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저녁은 바람이 무지 시원해서, 셋이서 노들섬에 앉아 있자니 행복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는 셋이서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잤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와주어, 여전히 건강해주어 고마워.
이건 어제 저녁. 지형이랑 이것 저것 상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여유로운 경제적 상황과 생각보다 빠듯한 시간적 상황이 병존했다. 뭔가 뚱땅뚱땅 걸음마는 하고 있는데, 이게 맞나? 자꾸 두리번 하게 되는 아이의 모습 같은 우리 둘이었다.
오늘은 지형이랑 007을 보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아무래도 20일이 깨져 불안한 것을 어쩔 수가 없어, 이르게 귀가했다. 집에 와 정아랑 쉑쉑버거를 배달시켜 먹고(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보고 포장해올 걸),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영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라샘이 전화주셔서 문학과 기독교 줌 강의를 들었다. 빨래를 널며 이것 저것 정리하며 듣다가, 질의 응답 시간에 내 마음이 살폿 내려앉았다. 문학의 존재 이유와 구원의 의미, 그리고 원죄와 인간의 경향성 등등. 목회자라는 권위 하나 없이 청명한 표정과 말투로 진솔하게 답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놓였다? 기뻤다? 급기야는 청파교회가 궁금해서 검색까지 했으니, 말 다 한 셈.
지금은 싸이클을 타면서 책을 읽는 중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부산할 때는 운동만한 것이 없다는 것과 ‘하면 되는’ 치유의 이 무시무시한 단순함. 꽤 단순하게 살아보려 노력한 지난 사흘이었다.
냉장고를 맞고, 청소를 하고, 내용물을 다시 넣고, 갈비탕을 끓이고, 햇반을 데우고, 김치를 썰고, 설거지를 하고, 치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팥차를 우리고, 귤을 꺼내오
면서 독서모임을 해서 인가. 마음이 바빴었나보다.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뇌를 사용한 만큼의 반의 반도 몸을 안 움직였을 게다. 그래서 더 빨리 지치고 마음이 분주했겠지. 하루가 지난 오늘이 되니 이제야 안다.
지난 일요일에 무지 무지 고민했던 테니스를 가(버리)고, 연남동-연희동 일대를 걸으며 빵도 사고 볕도 쬐고 바람도 쐬었던 날이 떠오른다. 그때 얼마나 상쾌하고 가뿐했는지.
왜 갑자기 그 날이 떠올랐을까? 그리고 토요일에 왕보, 정아랑 갔던 안산 산책도 떠오른다. 아 나는 안산이 너무 좋아.
내 안에 말들이 많아서인지 요즘은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바다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바람이 시원해지는 게 너무 좋지만, 해가 빨리 지고 있다는 건 아쉽다. 안산에 또 가야지. 오늘은 걸어서 집에 가야겠다.
아참. 그리고 어제는 ㅂ부장님이 책을 건네주셨다.
지난 주말에 꿈에 김연숙 교수님이 나왔다. (나와주신 건가? 내가 나오시게 한 건가? 애매하니 중간 수준의 나왔다로.) 2017년에 서울역에서 우연히 뵀을 때처럼, 아주 우연히 어느 카페(호텔 라운지 같은)에서 뵀다. 언제나처럼 반가워하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갑자기 교수님의 꿈을 꾸고서는 깨고 나서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즈음에야 조교수님이 사범대학 학장이 된 게 다시 떠올랐고, 사범대학 홈페이지를 둘러 보다 다시 김교수님이 떠오른 것이다.
2018년이겠구나. 전화하라고 몇 번을 재촉하셨고, 또 동문회에서도 몇 번을 주지하셨다. “공부 계속 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