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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능력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쳐내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세상의 치약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뭘까요? 저는 그것이, '평소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날들을 얼마나 풍부하고, 충만라게 보내느냐가 우리를 치약이 될 운명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평소의 관찰. 평소의 독서. 평소의 음악. 평소의 여가. 틈틈이 나를 채울 수 있다면, 생각의 재료들을 쌓아둘 수 있다면, 고통스럽게 내 밑바닥을 보는 일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보석들이 특별한 생각으로 태어나는 경험을 합니다. (6)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내게 가장 관심이 있는 건,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내게 가진 관심만큼, 남들도 나를 주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5)

맞지맞지

 

준비가 전부입니다. 프레젠터는 일부입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떨리는 마음도 확실히 줄어들 겁니다. 멋있어 보이려 하지 말고, 상대의 머릿속이라는 림 위에 아이디어라는 공을 놓고 오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이것이 저를 구원한 레이업슛 이론입니다. 어떤가요? (26)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100퍼센트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늘 어떤 가면을 쓰고 있죠. 예의를 차려야 하고, 멋져 보이고 싶고, 약점은 숨겨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감정의 민낯을 드러낼 일도 드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의 민낯을 볼 수 없어 오해를 하고,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합니다. (36)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것에, 누군가는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저 자동차처럼요. 사랑은, 완벽히 개별적인 취향입니다. 이걸 거꾸로 생각해보면, 멋지고 대단한 것들에만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에든 심장을 내려 앉히는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견하는 눈이 없을 뿐이지요. (46)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튜브에서 바람을 빼는 바로 그 순간 때문에,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거라고. 여행엔 늘 '끝'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날이 있습니다. 나에게 여행지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길어야 일주일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못 올 곳이니까 온 힘을 다해서 돌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기꺼이 차를 타고, 버스 창밖의 표지판을 관찰합니다. 다시 못 만날 사람이니까 평소엔 안 하던 농담을 걸고, 셔츠가 멋있다고 칭찬을 건넵니다. 튜브에 바람을 늘 채워놓고 사는 이 도시가 나의 집이라면, 오늘 하늘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사라지는 이 거짓말 같은 노을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아쉬운 마음으로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누르지도 않을 겁니다. 내일 또 보면 되는걸요. 제가 사는 도시 서울에 와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51)

그래서 나도 가끔 서울 여행자이던 때를 떠올리려 한다. 이곳 저곳 사진을 찍고, 이곳 저곳에 감탄을 하던. 그래서 내가 여행온 사람이라면 이 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고 유심히 곳곳을 살피며 걷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평소랑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러다 몇년 전 그는 어이없는 사고로 돌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밤, 페이스북에 추모 글을 올리고 냉장고에 남은 맥주를 모두 꺼내 마시며 몇 시간이고 그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은 그의 노래들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다시 간절해지는 겁니다. 내가 왜 그동안 이 노래들을 듣지 않았지? (53)

나도 종현이가 그렇게 가고, 그의 노래 중 내 취향이 아니던 노래들도 하나씩 들어보았다.
그전에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 노래를 한거야, 라고 했던 곡들도 좋았다.
그리고 나도 새 앨범 기다리고 싶고, 새 노래 듣고 싶은데,
라는 생각에 한참 슬펐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사랑이 끝나면, 세 여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_일본 렌터카 회사, 하트-비트 모터스 광고

20대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절친한 친구들과도 어쩔 수 없이 소원해지게 됩니다. 머릿속엔 온통 한 사람 생각뿐인걸요. 그러다 그 사랑이 깨지면, 누가 제일 먼저 생각날까요? 광고의 비주얼은 렌트한 자동차를 세워놓고 바다를 바라보는 세 여자의 모습입니다. (60)

아 너무 자존심 상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주체가 여자라는 점에서 별로긴 하지만.
그런데 참 말이 멋있네. 사랑이 끝나면 여행이 시작된다라.

 

수십 가지 발상법보다, '건져 올린' 생각의 재료들을 담아둔 창고가 더 위력적입니다. 그러니 별수 없죠. 평소에 창고를 꾸준히 채워두는 수밖에요. 예리하게 발견하고, 우직하게 모아두는 수밖에요. 제가 만나본 닮고 싶은 선배들, 멋진 후배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적든, 찍든, 곧바로 SNS에 올리든, 방식을 가리지 않는- 가차 없는 포획. (63)

크..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가차 없는 포획이라니. 크......

 

살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진리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겁니다.

'사소한 것이 결정적인 것을 말해준다.'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는, 메일에서 발견되는 오타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기업의 홈페이지에 올라간 잘못된 약도는, 그 회사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줍니다. 선물의 포장지는 내용물을 더 좋게 바꾸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소함 속에 진실이 숨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미처 감동할 준비를 하지 못한 순간 찾아오는 조그만 배려가, 때론 가장 깊은 감동으로 남으니까요. (79)

 

생각해보니, 살면서 만난 인생의 문장들은 늘 간결했습니다. 하지만 간결한 것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리더들과 함께 일을 해보면 늘 지시가 명확했습니다. 내가 다음 회의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그들은 선명하게 그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그 위치에 서자, 쉬운 지시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쉽게 지시할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이 복잡하면 나오는 말도 두루뭉술해졌습니다. 얼버무리는 제 모습이 싫으니 어렵고 복잡한 말 뒤에 숨고 싶더군요.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라 메모장에 적었습니다.

'뭔가를 복잡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많다.' (91)

ㅇㅈ 왜냐하면 나의 가까운 분께서 늘 이러시니까.... ㅎ
근데 이걸 애들이 느낀다는게 신기하다. 애들이 위와 똑같이 말한 적이 있다.
신기하지, 어쩜 아는 걸까.

 

'묻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른'이 묻고 의지할 수 있다면, '나이 어린 스승'을 기꺼이 곁에 둘 수 있다면, 그사람은 놀라운 힘을 갖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이는 능력은 부족해도, 이를 종합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우위에 있죠. 지식 말고 지혜라는 무기도 있습니다. 표면 말고 흐름을 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건 젊음에게 부족한 힘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멋져지는 어른들을 보면 대개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새로운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셨습니다. 이런 분들이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묻는 어른' 아닐까요?
당신의 나이가 몇이든, 질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다들 모르면서,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누구의 손에도 답은 없습니다. 그러니 묻는 것이 부끄러울 이유도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어른 여러분, 묻고, 의지하고, 판단하고, 길을 열어주세요. 이 시대엔 멋진 어른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합니다. (98)

라샘이 떠오르고, 교감샘이 떠오르고, 밀라논나가 떠오르고, 내 주변 멋진 어른들이 생각난다. 나도 정말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시간을 이기는 관계는 없습니다. '만날 사람은 만나겠지.' 그런 것 없습니다. 건물이 풍화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인간관계는 삭고 녹이 습니다. 그러니 의지가 개입되어야 합니다. 제가 믿고 있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인연이 아니라 의지이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좋다고, 당신에게 배우고 싶다고, 당신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당신과 수다 떠는 시간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휴식이라고, 당신과는 뜸하더라도 꾸준히 대화하고 싶다고, 어떤 식으로든 전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시간의 힘에 의해 자동정리 됩니다. (101)

 

'인간관계는 인연이 아니라 의지이다.' 이것은 관계의 유지뿐만 아니라 시작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첫째, 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하지만 내 의지가 있다고 다 친해질 순 없을 겁니다. 좋은 사람은 늘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법이고, 그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일 테니까요. 그러니 둘째,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기꺼이 시간을 낼 만큼,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것이 능력이든, 경험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든.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노력'이라는 의지가 개입되어야 하는 겁니다. '신호'와 '노력'. 운명과는 꽤 떨어져 있는 단어 아닌가요? (102)

맞아 진짜 내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신호를 보내야하는 거다.

 

처음 일해보는 저 사람의 장점을, 내가 늘 하던 판단이 죽여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상대를 잘 모를 때는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판단할 여지를 좀 열어주는 좀 열어주는 편이에요. (111)

 

이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말'입니다. "지금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다른 팀도 정말 바쁘니까 좀 해줘"와, "이 일은 너희 팀 아니면 안 돼. 너희 팀이 가장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을 때 비로소 양질의 생각이 나옵니다.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리면 딱 해야 하는 수준만큼의 생각만 나옵니다. 적당히 아이디어를 내고 적당한 지점에서 생각의 문을 닫으니까요. 똑같은 시간을 쓴다고 똑같은 질의 생각이 태어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27)

 

과잉의 시대일수록 안목입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취향의 영역은 있어요.' 그리고 개중엔 그 취향을 잘 다듬어 좋은 안목으로 바꾸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무수히 많은 사물들 속에서 조망할 만한 아름다움을 골라내는 사람. 자신이 푹 빠진 세계의 아름다움을 상대에게 쉽고도 직관적인 단어로 설명하고, 원한다면 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 그 세계가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요리든, 인테리어든, 혹은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어느 사소한 영역이든, 그곳에서 남들이 못 보던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 (131)

아 멋있는 말. 안목.
크.. 이렇게 적확한 단어를 만나다니, 안목.
맞아, 취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잘 빚어서 좋은 안목으로 만드는 게 정말 멋진 일이지.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에게 끌린다.

 

그리고 그 없던 가능성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단단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남의 안목도 존중해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발견한 가능성을 남의 안목에 더해주는 사람. 제가 아는 멋진 어른들은 대부분 이런 존중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어요. (133)

 

세상 사는 일이 내 맘처럼 되지 않으니,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의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인정'과 '의지' 같아요.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고, 그 부분은 내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의지합니다. (140)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면, 여름내 잘 듣고 다니던 음악도 갑자기 낯설게 느껴집니다. 봄에는 봄의 기운이 있고, 가을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있어, 어울리는 음악도 자연스럽게 달라지나 봐요. 그래서 저는 새 계절이 찾아오면, 그 계절을 마중 나갈 음악을 고릅니다. 술과 안주에도 궁합이 있듯이, 날씨와 음악의 바람직한 조합은 시작하는 계절을 마음껏 만끽하게 하죠. (147)

크..  인정.

 

그렇게 자주 들었던 노래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살았다는 것이 머쓱하더군요. 롤러코스터 멤버가 저를 알 리도 없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이상순의 쓸쓸한 기타 솔로가 시작되고, 노래는 너무나 간단하게 그 시절의 나를 소환합니다. 그저 곡에 귀를 기울인 것뿐인데, '한참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의 나'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당시의 막막했던 공기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이의 조바심과, 정해진 것이 없어서 오는 막연한 기대가 떠오릅니다. 당시에게 나에겐 큰 투자였던, 용돈을 털어 산 미니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와, 불을 끄면 전에 살던 이가 붙여놓은 야광 별 스티커가 반짝이던 밤의 자취방까지. (171)

나에겐 종현 노래가 특히나. 그리고 소란, 그리고 정준일, 그리고 박효신.
정말 많은 사람들의 기운을 받으며 지냈던 때네.

 

때로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노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그 통로에 잠깐씩 귀를 대었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죠. 그러나 어느 시절 우리는 어떤 노래와 너무나 깊숙이 교감한 나머지, 그곳에 우리를 조금 남겨두고 돌아옵니다. 스티커를 떼어내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 그래서 훗날 우리가 '그 노래'에 다시 닿으면, 통로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거죠. (172)

세상에 이런 표현..
'스티커를 떼어내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이라니.
아.... 8ㅁ8

 

기운이 없는 날, 응원받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날엔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라이브 앨범으로 한 번 들어보세요. 익숙한 노래인데도, 그 곡을 좋아하고, 따라 부르고, 간주만 듣고도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 힘이 납니다. (194)

맞아! 정준일 라이브 앨범 들으면서 진짜 씩씩하게 밤길(공부방-기숙사)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뭔가 불안정하지만 에너제틱한 라이브 앨범. ㅎ_ㅎ 응원 인정이다.

 

그런 날, 하루의 밀도는 대단히 높습니다. 예정된 일정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네 시. 다음 회의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았는데, 자리에 앉아서 인터넷을 할 힘도 없었습니다. 태풍이 목포에 상륙했다면, 바로 그 목포의 해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머릿속이 진공 상태처럼 멍했습니다. 완전히 단절이 필요했어요. 도망치듯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 회사 근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한참 동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좀 정신이 돌아오더군요. (197)

밀도가 높은 날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그리고 여러 날들이 떠올랐다. 저럴때 진짜 카페에 가서 따뜻한 모카 마시는게 최고다.

 

생각해보면, 가장 힘든 건 늘 '시작'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시작만 하면, 씨앗을 뿌려놓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은 시작되고 몇 년 뒤엔 분명 수확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수확의 질과 상관없이, 나는 분명 조금 달라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작. 그리고 그 시작을 위해 필요한 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용기. 제가 좋아하는 카피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달린 5킬로미터의 트랙 중 가장 먼 구간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이다.
_나이키 (219)

수확의 질과는 무관하게 나는 조금 더 달라진다. 언제나.

 

사람은 물과 같아서,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호수가 되기도, 폭포가 되기도 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만 해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회사에서는 차분한 편이에요. 회의실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대학교 동기 모임에선 분위기 메이커가 됩니다. 군대 내무반 사람들을 만나면, 답 없는 막내가 돼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한 조각을 아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224)

 

멈추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자동차 경주의 꽃이라는 F1레이싱에서는 레이스 중간에 달궈진 엔진을 식히고, 타이어를 교환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래야 50바퀴 이상의 장거리를 버틸 수 있다고 해요.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빼먹지 말아야겠습니다. 인생은 꽤 긴 레이스이니까요. (239)

오. 몰랐던 사실. 오....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로 그냥 참고 있지 마세요. 그것은 영혼을 갉아먹어 사람을 빈껍데기로 만듭니다. 겉으로만 멀쩡해 보일 뿐, 존엄이 사라진 인간이 빛나는 경우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2년. 이 문장은 사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맘 편히 가져라. 둘, 그러나 당신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라고요. 언젠가 사라질 악몽이라고 하지만, 그 악몽을 2년씩이나 꾸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244)

많은 얼굴이 지나갔다.
'존엄이 사라진 인간이 빛나는 경우가 잘 없다'라....

 

그는 매일매일 일정을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에만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처럼요.

아침 일찍 일어난 헤밍웨이는 매우 집중하며 자신의 독서대 앞에 선다. 그리고 꼼짝 않고 서서 일하면서 이쪽 발에서 저쪽 발로 무게중심을 바꾸기 위해서만 약간 움직일 뿐이다. 작업이 잘 진행될 때는 흥분한 아이처럼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예술적인 기운이 잠시 사라지면 초조해하고 비참해하기도 한다. 스스로 부과한 규율의 노예가 되어 정오 무렵까지 계속 작업을 한다. 정오가 되면 옹이가 많은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서서 수영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매일 800미터 정도 수영을 한다.
_<작가란 무엇인가>, 움베트로 에코 외, 다른, 2014 (247)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인터뷰는, 펼치는 것만으로도 지면에서 명언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인터뷰에 명언이 많은 건, 그들이 달변이어서일까요? 아뇨. 오히려 전 '머리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잡지에 실리거나, 책으로 엮일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이뤄낸 결과물이 있는 삶이겠죠. 오랜 시간 자신의 영역에서 답을 찾으면서 정립된 관점들, 응축된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이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겠죠. 만들어낸 문장보다 훨씬 힘 있는, 시간이 다듬어놓은 생각들. (250)

시간이 다듬어놓은 생각.
아 너무 좋은 말.
누군가 자신의 삶을 소화해내며, 풀어내며, 또 시간이 그를 도와 다듬은 생각, 좋을 수밖에 없겠지.
최근 밀라논나님의 인터뷰https://youtu.be/1-HvAWSw51c가 떠오른다(인터뷰라 해야하나?).
최근 내게 가장 힘이 된 인터뷰(동영상).
나도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오래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의 끝에 닿으면 어떤 영역이든 굉장히 비슷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문학이든, 스포츠든, 광고든, 예술이든, 경영이든,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이들은 서로 만나면 굉장히 쉽게 이야기가 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들의 인터뷰에서 제가 자주 발견하는 화두는 이런 것들이에요.
     기본. 자존. 몰입. 동기부여. 디테일.

인터뷰를 읽다 보면 가끔, 위의 단어들을 화두로 삼아 스스로를 단련하는 한 분야의 거인들을 훔쳐보는 것 같아 짜릿합니다. 인터뷰 읽기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일부러 인터뷰집을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한 꼭지의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한 분야의 끝에 닿은 이들이 보여주는 어떤 황홀함. 궁금하지 않으세요? (251)

크........ 너무 멋져....
완전 동의합니다!!!
기본. 자존. 몰입. 동기부여. 디테일.

그리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이 너무 멋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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