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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드라이브
힘들고 지칠 때 고향을 찾아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식의 말을 나는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번의 드라이브는 내게 평안 비슷한 것을 주었다. 내게도 고향의 어떤 점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는데 어쩌면 이런 호젓함인지도 몰랐다. (52)
그런 나약한 말들
부장은 물을 마시다 자꾸 흘렸다. 입에 제대로 갖다대지도 않고 성급하게 잔을 기울인 탓이었다. 자신의 입이 있는 위치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정은은 축축해진 앞섶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는 부장의 모습을 부주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정은과 마주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 그 때는 그런 부주의함이나 성급함을 발견해도 오히려 자신에게 빨리 달려오려는 개를 보는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었다. 정은은 마냥 불편한 사람에게서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겹쳐 보는 자신이 징그러웠다. (127)
수영씨는 사람이 왜 이렇게 순진하냐는 듯, 정은을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다들 서로가 납득하지 못하는 뜻밖의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부장에게도 그런 면이 있을까. (131)
두 사람은 멀기 때문에 가까웠다.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정은은 가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비밀이 바로 선생님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142)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정은이 지나는 일들은 그가 이미 지나온 것들이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돼, 답을 제시해주었다. 자신이 곤란해하는 일을 그도 이미 겪었다는 것,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 무사히 통과하여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은은 안심이 됐다. (147)
공원에서
나는 그 일을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했다. 그렇게 소거해버린 일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데,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는데, 범죄를 저지르고도 되레 억울해하는 그 남자 같은 남자를 일컬을 말이 없는데, 사전에는 많은 말들이 꾸역꾸역 쌓여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역겨웠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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