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 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슬프지만 일을 하고, 슬픈데도 밥을 먹고, 슬프니까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면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6)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나는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고 썼다. 사람들은 묻는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냐고. 글을 삶으로 증명해보라는 요구 앞에서 순간 아득해지지만 조심스레 입을 뗀다. “글을 쓰고 있을 때는 사려 깊어져요.” “짜증과 화가 좀 줄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대단해 보여요.” 같은 고백들. 물증은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본디 글쓰기에는 한 사람 인격의 최상의 측면이 발휘되는 속성이 있다. 그 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잡아준다. 한 사람을 사연과 이야기의 존재로 바라보면 존경스럽다. 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틈틈이 관찰한다. 야쿠르트 아줌마, 버스 운전기사, 학원 가는 아이를 보면서 저이는 어떠한 삶의 사정과 행로를 거쳐 지금 여기에 있을까 상상한다. 한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무작정 혐오하기는 어렵다. 누구라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서로 아무런 삶의 연결고리가 없을 때 더 쉽게 혐오하지만, 서로의 삶이 한 자락이라도 섞이면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는 꼭 생긴다. (9)
글을 쓰고 있을 때는 사려 깊어진다는 말이 참 좋았다. 정말로 사려 깊어져서 함부로 말을 하기도 어려워지고, 말을 하다가도 중간 중간 단어를 찾아 헤맨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는 거의 사라지고 직업 여건상 사람을 만나는 범위가 제한적인 게 사실이라고. 주변의 지인들만 봐도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 모르니까 무심해지고 무심하게 무례해지고, 남의 불행에 둔감해지면서 자신의 아픔에도 무감각한 사람이 되는 악순환에 말려 들어간다.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키”는 일이 간단치 않은 구조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10)
그렇게 불확실한 날들을 10년쯤 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 어정쩡함이 글쓰기의 동력이었음을.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것과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어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 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 했다. 어차피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청소를 하듯이 말이다. (18)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 원래 그래’라고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서글프다. (19)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라는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하는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29)
쫓김의 불안보다 소모됨의 불행이 컸다. 퇴근 후 독서와 집필이 힘에 부쳤다. 감정의 수문이 열릴까 봐 음악을 줄였다. 영화 관람에도 소홀했다. 반응 기회를 잃어감에 따라 감응 능력도 퇴화했다. 도식화된 문서를 생산하며 관료적 언어에 길들여졌다. 돈이 들어오는 대신 체력, 생각, 감각, 음악, 언어, 몽상, 눈물같이 형체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33)
아 우리가 때때로 슬픈 이유를 이렇게 잘 표현해 둔 부분.
쫓김의 불안보다 소모됨의 불행이 더 큰 매일을 살기가 너무 힘든 나로서는 깊이 공감했다. 형체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일은 너무 슬프다.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하셨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분들이 이것이 슬퍼 퇴사를 고민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놀이 능력은 곧 교감 능력이자 변신 능력이고 사랑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37)
정말 공감한다. 이후 나오는 다정함도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과 함께.
약자에 가려진 약자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혼은 어느 날 부모 한 명이 증발하는 일이고, 남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고도의 정신 노동이 부과되는 삶이며, ‘너라도 잘 커야’하는 장기 채무가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한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42)
에구 맘아파라. 우리 반에도, 우리 학교에도, 내 주변에도 그들은 언제나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 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 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42)
좋아서 정아에게도 소리내어 읽어 줬던 부분.
“존은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로 그는 만족이다.” (46)
내게 일침이 된 부분.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 저지르는 실수.
그간은 글쓰기를 열렬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만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나는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평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해야 했던 것이다. (47)
내가 2020년에 부족했던 게 이걸까? 나도 필요한 연습이 이게 아닐까.
글쓰기 수업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함께 읽은 책의 내용에 공감한 여성 학인들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살면서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기가 막혔던 일... 그러면 남성 학인들의 표정은 조용히 어두워진다. 급기야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잘하는데 왜 그러냐”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 말길이 끊긴다. 분노하는 여성은 우습지만 분노하는 남성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49)
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 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거나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변명을 듣고 나니 그의 언행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51)
또 너무나 잘 알던 그남들의 말과 대꾸들이라 한숨이 나려던 찰나, 올바르고 통쾌한 답변이 있어 다행이었다.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는 저 저 저 못된 습성.
늘 동동거리느라 혼이 빠진 나는 틈만 나면 고요히, 단독자의 시간을 탐했다. 아이는 이해했을까. 가족이 아니라 노동을 거부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사회규범은 유니폼처럼 거추장스럽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게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 막힌다. 평소에도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인데 굳이 생일에도 모여야 하는지. 아마도 평소엔 밥상을, 생일엔 잔칫상을 받았던 아버지를 위한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 수혜자가 아닌 뒷수발 드는 ‘안’사람 처지에서는 가족 ‘바깥’이 선물이다. (55)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용쓰기보다 묵언수행하는 엄마로 살고자 했다. 말의 최소화 전략. 아이가 수학 학원만 가겠다길래 카드를 줬다. 성적표를 봐도 안 본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이돌 공연을 보고 싶다기에 표를 끊어주었다. 보통 체구인데도 롱패딩을 극구 L사이즈로 사서는 침낭처럼 뒤집어쓰고 다니는 걸 보자면 잔소리가 목 끝에서 들끓지만 고개 돌렸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기본 임무에 충실하기. 개별성 존중, 자율성 보장, 규제하지 않기. 그러니까 육아 원칙이 아닌 관계 원칙을 아이에게도 적용했다. 그런데 가끔 말의 봉인이 풀려버리고 나의 어설픈 지배와 통제 욕망이 드러난다. (69)
육아 원칙이 아닌 관계 원칙을 적용하는 일이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나 말의 최소화 전략.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 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74)
정아에게 읽어준 부분2.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나마 용감하다. 글 바깥에선 비겁하고 부산스럽지만 글 안에서만은 일관되고 침착하려 애쓴다. 글과 삶의 (불)일치는 내 삶의 영원한 화두다. 잘 존재하는 방법은 어렵고, 글 쓰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삶에서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일찍이 짰다.
글쓰기 수업도 그 일환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학인들은 매번 말한다. “우리 수업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러면 내가 정정한다.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대인배라도 된 듯한 그 착각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임은 물론이다. “작가란 최상의 순간에 자기 인격의 최상의 측면을 갖고 주로 글을 쓰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저마다 삶에 몰입하고 자기 인격의 최상을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상의 존재도 자연 소멸하지 않을까. (83)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기준 설정부터 간단치 않은 거다.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어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연애가 그랬고 공부가 그랬다.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 같다. (87)
그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겨내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곱과(노을이 고와)”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104)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어머니의 은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이어야 했다. ‘평생 밥 당번’으로 사느라 뼈가 녹는 고충을 당사자들은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고통을 남들이 먼저 알아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나쁜 어른으로 오래 늙는다. 살면서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살면서 너무도 필요한 일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라는 걸 절감하던 나날에, 참고서 같은 책이 내게로 왔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할 수 없었고, 엄마의 내부에서도 무너지고 있는 게 있을 거라고 마음 쓸 수 없었다. (중략)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건실한 남편과 크게 속 썩이지 않는 아들딸을 두고도 그럴 수 있다. 그런 걸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배웠다. 배운 사람은 그런 걸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110)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로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116)
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정아에게 읽어준 부분3.
나는 왜 내가 딸이면서도 속옷이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것이라고 생각 못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유품이 될 때의 일이란 정말 생각 조차 못해보았다. 가족의 유실 이후의 삶에 대해 나는 정말 무지했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115)
언젠가 내가 일기에 썼던 것.
‘내가 저번 이별 때는 어떻게 극복했더라? 적어둘걸.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와 궤를 같이 한다. 정말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만 그나마 소화 가능한 일이다.
그 와중에 딸 키우는 아빠로서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글을 봤다. 어딘가 궁색하고 근원이 수상쩍다. ‘아무 남자에게 내 딸 못 준다’는 말이나, TV자막으로 박히는 ‘딸바보’라는 단어가 거북살스러운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 정서와 내 핏줄의 안위가 중한 가족주의에 기반한 발언이다. 그저 단독자로서 성인 남성이기만 해서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운 것일까? (128)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은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은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일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이나 관계맺기의 무능함으로 인해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128)
집 안도 화장실도 거리도 일터도 일상 동선 어디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성에겐 그렇다. 인구 절반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면 ‘망상’ 같지만, 나나 내 딸이나 동성 친구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하다. 만약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하루걸러 죽어도 세상이 잠잠할까. 여성 혐오가 대기에 만연하고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미세먼지만큼도 일상의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133)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 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134)
추상적인 다짐이 아닌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복기해보면 자기 감정과 생각, 욕망의 여러 층위와 갈래가 보이고, 나라는 사람은 하나로 정리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섣불리 장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타인도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워진다. 조심스러워지는 일은 섬세해지는 일. 그렇게 내 판단을 내려놓고 남의 처지가 되어보는 게 공감의 시작이다. (140)
언젠가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나는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고. 저마다 고유한 사정과 한계, 불가피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고. (140)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좋은 점.. 나역시 깊이 공감한다.
그럼에도 때때로 나는 무너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145)
이 침묵, 이 머뭇거림을 나는 한때 견디지 못했다. 글쓴이가 울컥해 낭독을 멈추면 내가 대타로 나서 읽어주었다. 낭독 이후 의견이 없으면 말의 물꼬를 트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표현이 궁했다. 가령, 친족 성폭력은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기엔 별일이고, 별일이라고 말하기엔 별일이 아니어야 산다.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말은 무력하다. (듣고 나서 무어라 말해야 좋은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148)
아 ㅜㅜㅜㅜㅜ 정말 표현이 궁했다 라니. 정말로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말은 늘 무력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동기-로부터 본다”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살림살이에 꼭 필요한 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 발언, 혐오 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149)
나 기성세대인가? 안정과 나태에서 오는 ‘정신의 군더더기’가 한 번씩 느껴질 때마다 당혹스럽다. 편견을 깬다면서 편견을 쌓아가고 있었음이 들통났다. 어른은 성숙, 아이는 미숙 같은 이분법의 잣대로 충고하거나 칭찬하는 권력을 스스로 부여하기도 한다. 이게 단지 나이 탓일까? (169)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왜 수년이 지났는데 지금 말하느냐는 반응부터 나온다. 시간을 만인에게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 겨우 말하는 것이다. (177)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186)
KTX에선 대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도 그랬다. 타인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공기가 팽배한 그곳은 “타자가 두려운 사회”의 축소판이다. 무궁화호 객차 바닥엔 옥수수 속대가 나 몰라라 나뒹군다. 좀 더 허술한 공기가 흐르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오며 “관계 개시 기술”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아주머니들이 필요해요. 은행에 줄 서 있을 때 어느 아주머니께서 ‘오늘 사람이 북적북적하네!’라고 한마디 던지면 주변이 확 온화해져요.” 일본의 사회학자는 ‘아주머니 기술’이라는 참신한 용어로 칭한다. 그건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음을 환기시키는 능력 같다. 모처럼 북적북적한 ‘보통의 행복’을 체험하고 올라가는 길, 잠과 책을 넘나들며 밑줄을 긋는다. 의외로 우리들은 얽어매여 있어서, 개인으로 산다는 게 어려워요.” (201)
아주머니 기술.
2017년 이후로 나도 뼈저리게 느껴서 나도 모르게 애용(?)한다. 정말로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음을 환기하는 일이자, 주변이 온화해지는 기술이다. 뭐 산뜻하게 지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좋다. 만족해. ㅎㅎㅎ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도 더러 고백하곤 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메말라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 ‘문제 있다’고 여기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돈이나 스펙이 아닌 슬픔 없을음을 근심하는 사람의 탄생이 내심 반가웠다. 한 사람은 어떻게 자기 감정과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어떻게 인간다운 세상이 가능한가와 닿아있다. (204)
탄광지대 체험 후 조지 오웰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품위는 모두 그들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혹독한 노동현장과 일상적 가난에 빚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노라.” 아울러 그는 보통사람이 지닌 근원적 품위와 잠재력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보통사람들이 눈을 떠서 대세에 저항하기만 하면 역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212)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질수록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지 않으며,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렬로 우르르 달려가지도 않는다. 공부하는 10대가 있다면 노동하는 10대가 있고, 파업을 모의하는 10대가 있고, 투표권을 열망하는 10대가 있다. 2016년 촛불을 가장 먼저 들었던 이들도 10대고,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장 늦게까지 달고 있는 이들도 10대다.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주길 두 손 놓고 지켜보기엔 청소년은 너무도 멀쩡한, 성숙한, 각성된 정치적 주체임을 느낀다. 늦게나마 청소년 투표권과 노동권과 인권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멀쩡한 어른이고 싶다. (229)
나의 죄책감은 더 근원적인 부분에 닿아 있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듯 외모에 대한 언급을 자중하고 싶었다.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주일 살아보기’가 오랜 목표다. 이 슬로건은 2016년도에 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캠페인으로 꾸밈 노동을 강요하고 외모중심주의를 부추기는 세태에 맞서는 실천으로 제시됐다. (240)
아 나도 마찬가지.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데도, 칭찬을 위한 외모 표현은 좋은 것이라는 편견에 불쑥불쑥 튀어 나오고 또 금세 합리화한다. ㅠㅠㅠㅠㅠ
3월 첫 주의 목표로 다시 삼아본다.
나의 평범했던 날들, 낮에는 흰 빨래가 걸리고 밤에는 거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에서 퍽 무탈한 일상을 이어갔으나 행복이 막 샘솟지는 않았다. 그 안전하고 예사로운 4인 가족 틀을 벗어나 캄캄하고 어지러운 외부 세계와 맞닥뜨렸을 때, 글쓰기로 하루하루 정신을 깨끗하게 빨아 널고 낯선 이웃을 만나고 삶의 가치라는 내면의 등을 밝힐 때 외려 충만했다.
그날 쉼터에 사는 친구와도 얘기했다. 혈연끼리 마주하고 과일먹고 TV 보는 것만큼 같이 사는 생활인들과 빵을 먹으면서 평범함에 관해 대화하는 것도 좋은 일상 같다고. 안전한 거처로서 주거 공간은 삶의 기본 조건이기에 필요하지만 정상가족이라는 환영이 만든 집은 깨뜨려야 할 무엇이라고. 그건 집이 노동과 위험의 공간인 약자들을 배제하고 집을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 점유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니 말이다. (255)
서울에 와서? 아니면 20살이 되어 첫 독립을 하고서? 내게도 생긴 환영.
나는 집을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 점유하는 이로서 그 환영을 더욱 공고히 했고, 이에 가담했었다.
깨어지기 전에 먼저 깨뜨려야지. 그러면서도 실은 여전히 내가 누리는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서 집이 너무 소중한 나는.. 위선자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문장마다 힘이 넘쳤다.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므로. (258)
얼마 전, 세 시간 거리에서 통학했던 한 학인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회식할 때 저한테 멀리서 왔다고 회비 아껴두라고 말해줬었는데 그게 고마운 밤이네요. 오늘 우리 글 모임 회식하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에게 회비 내지 말라고 말하려고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라는 걸 상기한, 덩달아 고마운 밤이었다. (267)
나 역시 록 페스티벌에 처음 간 건 20대였다. 송도에서 열리는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에 남편이랑 두 돌 지난 아이와 동행했다. 중년 남성인 숙소 주인이 말했다. “아줌마도 이런 데를 다녀요?” 질문도 질타도 감탄도 혼잣말도 아닌 그것은 ‘아무말’. 아이와 다니면 존재가 납작해진다. 몰개성, 무취미, 무례함의 대명사 ‘아줌마’는 제3의 성으로서 청소년, 흑인, 여자처럼 머무를 장소를 선택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른다. 트집 잡는 이들을 무시로 대면해야 한다. 1999년에 겪은 일이다. (277)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나 교사가 시키는 무리한 것들을 ‘싫어도’ 해낸다면 훗날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 시키는 별의별 일도 ‘싫은데’ 꾸역꾸역 감당할 여지가 있다. 복종은 습관이다. 성찰 없는 순종이 몸에 배면 자기의 좋음과 싫음의 감각은 퇴화한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지키기 어렵다. 시급한 건 ‘자기 돌봄’이다. 수능 고득점의 초석을 다지는 독서와 논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는 법을 들여다볼 기회와 자기 억압을 털어놓을 계기가 필요하다. 그게 나에게는 책과 글쓰기였는데 내 아이에게는 무엇인지 아직 모르겟다. (289)
“무엇엔가 멈추어본 아이만이 자기 삶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삶을 만난 아이만이 자세히 볼 수 있고, 자세히 볼 때 놀라운 삶의 경이를 만날 수 있다. (중략) 자기를 만난다는 것은 자기 흥을 만나는 것이고 그때 그 무엇에 정신을 팔았다는 말일 것이다.” (303)
한번은 친정에 갔을 때 아이에게 찐밤 으깬 것을 꺼내 먹이는데 그것을 본 엄마 친구가 말했다. “너 어릴 때도 엄마가 그렇게 키웠다.” 순간 움찔했다. 그간 여성의 돌봄 노동에 무지한 사회를 규탄하기만 했지 내가 돌봄노동의 산물이란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한때 밥을 받아먹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336)
나도 움찔했다.
정말 나도 규탄하기만 했지, 나조차 그러한 돌봄 노동의 산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엄마의 말에 귀기울이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너무 고생했을텐데.
벌써 나는 엄마가 날 낳았던 나이보다 더 언니가 되었다.
드물고 귀한 관계. 같이 보내는 시간을 물 쓰듯이 써야만 가능한, 무심히 밥을 먹고 곁을 지킨 인연이 갖는 한가함과 안정감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한 사람이 마냥 담대하고 무모해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342)
지형 생각이 났다.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을 찾아 ㅂ 부장님께 건네야지.
인생 책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옮겨적을 게 많았으니 그도 잘 읽으면 좋겠다.
언젠가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강의를 나도 듣고 싶다.
':::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년세세 :: 황정은 (0) | 2021.05.25 |
---|---|
폴링 인 폴 :: 백수린 (0) | 2021.05.25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0) | 2021.02.03 |
니가 뭔데 아니 내가 뭔데 :: 후지타 사유리 (0) | 2021.01.31 |
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0) | 2021.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