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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단지 혼자의 고단함을 피하자고 결혼 제도의 시월드와 가부장제 속으로 뛰어드는 건 고단함의 토네이도로 돌진하는 바보짓이었다. 나를 충분히 바보로 만들 만큼 매력적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것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략)
게다가 최고로 좋은 점은, 우린 여전히 '싱글'이라는 점이다. 명절이면 각자 부모님께 다녀오거나 안부를 전한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함께 산다는 점에 매우 흡족해하신다. 훨씬 든든하다나. 요리를 잘하시는 동거인의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겨서 보내주신다. 나는 찾아뵙거나 효도 여행 계획을 짤 필요 없이 "맛있다!"라고만 하면 된다. 싱글 생활의 가뿐함과 동거의 유리함이 함께한다. (11)

ㅋㅋㅋㅋㅋ나를 충분히 바보로 만들어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차이는 이해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나는 김하나를 통해 세상에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대체로 잊어버리고 살다가 같이 장을 볼 때마다 새롭게 놀란다. 그리고 한 알 한 알 먹어치우는 동안 의아하다가 조금 슬퍼진다. 어떻게 이런 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34)

 

비슷한 점이 사람을 서로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은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과연 함게 살기 좋은 대상이었을까? 아마 가슴속 깊이 이해하면서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쳤을 것 같다. (37)

 

상수동에 있던 황선우 집에서 자면 다음 날 아침 정말 백사장 한복판에서 지져지는 미역이 된 느낌으로 눈을 뜨곤 했다. 커튼이 무색하게 새벽부터 엄청나게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얼굴이 타고 눈이 머는 느낌으로 아침을 맞았다. 수면 환경에 예민한 나는 그 햇빛이 무자비하다고 느꼈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황선우는 그 느낌을 정말 좋아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온 집이 눈부시게 밝은 느낌. (44)

우리집이 떠올랐다. 2동 14층.
가끔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는 것을 깜빡하고 아침을 맞을 때면, 얼굴이 익어 뜨거워 눈을 뜨곤 한다.

예전 가요 중에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라는 가사가 있다. 헤어지면서 떠나는 여자에게 많이 사랑했다고 울먹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내용이다. 결혼은 사랑의 최대치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완성 또는 성공적인 종착지일까? 그렇게 믿지는 않게 되었지만 나도 결혼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누군가를 너무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생각했다. 20대 때만 해도 몇 년 뒤 나의 미래를 그려볼 때 결혼한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접하는 30대 중후반 이상 여성들의 모습이 대부분 결혼한 사람들이었던 영향이 컸다. 선생님, 대통령, 외교관... 아는 직업이 몇 안 되던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이 늘 그것에 머물듯 20대까지는 상상력이 단조로웠고, 보편적으로 많이 보아온 모습처럼 나도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릴 때만 해도 연애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대부분의 기간에 누군가를 사귀고 있었으니 적당한 나이가 되면 그중 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결혼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결혼을 생각해보는 건 관계의 깊이나 애정의 정도와는 별개로,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결과에 가까웠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도 이 사람과는 결혼하면 어떨까 상상해보고, 사귄 지 석 달밖에 안 된 남자친구와도 얘랑의 결혼 생활은 어떨지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번의 공상을 거쳤음에도 결혼하는 일은 십 몇 년 동안 현실로 벌어지지 않았다. (49)

 

결혼하지 않아서 가장 다행인 점은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딸로, 유능한 직업인이자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던 여자들은 며느리라는 관계에 놓이는 순간 갑자기 신분이 몇 계단은 추락하는 것 같다. 두려운 점은 며느리 노릇을 스스로 신나서 열심히 할 것 같은 기질이 나에게도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웹툰 <며느라기>에서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애쓰는 시기라고 설명하는 '며느라기'처럼 말이다.
동거인의 부모님을 가끔 만나 함께 식사하곤 한다. 두 분은 혼자 사는 딸이 마음 쓰였었는데 이제 옆에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말씀하신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어머니 말씀에 호응하며 장단을 맞춰드리거나,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잔을 부딪치거나 하는 것으로 나는 그 자리에 초대된 몫을 다한다. 두 분을 보며 동거인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공통점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꽤나 즐겁고 따듯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고, 채워주시는 맥주를 마시고 돌아와 시간이 흐르면 두 분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져서 안부를 묻게 된다. 그 댁에 가서 과일을 깎거나 설거지를 할 필요도, 나아가 효도를 고민할 부담도 없다. 밥해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우리 엄마는 우리 집의 요리 담당인 내가 야근을 하거나 장기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동거인의 식사부터 걱정한다. "하나 혼자 밥은 우짜노?" 이렇게 관계에서의 의무는 지지 않지만 자식의 옆에 있어주어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위치라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일도 얼마나 산뜻하고 가뿐할까? (51)

나도 내재되어있어서 그게 사실 두렵다. ㅎㅎㅎ허허

 

그러부터 2년이 흐른 지금, 그 쫄보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뱀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뱀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물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다가 길들이는 법을 터득하게 될지 모른다. 요약하면, 딱 1년 동안 대출의 절반을 상환했다. 빚이 싫고 빚진 상태가 싫어서 다른 데 돈을 쓰지 않고 열심히 모아 갚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인생 최대 쇼핑인 집을 사고 나니 딱히 갖고 싶은 게 없기도 했다. (58)

아 진짜 졸라 멋있다.
인생 최대의 쇼핑인 집 사기.
크....... 나도 반드시...........!

 

요즘 나의 별명은 '망원동 혜민스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내놓은 뒤 결코 멈추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속세를 질주하고 계신 혜민스님처럼, 나도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내놓고는 좀처럼 힘을 빼지 못한 채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63)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런 개그 좋아요 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은 예산 중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도 그랬다. 그중엔 욕조의 문제도 있었다. 요즘은 욕조를 없애고 샤워부스를 설치하는 게 추세라지만 황선우와 나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오랫동안 홀로 생활하며 단하나 정말로 아쉬웠던 바로 그것이 욕조였다. 처음 같이 살아볼까 하는 말이 나왔을 때 이미 욕조에 걸쳐놓고 와인잔과 초와 책을 올려놓을 예쁜 배스 트레이부터 산 우리였다. 그래서 욕조를 없애는 대신 새 욕조를 설치했다. (66)

ㅠㅠ우앙 나도 욕조..
왕보가 1인 욕조를 보고 나에게 선물할까 고민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는데...
어쩜 그렇게 취향을 잘 아시죠?
왕보 얼릉 돌아와 보고싶다(2019.11.27.자 왕보는 푸꾸옥에 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점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나도 앞날에 대한 고민은 매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걱정들이다. 100세 시대라는데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커리어의 어떤 점들을 더 계발하거나 보완해야 할까?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부어온 국민연금을 65세부터나 받을 수 있는데 그 전에 은퇴하면 뭘 먹고 사나? 아니 국민연금 잔고 자체가 바닥나서 내가 납부한 돈을 떼어먹히는 건 아닐까? 큰 병이 들어서 너무 빨리 죽으면 어떻게 하지? 잔병치레를 하며 너무 오래 살면 또 어떻게 하지? 보험을 좀 더 들어놔야 하나? 하나씩 써놓고 보니 점점 더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내가 결혼한 상태라고 가정해봐도 이런 고민들이 사라지거나 딱히 줄어들 것 같진 않다. 결혼한 친구들과 대화해봐도 고민의 성격이 크게 다르기보다 육아나 자녀 교육, 부모님 부양에 대한 몇 가지가 더 보태지는 정도인 데다 때로는 이 고민들을 나누고 서로 덜어줘야 할 배우자와의 관계 자체가 더 큰 고민이기도 한 경우까지 본다. (79)

이렇게 중요한 비밀을 알아도 되는 건가요? 감삼당 황선우님..

 

나의 경우,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격년에 한 번씩 1월 1일에 수건을 일괄 교체하고 있다. 세수 수건 열 장, 큰 목욕 수건 두 장, 색깔은 흰색으로 통일이다. 연말에 미리 사두었다가 1월 1일이 되면 수세미, 샤워볼, 칫솔, 비누, 부엌 리넨 등등과 함께 한꺼번에 교체한다. 원래 쓰던 물건들은 청소용으로 쓰거나 버린다. 수건 열두 장을 사는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색깔과 크기가 통일된, 보드라운 수건 열두 장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쓸 때마다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선반을 열 때마다 반듯한 생활이 시각적으로 증명된다. '수건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수건을 바꾸는 순간까지다.
자취와 독신의 구분에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언제까지를 '자취'라고 부르는가? 그건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어느 날, 스스로의 생활을 '독신'으로 바꾸어 부르는 순간까지다. 그 이전의 생활은 제각각인 수건들의 시기와도 비슷하다. 어찌어찌 시작되었고, 시작되었으니 그럭저럭 이어진다. 내 생각에 자취와 독신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의 생활을 '한시적'인 것으로 여기느냐 '반영구적'인 것으로 여기느냐인 듯하다. (85)

1월 1일 세신뿐만 아니라 저것도 좋은 것 같다!! ㅎ_ㅎ 차용하리라. 땅땅땅.

 

옛날에 설경구, 전도연 주연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황선우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아내'였다. 내가 트위터로만 지켜봐도 황선우에겐 집안을 돌볼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런던으로, 뉴욕으로, 베니스로, 몰디브로 수도 없이 출장을 다니고, 서울 시내에 새로 생긴 모든 핫플레이스를 체크하고, 마당발이라 늘상 온갖 사람들과 약속이 이어지고, 웬만한 음악 공연은 장르 불문하고 다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한강변을 뛰는 이 여자에게는 말이다. 만약 황선우가 남자였다면 그에겐 능력 있다는 칭찬이 쏟아지는 사이사이 "어서 살림을 돌봐줄 아내를 맞아야지" "남자 혼자 사는 살림이 다 그렇지" 정도의 타박이 가끔 곁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은연중에 여자에게는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동시에 집에서 살림도 잘할 것을 요구한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이게 뭐니?"라면서. 누구도 그에게 "어서 살림을 돌봐줄 남편을 만나야지"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동시에 잘해내기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밖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집안을 돌봐줄 '아내'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 '아내'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 때론 가사도우미일 수도. (103)

진짜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했는데!
역시 나만 느낀게 아니구나.

 

황선우의 집에 있던 가구나 수납장들은 자취 시절부터 쓰던 걸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대로 써오며 수납함을 조금씩 더 사는 식으로 늘려온 터라 새집에는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실상 이날까지 지낼 용도로 쓰던 물건들이었다. 이날이라 함은 결혼 등으로 생활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본격적인 삶의 '진짜' 궤도에 오르는 날을 뜻한다. 하지만 사실 삶의 진짜 궤도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학착 시절을 대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내 친구 황영주의 말마따나 학창 시절은 하나의 엄연한 '시절'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싱글로 사는 기간을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처럼 생각한다. 결혼을 점점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은 그 기간이 아주 길어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기간을 '진짜 인생'의 서막처럼 여긴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을 유예하며 사는 셈이 된다. (108)

유예하지 말기.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기.

 

각자가 40년에 걸쳐 쌓아온 생활 습관이란 결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답도 없고, 여러 개의 조항을 지키기로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이 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황선우 집 이곳저곳을 돌봐줄 때는 어디까지나 선심을 베푸는 것이었고 내가 내킬 때 내키는 정도로만 하면 되었다. 집에 대한 최종 책임은 황선우에게 있고 나는 도와주는 사람의 위치였으니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방식으로 정렬하거나 배치한 물건들을 봐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내 집이기도 한 공간에 쌓여가는 물건들의 대왕릉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황선우의 생활 습관이라는 파도가 40년에 걸쳐 쌓아 올린 지형이었으며 나는 앞으로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매일매일 이어질 파도와 더불어 살아가야 했다. 물론 그것은 황선우, 아니 이제 동거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110)

내가 타인과 함께 지낼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
그리고 두려운 것..

 

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다. 타인과의 입장 차이와 갈등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인 이상 그렇다. 꽤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싸움에 대해서도 오해한 채 살아왔다. 스스로 누구와도 잘 안 싸우는 사람인 줄 알았고, 또 살면서 되도록 싸울 일이 없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큰 소리를 내며 다투는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나 열을 올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애인이나 친한 친구와 크게 다툴 만한 상황이 오면 언성을 높이는 대신 냉랭한 분위기 속에 좀 일찍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내 방식이었다. 혼자가 되었을 때 그 마음을 곱씹으며 삭이거나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면 평정이 돌아오곤 했다. 잊어버리고 다시 잘 지내면 다행이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 선을 넘는다 싶으면 그 사람을 서서히 안 보는 쪽으로 정리했다. 서운함이나 불만을 드러내고 표현해서 상대와 부딪치는 대신 마음속에 기대와 실망, 평가의 대차대조표를 기록하고 있었던 셈이다. (111)

나랑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
물론 이것이 또 나의 오해일 수 있겠지만?

 

싸우는 상황에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잘잘못을 따지는 일로 받아들이고, 내 행동에 대한 해명을 하기 바빴다는 거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는지 나의 논리를 이해시키려고 해보지만 상대방에게는 변명일 뿐이다. 화가 나고 서운한 마음을 살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가 되었어야 한다. 싸울 때조차 나의 중심을 나에게만 있었던 거다.
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114)

내가 싸운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일과 말과 같은데,
처음으로 나에게도 적용해서 돌아보았다.
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해명하려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사과하고 입을 다무는가?

 

동거인의 상사였던 <W Koea> 이혜주 편집장님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그날 밤 돌아온 동거인과 나는 서로의 섭섭함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시 화해했다. 테팔 전기주전자는 버리지 않았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0.7리터가 바로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 (119)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침 잠을 깨웠다. 뭘 썰거나 끓이거나 기름에 굽거나 하는 주방의 생활 소음은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감 넘쳐서 꿈에서 미처 깨어나기 전의 몽롱한 정신에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직 지각이 선명하지 않은 감각 기관 중에 코끝으로 음식 냄새가 제일 먼저 스며드는 게 그때는 불쾌하게 다가왔다. 눈 뜨자마자 식탁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니, 지금이라면 행복감에 넘쳐 벌떡 일어날 텐데 말이다. 가족을 떠나 혼자 산다는 것은 누구도 음식 냄새로 나를 깨워주지 않는 아침이 수천 번 이어지는 일이었다. (151)

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ㅈㅁㅈ 백 번 공감이요!

 

나로선 티셔츠 서랍을 정리하는 게 그리 번거로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티셔츠들을 개는 동안 마음도 차분해지고 끝내고 나면 동거인의 칭찬에 뿌듯하기도 하다.
같이 살면 이런 식의 교환가치가 생긴다. 혼자 살 때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둘이 살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상쇄된다. 각자가 잘하거나 쉽게 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161)

이런 점에서 교야랑 살 때 좋았다. 그래서 교야랑 같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손님들을 보내고 나서 동거인과 나만 남자 자연스럽게 살림 활동이 시작되었다.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리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청소기를 미는 매일의 일과. 그리고 여기에는 새해 첫날의 특별한 몇 가지가 보태졌다. 2년 남짓 사용해 낡은 수건들을 전날 미리 빨아 말려두었던 새것으로 싹 교체하고, 칫솔이며 비누, 샤워볼, 샤워커튼, 수세미, 실내화 같은 기물들을 버리고 바꾸는 작업 말이다.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 비싸지 않은 집기를 한꺼번에 새것으로 바꾸는 일은 몸에 닿는 감각을 상쾌하게 만들고 1월 1일의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을 극대화해주었다. (166)

 

스시집을 나와서는 늘 좋아하는 카페 '미카야'에 가서 디저트로 커피와 레어치즈케이크를 먹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바로 그 맛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빠다일 수도, 포장된 해장국일 수도, 예약해둔 스시집이나 변함없이 맛있는 디저트일 수도 있다. 쓰다 보니 어째서 먹을 것만 잔뜩인 걸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먹을 것이 행복한 중요한 사람들인가 보다. 이처럼 여러분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잘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것을 발견했다면 '행복은, 00야!'라고 한번 외쳐보길 바란다. 그걸 알아두면, 힘든 상황에서도 비교적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172)

ㅋㅋ왕보랑 나의 김또깡 감성, 더립커피 감성과 일치하는 부분.
우리도 힘들거나 좀 지칠 때 위안을 받는다.

 

새 회사와 새 일은 확실히 생활에 새 리듬을 부여했지만 내가 금세 거기 맞춰 그럴싸한 춤을 추는 건 불가능했다. 출근 시간과 엑셀이 아니라도 새로운 업무와 규칙, 기술과 조직 문화를 익히느라 몸도 마음도 기우뚱대고 버둥거렸다. 결혼한 친구가 시댁에 명절을 지내러 가서는 "어른이 되어 남의 집에 입양된 기분이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오랜만에 회사를 옮겼더니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고향을 떠나 외국어를 사용하며 낯선 사람들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이방인의 기분이 몇 달 이어졌다. (176)

ㅋㅋㅋㅋㅋ표현좀 봐 ㅠㅠ..진짜..
이느낌 뭔지 너무 잘안다. ㅠㅠ 교야랑 나는 이걸 '알바 처음하는 날의 마음'이라고 부른다ㅠㅠㅋㅋㅋㅋㅋ

 

맞벌이 가정의 평균 가사 노동 시간에 대한 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남성은 하루 19분, 여성은 그보다 2시간 14분 길었다. 19분이라니, 소파에 누운 채 테이프클리너 한 번 굴리고, 누가 차려줘서 먹은 밥그릇 물에 담가놓고, 샤워하고 난 다음 빨래통에 옷 갖다 넣는 시간만 조각모음 해도 19분은 될 것 같다. 똑같이 사회인으로서 한몫을 하는 맞벌이 부부 안에서도 내조의 대상은 남자들이다. 퇴근하면 정돈된 집에 밥이 차려져 있고, 다음 날 입고 나갈 셔츠가 다려져 있고,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기 전에 채워져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 속으로 홀랑 들어가서 살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삶에 대한 거부감도 드는 건, 살림과 동떨어진 성인이 모자라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은 한 사람을 온전하게 완성하는 부분이다. (182)

아 정말 멋있다.
나는 홀랑 들어가 살고만 싶었는데.. 8ㅁ8..

 

그런데 문제는, 안사람인 나는 내 직업적 일을 집에서 하는 것이니 놀고 있는 게 아닌데도 집안일이 왠지 내 몫인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내내 집에 있으니 쓰레기도 내가 버리고 고양이 화장실도 내가 치우고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개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상했다. 집안일은 끝이 없고 집에 있으면 계속 할 일이 눈에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나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끔한 집으로 퇴근한 동거인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나랑 수다를 떨고 트위터를 좀 하다가 자러 들어간다. 다음 날 아침이면 동거인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준비를 한 뒤 출근한다. 그러면 나는 동거인의 가방을 정리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김에 청소기를 돌리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쓰레기통을...이 되는 것이다. 자꾸만 그러게 된다. 동거 초반에는 이것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집안일은 욕조 수채구멍부터 신발장 먼지까지 하려면 끝이 없으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투여되고, 동거인은 그런 디테일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인 데다 원래 이 집안일이라는 게 최선의 결과래봐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유지하는'것이어서 열심히 해봤자 티는 안 나고 조금만 손을 놓으면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87)

 

싱글에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조건은 의식주 다음으로 동네 친구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쉽지만 회사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지는 않은 퇴근길에 부담 없이 밥 먹을까 청할 수 있는 친구, 맨얼굴에 추리닝 바람으로 뒹굴거리다가도 겉옷만 걸치고 나가 한잔하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친구,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린 것 같은 주말에 동네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떠들 수 있는 친구, 따릉이 정류소에서 만나 자전거를 타고 슬슬 공원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는 친구. 도보 15분의 생활 반경 안에 이런 존재가 있을 때 삶은 훨씬 상냥하게 느껴진다. (190)

오 정말 요즘 드는 생각이다.
사실 그간 나는 우정을 소홀히한 경향이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우정보다는 사랑이 먼저였던 때가 많았다. 인정한다.
요즘은 정말 친구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몇번의 깨달음 후에 진정한 깨달음이 오기까지 이 시간을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고마울뿐이다.
그리고 더욱이 마음 맞는 사람 찾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에 더더더더 소중하다.
ㅋㅋㅋㅋㅋ무슨 초딩 일기 같은데 진심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험 점수를 위한 체력장 외에 꾸준히 즐길 만큼 운동 교육을 재미있게 받을 기회도 드물다. 나는 아직도 여학생들에게 관습적으로 주어지곤 한 단체 체육 활동이 어째서 피구였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게임 내내 공에 맞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해 다니다가 결국 맞으면 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맥없는 룰을 가진 데다, 흰 배구공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심어주며 사회에 나와서 써먹을 일도 없는 이런 게임 말고도 여럿이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정말로 축구나 농구라도 말이다. 팀의 일원이 되고, 같이 땀을 흘리고, 목표를 성취하는 작은 경험들이 여자들에게는 더 많이 필요하다. (200)  

여자에게 피구가 잘못되었다기 보다, 그냥 나도 피구라는 게임 자체에 대해 동의한다.
분위기가 다소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ㅠㅠ
그리고 피구를 할 땐, 늘 먼저 맞고 먼저 아웃되는 친구들은 대개 약한 친구들이다.
맞혀도 뭐라 못하는 친구들. 또 공을 던지는 세기도 맞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반의 모든 학생들은 그걸 보고 있고, 그 분위기에서 숨쉬며, 그 모든 것을 배운다.

 

몸을 강하게 만들 필요를 알고 또 몸을 사용하는 재미를 느끼는 길에 늦게라도 접어든 것은 다행스럽다. 지금은 돈만큼이나 근육을 모으는 일이 중요한 노후 대비라고 여기게 되었고, 무엇보다 운동의 즐거움을 귀찮음과 겨뤄볼 만하다는 걸 아니까. (201) 

나도 알고싶다. 알아야지 이제!

 

운동에 대해 내가 롤모델로 삼는 사람은 인스타에 가득한 몸짱 트레이너도, 어떤 프로 운동선수도 아닌 김하나의 어머니다. "느그, 늙으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나? 체력이다." (205)

 

호의. 이게 '원래의 마음' 아닐까? 관습과 가족 관계와 책임과 의무로 짓눌려버리기 이전의, 좋아하는 친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갖는 친근한 마음. 내 자식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 나라 모든 며느리, 사위, 장인, 장모, 시부모들에게도 원래의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왜곡 없이 이 원래의 마음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열무김치와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 먹는 우리가 역시 위너인 것 같다. (232)

크.. 멋져. 이게 진짜 위너임. 인정이요 ㅠㅠ

 

우리는 둘 다 파자마를 좋아해서 여러벌씩 갖고 있다. 언젠가 동거인이 파자마를 예찬하는 칼럼에 '휴식을 위한 수트'라고 쓰기도 했듯이 집에서 아래위 한 벌로 질 좋은 소재의 잠옷을 갖추어 입고 있으면 편안하고도 기분이 좋다. (233)

와ㅠ 휴식을 위한 수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거 인정이다!
잠옷은 그냥 늘어난 티와 아무 바지가 아니라, 위아래 맞춰서 입는 보드라운 잠옷이 진짜 잠옷이다.
그렇게 집에 있을 때도 갖춰 입으면 정말 삶의 질이 높아진다. ㅎ_ㅎ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렇게 바꾸어도 말이 될 것 같다. "사람은 멀리서 보면 멋있기 쉽고, 가까이에서 보면 우습기 쉽다." (235)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들일수록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는데, 아이들까지 있는 가족의 주양육자인 여성이라면 그렇게 충전할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휴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에서도 내내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해 움직이며 일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1인 가구, 그리고 가족이 있는 사람 사이에서는 말하자면 고독의 빈익빈 부익부가 벌어지고 있다. (238)

 

도착 층의 플라스틱 벤치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지난 열 달간 누군가와 같이 살며 나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일주일간 나에게서 다시 사라졌던 그것에 대해. 타인이라는 존재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귀찮게 하게 마련이며 가끔은 타이어 파손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만들기도 한다. 동거인이 없는 일주일 동안 내 생활은 아주 매끄럽고 여유로웠으며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상실은, 웃을 일이 사라졌다는 거다. 나는 일이 많고 고된 주간을 보내면서 힘들어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가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쩌면 혼자 거친 식사를 하고 내내 긴장한 채로 지낸 데다 늘 유쾌하게 밝혀 있던 농담의 스위치가 꺼지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졌던 건 아닐까?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241)

 

나는 친구들에게 "건넌방에 '잠만 잘 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집 안에 나혼자만 있고, 집의 안위가 전적으로 나만의 책임이라는 사실은 불안과 피로를 가중시켰다. 마치 사시사철 어디엔가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혼자 살면 불필요하게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처음에도 밝혔지만 나는 오랫동안 혼자 사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종일 TV 한번 켜지 않고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마치 혼자 여행 다니다가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마음이 놓이면서 그제야 이전에 얼마나 긴장한 채,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다녔는지를 때닫게 되는 것과도 비슷했다. (249)

 

운전을 할 때, 마을버스를 탈 때, 세상은 제각기 다른 속도와 프레임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도 새 자전거가 주는 감각은 MX돌비 애트모스 같은 강도다. 출근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그렇게 따사로울 수가 없고, 신호 대기에 멈춰서 맞는 가을바람은 더없이 청량했다. 다음 날 아침 자전거를 탄다는 생각을 하면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나는 깨달았다. 아, 이래서 멈출 수가 없었던 거구나. 청담대교까지 막 40km를 달리게 되고 마는 거구나. (257)

 

직장인들은 연말 정산 때 1년에 10만원까지 정치 지원금을 돌려받는데, 나는 나의 이익을 대변해서 일하고 있는 여성 정치인을 한 사람 정해서 10만 원씩을 후원하는 걸 매년 나만의 의식처럼 지켜오고 있다. (270)

오 나도 몰랐던 사실.
나도 2020년부터는 10만원씩 여성 정치인을 후원해야지! ㅎ_ㅎ
좋네.
매년 하나씩 할 줄 아는 것이, 하는 일이 느는게 신기하고도 좋다.
진짜 조금씩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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