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어렸을 때 따돌림당한 적 있어?"
덴고는 어렸을 때를 생각했다. "없을 거야. 혹시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눈치 채지 못했어."
"눈치를 못 챘다면 그건 한 번도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다는 거야. 원래 따돌림이란 상대에게 따돌린다는 것을 알리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니까. 당하는 본인이 눈치를 못 채는 따돌림이라니, 그런 건 없어." 1
"이건 삶의 방식 자체의 문제예요. 항상 진지하게 자신의 몸을 지키려는 자세가 중요해요. 공격받는 걸 그저 감수하기만 해서는 어떻게도 해결이 안 되죠. 만성적인 무력감은 사람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손상시킵니다." 2
사람이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녀는 곧잘 자문했다. 하나의 감옥에서 멋지게 빠져나온다 해도, 그곳 역시 또다른 좀더 큰 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3
1
그뒤 오랫동안 덴고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동의 결여를 후회했다. 그 소녀에게 했어야 할 말들을 이제는 얼마든지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 말해야 할 것들이 덴고 안에는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를 어딘가로 불러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기회를 만들고 그저 약간의 용기를 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덴고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5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 교육을 받을 때 한 가지 배운 게 있어요. 명랑한 말은 사람의 고막을 밝게 흔든다는 거예요. 명랑한 말에는 밝은 진동이 있어요. 그 내용이 상대에게 이해되든 안 되든 고막이 물리적으로 밝게 떨린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환자분께 들리건 들리지 않건, 아무튼 큰 소리로 명랑한 말을 건네라고 배웠어요. 뭐, 이론이야 어찌 됐거느 그건 틀림없이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경험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해요." 6
2
그래서 항상 입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남이 하는 말에 -그것이 어떤 말이건-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거기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항상 유의했다. 그 습관은 이윽고 그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그 도구를 사용하여 수많은 귀중한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뭔가 생각한다는 걸 아예 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가 발견한 '귀중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7
꿈속에서 아오마메의 배는 상당히 불룩해져 있다. 출산이 임박한 모양이다. 그녀는 작은 것의 심장 박동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그녀 자신의 심장 소리와 작은 것의 심장 소리가 한데 섞여 기분 좋은 복합 리듬을 만들어낸다. 8
왜인지 이 느낌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꼭 그랬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따스하다.
3
':::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0) | 2017.12.04 |
---|---|
월요일의 그녀에게 :: 임경선 (0) | 2017.11.23 |
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 (0) | 2017.11.01 |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 임경선 (0) | 2017.10.24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0) | 2017.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