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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의 옆에서 다정하게 존재할 줄 알았다. 이것이 그의 가장 신비로운 점이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모두들 커다란 날개를 펼치는 새처럼 우아해 보였다. 그가 옆에 있으면 모두 조금씩 눈동자가 빛나고 입가는 부드러워지고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모두 그에게 친절해지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도 친절해졌다. (13)

 

내가 왕후를 사랑하는 만큼 왕후도 나를 사랑할까? 사랑의 확신을 갈망하는 왕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젊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왕은 사랑을, 오직 사랑만을 원한다는 것은 고통이란 것을 알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24)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먹는 것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어디서 뭘 먹었는지 외에는 이야깃거리가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입이 하던 세 가지 기능, 즉 먹는 것, 말하는 것, 사랑하는 것 중 한 가지만 남은 셈이었다. 내 글 속에서는 집요한 먹방 시대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더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모두들 MBTI 같은 성격유형 검사나 점술에 매달렸고 서둘러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했다. "응, 그래서 그렇다는군." "네가 그래서 그래." (37)

 

우리는 운명을 마스크, 백신, 청결제 등에 맡겨놓았다. (중략) 우리의 상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보다 할 힘이 없는 것에 더 가까웠다. 피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운 불행이 아니라 피할 수 있어서 고통스러운 불행이 우리 불행의 패턴이다. 우리 인류는 지금 이 모습으로 사느라 지쳐버렸다.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 (41)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으로 무사가 말했다. 무사는 뭔가에 푹 빠질 때 아련하게 눈이 빛났다. 그럴 때 무사의 눈은, 잊고 있었지만 그리운 것을 담고 있는 거울 같았다. (44)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말할 때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 있어." 
"뭐지?"
"미래에 우리는 어떤 인간이 돼 있을까? 어떤 인간들과 같이 살게 될까?"
"어떤 인간일 거라 생각해?"
무사는 현재도 외롭고,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외로울 것을 아는 사람 특유의 초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외면하는 인간." (64)

 

한번 본 아름다움은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꽃이 피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꽃 핀 그늘 아래서 이야기와 사랑이 영원히 다시 시작된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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