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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니니, 그만 울음을 그쳐."
와니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더는 울 기운도 없었다. 잠자코 엎드린 채 엄마들의 말을 들었다.
"이제 그만 울어야지.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무리를 떠나는 순간 어른이 된 거야. 혼자서 살아가야 하니 어른인 거고. 와니니, 넌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어. 그뿐이야." (55)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고, 그뿐이라는 엄마들의 말이 내게도 위로가 됐다.
그래 그뿐이지.

 

"아무튼 저 아이는 지금 사자에게 있어 가장 무거운 벌을 받고 있어."
벌이라는 말에 소년과 소녀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소년이 와니니에게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가장 무거운 벌이 뭔데요?"
"혼자가 되는 벌." (61)

 

물러서서는 안 된다. 겁을 먹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암사자가 사는 법이다. (111)

 

"가자."
와니니가 말했다.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이야기였다. 코끼리도 그렇게 말했다면, 해 볼 만했다.
사자는 초원의 왕이다.
"가자! 일단 가 보자! 새들과 코끼리가 하는 걸 사자가 못하겠어? 크하항!" (151)

일단 해 보자!
가 보자!

 

와니니는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이 가빠 헐떡거렸다. 질서 있게 대열을 이룬 흰개미 떼가 와니니의 코앞을 지나 낭떠러지로 올라갔다.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비록 와니니 눈곱만큼씩밖에 가지 못하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흰개미들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낭떠러지를 넘는 일에 대해서라면 사자는 흰개미만도 못했다. (170)

내가 교만해질 때면 떠올리는 얼굴들이 있다.
흰개미처럼 눈곱만큼씩밖에 가지 못하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의 얼굴.

이번 여름에도 아주 많이, 자주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살기 좋은 우기는 짝짓기 철이기도 하다. 수컷들은 암컷들을 유혹하려고 춤추고 노래하며 서로 힘을 겨루었다. 그렇다고 험하게 다투지는 않았다. 사랑은 모두를 너그럽게 만드는 법이다. (176)

지지난 주와 지난 주의 ㅅㅎ이를 보아도 그렇다.
한 번 더 품어주면 나는 그만큼 더 넓어지고, 아이는 그만큼 더 안긴다.

 

와니니와 친구들은 이미 한 무리였다. 힘들고 지칠 때 서로 돕는 친구들이었다. (187)

 

마디바가 와니니를 찬찬히 뜯어 보며 말을 이었다.
"여전히 몸집은 작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눈빛이 용맹하구나. 무리를 이끄는 암사자의 눈을 가졌어. 쓸모없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뜻밖이구나. 많이 달라졌다. 잘 자랐어."
쓸모없는 아이!
와니니는 그 말에 화가 치밀었다. 쫓겨나던 밤이 떠올랐다. 은가레 강 가에 혼자 숨어 있던 말라이카의 초라한 꼴이 떠올랐다.
그건 옳지 않은 말이었다. 어리석은 말이기도 했다. 마디바의 무리를 떠난 뒤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초원 어디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었다. 하찮은 사냥감, 바닥을 드러낸 웅덩이, 썩은 나뭇등걸, 역겨운 풀, 다치고 지친 떠돌이 사자들... 마디바가 쓸모없다고 여길 그 모든 것들이 지금껏 와니니를 살려 주고 지켜 주고 길러 주었다.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와니니는 더 이상 마디바가 두렵지 않았다. (195)

장자의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이 떠올랐다.

가치의 위계가 바뀐 순간, 그 어떤 기존의 관념과 체계들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자유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 소요유처럼.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두 번 다시 마디바의 영토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마디바의 아이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와니니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이가 아니었다. 와니니는 와니니였다. (201)

그 자신이 되는 일.

 

"어허, 생각해 보아라. 사실 코끼리가 사자보다 거대하지. 코뿔소가 더 힘이 세고, 하마는 사자보다 훨씬 포악해. 그런데도 왜 사자를 초원의 왕이라 하는 줄 아느냐?"
와니니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당연하게 여겼을 뿐,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자는 명예를 위해 싸우는 족속이기 때문이야. 사자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족속이야. 그래서 사자를 초원의 왕이라고들 하는 거야." (208)

미셸 오바마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문장만은 명료하게 남아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우리의 진짜 힘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품위에서 나온다.

 

세상에는 동물의 종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틀린 삶은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저마다 저답게 열심히 살고 있다. 얼룩말은 얼룩말답게, 이구아나는 이구아나답게, 흰개미는 흰개미답게, 플랑크톤은 플랑크톤답게 그리고 사람은 사람답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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