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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6)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 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 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 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17)

 

고독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형제, 아니면 연상의 친한 친구와 같다. 너무 잘 알기에 침묵조차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독은 기분 좋은 메시지를 속삭이며 우리를 달랜다. '여기 앉아, 긴장 풀어, 정신없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렴. 넌 그래도 돼.' 그러나 고립은 고독의 사악한 쌍둥이, 아니면 못된 친척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21)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ㅡ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ㅡ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25)

 

그리고 침묵을 메우는 데는ㅡ한가한 잡담을 나누든 진심으로 관계를 맺는 대화를 나누든ㅡ노력이 든다. (37)

 

웬디는 조용한 삶과 공허한 삶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내 생활 양식이 심란하다고 여긴다. 내가 주말 계획을 얼버무리면, 웬디는 마치 내가 48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슬프게 지낼 거라고 예상하는 듯이 은근히 불편해하는 표정을 떠올린다. (중략) 나는, 홀로 걸어가며 속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는, '우리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은둔자다. (44)

 

홀로 있는 상태는 개성의 온상이고, 나는 홀로 있는 상태가 그렇게 변덕을 맘껏 발산하도록 해준다는 점이 좋다. (47)

 

하지만 이런 수준의 친밀감에는 대가도 따른다. 예를 들면, 우리는 둘 다 다른 인간 관계들이 완벽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모든 우정이 리베카와의 우정처럼 깊게 연결된 느낌이리를 바라고, 모든 애인이 리베카처럼 내 마음의 기복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남자친구들에게 아주 가혹하다. 뭐? 내 마음을 읽는 법을 몰라? 꺼져! (59)

 

요즘은 레이다가 더 나아졌고, 불만족의 문턱값도 훨씬 더 낮아졌다. 잘되지 않는다 싶으면ㅡ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나와 너무 다르다면, 서로의 가치와 감수성과 욕구와 목표가 너무 상이하다면ㅡ나는 그를 목록에서 지워버린다. 그런 결정을 늘 엄청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건 아니지만, 우정에 대한 기준이 예전보다 훨씬 더 명확해졌으며 우정에 대해서 내가 좀 더 시니컬해졌다. 우정은 아주 어려울 수도 있고 아주 덧없을 수도 있다. 영혼의 짝을 찾아내고 그 사람에게 헌신하는 데는ㅡ관계를 성장시키고,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필연적인 실망을 극복하는 데는ㅡ 시간 면에서나 감정 자원 면에서나 적잖은 투자가 든다. (70)

 

그런데도 환상은 남아 있다. 완벽한 사랑. 완벽한 친밀감. 합일과 독립성과 성애와 우정이 하나로 합쳐진 관계. (74)

 

사랑받는 느낌이란ㅡ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이란ㅡ일종의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그 느낌은 상대와 내게서 절반씩 생겨나야 한다. 사랑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가끔씩 밀려드는 의문과 실망과 애매함의 파도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물결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 일부이다. (81)

 

내가 그런 언쟁에 대해서 놀라는 점은, 가벼운 짜증이나 약간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파국적 결과가 올 수 있다는 듯이 그런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자들의 관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들 사이의 친밀감과 따스함과 애정은 최초의 중요한 유대감이었던 어머니와의 유대감에 필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는 듯싶다. 우정에는 우리가 어머니와 나눴던 친밀감보다 더 평등하고 어쩌면 더 풍성할지도 모르는 친밀감을 안겨줄 가망이 있기 때문이다. (100)

 

아무리 똑똑하고 강한 여자라도, 이성과의 관계는 '중요하지만' 동성과의 우정은 부수적일 뿐이라는 생각,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허를 채우고 존재 가치를 입증해 주는 건 연애 관계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바로잡는 데 기나긴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102)

맞아!!!! 

 

다 큰 여자 둘이서 세상을 함께 걸어나갈 때 드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자유로운 기분, 그것이 선물이었다. (103)

 

이런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 부모가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의 두려움을, 자신이 무섭게도 '고아'가 되리라는 데 대한 두려움을 함게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죄책감은 왜 드는 걸까? 내 친구들이 자기 부모가 약해지는 것을 (혹은 슬퍼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아파하는 것을) 보게 될 가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거의 늘 자신이 방금 범죄를 저질렀다가 붙잡히기라도 한 양 경악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이런 죄책감의 일부는 이기적 충동에서 나올 것이다. 부모가 아픈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부모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떠오르는 법이고, 역사상 가장 오냐오냐 떠받들리며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세대에게는 그 상황이 그렇게 간단히 여겨지지 않는다. 솔직히 우리는 미래를 그릴 때 자신이 어떨지 상상하는 데 익숙하지, 남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상상한느 데는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아프거나 혼자된 부모가 자신의 미래 계획에 깔끔하게 맞아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기분이 나빠진다. (121)

 

우리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맨 처음 알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죽음을 끔찍하게ㅡ지독하게ㅡ잘못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에게 주는 휴가는 보통 사흘. 그 후에도 6주쯤은 사람들이 당신을 조심조심 대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대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신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애도 기간은 끝난다. 이후에는 사무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거나 하루에 세 번씩 빨개진 눈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다시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정상적으로 느껴야 할 듯한 압박이 든다. (130)

 

나는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가방을 보고 몸서리친다. 모든 것이 죽음의 상징이 된다. 저기 가방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저기 엄마가 부엌에서 차를 담아두던 통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저기 엄마의 뜨개질 가방이, 수표책이, 3월에 작성하신 장거리 목록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131)

 

그러다가 미꾸라지처럼 대화에서 빠져나갔고, 전화를 끊고는 내가 못됐고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이고 참을성 없고 제 일만 우선시하는 딸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죄책감이 묵직하게 찾아드는 것을 느꼈다. (중략)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어머니를 대하기 어려웠던 순간, 괴롭거나 죄책감이 들었던 순간은 종종 내게 많은 걸 가르쳐주는 순간이었다. (148)

 

외로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말 걸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티에 있을 때 느껴지는 단절의 외로움도 있고, 사람과 접촉하지 않은 채 내리 몇 시간이나 며칠을 보내면 생겨나는 고립의 외로움도 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잘 아는 외로움은 일요일 오전의 그리움이다. 이것은 종종 사전 경고도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듯한 외로움이다. 일단 이 외로움이 들이닥치면, 이 크나큰 외로움을 극복하기란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기분이 든다. 만약 우리가 가게에서 외로움을 살 수 있다면, 일요일의 외로움은 커다란 상자에 담겨 있을 테고 그 위에 이런 딱지가 붙어 있을 것이다. '취급 주의ㅡ초강력'.  (184)

 

어릴 때 어느 봄날에 내 방에 앉아서 창밖에서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당신에는 너무 어려서 이름 붙이지 못했던 어떤 기분을 느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은 세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저 창밖에서 나 없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거기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늘 친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것도 많다. 하지만 내가 겪는 외로움은 현실의 상황이나 논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산다. 작고 끈질긴 악마 같은 그것은 가장 고요한 순간에, 그러니까 계획 없는 전겨이나 일요일 아침 같은 때 활개를 친다. 그것은 공허감이다. (184)

 

이 모든 전략은 어느 정도 소용이 있었다. 특히 나쁜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그랬다. 집착적인 연애만큼 사람의 얼을 빼놓는 일은 또 없는 데다가, 만약 나쁜 연애 때문에 외롭다면 최소한 그 감정을 남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집착하더라도(혹은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더라도) 그 감정을 깨끗이 지워낼 수 없다. 외로움은 늘 돌아온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것을 적이라기보다는 지인처럼 여기게 되었다. 흔쾌히 환영하진 못하더라도 존중할 필요가 있는 존재처럼. (185)

 

나는 개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환내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어떤 실망과 단절을 겪었는지, 그들이 우리를 키운 방식이 왜 이렇게 꼬여 있었는지, 이 모두에 대해서 화낸다. 이 괴로움을 놓아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자기 인식과 성숙함과 시간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혹은 왜 그 일이 가능해지는지,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가장 아픈 모서리들이 깎여 나가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192)

 

우리가 술을 마셔서ㅡ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ㅡ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번 싸워볼 기회를. 중독은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인생의 여러 두려운 경험들을 우리가 온전히 겪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독을 포기하면, 그래서 그런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겪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근육들을 구부리게 된다. 자라게 된다. 
(중략) 중독은 즐거움과 기쁨과 놀라움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친밀감, 진짜 웃음, 진실된 통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마취제를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에서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을 되찾을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삶을 살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225)

 

내가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한 것은, 좀 이상하지만, 요전에 남자 친구와 다른 친구 둘과 함께 피자를 앞에 두고 두 시간짜리 <멜로즈 플레이스> 시즌 최종회를 시청한 날이었다. 더없이 평범한 저녁이었다. 네 사람이 모여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조와 제이크와 킴벌리에게 야유하고, 음식과 우정과 웃음이라는 동지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속으로 느긋하게 빠져들어 두어 시간을 보내는 저녁. 특별할 것이라곤 전혀 없는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 같은 인간에게는 드문 감정인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모두 그 방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저 내가 그것들을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발버둥 칠 필요도, 시험을 통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안락과 기쁨이었다. 
그냥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까?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여자가 되면 안 되는 걸가? 나는 평생 이런 질문들과 씨름해왔는데, 그날 저녁에 문득 그 답은 너무나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괜찮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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