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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의 편을 들며 상대를 같이 욕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행동이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슬플 때, 그 사람을 탓하고 욕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도리어 그런 태도가 자신을 돌아볼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 그래서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키우신 게 아닐까? 딸이 상처받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무작정 달래주기보다 지금은 조금 더 울더라도 나중에 다시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바라며 더 번거롭고 귀찮은 쪽을 선택한 나의 엄마와 아빠. 두 분 덕분에 나는 모든 시선에 열려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씩씩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25)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식었다거나 그가 싫어졌다거나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는 이유가 아니라서 더 힘들었다. 그런데 이별과 임신 시도를 두고 어렵게 마음을 저울질 할 때 프랑스인 친구 하나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유리야, 네 앞에는 옵션이 세 가지 있어. 손톱을 자를지, 손가락을 자를지, 팔을 자를지. 지금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건 손톱을 조금 잘못 자르는 일이 될 거야. 잠시 따끔하고 잊어버리는 거지. 하지만 그 아픔이 싫어서 이대로 두다가 네가 영영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면 그때는 손가락, 아니, 팔을 자르는 고통을 느끼게 될 걸. 이제 네 선택에 달렸어." (36)

 

흔치 않은 선택을 한 사람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갖는 일도 갖지 않는 일도, 낳는 일도 낳지 않는 일도 여성으로서 '쉬운' 선택은 결단코 없다는 사실이다. (77)

 

하지만 이 나이에 홀로 임신을 시도해서 성공한 것만으로 나는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남편까지 바라는 건 염치가 없는 것이다. 욕심이 과하면 화가 되는 법. 건강한 아이를 임신한 것만으로 이미 내게는 기적이다. 남편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걸 이제 와서 어쩌겠나. 중요한 건 지금 내 앞에 놓인 행복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셀프로 불행해지지 말자. 지금의 행복한 삶에 전념하자. (101)

 

젠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자꾸만 되짚어보게 된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떤 기억이 평생 남는 거지?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한다. 젠의 첫 기억은 무엇이 될까? 기분 좋은 순간이면 좋겠는데. 그 기억 속에서 내가 찡그리고 있거나 짜증을 내고 있으면 어쩌지? 꼭 24시간, 일주일 내내 방송 촬영을 하는 느낌이다. 젠의 눈과 귀가 카메라가 되어 내 일거수일투족을 기억이라는 필름에 저장하고 있는 것만 같다. 백지 상태의 필름에 내가 주인공인 영상만 끊임없이 녹화되고 있다니, PD님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화가 나는 순간에도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135)

나도 하루의 반 이상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자주 되짚어본다. 
그리고 나도 모든 것에 조심하게 된다. 표정, 말투, 행동. 어떤 한 유형의 '어른'을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데 만약 내 아이 앞이라면 나도 사유리씨처럼 더 열심히겠지. 
그래도 지금은 교무실에서는 편안하게 있으니까, 24시간 내내 라고는 할 수 없을테니까. 

 

젠이 강해지면 좋겠다. 신념이 곧고 솔직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자신의 잘난 면도 못난 면도 정직하게 인정하고, 타인과 진심을 나누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자기보다 나쁜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약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안의 사랑을 주저 없이 나눠줄 수 있도록. 
젠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 나도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독서를 무척 좋아했다.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까지 생생하게 느끼면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 젠도 그런 기쁨을 만끽하면 좋겠다. (138)

강한 사람. 젠은 왠지 강할 것 같아. 멋진 사유리 엄마의 아들 젠이니까! 
그리고 내 랜선 조카니까!!!! ㅠ 젠 따랑해 ㅠ ㅠㅠㅠㅠㅠㅠㅠ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둘의 존재는 OX퀴즈가 아니다. 누군가 X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나와 젠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도 참견도 응원도 감사합니다. (166)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 지지를 받고 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남들의 비난이 두려워 내가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손가락질이 두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러고 보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175)

 

젠이 좀 더 자라면 젠이 듣는 앞에서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그때 젠이 '내가 정말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인지'를 의심하거나 '나는 불행한 아이구나'하고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농담처럼 유쾌하게 웃어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신의 결핍을 긍정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180)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한 사람이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여부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배우느냐의 차이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출산과 육아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돌보다가 더 미성숙한 존재로, 나와 내 아이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퇴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11)

 

공교롭게도 내게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 같은 말을 했던 이들은 모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나'를 과시하려고 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마운트를 취하다'라는 인터넷 용어가 유행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으스대고 과시하며 잘난 척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내게 '부모가 되어야만 진정으로 성장한다'고 했던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은 너는 아직 어린아이다'라는 눈으로 '마운트를 취하려고' 했다. 내가 너보다 어른이라고 잘난 척을 하다니, 이보다 더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 또 있을까.
이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누가 얼마나 아이 같고 어른 같은지를 생각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집에 돌아가 젠과 오리코와 사랑이를 한 번 더 세게 안아주어야겠다. (214)

 

사명감으로 한 일도 아닌데 젠 덕분에 나만 기분 내는 것 같아 괜스레 민망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잊지 말고 젠이 자라면 꼭 이야기해줘야겠다. 엄마가 젠을 가져서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엄마가 네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정말 고마워, 젠. (223)

나도 고마워, 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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