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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박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울다(?).

뭐랄까 교수님을 처음 뵀는데, 누군가 자꾸 떠오르는 인상이셨다. 누굴까 누굴까…
그리고 수업을 하면서 내내 웃으셨다.
아니 내내라는 말 보다는 “칸트”의 사상을 정리해줄 때… 해사하게 웃으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절로 넋을 잃는다. 학문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노학자의 모습이란…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뭐랄까, 교수님 자체가 상당히 홀리스틱하신 분 같았다. 본연적 의미의 홀리스틱 보다는 세속적임의 반대에 더 가까운 홀리스틱. 정말 “청빈”해보였다.
칸트가 도덕형이상학을 전개하며, 신을 요청하게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오래 오래 살다보면 언젠가 신을 요청하게 된다고, 희망이라도 하게 된다고. 우리가 겪는 일들을 감히 인간이 어찌 모두 품을 수 있겠냐고.
그리고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바라보던 “나”만이 진정한 나인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 이 육신의 나로서 매몰돼 어떤 일에 울그락 불그락 하기도 하고, 돈독에 오르기도 하고, 이 신체가 내 것인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아니라고. 여남은 평생에 무언가 남아있을 것 같은가? 아니라고 없다고. 생은 참 짧다고. 그리고 교수님의 친구들도 입을 모으지만, 진정한 나를 알게 되고 주시한다면 목전에 놓인 죽음도 무섭지 않다고. 자연스럽게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니까.
이 모든 말씀을 정말 수도자와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냥 갑자기 지난 추석에 우리 할머니도 떠오르고, 라샘도 떠오르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전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물며 운전을 시작했다고, 이제는 되풀이 되는 꿈으로 교통 사고가 나는 꿈을 꾸기도 하는 나인데.
아마 2학기에 가장 잘 한 일은 박 교수님의 수업을 뒤늦게라도 들어가게 된 것 아닐까. 교수님의 수업과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성당에 가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수도자와 같은 표정이 되어야지.
수도자 같은 모습이 되어야지.

오늘 청소, 인테리어 사장님을 각각 만나뵈며, 게다가 수업은 늦을 것 같지… 등등 마음이 조급했나보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막 주차한 지금, 이제야 정신이 든다. 그리고 매일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 더 이익을 보려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어떻게 지내는 걸까? 반나절도 힘든데… 집에 오는 길에 그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께서 알려주신 가치는 “보시”였다. 베푸는 게 더 기쁨이고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나는 그런 사람으로 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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