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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 있는 집의 장녀로 사는 건 소위 정상 가족의 장녀로 살아온 20년과 또 달랐다. 이십 대 내내, 나는 가족을 하대하던 이들 때문에 더는 '그 성별'이 우리 집에 없다는 걸 실감했다. 그건 집 안을 뒤덮었던 형형색색의 곰팡이처럼 살면서 처음 겪어본 것이었다. 곰팡이가 사라지고도 그 감각은 지속되었다. (28)

 

저 자신에게만 능동적 역할을 주려는 다정한 말들이 작은 가족을 몇 차례고 흔들었다. 정말이지 열의가 넘치는 무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남성의 빈자리가 결핍이 될 때 드러나는 건 애정이 아닌 격차여서, 나는 보살핌을 바라다가도 문득 그런 게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꽤 많은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보냈던 거 같다. (30)

서울에서 1인가구로, 정아랑 살면서(지금 아닌 과거에) 느꼈던 감정과 닮았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확 결혼해 버리고 싶다고 술집에서 소주잔을 든 채 펑펑 울었는데, 온 힘을 다해 방어하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들었고 아무 품에나 쓰러지고 싶을 만큼 피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해 버리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써야 했다. (31)

 

오히려 아빠의 빈자리로 내가 겪게 된 유의미한 변화들은 나로선 모르는 척하기 퍽 아까운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상하게도 내 안엔 집요한 응시력이 자라났고, 나는 어쩐지 생존 능력이 발달한 작은 동물들처럼 점점 더 기민하고 유연하고 영악해졌다. (31)

서울에는 우리 아빠가 없으니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문 닫은 빵집 앞에서 나는 그 날의 기억을 더듬거렸다. 도태를 운운한 내 말에 엄마가 뭐라고 답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았다. 흐린 기억 속 엄마는 그저 묵묵히 내가 남긴 빵을 다 먹고는, 그 빵처럼 괜찮지만 특별하지는 않은 자신의 작은 가게로 향했던 거 같다. 반면 어디로 향해 있는지도 모르는 채 뾰족하게 갈려있던 내 말은 비교적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런 게 무언가를 정말로 망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자꾸 반복했다. (38)

 

듣자 하니 어떤 자매들은 손을 잡고 여행을 다닌다는데, 나로선 도무지 그런 걸 믿을 수가 없다. 차라리 옆집 할머니가 비밀리에 여성 전용 타투 샵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달까. (앞집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걸 강조하시곤 한다.) 우리 자매는 기껏해야 장난을 치거나 너스레를 떨거나 꼴통 같은 걸 애칭으로 여기는 게 전부다. 정말이지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살가운 편인데도 효원에게만은 너무나도 느끼하게 느껴지는 나머지 그럴 수 없다. 그러니 그 애는 내가 얼마나 자기를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그러면서도 다정한 말 건네기를 얼마나 끔찍하게 어려워하는지 결코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애 몰래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효원이 뭐든 털어놓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언니가 되는 것, 그 애가 어떤 실수를 해도 회복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런 건 단시간에 되지 않을 테니 우선은 그 애가 어떤 실수를 해도 믿어 주는 가족이 되는 것, 그애의 고유함이 무엇인지 함께 지켜보는 것...
그건 적당한 척력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나는 온 힘을 다해 약간의 거리를 두려 애쓴다. 손 닿는 곳의 티슈처럼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언제나 비치되어 있는, 그 정도의 거리와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의 인생에 자꾸 관여하려 들 것만 같아지니까. 사랑하면 왜 자꾸 그러고 싶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45)

 

이제 와선 어린이란 충분히 원숭이같이 굴 수 있을 법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는 찔끔 사회화가 진행된 나와 당연히 그렇지 못한 효원을 비교했다. 큰애가 역시 언니답게 의젓하네! 변명하자면 그렇게 칭찬이 자주 내게 쏠리다 보니, 나는 덜 자란 채로 어른스러운 어린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부모와 조부모는 선량했지만 역시 자식들을 대하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세대였던 거 같기도 하다. (46)

 

내가 불안하고 두렵고 버겁단 이유로 효원을 다그치곤 했던 거나, 왜 나 같지 못하느냐며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경멸하던 것도. 나는 언니이자 효원의 예비 엄마처럼 굴었던 게 틀림없고, 나 같은 언니를 두는 일은 어떤 일들을 자꾸 실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48)

마음이 무겁다.

 

어제는 슬쩍 효원의 노트 필기를 보았다. 익숙한 글씨체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다.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이 자주 그렇듯 수험생 시절 나는 내용 보다는 글씨체에 공을 들이며 공부를 했다. 효원이 그런 내 노트를 가져가 필체 연습을 한 건 나중에 알았다. 자매의 글씨체는 같다. 나를 미워하기에 충분했던 시절부터 효원은 자기만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 애는 나를 늘 지독하게 짝사랑하고 있었다.
언니로 산다는 건 무얼까... (48)

이건 자매 중 언니라면 그 누구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문장이다. 
초반부 이쪽의 글이 너무 좋아서, (처음에는)감탄하며 읽었다.

 

그때부터 효원에게 부러 장난을 건다. 가끔 다정하고도 싶지만 느끼하게 굴었다간 눈물이 날 것만 같고 울고 싶은 사람은 효원이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효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키고 싶은 날엔 효원이 좋아하는 쿠키를 사간다. (49)

 

한동안 효원은 늦은 밤 느닷없이 언니, 하고 말을 걸면서 글썽거렸다. 효원은 언제나 혼자서도 잘하고 싶어서 울었다. 자기가 울고 싶은 날 효원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나는 효원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면 먼저 산 여성은 뒤이어 태어난 여성의 이름을 불러주려고 언니가 되었는지도 몰라서, 나는 언니답게 조금 떨어져 앉은 채 그 애에게서 열심히 내 이름을 지웠다. 걱정이나 참견을 애써 누르며, 조언의 의미는 조언을 구하는 과정 중 네 마음이 정돈되는 데 있는 거라 말해주었다. (49)

 

그래서 코가 다시 매워 오는 날이면 나는 저물어가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필사적으로 그러쥐었다. 낭만을 억지로 상상했고 마음에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 없이 헤어졌다. 번화가에 포진한 결혼정보회사 사람들에게 붙잡혀 번호를 적어주었고 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틀림없이 허우적거리는 모양새였을 것이다. 그토록 물성 가득한 환상에는 정작 물성이 없어 만질 수 없다는 걸 몰랐으니까. 기질은 무섭고 결국 결혼에 대한 환상은 악력과 상관없이 흩어졌다. 그리고 이제 와 나는 그때의 허우적거림을 가만가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둥둥 떠 어디론가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53)

 

누군가를 만나는 건 시간적, 경제적, 체력적, 인류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반면, 내 인류애는 서서히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다른 에너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자를 아주 좋아했지만, 그간 스친 남자들에게 너무 많이 실망해왔던 나머지 더 실망했다간 세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접을 수도 있었다. 그런 건 사람을 냉소하거나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퍽 위험했다. (58)

 

만나는 남자가 페미니스트인 건 당연히 엄청 중요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이따금 기죽을 만큼 미남인 트럼프주의자와 데이트하는 걸 상상하려 노력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지만 관계의 기본값이 꼭 관계의 충만함과 이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이십 대 초반 내가 남자를 만나는 기준은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이었는데, 그런 남자가 너무나 드문 거 같단 이유로 영 아닌 만남을 지속하며 나는 뭔진 모르겠지만 좀 망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망인 몇 차례의 연애를 지난 다음엔 가치관이나 취향이 맞는 남성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만나야 마땅한 인간들에게도 불이 붙지 않을 때마다 또 망했다 싶었다. 그 다음도, 그 다다음도... 한 트럭의 남자를 스치는 동안 나는 상대를 거를 뿐 고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어떤 특징들이 사람을 설명해준다 한들 사랑을 설명해주는 건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안전을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확신 같은 건 아무 데도 없었다. (61)

오.

나의 연애 춘추전국 시절에...... 상대를 거를 뿐 고르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오.

 

만나는 남자가 가난하고 글 쓰는 페미 애인을 지지하는 데다 이따금 비싼 물건을 무심히 선물하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한다. 그 남자는 누구를 추행하지도 죽이지도 않았고, 거기 따른 내 염려를 피해망상이나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대단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개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걸 싫어하는 개인주의자이며, 그 이유로 종종 나보다 훨씬 더 나은 페미니스트 같아 보이기도 한다. (63)

지형이랑 비슷한 것 같다. 영훈이라는 사람.

 

이를테면 상대방의 눈에 내가 맺히고, 내 눈에도 상대방이 맺혔을 때야 나는 우리가 서로 반해 있다고 믿었다. 상대가 나를 눈에 담은 채로 세상을 본다면, 내가 직면한 차별이나 편견이나 폭력적인 상황들을 적어도 날 만나기 전보단 덜 몰라야 마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내게 제대로 반하지 않은 거였고, 나로선 나에게 반하지도 않은 상대와 사랑을 굳이 운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사람은 자기와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서로에게 더 이로워서, 나는 주변의 뼈테로 여자들에게 호기롭게 말해왔다. 거 근사하고 다정하다고 대뜸 속지 말자고! 존중받는 사랑을 해봄세! (67) 

 

그때 영훈은 논리적 해명을 내놓으라면서 내 삶의 전제조차 수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훈은 자신이 모른다는 데 곤두서 있었으므로 나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영훈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마치 과학에 무지한 비전공자에게 전공자가 양자역학을 곧바로 알아듣게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중략)
거기다 나는 영훈을 계몽시키는 데는 영 관심이 없었다. 영훈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스스로 상대방을 덜 모르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다른 누구보다도 서로를 가장 덜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랑을 시작한 셈이었다. 내가 요구받은 해명은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 영훈이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공부해야 할 영역이었다. (68)

 

말하자면 영훈은 유니콘이나 UFO 같은 게 아니라 나랑 똑같이 흠결 많은 인간일 뿐이다. 다만 영훈에게 비범한 부분이 있다면 진심 어린 사과를 잘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점이며, 내게 비범한 부분이 있다면 사람에게 실망하다가도 매번 다시 기대를 걸곤 한다는 점이라서, 우리는 서로의 비범함에 기대 지극히 평범한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다. (69)

 

그런 말들이 나를 오랫동안 불안하게 했다는 얘기다. 왜냐면 나는 찐 페미니스트이고 싶었으니까.
연인은 기득권 남성이다. 그도 나도 서로를 잘 물고 빨아줘 나는 그와의 관계를 사랑으로 짐작해왔다. 다만 애틋한 마음 위로 기득권 남성을 잘 빨아준다던 여자의 조롱이 떠오르면, 내 애정은 내가 글러 먹고 한심한 인간이라는 증거인 것만 같았다. 사랑해, 를 말하던 입으로 지지니 연대니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 한껏 꾸미고 근사한 곳에 가도 여자의 말을 되새김질했다. 내 행복이란 남을 좀먹은 결과물이자 페미니즘을 퇴보시키는 동력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74)

그런 적이 있을 거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잘 빨아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들었던 말만큼이나 잘 빨아준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들었던 말 역시 한 여성의 삶을 파괴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선 현실 속 다정함을 축적해야 가능했다. (75)

 

하지만 나로선 말의 무게와 기왕의 다정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만, 사람이 어떤 말 하나로도 무너질 만큼 나약하다는 걸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변화를 꾀하려는 언어가 분노 없이 다정하게만 발화된다면 변화는커녕 누군가의 무능을 면하는 데 그칠 것이다. 다만 다정함은 나약한 사람에게 내일의 가능성을 남겨두기도 한다. 그런 건 당장의 현실은 못 바꾸겠지만 개인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77)

 

감정은 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감정은 권력을 전복시키기도, 그저 위계를 드러낼 뿐이기도,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생성되기도 했으니까. 다만 나로선 감정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걸 드러내거나 제어하는 방식이 권력과 관계있다고 여겨왔을 뿐이었다. 설령 그 대상이 사회적 약자이고 소수자라고 내 마음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그가 거듭할 때마다 나는 그를 속으로 싫어하는 것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위치가 감정의 조건이 된다면 그야말로 모욕적이거나 시혜적인 태도가 아닐까. 어떤 위치를 이유로 툭하면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을 지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권력이 아닐까. (81)

 

어쨌거나 나는 일을 그만두었고 그 시기 잃었던 심신은 조금씩 회복했으나 잃었던 시간은 회복할 수 없었기에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시간을 거친 뒤에야 모두는 내가 함부로 통제 불가한 온전한 개인일 뿐이라고 거듭 반성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반드시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은 별개로 다룰 수도 있어야 한다고, 사람은 누구나 다층적인 높낮이를 가진다고, 그리해 내가 어떤 층위에선 약자인 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들 그 약자에게 있었던 강자로서의 위계 폭력이 무화(無化)되는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83)

 

맥락을 살피지 않은 논리와 단선적이고 뚜렷한 해석, 자기 마음을 세련되게 호소할 수 없는 이에게 세련됨을 요구하는 것. 나는 그게 지성이 가지 수 있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90)

 

어차피 그럴 거면 확 잘라버릴까?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선택은 쫄보인 나답지 않게 다소 충동적이었는데, 그래버릴 수 있던 이유는 아무래도 그즈음 내가 상호 존중을 매번 설명해봤자 무례가 거듭되는 데 그만 질려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무렵 나는 가시적인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엇고, 숏컷은 더는 상대방의 의사를 내게 투영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 표현처럼 보였던 것이다. (95)

 

어려운 걸 해내는 여성들은 근사하다. 사회가 여성에게만 강권하는 예쁨-코르셋이 잘못되었다고, 더는 불필요한 꾸밈 노동을 억지로 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탈코르셋 선언이란 근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는 친구들의 각기 다른 맨 얼굴이나 편한 옷에서만 나오는 편한 동작 같은 걸 떠올렸고, 그럴 땐 어딘가 헐벗은 기분이 드는 한편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광활해졌는지를 기억해냈다. (99)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나'를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고 무한 긍정하다는 바디 포지티브의 주장은 내가 매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건드리면서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105)

 

나는 엄마에게 받은 만큼의 사랑을 줄 자신이 없다. 그만큼 헌신할 자신도 없고 더는 여자들이 엄마같이 살도록 내버려 둘 자신도 없다. 당장 앞으로의 내 세상이 지금 세상보다 나아질 거라는 자신도 없고 그러니 내 아이의 세상이 불행하지 않으리란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 엄마가 준 반찬을 씹으며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다는 걸 찬찬히 음미하기도 한다. 엄마가 나를 낳아줘서 너무 다행이야, 엄마의 사랑은 정말 대단해. 그런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겠지!
헐, 미친 건가... (117)

나도 두렵다가도 또 그려 보기도 하다가도. 왔다 갔다 하는데, 다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게 받은 무엇도 무뎌지지는 않아서, 나는 여전히 손이 저려오는 날이 있어. 어쩌면 너는 내 감각이나 네가 준 상처를 의심하면서, 여자가 그렇게 유해한 존재라면 연대 따위를 왜 이야기하는냐고 나를 우스워할지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거야. 그럼에도 나는 네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아직도 너와 말하고 싶은 것처럼 느끼니까. 나는 내게 상처를 주었던 어떤 남자에게도 그런 걸 느끼지 않았거든. 
너로 인해 나는 내게 언제나 여자들이 필요했다고, 여자에겐 여자가 커다란 의미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어. 그게 너를 용서한다는 말은 아닌 거 같지만, 나는 용서가 꼭 우리의 서사나 목표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나를 궁지로만 내몰지는 않았어. 그 사실은 내게 여자들이 서로 어떤 의미였고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묻기도 하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건데, 
야. 우리는 너무 미움받아온 나머지, 어쩌면 사랑보다 미움에 더 소질이 있는지 몰라. (127)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의 힘을 믿고 또 그러고 싶다. 언젠가 내 가족이 하느님에게 빚졌듯 세상엔 보이지 않는 그런 커다란 당위가 필요하니까... 종교는 필요한 이에게 삶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바쁜 누군가 대신 돌봄을 돕고, 마음을 위로해주고, 주말의 리듬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선사하고, 감사함이나 뉘우침을 학습시키니까. 그런 걸 빼놓고 내가 겪은 파편적 경험만으로 종교 자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148)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프랑스st는 어떤 상징으로서 쭉 유효해서, 나는 교수나 여자처럼 그 상징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들이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무엇을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저 내가 굳이 왜 그런 말을 옮기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할 뿐이었다. 자리는 무르익다 못해 물러 있었고, 먹던 전도 식어 버려서 나는 서둘러 막차를 타고 집에 왔다. (159)

 

소년은 개뿔, 나이가 먹어도 언제고 가장 빛나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권력, 그게 안 될 때 티 나게 옹졸해질 수 있는 권력이란 불쾌한 것이었다. 내가 동경했던 사람이 얼마나 낡고 형편없는지를 보는 경험이란 전혀 즐겁지 않았다. (162)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내겐 GD가 그랬다. 지드래곤 말고 무튼. 

 

압도적인 메리트를 지닌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사회에서 나이 차이란 숫자에 불과할 리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나이 많은 남자와 나이 어린 여자의 연애가 보편적인 사회, 같은 시간의 유속에서 누가 잃고 누가 잃지 않는지 뻔히 드러나는 사회는 여대생들의 미간을 구기는 반면, 그 얼굴을 노리는 이들에겐 소년이 될 기회를 준다. 나의 교수처럼 그 자신의 권위나 명확한 위계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되는 느낌을 사랑하는 남자들ㅡ알아야 할 것에 전혀 무관심한 남자들ㅡ은 이 나라의 여자들이 일찍부터 숱하게 마주하는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다. (164)

 

소환되는 이런 장면들이란 묵직해 일상 내내 자국을 남겼다. 내 마음에 탄력이 없는 건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지 분간되지 않았다. 가라앉지 않고 남아 있는 글자를 주워보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원하지 않는 부당한 일에 휘말리거나, 체념과 지속이 같은 말인 걸 깨닫거나, 죄책감이 태반인 승리를 힘없이 움켜쥐거나, 그도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거나 하는 일이, 그러니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의 파편 혹은 파손된 삶이 주어지는 일이, 여성인 내가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려 할 때마다 벌어진다는 것. 당장 명확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것들이고, 나는 내가 무슨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 얼굴은 피해자의 얼굴 어느 한 귀퉁이와 닮아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피해자를 조금 이해하고 있다며 그녀 가까이 있어 줄 수 있을까. (183)

박원순 관련한 글이었는데, 나도 그때 많이 화가 났어서 참 어려웠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척 몇 명의 남자를 아무렇게나 만났다. 무거운 일상을 견디는 데 사랑을 답처럼 여겼지만, 사실은 그냥 나를 원하는 '어딘가'가 필요했음을 그렇게 포장했던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만난 남자들은 이미 번듯한 직장 같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나같이 그랬던 거 같다. 몇 해 지나지도 않은 지금 그들의 이름마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 나몰래 머릿속 그들을 치대다 한 덩어리로 대충 뭉개 놓기라도 한 듯 기억 대부분은 곤죽이 되어 있고, 딱히 멀쩡한 놈을 바란 건 아니지만 정말 없구나, 했던 진심 어린 감탄만이 또렷한 것이다. 다만 몇몇은 특징으로나마 뇌리에 남아 있는데, 버리고 싶은 그 기억은 20대 후반 내가 사랑에서 먼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9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없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향이 딱히 믿을 만한 보험이 아니라는 걸 몰랐던 시기, 스쿼트의 문화 취향은 그럴 듯했고, 나는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가 괜찮은 남자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착각으로 곁을 내주는 관용을 부리곤 했다. (중략) 아무튼 그가 내게 준 영향이라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막 만날 만큼 무기력했으며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는 건 취향보다는 확률 싸움이라는 걸 다시 인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내게 있어 스쿼트는 까먹어 버리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195)

나의 과오이기도 하다. ㅠ 그리고 이건 S를 만나면서 정말 깨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그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의 취향이 좋았다. 그의 취향이 멋져보여서 선망했다. 아주 내게 귀한 깨달음을 준 S. 고마울 뿐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이즈같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남아 있었는데, 왜냐면 내가 그런 회사와 그런 사회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오빠이즈는 매너 있었고 선도 넘지 않았으며 나름 괜찮은 감각의 소지자였다. 더해 그는 결혼하기 괜찮은 남자로 보였고 그런 걸 은연중 그놈의 오빠는, 하며 어필하곤 했다. 마침 나는 결혼을 하고 싶고 말고를 떠나 결혼하기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는 적어도 똥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터 같았기 때문이다. (197)

오! 이제는 H가 떠올랐다.

요즘 보기 드물게 '착해서' 만났던 사람. 
그리고 '착해서' 결혼하기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 끝으로 그게 정말 똥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터라고 나도 생각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최소한의 필터는 맞는 것 같다! 똥은 아니었고 그냥 좀 무색무취무미..였다. 결국 거기에 질려버리고 도망쳤지.

 

그에 반해 나오던 모텔에서 나는 아무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어색함도 두려움도 없던 상태는 용기나 뻔뻔함이 아닌 무의미에 가까웠는데 스스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던 나머지 나는 어쩐지 내가 망가졌다고 느꼈다. (198)

 

그 기억에 급습당하자 문득 누군가 나를 위해 알아본 고깃집에 가서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밥을 먹던 게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래전 일이기 때문에 너와 내가 그저 어렸을 뿐이라고 느꼈다. 이미 다 늦어 버리고 늙어 버렸다고 여기던 너의 어림과 나의 어림이 너무 안쓰러워졌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은 잊거나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무엇이어서, 어떻게 기억에 붙잡아두어야 할지 몰라 그저 정말 어렸구나, 하고 몇 번이고 되뇌며 나는 한참 운 후에 화장을 고치고 골목을 나섰다. (206)

지형이를 떠올리던 때와 비슷하다. 
아니지, 지형이와의 기억에 급습당할 때와 비슷한 거네. 

 

너는 모르겠지만, 너와의 만남이 끝난 이래 그렇게 나는 어디서든 격려를 찾아내는 솜씨가 늘었다. (208)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맘아파. 다시 읽어도 맘아프네. 

나에게 지형이가 그랬다. 정말.

 

하지만 얼마 전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지 않다고 증명해야 하거나 반대로 이상함을 증명해야 하는 관계에서는 멀리 도망가라고. 나에 대한 증거는 나뿐이니까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226)

 

처음엔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는데, 반복되다 보니 도무지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잘 들린다고요. 그런 현상을, 점점 소음이 잘 들리는 현상을 '귀트임'이라고 부르는 줄 처음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계속 듣다 보면 예민해진 귀가 특정 소음에 한해 트여버린다나요. (242)

오 2020년.. 내내 지끈거린 소음.. 부장님의 혼잣말? 불평? 불만? 징징거림? 

 

 

이 책을 읽은 건 봄쯤인데 왜 이제야 블로그를 쓰냐면, 책이 좀 힘들다.

막 슬퍼서 힘든건 아닌데, 몰라.. 나는 이 작가님의 말투와 표현이 좀 힘들었다. 
주절주절주절 비생산적인 이야기는 아닌데 끝없이 좀 피곤한 친구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의 마음 같았다.

그래서 블로그에 옮겨적다가도 질려버릴까봐 책장에 꽂아두고만 있었던 것.

다행히 내가 좋았던 부분만을 옮기니 그때 만큼의 피로는 없으나, 그냥 두 번은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 같다. 조금만 더 산뜻하게. 지나치게 문학적이거나 현학적인 표현은 걷어내고 조금만 더 에세이니까, 담백하게. 를 부탁하고 싶다.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는 아니다. 좀 버거운 기분. 나까지 무겁고 어두워진달까. 

여튼 드디어 오래 묵혀온 이 책을 블로그에 남기기 끝!!!!!!! 후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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