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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것은,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고 베란다에는 빨래들이 널려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다들 재해 대피 훈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풍경 자체에선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데 정작 그 풍경에 '사람'이 빠져 있다. [각주:1]


제대로 된 노포일수록 나만 빛나면 된다, 나만 눈에 띄면 된다 하는 오만한 태도가 없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색을 지켜나갈 뿐이다. 반짝거리는 새것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낡고 약간 녹슨 듯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거기서 비롯하는 향수 어린 감성을 교토는 더 가치 있게 여긴다. [각주:2]


"세월이 좋다거나 오래된 것이 좋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겁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항상 더 좋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각주:3]


"아, 네. 실내 촬영은 괜찮습니다만 책을 보고 있는 다른 손님들은 찍지 말아주세요."

점원은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당부했다. 

자신이 속한 마을 공동체에 대한 예의. 한 공간에 머무는 다른 손님들에 대한 예의.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타인을 향한 세심한 배려는 내가 언젠가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호의이기도 하니까. 쾌적한 공존을 위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서로에게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이 아름다운 동네 서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넌지시 가르쳐주었다. [각주:4]

이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긴 하구나.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까 이분을. 


엄밀히 따져보면 카페나 다방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무용한 것들이 삶에 윤기를 준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보다 기분 좋게 일상을 살아나간다. [각주:5]

맞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청주에서 내가 사랑하던 카페노리를 떠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은 내게 정말 노스탤직하다. 따뜻한 노란 조명 아래서 추운 날은 조금 추운대로, 더운 날은 조금 더운대로, 커피 냄새가 나면 나는대로, 베이글 혹은 빵냄새가 나면 나는 대로 좋았다. 그때 내가 가장 건강했다고 생각한다(아마?). 또 그때 내가 전공에 호기심을 붙이기 시작했었다. 두꺼운 전공책 시작이 무서워 카페로 들고나가면, 나는 노란 형광펜과 함께 한장씩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곳의 카페모카만큼 맛있는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기억만으로도(혹은 추억만으로도) 감사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숱한 대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그 카페는 내게 정말 소중한 곳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잠깐 거기에 있는 듯한 상상을 해보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느꼈던 '해보고 싶다'는 감정을 소중히 보살피면서 그것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본다. 그 감정이 강하고 순수할수록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넘어서서 계획한 바를 구현해나간다. 그 거침없는 기세가 이윽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불러 모은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 단지 그뿐이다. [각주:6]

맞는 말. 거창할 필요 있을까. 나만 알면 될 것을.


공중 목욕탕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참 잘 어울린다. 추운 겨울 저녁, 기다란 머플러로 목을 칭칭 감고 하얀 입김을 호호 불면서 종종걸음으로 찾아가는 동네 목욕탕의 맛. 두껍게 껴입고 온 옷가지를 탈의실에서 하나하나 허물 벗듯 벗을 때의 엄청난 수고, 겹겹이 보관함에 쑤셔 넣어야 하는 번잡합, 탈의실에서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시야를 에워싸는 뜨거운 수증기, 목욕을 마치고 나와 다시 한 겹씩 옷가지를 꺼내 입을 때의 끈적거림. 그럼에도 불구, 몸을 정갈하게 하는 일련의 의식을 마치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을 때 발그스름해진 두 뺨에 닿는, 박하사탕처럼 개운하고 시원한 밤공기. 바깥은 차디차도 몸만큼은 충분히 후끈하게 데워져 있어 든든하다. [각주:7]

이래서 작가인 건가 하는 대목. 어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목욕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감정들을 무심히 적어내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지는 글이다. 그리고 당장 목욕탕에 가야할 것 같고. 

상아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순간 덕분에 우리는 꽤 많이(그리고 즉흥적으로) 목욕탕을 다녔다. 얼른 이번 주말이 오면 나도 새벽 목욕탕을..! 흐흐 



마이코가 게이코 선배들에게 가장 먼저 배우는 덕목이 바로 '입이 무거울 것'. 이는 오차야의 신용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이다. 또한 손님들이 소문에 대해 얘기하거나 이른바 뒷담화를 하고 있을 때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맞장구를 치지 않도록 훈련을 받는다. 서로가 오래 알고 지낸 친숙한 사이라 하더라도 절대 질척대지 않도 자신의 품위와 중심을 지킨다. 그것은 손님들에게도, 접대하는 게이코나 마이코들에게도 공히 적용되는 화류가 놀이의 자부심이다. [각주:8]


같은 이야기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학벌이나 유명한 회사의 명함, 얼마나 부자이고 많은 걸 가졌는지를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그런 이야기는 함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상 그들에게 그런 '레테르'는 피상적인 상징에 불과하다. 진짜로 실력이 있다면 품위가 생기고 품위가 있으면 성급하게 자신의 조건들을 드러내며 주장할 필요가 없다. 같은 맥락으로 교토 사람들에겐 직설 이상으로 '자기 자랑'은 금물이다. 대놓고 하는 자기 자랑만큼 창피하고 촌스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명예로운 성취라도 자기 입으로는 먼저 밝히지 않는다. 남에게 칭찬을 받으면 겸손하게 부정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기도 하다. [각주:9]

마흔이 넘고, 쉰이 넘었을 때에도 내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촌스럽다'는 단어가 알차다는 생각이 든다. 촌스럽다. 나만의 언어로 쫌인 모양새. ㅋㅋ 시의적절하다. 촌스럽다. 촌스럽다. 



이토록 침착한 분위기는 이곳 주인과 종업원들의 사려 깊은 서비스 덕분이기도 하다. 그들은 늘 편안한 미소로 자신의 할 일을 하되, 손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햇다. 손님이 달랑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오랜 시간 눌어붙어 있어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그것이 카페의 사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각주:10]


원래 멋있었던 물건들은 다소 낡더라도 여전히 멋있다. 흡사 사람이 그런 것처럼. 오래된 것들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깊은 매력을 우리는 더 많이 누릴 자격이 있다. [각주:11]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변화하는 계절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감지한다. 쌩쌩 달리다 보면 바람의 온도와 내음으로 그 변화를 느낀다. 거리의 나무들이 꽃을 피우거나 나뭇잎 색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각주:12]


젊고 예쁜 외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기품 있는 몸의 움직임일 것이다. 서 있는 자세나 걷는 모습, 인사할 때 손과 팔의 동작 등,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 세련미가 풍겨 나온다. 몸 동작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화법조차도 우아하다. 평소에도 겸손하고 사려 깊은 언어를 구사한다. 남을 비난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그와 반대로 과장되게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각주:13]

요즘 나의 화두(?)인 '늙고 싶지 않다'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이 문장이 내게는 정답이 되어준 것만 같다. 영원히 젋을래, 젊음을 유지할래가 아닌 '멋있게 늙을래'. 

왜 요즘의 나는 늙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지? 지금도 그런 마음이 아예 가신 것을 아니지만, 그래도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걸까? 

젊음이 가져다주는 안온함보다는 우왕좌왕함이 더 크면서. 



"즐거울 때는 종교가 필요 없으니 찾아오지 않으셔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요. 이곳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면 오히려 다행인 것이죠."

스님의 자비로운 말씀이 인상에 남는다. [각주:14]

상아나 희진쌤이 말로 한 적은 없지만, 풍기는 인상이 이와 같다. 

나도 우리 아이들한테 저런 존재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 나 이외의 관심사가 생겼다고 서운해할 것도, 나랑만 영원히 친해야한다는 고집을 부릴 것도 아니라. 

나도 저렇게나 자비로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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