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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론 호러 :: 구소현

 

<작가 후기>
이 책은 밖으로 나가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비디오를 보고 있는 나와 내 동생을 비난하는 데서 시작했다. 우리는 행동하기까지 너무 오래 잤다. 하루가 다 지나서야 어두운 바깥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20)

종종 유튜버 ㄷㄷ의 영상과 그 댓글을 보면 비슷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온 힘 다해- 안 보게 된다. 

그런데 근래에는 '대학원 고민'이라는 단어가 있어 영상을 보았고, 기존과는 다른 의미로 내게도 기운이 돌았다. 별반 다를 게 없을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살아가는데, 나만 주눅 들 이유는 없다, 뭐 그런. 

 

 

다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절대로 살아 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닿고는 싶었다.
책도 직접 넘겨보고, 잔디도 손으로 쓸어보고 싶었다. 호수 밑에 가라앉아 있는 시체도 더 훼손되기 전에 서둘러 끌어 올려주고 싶었고,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저기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비눗방울도 터뜨려보고 싶었고, 시고 달고 씁쓸한 아이스크림도 맛보고 싶었다. 친구도 만들어보고 싶었고 소설도 써보고 싶었다. (27)

닿다-터치-라는 것.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본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방법 유튜브. 
지금 유튜브 열어보라고.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보았거나 내가 좋아할만한 것들로 빅데이터가 제시해준다고.

정말 그렇다.
그리고 나는 심지어 이 빅테이터에 다른 것이 집계되어 구성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해, 정아와 같은 계정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오직 내 취향의 것들로만 제안받고 싶고, 누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크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김창옥 교수님이 그랬다.
그런 빅테이터 조차도 "터치"로 이루어진다고.
우리가 어려워하는 IT, AI의 세계 조차 "터치"가 있어야 시작이 되는 거라고. 

닿는다는 일. 

 

 

당시 수상 소감에서 말했던 건, '이만큼 했으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생각해보기와 그래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기였어요. 비관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비관적인 이야기로 끝나도, 이야기를 쓰고 있는 저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믿음을 갖는 게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요. 
제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이 친구와 저는 서로에게 안 망했다고 말해주는 역할을 해요. 둘 중 한 명이 "망했어!"라는 말을 뱉는 순간, 다른 한 명은 반사적으로 "아닌데? 안 망했는데?"라는 말을 내뱉는 거예요. 안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조목조목 상황이, 결과물이, 삶이 망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대줘요. 이상한 건 그럼 정말 안 망한 게 돼요. 소설도 비슷한 마음으로 쓰는 것 같아요.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도 안 되는 근거들을 상대방을 위해 열심히 대보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수행을 할 때 저도 힘이 나고요. (33)

 

많은 곳에서 환멸을 느끼지만, 더 많은 곳에서 사랑을 느껴요. 성애적인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길가에 있는 나무들을 보다가도 사랑을 느끼고, 책을 읽다가도 책에게 사랑을 느끼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친밀한 사람에게서 느끼기도 해요. 잠들기 위해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을 때 베개와 이불에게도 사랑을 느낄 때가 있고요. 제게 사랑은 기분 좋은 자극이고,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지만, 다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아마도 쉽게 감동하는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38)

 

구소현 작가에게 독서 체험은 창작의 계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우울할 때마다 좋은 글을 읽습니다. 그럼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쓰는 것 같습니다." 시상식에서 말씀해주셨던 문장인데, 많이 공감이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독서 경험이 삶의 많은 순간에 영감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 뭔가를 하고 싶어집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분명 꿈쩍도 하기 싫었는데 글을 읽고 난 뒤에는 갑자기 집 청소를 하게 된다거나, 밖에 나가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이야기 덕분에 무사히 완수한 일들이 많습니다. 이야기와 만나는 순간, 이야기는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게 되고(그러니까 저를 위해 씌어진 게 되고), 제 편이 되어줍니다. 이야기는 특정 독자를 선택해 만나지 않습니다. 읽으려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이야기와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시트론 호러>는 이야기가 평화를 잃고,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와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면, 어쩌면 유령에게까지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44)

 

 

 

 


위해 :: 이주란

 

수현은 친구가 사는 도시로 갔다. 부부의 아이들은 자꾸만 엄마 아빠를 찾았고 바쁘지 않은 듯 바빠 보이는 그들을 돕고 싶었으나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앉지도 서지도 않은 자세를 취한 게 여러 번이었다. (93)

 

정말 가고 싶었는데 이상하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 중 몇은 막상 별거 없다며 특히 돈가스는 먹지 말라고 말하곤 하지만 수현은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경험해본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 별거 아냐. 재미없어. 뻔해. 맛없어. 먹지 마. 그거 줄 서서 먹는 사람들 이해가 안 돼. 전부 쉬운 말들, 그런 쉬운 말들, 늘 상대로부터만 들을 수 있는 그런 말을 들으며 이해가 안 되고 싶었고. 하지 마. 해. 그거 먹어봐. 별거 아냐. 그거 배워봐. 잘될 거야. 할 수 있어. 무언가가 좋다. 싫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걸 하고 싶었다.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우월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 우월해 보인다면 그런 시선 따위 너그러이 이해해줄 여유도 있지. (103)

 

하지만 역시 억울하다, 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바보 같은가? 혼자서 행복할 땐 어느 정도 통제가 되었는데 누군가와 함께할 때는 쉽지 않구나. (108)

 

요즘의 제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해요.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고 그래서 이런 마음도 있고 저런 마음도 있다고요. 저는 그동안 제 생각이나 마음이 바뀔 때 왜인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자신이 조금 싫었거든요. 자꾸만 지금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설명해야 하는 때가 많았고 그래서 불안했고요. 마음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원래 계속 흘러가는 거구나 한 뒤로는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소설에는 모든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수현에게도 여러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24)

 

제가 어린아이를 자주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일로 어린이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문득 문득 감탄을 하게 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요, 어떤 때는 존재 자체로요. 정말 소중한 시기인 것 같은데 저는 어린 시절의 몇몇 장면 외에는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남아 있는 기억도 저로 인해 각색되었을 것 같아 왠지 아쉽고요. 일할 때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고요, 또 버스나 골목길, 놀이터 같은 데서 어린이들을 보면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살았을까, 많이 울었을까, 집엔 뭐가 있었더라, 어떤 꿈을 자주 꾸었더라, 그런 게 늘 궁금하고 그렇습니다. 어른들도 다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왠지 어른을 볼 땐 마치 어린 시절은 건너뛰고 원래 어른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곤 하거든요. 하지만 눈앞의 어린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게 눈으로 보이고 몸으로 와닿고, 그러면 산다는 게 무척이나 대단한 일로 여겨집니다. 어린이는 다만 자기 삶을 사는 것뿐인데 내가 왜 대단해하지, 조금 이상해서 그 감정에 대해 혼자서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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