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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치욕과 다르다. 부끄러움은 사람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돌아보게 함으로써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발판이 되도록 한다. 그러나 치욕은 사람의 부족한 점을 남들이 억지로 들춰냄으로써 도리어 감추고 외면하게 만든다. (38)
한문 교사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특히 냉소와 부정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서 앎을 확장하는 삶만큼이나, 삶을 확장하는 앎도 중요함을 어떻게 일깨워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고전 속에 담긴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팔 걷어붙이고 잡초 뽑고 씨 뿌리며 우직하게 밭을 가꾸면 된다. 병충해를 두려워하며 씨 뿌리기를 주저하는 농부는 없잖은가? 힘들 때 서로 부축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절망적일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일, 아이들의 가슴에 긍정의 낟알 하나 심어주는 일, 작은 불씨에 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주는 일이 한문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62)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곱씹으며 준서에게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걸어가는 거기까지를 목표로 삼았던 동하 같은 선배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울러 멀리 나부끼는 깃발을 끝까지 응시하며 한 발한 발을 신중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자신이 직접 깃발을 들고 '내가 이 깃발을 들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설레어하며 경쾌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충분히 본받을 가치가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74)
그러던 어느 날 한시 수업 때 이양연의 <눈 쌓인 들판에서>를 다루게 되었다.
눈 쌓인 들판에서
눈을 뚫고 들판을 걸어갈 적에
모른지기 어지러이 걸어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 내가 걸은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97)
저는 죽음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냉엄한 사실 덕분에 죽음이 갖는 역설적인 따뜻함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조화는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조화의 향기를 맡지 않잖아요. 죽음이 특수하고 예외적이었다면 세상에 존귀함 같은 건 없었을 거예요. 살아 있는 생명이라서 소중한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기에, 너무나 소중한 것 같아요. (127)
여느 때처럼 공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뛰놀고 있다. 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던 노래라 제자 중 몇몇은 덩달아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네." 그런데 공자께선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저노래를 들으시곤 잠시 발걸음을 멈추신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가. 공자께서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신다.
"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없니?"
제자들은 그제야 지금껏 생각 없이 흥얼거렸던 노랫말을 곱씹어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 무슨 느낄만한 게 있겠는가?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더 하신다.
"저 노래 속에 삶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단다. 어리다고, 잘 모른다고, 유치하다고 무시하는 저 아이들이야말로 시대가 목구멍으로 삼키는 말들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내뱉는 존재임을 명심하렴."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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