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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께서는 조금 더 고단수의 방법으로 벌을 주셨는데, 말이 아닌 침묵으로 상처를 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말을 붙일 만한, 물어보거나 설명할 만한 존재로 평가하지 않을 때, 그것은 나에게 더욱 큰 정신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117)
에메렌츠의 뒤를 쫓아갈까 하다가 비이성적인 수단으로, 규율 없이 드러나는 그녀의 고착된 성향을 바로잡아놔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118)
폴레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가 알았다면, 폴레트의 마음을 되돌리도록 시도해봤는지 에메렌츠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어요." 에메렌츠가 말했다. "앉으시겠어요? 앉아서 콩 까는 걸 도와주세요, 이것으로는 우리 네 명에게 부족해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야죠. 여기 왜 머물러야 하겠어요. 우리는 그녀의 삶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준 거예요. 집에서도 그녀는 고통받지 않았으며, 대가 없이 그 허름한 집에서 사는 것도 허락되었지요. 게다가 나는 그녀에게 모임도 주선했어요. 슈투도, 아델도 그리고 나도, 그녀에게는 우리 모두가 충분치 못했지만, 그녀의 그 모든 이상한 고정관념을 좋은 마음으로다 들어주었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마저 들어주었어요. 가끔 프랑스어로 말했거든요. 프랑스어로 말해도 우리가 대부분 알아들을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얘기만을 갈라진 목소리로 읊어댔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고독하다는 것을요. 나도 알고 싶은 게,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도 단지 생각을 하지 못할 따름이에요." (137)
"에메렌츠," 다시금 말을 걸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내가 죽는 걸 허락하겠어요?"
"물론이에요."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니요."
"하지만, 내가 그 어떤 것도 구하지 못했더라도, 나중에는 그 모든 게 드러났을 거예요. 생선, 고양이들, 오물."
"어찌 되었든, 그러고는요? 내가 뒈지도록 당신이 놔뒀다면, 그 때에 가서는 그 모든 것이 드러날 수도 있었겠지요. 망자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겠어요?" (314)
아주 예리한 칼로 사람의 심장을 찌르면, 그 사람은 바로 쓰러지지 않는다. 에메렌트를 잃었다는 의식이 지금 우리 마음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차후에 우리를 동요하게 하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심장을 찔린 우리는 나중에 땅으로 쓰러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골함처럼 믿기지 않는 형식으로 안장된,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볼 수 있는 여기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앞으로 절대 그녀가 빗자루질을 하지 않을 그 길에서, 또는 아무도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상처 입고 고운 발을 가진 고양이들이나 떠돌이 강아지들이 하릴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정원에서 우리는 그녀를느낄 것이다. 에메렌츠는 우리 모두의 삶에서 한 조각을 가져갔다.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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