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행운의 유효기간이 짧았던 것보다 행운과 불운은 순서대로 온다는 것을 잊은 채 창가 자리에 들뜬 엉덩이를 내려놓고 있던 자신의 이완이 더 언짢았다. (10)
나에게 있어 사랑은 거의 마음먹은 대로 생겨나고 변형되고 그리고 폐기된다. 삼십대 중반을 넘긴 나에게 지금까지 사랑으로 인한 가벼운 비탄과 회한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것도 달콤한 구색이었을 뿐이다.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11)
내가 내 삶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13)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만 매몰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른들의 비밀이 쉽게 접근한 것은 바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어린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루기 쉽도록 어린애를 그저 어린애로만 보려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애로 보이기 위해서는 예쁘다거나 영리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특기만으로 충분하다.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 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21)
내가 아마 우리 학교에서 취했던 자리는 '어린애'의 자리였다.
다음 학교에서는 아마 그러기가 힘들..(?)겠지?
이제는 어떤 자리여야할까.
어쨌든 내가 이렇게 어른들의 비밀 속에서 삶의 비밀을 캐내는 것은 내 삶을 거리 밖에서 보려는 긴장의 한 방법이다. 내 삶을 거리 밖에 떨어뜨리고 보지 못했다면 나는 자폐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21)
물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23)
이제 6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이모가 이형렬과 편지를 주고받은 지도 그럭저럭 석 달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모의 감정 기복에 꽤나 시달렸던 때문에 나는 그 펜팔이 한 삼 년은 된 기분이다. 그동안 삶에 대한 이모의 응석을 나는 정말 싫도록 보아왔던 것이다. (3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삶에 대한 응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시원해!
이 소설의 맛은 바로 진희의 시선이다. 그리고 진희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이번에도 나는 내 실험에 생체를 제공한 보답으로 장군이에게 위선을 선사했다. 누구나 웃음거리로 삼고 싶어하는 장군이에게 스스럼없이 대했으며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뒤처진 과목을 공부하라고 그 반 아이의 공책을 빌려다주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기의 창피한 동기를 일러바치지 않는 나의 성숙된 인품에 감탄하고 있던 장군이는 거의 감격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나이에 비해 속이 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마음씨까지 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61)
순분이, 즉 광진테라 아줌마는 이 모든 것을 견뎌냈다.
아줌마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삶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양복점 뒷방에서 강제로 순결을 잃은 순간 이미 자기의 삶은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자기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달라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나는 아줌마가 자기의 삶을 벗어나서 보았으면 하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의 삶에 드리워지는 그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82)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그런 아줌마의 표정은 오래전에 끝난 전쟁의 뒷소식을 듣는 담담함이라기보다는 폭풍 전의 고요 같은 불길함이 있었다. 단단하게 다문 입속에서 아줌마의 혀는 어떤 반란의 격문을 부르짖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처럼 자기의 고통을 드러내놓지 않는 사람은 그 고통을 가슴속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해소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압축 저장된 그 고통은 언젠가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가슴속에 고통을 꾹꾹 눌러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줌마가 품고 있는 진정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83)
되레 "책가방 뒤졌다고 그러니? 내 편지 내가 가져가는데 뭐 어때?"라고 소유권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쪼꼬만 게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책가방 좀 봤다고 저 야단이야"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이모의 행동이, 스스로도 떳떳지 않다고 생각한 행동을 현장에서 들켰을 때 어른의 권위를 되찾는 마지막 방법으로 택한 뻔뻔스러움이란 걸 알긴 하면서도 지금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온 배달부나 자문관의 권위를 잃은 나는 자존심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85)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글 정말 재밌고 맛있게 쓰는 은희경 작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좋아요!!!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 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스스로 어린애임을 드러내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린애답게 보이는 것이다. 어린애로 보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비상시에는 강력한 무기도 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9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신랄하다 신랄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알았다니까."
입술을 비죽거리며 방바닥으로 내려앉는 이모는 스무 살을 어디로 다 먹었는지 아무리 봐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가 없다. 저렇게 어린애 상태에서 머물러버린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을 고뇌 없이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내게 있어서는 태생의 고뇌야말로 성숙의 자양이었다. '고뇌'라는 그 자양이, 삼촌 방의 다락에서 이루어진 '독서'라는 자양과 합해지면서 비로소 삶에 대한 나의 통찰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12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작가님!!! 너무 매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150)
내가 나약하게 자랄 것을 염려해서인지 할머니는 내게 드러내놓고 애정표현을 해본 적이 없다. 정이 뚝뚝 듣는 말을 들으면 나는 감동하기보다는 유치함을 느끼도록 길러졌다. 또한 내가 할머니를 통해서 은연중에 배운 바로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타인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57)
나에 대한 개인적인 험구를 하다못해 어른들이 변화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기 위한 단 하나의 유리한 조건, 즉 젊은이들이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옛날 일을 모른다는 것을 내세워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이란..." 이라고 결론을 낼 것인데 그런 오해를 하도록 도와줄 순 없다. (19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맵다구요 ㅠㅠ
오히려 그에게는 누이에게 첫사랑의 비밀을 털어놓는 남동생처럼 수줍고 진지한 면이 있다. 비밀을 고백해오는 남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모성애일 것이다. (200)
삶의 이면을 많이 알다 보면 매사에 의심이 많아지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이해심이 많아지는 면도 있는 것이다. (209)
날카롭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삼촌이 여전히 시큰둥한 데 절망한 미스 리 언니가 반격에 나선다는 것이 그만 발악이 돼버린 거라고 짐작해본다. 짧게 동정심이 스쳐간다. 이제 막 사랑을 얻은 사람이 그것을 갖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212)
미스 리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상 중에서도 종구는 가장 처지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종구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단지 모험의 동반자였다. 누가 인생의 동반자와 더불어 모험을 하겠는가. (259)
연애 이야기란 남에게 하면 할수록 달콤해지는 것인지 끊임없이 이형렬의 얘기를 반복하는 이모와, 그 얘기 속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경자 이모를 보면 마치 한지아비를 섬기는 의좋은 처첩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쌍커풀 수술을 받은 며칠 뒤 이모가 "내 대신 경자가 그이 면회 가주기로 했다"라고 말했을 때, 내 눈앞에는 논에서 일하는 지아비에게 갖고 가라고 첩에게 새참 광주리를 이어주는 큰마누라의 모습이 어른거리기까지 했다. (269)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는 그것을 광진테라 아저씨 박광진씨를 통해서 알았다. (275)
불안 때문이었을까. 아줌마처럼 강인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자기가 익히 아는 일은 어떻게든 이겨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닥쳐올 일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그것이 아줌마처럼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자기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296)
아 정말 여기 미쳤지.
그래서 읽다 도중에 감탄하고는, 정아한테 소리내 읽어주기까지 했다.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
와, 이 문장을 만들기까지 작가님은 몇 번을 쓰고 고쳤을까? 아니 어쩌면 한 번에 휘리릭 태어난 문장일까.
뭐가됐든 정말 존경할 수밖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301)
구경이라면 빠지지 않는 광진테라 아저씨도 어김없이 그 안에 섞여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어서 집으로 가라는 시늉을 한다. 실없이 '친한 척'과 '어른 행세'를 동시에 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는 일부러 그늘을 피해 뙤약볕 아래로만 해서 집으로 간다. 맨머리통이 뜨거워지고 몸이 지쳐 나른해지는 느낌이 싫지 않다. (3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희 매워매워 ㅠㅠㅠㅠㅠ
그렇게 단순하고 자기 위주인 것이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지만 그 타고난 성품을 고쳐서 성숙한 인간이 되기에는 이모에게 너무 시련의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도 평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불안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모가 사랑을 너무 평탄하게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318)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저만큼 떨어진 환한 불빛 아래 앉아서 이모가 발톱을 깎고 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다가 밤에 발톱을 깎는다고 야단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갑자기 그런 일상적인 것들이 한심하다. 슬픔과 아름다움, 그리고 비밀의 어둠 속을 막 빠져나온 나로서는 딴 세상같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평화로운 삶들이 시시하기만 하다. (332)
정말 언젠가 내가 느꼈던 마음 그대로를 이렇게 포착해내다니.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서 시큰할만큼.
꼭 내가 진희가 된 것처럼.
대신 눈빛이 더욱 우울해졌는데 그 예쁜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것은 나로서도 바라지 않는 일이라서 나는 속으로 극기훈련치고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탄식하곤 했다. (335)
그런 선생님들의 존재증명이 나에게는 필요가 없다. 엘리트라고 하는 집단은 지금 보초병처럼 졸고 있는 장군이 같은 아이와는 처지가 다른 것이,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긴장하며 예지의 칼날을 벼려놓아야만 직서잉 풀린다. 비록 단테가 <신곡>을 이것보다 열 배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썼다 해도 나는 엘리트의 소명에 의해 자발적으로 고전읽기 시험 준비를 할 것이다. (357)
이모는 이형렬이 자기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사랑이라는 지극히 서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세상을 서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상처받게 마련이다.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 따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서정성 자체가 고통에 대한 면역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이모처럼 감상적인 사람은 삶을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아니 삶이 자기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다. 자기의 행복과 불행의 조종간을 통째로 타인의 손에 쥐여준다면 그 타인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잠시일 뿐이다. (373)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마음껏 그 기쁨만을 누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지를 가슴에 껴안고 즐거워하거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악의로운 삶에게 들키면 안 된다. (381)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거울처럼 조그만 이미지 하나가 파손되면 그것의 파문은 전체로 퍼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미지가 일시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형렬은 지금까지 이모의 애교 있고 순수하게만 보아왔던 면이 그처럼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지도 모른다. 청순한 이미지 하나를 잃음으로써 이모의 순수함은 유치함으로 전락되며 진실함은 거머리 같은 아둔함으로 이형렬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미운 정'의 깊이까지 가지 못하고 '고운 정'에서 끝나버린 숱한 풋사랑의 파국이기도 하다. (387)
작가님 핫 스파이시맛......
절망 이후 이모의 선택은 체념뿐이었으며 내키는 대로 삶에 대해 응석을 부리며 살아온 이모에게는 체념을 알아가는 과정이 일종의 탈태였다. 이모는 번데기의 태를 벗어버리기 위해, 생전 처음 자기의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392)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삻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40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이젠 웃음만 나는 은희경 작가님. 정말.. 심했다. 그냥 혼자 다 해버리시네!!!!
내 버킷리스트에는 신형철 교수님, 강주은씨, 백수린 작가님과의 만남도 있지만 은희경 작가님과의 만남도 추가다.....증말......
내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12)
세상 사람을 남자와 여자 두 종류로 먼저 분류하는 사람들에 의해 두 사람 사이가 깊은 관계라는 소문이 돌았다. 선생님이 불길을 뚫고 정여사 아줌마가 갇혀 있는 곳으로 가긴 했지만 둘 다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해 불이 꺼지고 한참 뒤에야 까맣게 탄 시체로 발견 되었는데 두 시체가 꼭 껴안고 있었다는 것이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었다. (423)
정말 세상 사람을 저렇게만 나누는 이들이 있지.
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따.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따.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445)
그것을 알았다면 이모를 다시 저 눈밭으로 내쫗아버릴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이모의 고통이 그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꽤 희귀한 것을 갖고 있는데, 바로 순정이었다. (462)
상투적인 오해와 착각으로 삶을 위무하고 지탱해나가는 사람들을 약하다고 여겼으나 결국 자기가 그 자리에 서 있음을 깨닫는 역설은, 하모니카와 염소의 쓸쓸한 실루엣으로 압축된다. (490)
(해설)
어느 황홀하지 않은 저녁의 소설 :: 강지희
악의 없는 무심함을 지닌 채 소설을 일러준다.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간계로도 고통과 슬픔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만일 성장이 순수가 오욕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에 익숙해지고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성장을 완료할 수 없다고. 살아 있는 한 어떤 비참 뒤에도 또다시 찾아오는 희미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은 없다고. (493)
미성년의 시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만 집중하느라 곧잘 상처입고 연민에 빠지는 불완전한 '서정시대'로 내던져지는 것에 다름아니다. 뿐만 아니라 되돌아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장은 이미 이루어졌거나, 혹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497)
이번에도 좋았던 은희경 작가님의 작품.
주인공 진희의 얼굴은 모르지만 표정만큼은 왠지 자주 본 기분이다.
아담하고 동그마한 진희의 어깨와 단발머리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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