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를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지 푸욱 쉰 오늘. 점심먹고는 남편 옆에서 쿨.. 자고는, 저녁 먹자고 깨운 목소리에 일어나 냠냠 먹기만 했다.
요즘 바쁘기도 한갓지기도 했는데, 그와중에 생각나는 사람과 말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방을 썼던 통계학과 4학년 언니가 그랬다. 휴대폰을 보면서 밥을 먹으니까 제대로 식사하는 것 같지가 않다고, 그후로 그녀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고 밥을 먹으러 갔다.
아마 요며칠(?) 아니면 지난 1학기 동안 내 생활이 그랬지 않을까. 무언가를 잔뜩 하는데 달리는 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처럼 휙, 휙, 해치운 건 아닐까. 물론 모든 일에 공을 들여야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문득 그 언니와 언니의 말이 떠올랐었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 중 한 사람의 새 포스팅을 보다가 그를 왜 좋아하는 지 어슴푸레 알 것 같았다. 하루와 시간에 정성을 들이는 점. 대단한 게 아니어도 일상을 윤이나게 할 줄 알았다, 그녀는. 그래서 직접 가까이에서 함께하진 못해도 좋았다. 그의 일상을 엿보는 것 뿐이지만 왠지 나마저 아늑해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테다.
자기 전에 책을 읽다가, 금요일에 갈 아리아 예약을 하다가, 그녀의 블로그를 보다가, 씀.
오랜만에 종로, 광화문, 종각. 이 동네만의 스러움이 있다. 아마도 “서울”이라하면 내가 평생 떠올릴 이미지 같은 무언가. 오랜만에 보는 북악산과 길 그리고 상점들. 열심히 쏘다녔던 그때의 마음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막연했던 어느 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지 않았는데도 그때는 참 많이 낯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때에서 몇 발자국 걸어왔다는 게 실감이나서 더 아득한 기분. 그 시절을 지나오면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 어쩔 줄 몰랐던 계절들.
30분, 달콤한 조퇴를 하고 탄 KTX. 남편의 멤버십으로 산 도넛과 커피. 조용한 객실과 녹음이 짙은 창밖은, 이번 연휴에 집에서 뒹굴 뒹굴 보낼 내 시간들을 기대하게 한다. 지형은 두고 집에 가는 길, 다행이다. 지형과 결혼해서. 이 시간도 이 생각도 전부 인정받으며 지내고 있으니까. 나는 더할나위 없이 충만하다. 설언니가 선물로 준 책을 다 읽고는, 다급히 도서실에 가 책을 빌려왔다. 이미 책이 있지만 왠지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윤이형” 단 세 글자만 보고 신청했던 책이 서가에 들어왔고, 여러 권 빌린 책 중 그 책을 가장 먼저 폈다. 봄부장님이 내게 선물해준 취향이기도 한 윤이형.
조금이라도 책을 읽다 자면 보다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것 같다. 기분 탓일지라도 가뿐한 아침은 하루 종일 컨디션을 꽤 좌우해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근래 컨텐츠 소비가 늘었다. 책이든 영화든 유튜브든 가시적으로 느는 게 보일 만큼.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새 1학기에 적응한 건지, 종강이 다가와서인지… 아무튼 나는 내일부터 주중 시간표를 짤 계획이다. 오늘 다 읽은 책에서, 내가 수업을 하는 아주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수업 시간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어반복 같은 말이 주는 의미가 굉장했는데,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