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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몇년 전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면 마치 낯선 사람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땅과 똑같은 갈색을 띠고, 땅처럼 수동적이던 사람. 부모도 거의 옛날의 자신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는 부모에게 연민이 섞인 감정과 흐릿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25)

이전의 내 모습이 낯설어졌더니 부모도 낯설어진다는 것.

 

그가 느리게 말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52)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53)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묻는 일이 힘든거겠지.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살아 있는 가슴속에서 언뜻 보았던 씁쓸함이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점점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7)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천장이 높은 전시관들을 돌아다녔다. 그림에 반사된 빛이 풍요롭고 은은했다. 그 조용함, 그 따스함, 오래된 그림들과 조각상들 덕분에 시간을 초월한 듯한 그 분위기 속에서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섬세한 키다리 아가씨를 향해 사랑이 마구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조용한 열정은 따스했으며, 관능적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사방에 걸린 그림에서 솟아나온 색깔들과 같았다. (98)

종종 지형이랑 주말을 보낼 때 드는 생각들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며 비슷하게 풍요롭고 비슷하게 평온해지는구나.

 

핀치가 이 가무잡잡하고 예쁜 아가씨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으며 그녀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에게 홀린 듯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스토너에게는 부럽다 못해 거의 충격이었다. (109)

 

그 후 두 달은 윌리엄과 이디스가 유일하게 열정에 잠긴 기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스토너는 서로의 몸을 끌어당기는 그 힘이 사랑과는 거의 관계가 없음을 금방 깨달았다. 두 사람은 강렬하면서도 냉정하고 단호하게 몸을 겹친 뒤 서로에게서 떨어졌다가 다시 몸을 겹쳤다. (120)

그건 별개일 수도 있고, 동일할 수도 있지. 아마 스토너도 이후에 캐서린을 만나고서는 알게 되었겠지.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141)

관련 책.
<덕후와 철학자들>, 차민주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구별 짓기>, 피에르 부르디외

관련 링크.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8094.html

 

취향을 가진다는 것

 

h21.hani.co.kr

https://mk.co.kr/news/culture/view/2012/10/642887/

 

[허연의 명저 산책]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인간은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대량소비사회 분석한 불후의 명저

www.mk.co.kr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스토너의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어머니도 이미 죽어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일부가 남편과 함께 저 상자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148)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154)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기선택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혼자인 나로서 여전히 부딪히는 한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훌륭한 교사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입생들에게 처음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허둥거리던 그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영문학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강의실에서 전달하는 내용 사이에 커다란 틈이 있음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그때는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 그 틈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가장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감정들이 강의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생기가 넘치던 것들이 그가 하는 말 속에서 시들어버렸고, 그에게 가장 감동을 주었던 것들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 때문에 너무 고민한 나머지 이제는 그 고민이 습관이 되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그의 일부가 되었을 정도였다. (156)

교사인 우리가 늘 갖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닿고 싶은 지점.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158)

 

그는 이디스의 새로운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활동은 그에게 아주 조금 성가실 뿐이었고,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165)

반쯤은 이해할 수 있고 반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필사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에게 책임이 있는 일인가?
가령 스토너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스토는 최선을 다한 것 처럼 보이는데.
아닌가,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한 건가.
그렇다면 결국 이 부분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부분이 되나.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든 상대에 대해서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한 균형이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166)

 

중대한 의미가 서서히 다가왔기 때문에 그는 여러 주가 지난 뒤에야 이디스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는 놀라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디스가 워낙 영리하고 노련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을 합리적인 근거를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그날 밤 거의 난폭하게 보일 정도로 갑작스레 그의 서재에 들이닥친 일을 되돌아보니 마치 기습공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이디스는 그보다 간접적이고,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전략을 사용했다. 사랑과 염려라는 가면을 쓴 전략이었으므로, 그는 그 앞에서 무기력했다. (170)

온정적 간섭주의가 떠올랐다.

 

마침내 그는 밤에 연구실로 나오는 것이 자신에게 일종의 피난이지 구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약간의 위안과 기쁨, 심지어 이렇다 할 목적이 없는 공부에서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의 흔적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177)

 

워커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고, 피부가 부풀어 올라서 두꺼운 안경 뒤의 눈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스토너 교수!" 그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난 이대로 가만히 있찌 않아. 두고 봐,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아!"
스토너는 아무런 표정 없이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복도로 나갔다. 맨 시멘트 바닥에서 질질 끌리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모든 감정이 빠져나가고, 그저 자신이 아주 나이가 많고 피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뿐이었다. (206)

아이들을 혼내면 늘상 이렇게 된다.
혼이 난 건 아이인데, 지치는 것도 내가 된다(물론 아이도 그렇겠지).

그래서 '혼(魂)을 낸다'고 하나보다. 나의 혼을 내어 다그치는 일이라서

와 소름. 방금 사전을 찾아보니 '혼내다'가 정말 '혼(魂)내다'였다.

 

고든 핀치와 윌리엄 스토너 사이의 우정은 그런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도달하는 단계, 즉 편안하고 깊으며, 남들은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친밀해서 거의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208)

왕보랑 함께 있을 때 그랬는데, 그립당.
그래서 참지 않고 이 마음을 카톡으로 전했다. ㅎㅎ

 

로맥스가 열정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자네를 용서할 수 없네."
스토너는 딱딱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건 용서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닐세. 그저 우리가 학생들과 우리 학과의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서로를 대하면 되는 문제야." (246)

작년의 그녀가 떠오른다.
자기 감정을 절대 숨기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배설해야 직성이 풀리곤 했던..
로맥스를 보면서도 답답했지만, 그녀 생각을 떠올리니 숨이 막히는 느낌.

가정과 사회에서의 자아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할텐데.
근데 그 분리가 온당한 걸까? 아니면 통합이 온당한 걸까?

혹은 더 나이브하게, 로맥스가 살기 편할까. 스토너가 살기 편할까. ㅋㅋㅋ

 

그가 그레이스를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짧은 아침식사 시간뿐이었다. 그나마도 아이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디스가 식탁 위으 접시들을 개수대로 가져가 물에 담그는 몇 분 동안이 고작이었다. 그는 아이의 몸이 점점 길쭉하게 자라고, 팔다리가 서투르지만 우아하게 변하고, 차분한 눈과 주의 깊은 얼굴에서 지성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때로는 딸과의 사이에 아직 친밀함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감히 그 친밀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249)

작년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친할 수도 없었던 ㅂ부장님과 내가 떠오른다. 내 쪽에서의 관점일 수 있겠지만.. ㅎ;;

 

결국 그는 제시 홀의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런 저런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공부의 방향을 미리 정해놓을 필요도 없이 자유로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는 순전히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가 수년 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따.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50)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263)

아 충격적이었다.
이 짧은 문장이 정말 충격이었다.
그 주체가 스토너여서도 그렇고, 본인이 그렇게 받아들인 점 또한 충격이었다.

 

나이 마흔셋이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0)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272)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274)

 

두 사람은 빛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자신들의 좋은 점들을 드러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세상, 변화과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는 그 세상이 비현실적인 거짓 세상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삶은 이 두 세계에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다. 이렇게 분열된 삶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293)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두 사람이 사는 세상의 하늘이었던 나지막하고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던져버린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떠나기로 한다면... 당신은 나랑 함께 가주겠지, 그렇지 않소?"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소?"
"네, 알아요."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스토너는 자신에게 설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우리가 했던 모든 일과 우리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오. 내가 교단에 설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일이고, 당신은... 당신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 우리 둘 다 지금과는 다른 사람,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번 일에서, 적어도 자신의 모습은 지킬 수 있었소. 지금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니까."
"그래요." 캐서린이 말했다.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날 이 자리에 붙들어둔 것은 이디스도 아니고 심지어 그레이스도 아니오. 반드시 그레이스를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니지. 당신이나 내가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추문 때문도 아니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301)

 

부드러운 애정과 조용한 생활을 갈망하는 본성이 무관심과 무정함과 소음을 먹고 자라야 했다. 그런데 그 본성은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그 이상하고 유해한 환경 속에서도 사남움을 얻지 못해서 자신에게 맞서는 잔혹한 세력과 싸워 물리치지 못하고 그저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작게 웅크린 채 고독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330)

 

스토너가 캐서린 드리스콜의 소식을 들은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1949년 초봄에 동부의 대형 대학 출판부에서 보낸 광고전단이 그에게 날아왔다. 거기에 캐서린의 책이 출판된다는 소식과 함께 그녀에 대한 설명이 몇 마디 적혀 있었다. 그녀는 메사추세츠의 훌륭한 교양학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며, 미혼이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그 책을 구해 보았다. 그 책을 속에 쥐자 손가락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너무 떨려서 책을 펼치기도 힘들었다. 맨 앞의 몇 장을 넘기자 헌사가 보였다. "W.S.에게."
눈 앞이 흐려졌다. 그는 한참 동안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그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 단번에 끝까지 읽었다. (349)

나 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지난 주 주말에, 지형이랑 같이 읽다가 지형이도 읽고 싶다기에 선물해준 책이기도 한 <스토너>.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는 식탁에 앉아 한참 이야기도 나눴다.
아마 이야기를 하며 치킨을 먹었던가?
그리고 다음 날이면 팬텀싱어 콘서트에도 가야 했고.
그 모든 시간이 환하고 보드라웠다. 마치 옮겨 적은대로 스토너와 이디스가 미술관에 간 때처럼.

지극히 우리와 닮고 우리의 이야기여서 이 자체가 제 기능인 <스토너>.

오늘 오후에 독서모임인데,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고 오갈지 기쁘게 기대하는 중.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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