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그 무렵 우리는 틈만 나면 섹스를 했는데, 그 당시 내게 강의 육체는 인체에 대한 탐구심과 인간의 욕망과 쾌락의 한계치에 대한 인류학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불확실함의 바다에서 표류하던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확실한 무엇이었다. 격랑에 흔들리고 흔들리던 범선이 가까스로 연안에 닿으면, 땀에 젖은 강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는 일이, 강의 옆구리에 난 다갈색 점과 어깨의 희미한 흉터를 손끝으로 가만가만 짚어보는 일이, 강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는 일이 나는 좋았다.
61;
엄마는 언제나 할아버지에게 관대했고 할아버지에게 관대한 딱 그만큼의 크기로 할머니에게는 냉정했다.
72;
하지만 할머니는 톨스토이나 토마스 만을 몰랐고, 클라크 게이블이나 줄리 앤드류스를 몰랐다. 북서쪽 항구도시의 일류 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엄마의 친구들 중에는 여고를 나오거나 전문학교를 나왔던 세련된 신여성들을 엄마로 둔 경우도 꽤 있었다. 엄마는 그런 친구들이 아마도 부러웠을 것이다. 엄마와 딸 사이의 공모. 딸에게 한자를 가르쳐주고, 예이츠나 워즈워스의 시를 읊어주는 엄마. 그렇지만 엄마의 엄마는 그러는 대신 혼자 술을 마시며 작부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화가 난 할아버지가 술상을 엎고, 할머니를 때릴 때, 엄마가 미웠던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였는데, 그 사실을 생각하면 사춘기 때의 엄마는 화가 났고, 커서는 슬펐다.
99;
할머니는 식용유를 팬에 한 번 더 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봐라, 인아야.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밖에선 비가 왔고, 신문지를 펼쳐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많은 빈대떡을 부치던 할머니는 할머니 옆에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나에게 세상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할머니가 나를 보고 말하는 게 그저 좋아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할머니를 흉내 내어 손끝으로 할머니의 허벅지를 꾹꾹 눌렀다.
117;
엄마가 그해 겨울 요양병원 5층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에게 했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에게 언젠가 그것에 대해 물어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적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런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타인이 하는 모든 말의 의도를 어떤 식으로든 알아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많은 경우 세사의 그 누구도 어떤 말의ㅡ심지어 자신이 한 말조차도ㅡ 의도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120;
지금껏 돌이켜보면 우리의 결혼 생활에는 불행한 날들보다 행복한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한여름의 새벽처럼 푸른 시기를 통과해 온기가 남아 있는 잿더미처럼 부드러운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의 언젠가, 내가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강이 “그럼 너는 우리 아이를 너처럼 외롭게 만들어도 좋다는 거야?”라고 물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강이 그 말을 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지는데 그것은 그가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 그에게만 어렵게 드러냈던 나의 연약한 부분을 너무도 무심한 방식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일을 기억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 정상적인 형태의 행복이라는 관념이 허상일 뿐인 것처럼. 물론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친애의 작은 역사(신샛별)
130;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세상의 어떤 말로도 엄마를 향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형언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 소설은 적절한 해답 하나를 건네주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에 차오르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감정들, 애정과 미움, 고마움과 서운함, 동경과 연민의 파고를 감당하면서 이 소설은 엄마에게 해야 할 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그 한 마디 말을 빚어내기 위해 진지하게 나아간다. 그리하여 백수린은 ‘사랑한다’는 고백으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 마음을 ‘친애하는’이라는 표현에 담기로 하였고,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는 그 말이 엄마에게 선사하기에 맞춤한 바로 그 한 단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띵.
그랬지. 이 책의 제목이 ‘친애하고, 친애하는’이었지.
역시나 나는 그저 또 읽기만 했다. 또 이어 말하는 두 명의 엄마와 제목의 관계에서도 다시 한 번 띵.
133;
표면적으로는 내가 병든 할머니를 돌보는 모양새여도 심층에서는 내가 할머니로부터 돌봄을 받게 되는 이 상호 부조의 역전이 어쩌면 이해타산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와는 구별되는 모녀 관계의 특별한 일면이 아닐까. 그러니까 모녀 관계에서 일방적인 돌봄이란 있을 수 없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그들 사이의 돌봄은 언제나 쌍방향적이다.
140;
누군가의 엄마로서 앞서 살다 간 여성의 일생을 곰곰이 회상하기에 가장 절실한 때란 엄마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한 때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물음에 대해 엄마란 사랑의 한계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며 실천하는 존재라고 답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엄마의 사랑이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하기 위해서 시도되는, 비유하자면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 설치하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임시적 구조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사랑에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철거될 게 분명한 무대라도 성심을 다해 짓는 무대 디자이너가 된 소설 속의 화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부숴야 할 줄 알면서도 짓기 때문에” 그것은 귀하다고.
무대 디자이너와 토목공학과 교수.
이처럼 소설은 그 어느 하나 그냥 쓰여지는 게 없구나.
142;
딸 또는 아래 세대의 여성은 엄마 또는 위 세대 여성이 용기 있게 내디뎌 나아간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며 시연해 보인 것이 ‘자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회고되는 엄마의 바다 건너에서의 유학 생활은 오래 전 할머니의 수평선을 향한 달리기로부터 잉태됐다고 할 수 있다. 또 남성에게 편향적으로 할당돼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온 엄마의 삶은 다음 세대의 여성인 내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험해볼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할머니-엄마-나’로 세대를 유전해 내려올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하고 또 몸소 실현해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이렇게 읽을 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유의 가능성을 낳는다는 말과 같아질 수 있다. ‘자유’라는 추상을 향한 여성의 이어달리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이 소설은 마치 바통처럼,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전달돼야 할 친애의 작은 역사로 남을 것이다.
작가의 말(백수린)
148;
그리고 끝으로 내 소설을 읽어준 당신에게도. 당신들이 있어서 두려운 밤들을 몇 번이나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다. 익숙했던 풍경이 갑자기 저만치 물러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신의 마음에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뿌리 깊은 나무마저 휘청일 때, 오로지 각자만이 아는 슬픔과 불안이 석류알처럼 영글다가 터져 산산이 흩어지거나 당신이 땅거미 진 들판 위에 방향 잃은 여린 짐승처럼 홀로 서 있을 때,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그렇듯 나의 소설이 잠시라도 당신에게 희미한 온기의 불빛이 되어준다면 무엇보다 기쁠 것이다.
감사해요 작가님. 오늘 정말 그 불빛이 되었어요.
익숙했던 풍경이 갑자기 저만치 물러나고 내 속의 뿌리 깊은 나무마저 흔들린 날에 이 책을 읽고 눈물이 났고 그게 전부였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며 만난 단어 중격랑, 알고 있었지만 자꾸 되새기고 입 안에서 고르게 되는 단어.
격랑이 일던 또 파고의 하루 끝에 만난 소중한 글들과 책.
2020년, 스물 일곱 살, 친애하는 ‘나’의 생일을 이 책으로 정돈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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