 길을 걷고 사람들과 함께 벚꽃을 보며 웃을 때도 나는 그 막 속에, 정적 안에 있었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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