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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손원평

어쩌다가 짜증 섞인 얼굴이나 목소리를 내비칠 때면 아이들은 하던 행동을 그만두고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는 말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매일 속내를 들키는 것이 싫었다. 알아도 말을 못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뿐이었다. (17)

 

처음부터 정열은 부재했고 그랬기 때문에 거기서 퇴색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19)

 

여자가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과물이었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22)

 

 

개인적으로 손원평씨는.. 청소년 문학보다 일반 문학을 더 잘 쓰시는 것 같은데......도 베스트 셀러는 청소년 문학인 것이 의아하군. 

 

 


드릴, 폭포, 열병 :: 윤이형 

아무한테도 증오심을 갖지는 않았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아니?
그 사람들. 우리 집을 파헤치러 온 누수 탐지 업체 4인조.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여겨줬어. 그들은 우리 집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곳은 파헤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말해주었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야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어. 표정이랑 태도에서 진심이 배어났어. 나는 처음에 그들이 내는 드릴 소리가 괴롭고 힘들었거든. 그런데 점점 그게 힘들지 않아지더라. 반대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결백을, 우리의 떳떳함을 밝혀주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어. 
서로가 그렇게 존중하면서 일을 진행하면 되는 거였어. 그래서 난 지금도 마음이 힘들면 그들의 모습부터 떠오른단다. 살다 보면 서로에게 드릴을 들이대야 하는 일도 생기는 거야. 하지만 예의를 지키면서 하면 원한이 생길 일이 없지. 그리고 정말 '그냥' 일어나는 일들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일을 겪으면서 이해하게 되었어. (47)

 

나는 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아. 오히려 깊이 이해한단다. 윤경아, 잘 생각해봐.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다 그 사람들과 같아. 
우리는 하나같이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야.
두려움 앞에서 우린 모두 평등한 거야. 우월도 열등도 없이 평등하지. 잘못이나 책임 같은 말을 남들에게 붙이면서, 혹은 어떨 때는 자기에게 붙이면서, 다름 아닌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면서, 자기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지. 두려워서 했던 일들, 두려워서 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옳음이나.
정의나.
윤리라든지.
그런 말들보다는, 나는 두려움이라는 말을 믿는단다. 자신의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자기가 겁쟁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을, 나는 조금 더 신뢰하고 싶구나. (54)

 

모두 다 보았고, 읽었고, 들었지.
내가 그중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았을까?
그런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할 수가 없단다, 윤경아. 
물론 이 일을 들여다본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믿었을 거야. 각자 다른 것을. 그리고 그 믿음에는 각자 이유가 있었겠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이유가. 나는 그 사실도 틀림없이 믿고 있어. 그 이유들은 모두 달랐겠지만, 그것들을 만든 동력은 같았던 거야. 
두려움. (71)

 

옳은 쪽을 선택한 사람은 앞으로 더더욱 옳아야만 해. 옳았다가 삐끗하면 아무 쪽도 아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거든. 그런 걸 생각하면 점점 더 두려움이 마음을 먹어 들어가지. 분명히 옳다고 믿었는데, 그게 정말 옳을까? 내가 두려워서 이렇게 평소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 아닐까? 이게 내 목소리가 맞을까? 두려움을 인지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강력해진단다. 옳음을 오염시켜버려. 그리고 그렇게 오염된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옳은 말을 그만둘 수는 없어. 점점 더 크게 소리를 내게 되지. 누구를 비난하고 있었다면 그 목소리가 더 커지고 내용도 신랄해지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무서우니까, 무서운 만큼 그 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확 벌려야 하니까. 그래야 안전하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게, 진짜로 옳은 거니? 장담컨대 그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아무 옳음도 손에 넣지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또 두려운 일이지. 판단을 유보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관심을 놓아버렸다가는 비겁하다거나 더러운 침묵이라거나 다 똑같은 족속이라는 말을 듣게 되니까. (73)

 

때로는 아무 곳에도 답이 없을 수도 잇는데, 어떻게든 답을 찾게 되는 거란다. 배관이 아무 데도 잘못되지 않았는데 물이 새는 집 같은 것을, 인간의 뇌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래서 아무튼 결론을 찾아내고, 없으면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고, 점점 확신하게 되는 거지. (73)

정말 '그냥'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이 있는데. 
뭘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울부짖었는지.

 

우리가 양치를 한 곳에, 여러 가지를 참지 못해서 말이라는 거품을 뱉어낸 곳에 빨갛고 징그러운 벌레가 꼬물거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 정말로 100퍼센트 죄처럼 생긴 벌레가 말이다. 
그런데 그 벌레가 정말로 우리한테서 온 것이겠니? (74)

 

그들을 욕하고 싶지. 타인을 비난하는 일은 호흡과 같아서, 자책으로 죽을 것 같을 때 살 수 있게 사람의 숨통을 터주지. 필요하면 숨을 쉬렴.
하지만 우리라고 안 그러겠니. (82)

 

 

 


고백록 :: 최진영

실제로 할아버지는 모르는 젊은 여자를 때려서 경찰서에 잠시 잡혀 있었던 적도 있다(전해 들은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나 엄마를 때렸을 때는(이건 내가 실제로 봤다) 경찰이 오지 않았다. (95)

 

할아버지 어깨를 짓누른 건 신의 손이 아니라 공포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무서워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포가 할아버지를 살렸다.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공포의 힘으로 살아간 것 같다. 독재자를 존경했던 것, 또 다른 독재자를 자랑스러워했던 것, 독재자가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젊은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게 되자 세상이 망했다고 화를 내던 것도 실은 두려워서 그랬던 거다. 모르는 젊은 여자를 때린 것도, 할머니와 엄마를 때린 것도, 나를 때린 것도 두려웠기 때문이지. 뭐가 두렵냐면, 때렸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까. 복종하지 않고 자기를 노려보니까. 지지 않고 대드니까. 숨고 엎드리고 움츠리던 자기 같지 않으니까. 달려드니까. 빨갱이 같으니까. (97)

 

죽은 두 아이의 손가락은 티스푼 같은 거였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난하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자식들에게도 가르쳤다. 자식들은 응용력을 발휘하여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아무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행복을 느꼈다. 행복을 느낀 자가 행복을 숨기지 않으면, 부자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못한 자는 행복한 자의 행복을 폄훼하고 조롱했다. 자식들의 우애는 좋지 않았다. (98)

재치있고 정확한 표현이었다. 

 

Q.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상상 속 괴물은 괴상하지 않다. 어딘가에는 실제로 존재할까? 존재하더라도 괴물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다. 그것은 그것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영화 <괴물>은 좋아한다. 하지만 영화 속 괴물도 괴물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을 괴물이라고 표현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131)

크.....
작가님........................

 

 


해변의 묘지 :: 백수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다희가 놀랐던 점은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137)

 

이전까지 다희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사귀었던 어떤 남자친구의 부모도 만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수월했던 이유는 물론 피에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에르가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해 기술자격증을 딴 이후 취직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그가 언제나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에 다 낡아빠진 운동화를 신는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희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고, 한국이었다면 결코 사귀지 않았을 타입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시기는 다희에게 인생의 괄호 안 같은 것이었고, 피에르는 다희에게 그녀가 몰랐던 다른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147)

오, 그렇지. 하고 내 21살이 떠올랐다.
오, 또 그러고 보니 다희의 나이와 같았던 때구나. 

굉장히 생각이 심플했던 때, 라고 기억하고 있다. 

 

현재는 고갈을 모르는 샘물처럼 영원할 듯했고, 삶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찾아 줍던 낙과처럼 그녀가 발견해야 할 달콤하고 황홀한 일들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154)

가끔 이런 생각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겠지?
오늘 공주와 카톡을 하다가 비슷한 마음을 토로했다.

고갈이 전혀 상상되지 않아, 너무나 순간이 영원해서 답답함을 느끼는 상태.

 

연애 초반, 오직 자신을 보기 위해 주말마다 수십 킬로미터를 운전해 달려 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피에르 앞에서 다희는 당당했다. (157)

ㅋㅋㅋ 25살과 26살이 떠올랐다. 
(와 나 정말 나이 많이 먹었구나!!!!!!)

 

피에르와 다희는 팔짱을 꼈고, 그러자 그들이 떨어져 있던 한 달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165)

ㅎㅎㅎㅎ그렇지.

 

Q.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괴물은 모습을 지니지 않는다. 괴물이란 우리의 이해를 초과하는 것, 실체를 파악할 수 없거나, 파악하고 싶지 않는 무언가를 부르는 이름이므로. (169)

 

 

 


손을 내밀었다 :: 임솔아

Q.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람이라는 자격도 의자놀이 중인 것은 아닌지요. 자기 자신이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괴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요.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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