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란 '학생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그래도 학생들과 있는 게 즐겁다'라는 마음음 사이의 계단을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생전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고 뻥을 쳐버린다. 앞으로 내 편이 되어달라는 무언의 구조 요청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최선을 다해 비록 뻥이지만 사랑의 공간에 삶을 하루씩 더해간다. (5)
아마 나도 태어나서 제일 사랑한다고 많이 말하고, 애정 듬뿍 담은 눈빛을 보낸 사람이 아이들일 것이다. (언제나 진심은 아닐지라도)
나는 학교를 군도(群島)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공동체는 얼핏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등면 완벽한 섬이 된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섬에 교사와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교사가 느끼는 외로움과 공포는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이 겪는 것과 같다.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은 교실을 성장과 변화가 멈춘 갈라파고스제도로 만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흩어진 섬과 섬을 연결하면 된다. 교사들끼리 서로를 연결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교실 속 아픔과 외로움을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눈앞에 우리를 충분히 보듬고 격려해줄 눈망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르치는 건 교사, 배우는 건 학생'이라는 이분법의 칸막이를 걷어내야 한다. (7)
교사는 교실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학생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확신에 가까워졌다. 교사들은 살면서 쉽게 받지 못할 격려와 위로를 학생들로부터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면 의도 없는 순수한 웃음을 지어주고 '엄지'를 사정없이 내준다. 교실에서 행복하다며, 보호자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나에게는 구겨진 손 편지를 건네기도 한다. 가끔은 어이없는 사고를 치며 웃지 못할 사건을 만들지만, 끝끝내 대견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아름다운 작품을 꽃피워낸 예술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교사로서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성장의 선순환이다. (8)
모두 나였다. 학교와 교사에 상처받던 나의 파편이 모두 교실에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은' '자존감을 문제 행동으로 회복하려는' '자신의 문제를 경청해줄 사람을 찾는' 수많은 내가 교사가 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18)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가 원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실에 다양한 인종이 있고,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점을 학생들이 찾아내길 바랐다.
"여러분은 그걸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했군요. 인종이 다르고, 장애가 있어도 특이하다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니까요"라고 학생들의 편견에 일침을 놓고 싶었다. 학생들이 "아!" 하며 감동의 도가니가 되는 상상. 그런데 학생들은 마치 짠 듯 '특이한 점'만 피해 갔다. 오히려 내가 답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기 잘 보세요. 인종이 다르죠? 그리고 신체적 특징이 다르잖아요."
이 말이 턱까지 차오른 순간, 갑자기 내 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여기서 가장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누구인거지?' (32)
정말 종종 있는 경우다.
특히 나의 교과의 경우, 더 그렇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을 볼 때 나는 정말 크게 자란다.
그리고 매번 이야기한다. 너희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졸업생은 더욱이).
돌이켜 보면 당시 나는 '감히 나에게'를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반에 내 손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아'는 없어야 한다고 여겼다. 기다려주지 않았고, 문제 너머의 인간을 탐구하지 않았다. 진짜 악마는 나였다. (43)
뜨끔, 했다.
그리고 이 비합리적인 생각 덕분에 종종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웃기지 정말. 제 스스로 비합리적인 생각을 잘 형성하고 지켜와놓곤 그것에 걸려 넘어져버린다.
자가당착,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걱정돼서 그래"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안다. 나를 싫어하는 감정, 귀찮아하는 감정을 말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믿고 기댈 만한 마지막 어른이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참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 생각 끝에 돌이켜 보면 지난날 그 아이를 돌보고 배려해주려는 마음과 행동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한 게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이 흐뭇하고 뿌듯했던 건 아닐까? 그저 '참교사 놀이'에 심취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51)
인생을 살아갈수록 삶의 의외성이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라는 뜻이겠지만, 그건 좀 지루하다. 언제나 의외성으로 가득한 어린이들과의 생활이 내 삶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준다. 그게 참 좋다. 이걸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기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 실험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다치지 말자, 얘들아! 제발 부탁이다. (71)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학생이 있다면, 열심히 설득해서 교사가 되게 하라"라는 말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교사들은 자신이 가입하지도 않은 적금을 뜻하지 않게 받는 날이 있다. (75)
내가 가입하지 않은 적금을 받는 것도 놀랍지만, 만기도 알 수 없어 놀라운 일. ㅋㅋㅋㅋㅋㅋ
"왜 해야 돼요?"
"꼭 해야 돼요?"
아마 교사들이 들었을 때 가장 속상하고 불편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거짓말 조금 보태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거의 100퍼센트 뭉클한 억울함이 가슴에서 목까지 질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질문의 뉘앙스가 무척 중요한데, 논쟁적인 질문이 아니라 그냥 첫 반응부터 하기 싫은 마음을 담아 하는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9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뭉클한 억울함이 가슴에서 목까지 질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빵터졌네.
"지금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돼요. 하고 싶을 때 하세요.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은 선생님을 속상하게 해요. 만일 과제가 어려워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으면 좋겠고, 지금 할 기분이 아니라면 '천천히 해도 될까요?'라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나름 고민하면서 준비한 것이거든요. 왠지 '그냥 무조건 하기 싫어!'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선생님이 부탁한 것처럼 말해준다면 우리 관계는 더 좋아질 거예요." (102)
학생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보따리, 문화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게 부족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은 재미없어' '우리를 잘 몰라' '늙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세대 차이가 나더라도 따듯한 마음과 포용하는 자세로 학생들을 대하면 언제나 소통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지금'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기회를 얻으면 출발선이 달라진다. 마음을 여는 속도도 달라진다.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나이 차이가 얼만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파고든다.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치는 모습도 짠하게 느껴진다. (105)
출발선이 달라진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혹시 학교 선생님이세요?"
순간 흠칫하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은 학교 외 장소에서 본인이 교사라는 것을 밝히기를 꺼린다. 그 순간부터 성직자의 도덕적 잣대와 공무원 철밥통에 대한 시기를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묘한 보수적 태도와 눈길은 정말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11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국정원 직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일화는 담임 학생의 학부모님이었기에 알아본 것으로 연결되지만, 이 부분을 읽고 한참을 웃었다. ㅋㅋㅋㅋㅋ
나만 그런 게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 번의 상담과 사과로 해결하려는 교사의 욕심과 자존심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당장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학생들로 하여금 '상담했으니까' '사과했으니까'처럼 자신이 일으킨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없이 학교와 교사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해결은커녕 더 큰 문제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심각한 폭력을 접하고, 그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만나면 세상에 이렇게 못된 아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다음 날, 또 그다음 날 만나보면 그 순간을 참지 못한 어린이, 청소년이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면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그 뒤에 가려진 인간을 이해하는 노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물론 모든 문제를 이렇게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안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건지,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는지 말이다. (130)
정말 나랑 생각이 비슷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궁금해졌다. 김연민 선생님이.
먼저 학생 개인에 집중해보자. 학생들은 바쁘고 힘을다. 우리는 학생들이 뭐가 바쁘겠냐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살아 보니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도 한다. 직장인도 주말에는 쉰다. 그래도 월요일이 싫고, 야근이 싫고, 프로젝트와 과업 달성에 부담을 느낀다. 학생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래도 돈 버니까 좋지 않아요?"
누구나 자신의 짐을 가장 무겁게 느낀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133)
아이쿠.
아이들에게 공부가 제일 쉽다-류의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 대목.
아이들의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지 말아야지.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선생님도, 학생들도 다 나 싫어 한단 말이야. 학교 가기 싫어."
"그래도 가야지. 네가 교장인데." (143)
방심하고 있다가 빵터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교장샘 생각이 났어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설유치원 근무 시 아기를 가졌을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유치원 아이들이 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매일, 매순간 저의 기분을 물어보고 행복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바쁜 와중에 아이들이 자꾸 물어보니 그저 귀찮고 대충 대답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아이들만큼 학교에서 임신한 저를 챙겨주고 위해주었던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놀잇감 정리를 하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제가 정리하지 않도록 그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말해주던 아이, 수업 중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조용히 하라고 해주던 아이, 제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게 힘들까봐 하루에도 열댓 개의 쓰레기를 저 대신 주워주었던 아이. 덕분에 임신 기간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행복해요?"
"응, 행복해~ 근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걸까?"
"왜냐하면 선생님이 행복해야 배 속에 아기도 똑같이 행복하니까요! 선생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148)
아 거참.
다시 블로그에 옮기면서도 울컥했네.
이렇게나 예쁜 마음을 정말 나도 매일 받고 있으니, 또 이런 직업이 있을까.
보수만이 아닌 사랑도 받는 귀한 직업.
한 사람을 원망하고 훈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를 그렇게 만든 규칙과 환경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피곤한 일이니, 그저 학생 '한 명'만 복종시키면 될 일이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못했다. (165)
ㅜㅜㅜㅜㅜㅜㅜ 나도 불쑥 불쑥 생기는 마음.
어느 하나를 본보기로 뒤지게 혼내고 나면, 좀 편하니까. 알아서들 눈치를 보니까.
그치만 정말 비겁한 짓이다. 안 그러려고 정말 노력하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
그래도, 정말 어렵고 귀찮아도,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
이런 아이들을 자주 본다.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인지 의심하며 흔들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버티던 울타리도 계속된 흔들림에 결국 주저앉고 맍다. 그러면 아이는 본인이 힘차게 흔들던 행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역시 어른들은 똑같아.' (183)
아 정말로 인내 인내 또 인내의 시험이다.
글로 읽어도 흔들리는 울타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다. 전해진다.
아무리 흔들어대도 끄떡않는 울타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도 필요하지만 의연함도 필요하다.
꽤 충격적인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꽤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도 의연하게, 아주 의연하게 내가 어른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품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
인내를 위해서는 항상 내가 수고로워야 할테고, 의연함을 위해서는 나의 경험과 운신의 폭을 넓혀야겠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혹은 과제일테다.
갑작스레 친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하는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아무런 동기가 없을 때다.
"왜 그랬어? 도대체 왜 그랬냐고?"
그냥 재미로, 혹은 심심해서 그랬다는 말이나 표정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본인도 왜 그랬는지 설명을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답답함까지 더해져 화가 폭발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오랜 경험으로 이런 질문은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른 질문을 했다.
"오늘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요?" (중략)
만약 첫 질문부터 "왜 그랬냐"고 물었다면 부모에게 느낀 속상한 감정에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을 차근히 정리해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린이는 없다. 머릿속으로는 감정과 사건을 뒤죽박죽 떠올리겠지만, 그냥 입을 굳게 다물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중략)
'화낼 일이 아니라 도와줘야 할 일이네.'
질문의 힘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199)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귀하게 얻은 인사이트.
왜냐면 내가 올해에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불같이 화를 내고 기어이 아이의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봤기 때문.
흐..
그 후로도 또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이 책 덕분에, 김연민 선생님 덕분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정말로 화낼 일이 아니라 도와줘야 할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빠르게 바뀐 나의 행동을 꼽자면, 아이들의 기분을 종종 묻는 것.
아이 또한 내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고 또 그런 기대도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기분을 물어봐주는 게 좋나보다.
그렇겠지. 나 또한 누군가가 내 기분을 세심히 살펴주고 물어봐주면 고맙고 애정을 느끼니까.
이 책을 읽고는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현재의 내 직업에 대한 패러다임? ㅎㅎㅎ (너무 거창한가)
그동안은 지나가는 일 중 하나라고 여겼고, 알바보다는 나은 일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내가 얼마나 이 직업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학교를 사랑하는지 일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히 말한다.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고.
흔한 요즘 밈처럼, 나 이 직업 사랑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 자리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해야지. 자랑도 하고!
(그러고보니, 지난 목요일 2차 독서 모임에서 확언하기도 했었다. 이 직업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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