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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두루 딥 워크에 헌신했다는 사실은 강조할 만하다. 몰입의 가치를 빠르게 잊고 있는 현대의 대다수 지식 노동자들의 행동과 크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2%)

 

문제는 이 피상적 작업으로의 전환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산만한 정신 상태를 오래 지속하면 딥 워크를 수행하는 능력이 영구적으로 약화된다. (2%)

 

다시 말해서 딥 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주장한 대로 대다수 지식 노동자들은 딥 워크를 수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벤은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일하던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항상 인터넷에 들어갔고, 이메일을 확인했어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충동적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3%)

 

나는 무료한 상태에 익숙하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유익한 능력이다. 특히 라디오에서 느리게 이어지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야구 중계를 듣는 느긋한 여름밤에는 더욱 그렇다. (6%)

 

다시 말해서 재능은 대량으로 사서 필요한 수준까지 합칠 수 있는 일상품이 아니다. 최고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모든 공연자에게 접근할 수 있고, 모두의 q값이 분명한 시장에서 소비자는 최고를 고르기 마련이다. 능력 면에서 1위와 2위의 차이가 작다고 해도 슈퍼스타는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8%)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11%)

 

워크숍 참석자들은 책에 파묻혀 지내다가 가끔 원대한 아이디어와 마주치는 학자들에 대한 고정관념대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생산성을 체계적으로 풀어야 할 과학적 문제로 여겼다. 애덤 그랜트는 이 과제를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중략) 특별히 그의 방법론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듯 보이는 요소가 있다. 바로 어렵지만 중요한 지적 작업을 일정한 기간 방해받지 않고 길게 진행하는 것이다. (중략) 그랜트에게는 당면한 작업을 끝낼 때까지 엄격하게 고립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3%)

 

"과제 전환 과정에서 주의 잔류 현상을 겪은 피실험자들은 다음 과제에서 부실한 성과를 냈다." 잔류물이 많을수록 성과가 나빴다.
주의 잔류 개념은 왜 집중 강도 공식이 옳은지. 왜 그랜트가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랜트는 다른 과제로 넘어가는 일 없이 어려운 가제에 오랫동안 매달림으로써 주의 잔류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해당 과제의 성과를 극대화한다. (중략)
10분마다 이메일 수신함을 잠깐 확인하는 일은 무해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이메일 수신함을 화면에 항상 띄워 놓는 과거의 관행 보다 낫다며 이런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리로이는 그다지 나은 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잠깐 이메일 수신함을 확인하는 순간 주의를 기울일 새로운 대상이 생긴다. 게다가 바로 대응할 수 없는 이메일을 읽으면(거의 언제나 그렇게 된다.) 완료되지 않은 과제가 생긴 채 원래 하던 과제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미완료 상태로 과제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의 잔류는 성과를 저해한다. (14%)

책에서는 이메일로 대표되지만,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그 예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지금처럼 리뷰를 쓰면서"도" 여전히 들락날락 카톡을 확인하고 있다.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마트와 공저자들은 자주 인용되는 연구를 통해 지식 노동자들이 일하는 양상을 관찰한 후 짧은 시간이라도 업무가 중단되면 과제를 완료하는 시간이 상당히 지체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는 학자 특유의 온건한 어조로 "피실험자들은 업무 중단이 매우 해롭다고 밝혔다."라고 정리했다. (17%)

그런데 이걸 타인에 의해서도 아닌, 내 스스로 자행하고 있다니. ㅠ

 

상시 접속 문화가 생활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두 번째 이유는 쌓여 가는 이메일에 신속하게 답신을 보내면서 생산성에 만족을 느끼는 가운데 수신함에서 일과를 보내는 것이 용인되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20%)

상시 접속 문화.
쓰고 보니 더 무서운 일이네.

 

"분주함은 생산성과 동의어가 아니다"

연구 중심 대학의 교수로일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직업을 통해 누리는 한 가지 혜택이 있다면 명확성이다. 연구자로서 얼마나 잘하는지 혹은 못하는지 여부는 주요 논문을 발표했느냐는 간단한 문제로 귀결된다. (21%)

 

비슷한 현실이 많은 지식 노동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은 생산성을 증명하며 밥값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이 목표를 구성하는 요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중략)
그래서 이 간극을 극복하려고 많은 지식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던 최후의 시대인 산업 시대로 회귀하는 듯 보인다. (중략)
나는 지식 노동자들이 가치를 증명할 더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갈수록 분주한 모습을 보이려 든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성의 대리 지표로 쓰이는 분주함: 생산성과 가치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없는 상황에서 지식 노동자들이 산업 시대의 지표로 퇴행하여 겉으로 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이려 드는 것"
이런 태도는 몰입을 저해하는 많은 행동들이 만연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항시 이메일을 보내거나 답하고, 끊임없이 회의를 잡아서 참석하고,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인스턴트 메신저로 말을 보태며, 개방형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들려주는 등의 행동은 공개적으로 분주한 모습을 드러낸다. 분주한 모습을 생산성의 대리 지표로 삼으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22%)

찔린다.
나도 좀처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는 분주해야만 안도하고 만족하기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서는 무료함을 어떻게서든 견디고, 누려보려고 꽤 애를 썼던 것 같다(그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버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걸으면서, 샤워하면서 정말 나는 가만 있지 못했다. 뭐라도 '보'거나, '읽'거나, '듣'거나 해야만 흘러가는 시간을 생산성 있게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다.

그나마 내게 무료한 시간이 있는데, 아마 지형이와 보내는 주말이 그것이다.
'그냥' 누워 있기도 하며, '그냥' 걷기도 하고, '그냥' 쉬기도 한다.
이 자체만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무료함을 즐기는 건강한 나이지만, 주말이 끝난(대개 일요일 오후) 시간부터의 나는 다시 분주하려 안달난 모습을 보인다.
아마 '잘 쉬었으니 이를 상회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낳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일 것이다.

이 책의 이 부분이 너무 찔려서, 의식적으로 행동에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는데... 정말 쉽지 않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생활의 모든 것을 생산과 휴식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지냈던 습관이 좀체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균형이 생기겠지.

 

지식 노동은 조립 라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보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일은 종종 분주하게 해서는 안 되며, 분주한 활동으로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다. (22%)

 

동료들이 다정해서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소통을 한다고 해도 피상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유혹적인 환경에 정신을 팔면 갤러거가 신경과학을 통해 파악한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밝혔다. "5년 동안 주의에 대한 글을 쓴 후 몇 가지 뼈아픈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느슨한 정신은 악마의 작업실'이라는 말이다. ... 집중력을 잃으면 우리의 정신은 삶에서 잘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지닌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피상적인 일들에 매달리면 기운이 빠지고 속상한 하루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설령 주의를 빼앗는 대다수 피상적인 일들이 무해하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28%)

 

"최고의 순간들은 대개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 속에서 유체나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일 때 찾아온다."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정신적 상태를 몰입flow이라 불렀다. 그가 발견한 내용은 당대의 통념과 어긋났다. 대다수 사람들은 여유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일을 적게 하고 해먹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연구 결과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료한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실제로는 더 즐기기 쉽다. 몰입 활동처럼 일에는 목표와 피드백, 과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한다. 반면 무료한 시간은 체계가 없어서 즐길 만한 대상으로 구체화하는 데 훨씬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경험적 방식으로 측정한 결과를 보면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일할 때 더 행복하고 쉴 때 덜 행복하다. 또한 경험 표집법 연구에서 증명한 대로 몰입하는 경험을 많이 겪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 즉 사람은 어려운 일에 깊이 몰입할 때 최선의 상태를 누린다. (29%)

정말 동의하는 부분!
그래서 상술했듯, 무료함과 몰입의 균형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

 

계몽 시대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구분하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웠다. 이 구분은 자의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서서히 허무주의를 퍼뜨린다.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이런 우려를 드러냈다. "계몽을 통해 자율적 개인을 받아들인 형이상학적 수용은 따분한 삶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피하게도 살 수 없는 지경에 가까운 삶으로 이어진다." (중략)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결론에서 장인 정신이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신성성에 대한 감각을 다시 여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중략)
수작업만이 특별히 의미의 원천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높은 수준의 기술을 뒷받침하는 모든 노력은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낳는다. (30%)

 

다시 말해서 드레이퍼스와 켈리가 말한 의미를 창출하려고 반드시 헛간에서 땀을 흘릴 필요는 없다. 지식 경제에 속한 대다수 숙련 노동에서도 장인 정신을 발휘할 여지를 찾을 수 있다. 저술가든, 마케터든, 컨설턴트든, 변호사든 상관없다. 당신이 하는 일은 공예이며, 능력을 길러서 진지하고 세심하게 발휘하면 뛰어난 수레바퀴 장인처럼 일상에서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중략)
비영리 조직에서 일하거나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일자리는 삭막하고 단조로워 보인다. 드레이퍼스와 켈리의 철학은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해 준다. 그들이 언급한 장인은 드문 일을 하지 않았다. 인류사를 통틀어 대장장이나 수레바퀴 장인은 대개 화려한 직업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직무는 무의미하므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 (31%)

 

1부의 첫 두 장은 실질적인 문제로서 딥 워크가 오늘날의 경제에서 갈수록 귀중해지는 동시에 (다소 자의적인 이유로) 드물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형적인 시장 불일치의 사례다. 그래서 몰입 능력을 기르면 성공할 수 있다. (32%)

 

안타깝게도 산만함을 몰입으로 바꾸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몰입을 방해하는 주된 난관, 피상적인 대상으로 주의를 돌리고 싶은 욕구를 자세히 살펴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이 욕구가 어려운 일에 집중하려는 시도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빈도와 강도를 과소평가한다. (33%)

 

시간이 지날수록 방해 요소들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한정된 의지력을 고갈시킨다. 의도와 무관하게 당신에게도 같은 일이 생길 것이다. 습관을 현명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략)
딥워크 습관을 개발하는 열쇠는 단지 의지만 품는 수준을 넘어서 온전하게 집중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지력의 정도를 최소화하는 일과와 의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산만한 오후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 갑자기 인지적으로 어려운 과제로 넘어가려면 주의를 돌리는 데 상당한 의지력을 소모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시도는 자주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면 오후가 되면 딥워크를 할 수 있도록 조용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에 일과와 의식을 수행하는 현명한 방식을 쓰면 일을 시작하고 계속하는 데 필요한 의지력이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딥워크를 수행하는 데 훨씬 자주 성공하게 된다. (34%)

 

고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융과 그랜트 그리고 펄로의 피실험자들이 발견한 대로 사람들은 대개 기간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이를 확실하게 알리며, 해당 기간이 지난 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연락을 끊을 권리를 존중한다. (37%)

 

운율적 방식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이 방식에 따르면 딥워크를 지속하는 가장 쉬운 길은 단순하고 꾸준한 습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딥 워크를 하려고 마음먹기 위해 기운을 쓸 필요 없이 리듬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중략)
이 책을 위해 인터뷰를 할 때 채플은 운율적 방식이 "엄청나게 생산적이며, 죄책감을 없애 준다."라고 말했다. (38%)

 

예술가들은 영감에 따라 일하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창의성이 벼락이나 번개처럼 내리치거나 샘솟는다는 통념이 있다. ... 그러나 (나의 작업을 통해)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끔직하고도 끔찍한 계획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사실 창의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영감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뉴욕 타임스> 사설에서 데이비드 브룩스는 더욱 직설적으로 "예술가처럼 생각하되 회계사처럼 일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략은 딥워크를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이루려면 앞서 언급한 주요 사상가들처럼 엄격하고 유별난 방식으로 의식ritual을 만들어야 함을 말해준다. (중략) 그들이 진지한 작업을 하기 전에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했다면 훨씬 작은 성과밖에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41%)

 

에든버러 성 근처에 있는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들어가겠다는 롤링의 결정은 딥워크의 세계에 속하는 흥미롭고도 효과적인 전략인 거창한 제스처의 사례다. 이 전략의 개념은 단순하다. 바로 딥워크를 뒷받침하는 상당한 노력이나 비용을 수반하여 환경에 극단적인 변화를 가함으로써 일의 중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욕구가 줄어들고, 의욕과 활력이 늘어난다. (42%)

고등학생 때부터 굳이(?) 심자를 신청하거나, 대학원을 준비하며 굳이(?) 독서실과 스터디 카페를 결제한 나의 경우도 이에 해당하리라. 그리고 실제로 이는 효과를 낳았으니, 딥워크를 위한 전략이라고 충분히 일컬을 수 있다.

 

이 모든 사례에서 몰입을 가능케 한 요소는 단지 환경의 변화나 고요한 장소에 대한 탐색만이 아니다. 주된 요소는 당면한 과제에 대단히 진지하게 헌신하는 마음가짐이다. (43%)

 

딥워크에 집중하려는 개인은 선행 척도를 파악하기 쉽다. 바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위해 딥워크를 하는 데 들인 시간의 양이다. (중략) 이전에 나는 연간 발표한 논문 편수 같은 후행 척도에 초점을 맞췄다. 이 척도는 일상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장기적인 척도를 유의미하게 바꾸기 위해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딥워크를 한 시간의 양으로 바꾼 후에는 척도가 일상에 즉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모든 추가 시간이 바로 집계에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중략)
바로 칸을 나눈 백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각 칸은 학기 중 일주일에 해당했다. 나는 칸마다 기간을 적은 다음 (무시할 수 없도록) 컴퓨터 모니터 옆 벽에 붙였다. 그리고 해당 주에 딥워크를 한 시간을 작대기로 표시했다. (중략)
돌이켜 보면 개선된 것은 딥워크의 강도가 아니라 꾸준함이었다. 이전에는 논문 제출 시한이 임박한 시기에 딥워크를 하는 시간을 몰아넣었지만 4DX 방법론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1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8%)

 

나스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두뇌가 즉각적인 산만함에 익숙해지면 집중하고 싶을 때도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욱 분명하게 말해서, 5분 동안 줄을 서거나 식당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처럼 무료함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나스가 말한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로 두뇌가 바뀐다. 그에 따라 꾸준하게 집중할 시간을 정한다고 해도 딥워크를 할 준비를 갖출 수 없다. (54%)

무서워..
근래 본의 아니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 사실을 '지각'하고 있음에도 위의 예처럼 5분의 틈에 무심코 인스타그램 앱을 누르려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내 '자각'을 다시 떠올려 손가락을 거두어 무료함을 '일부러' 누린다.
그리고 이 덕분인지 눈에 띄게 무의식적인 휴대폰 사용이 줄었다.
이와 더불어 오늘은 왜인지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지는데, '휴대폰 자체의 사용' 또한 제동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거참. 이 손바닥만한 이 물건에 하루를 매여살고, 고민까지 해야 하다니..

 

많은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산만한 상태에서 집중하는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금 주장한 대로 이 생각은 심하게 낙관적이다. 두뇌는 한번 딴짓 하는 상태로 바뀌면 거기에 빠져든다. (54%) 

 

그래서 나는 인터넷 안식일의 대안을 제안한다. 가끔 산만함에서 벗어나 집중하는 시간을 정할 것이 아니라 가끔 집중에서 벗어나 산만함을 허용하는 시간을 정하자.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인터넷을 하는 행동을 산만한 자극제를 찾는 행동으로 단순하게 간주하자. (물론 인터넷을 통한 몰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산만함에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인터넷 없이 일하는 것을 더욱 집중한 상태에서 일하는 것으로 간주하자. (물론 인터넷을 하지 않아도 산만하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방해 요소들은 더 참기 쉽다.)  (중략)
인터넷을 쓰는 시간을 미리 정해 두고 나머지 시간에는 일체 쓰지 마라. 이때 컴퓨터 옆에 노트를 둘 것을 권한다. 노트에 인터넷을 쓸 시간을 기록하라. 그때까지는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절대 써서는 안 된다.
이 전략이 토대로 삼는 사실은 인터넷을 쓰는 일 자체는 집중력을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조금만 무료하거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면 저자극/고가치 활동에서 고자극/저가치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뇌는 자극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잦은 전환은 말하자면 주의를 요구하는 많은 자원들을 조직하는 정신적 근육을 약화시킨다. 인터넷을 쓰는 시간을 분리하면 산만함에 굴복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에 따라 주의를 다스리는 정신적 근육이 강화된다. (55%)

 

따라서 일이 막히더라도 바로 오프라인 구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오프라인 활동으로 전환하라. (아니면 차라리 휴식을 취하라.) 바로 끝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일정을 바꿔서 다음 인터넷 구간을 앞당기는 것이 옳다. 다만 이때 다음 인터넷 구간을 바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을 쓸 때까지 적어도 5분 동안 간격을 두어라. 이렇게 짧은 간격은 일을 심하게 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동학적 관점에서 보면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을 쓰고 싶다는 욕구와 실제로 쓰는 데서 얻는 보상을 분리하기 때문이다. (56%)

 

인터넷 구간을 길게 설정하라. 핵심은 산만한 행동을 하는 시간을 피하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무료해도 그런 행동으로 전환하려는 욕구에 저항하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벗어나서 이 전략을 적용하기가 특히 어려운 경우는 (가령 매장에서 줄을 설 때처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할 때다. 이 시간이 오프라인 구간이라면 일시적인 무료함을 감수하고 생각만 하면서 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생활에서는 그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러나 집중력 훈련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귀중한 일이다. (56%)

 

욕구에 저항하는 훈련은 많이 할수록 쉬워진다. (57%)

 

당신도 생활하는 동안 생산적 명상을 연습하기를 권한다. 매일 진지한 연습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번은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다행히 연습할 시간을 찾는 일은 쉽다. (개를 산책시키거나 통근할 때처럼) 어차피 소모할 시간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연습하면 일하는 시간을 빼앗지 않고도 실제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58%)

 

가령 나의 두뇌는 써야 하는 이메일을 떠올려서 주의를 돌리는 데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생각은 아주 따분하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나 감질나게 바뀐다. 이처럼 당면한 문제에서 멀어지려 할 때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주의를 되돌려라. (중략) 되새김을 인지했을 때는 자신을 상기시키고 다음 단계로 주의를 유도하라. (58%)

 

장점과 단점을 따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혜택이 있으면 마음껏 써도 된다는 생각은 뜻하지 않게 지식 노동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한다. (중략) 프리처드의 결정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쳤는지 보라. 이 복잡성은 중요한 현실, 즉 약간의 혜택만 있으면 돈과 시간 그리고 주의를 도구에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농부에게는 거의 웃음거리나 다름없는 현실을 드러낸다. (63%)

 

 첫 단계는 직업적, 개인적 삶에서 추구하는 주된 고차원적 목표를 파악하는 것이다. (중략) 목표를 정했다면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세 가지 주요 활동을 나열하라. (66%)

 

다시 말해서 문제는 트위터가 루이스에게 분명한 혜택을 제공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직업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다. (66%)

 

모든 활동이 한정된 시간과 주의를 동일하게 소모한다는 요점을 놓치고 있다. 영향력이 작은 활동을 하면 영향력이 큰 활동에 쓸 시간을 빼앗긴다. 시간 분배는 제로섬 게임이다. 영향력이 큰 활동에 시간을 투자 해야 훨씬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영향력이 작은 활동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전반적인 혜택이 줄어든다.(중략) 한정된 당신의 시간과 주의를 할애할 도구를 결정할 때도 그들처럼 세심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68%)

 

그러나 나는 끊을 것을 권한다.(언제든 나중에 다시 쓸 수 있다.)
이 전략은 구체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겨냥한다. 시간과 주의를 빼앗는 여러 네트워크 도구 중에서 제한 없이 사용했을 때 딥워크를 가장 심하게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예측할 수 없는 간격으로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하여 엄청난 중독성을 지닌다. 그래서 일과를 정해서 집중하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중략)
많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옷장에 샇아 둔 산더미 같은 물건들이 언젠가는 필요하지 모른다는 니커디머스의 두려움과 비슷하다. (중략) 바로 소셜 미디어가 실은 삶에서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70%)

 

내가 보기에 소셜 미디어가 급격하게 부상한 부분적인 요인은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어려운 일과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긍정적인 성과 사이의 연관성을 끊은 데 있다. 소셜 미디어는 이 둘 사이의 시대를 초월하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얄팍한 집산주의적 대안, 즉 가치에 상관없이 내 말을 들어주면 당신 말도 들어주는 교환 관계로 바꾸었다. (중략)
가령 나의 상태 업데이트에 '좋아요'를 눌러 주면 나도 '좋아요'를 눌러 주는 식이다. 이 합의는 모두에게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중요한 콘텐츠를 올린 듯한 허구적인 느낌을 준다. (중략) 그래서 재미를 줄지는 모르지만 인생과 성취의 관점에서 보면 가볍고 기발한 대상, 즉 몰입을 방해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치 않은 방해 요소에 불과하다. (70%)

 

무엇보다 인터넷 그리고 그에 따라 저급한 주의를 토대로 삼는 경제가 부상하면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는 일반적인 직장인, 특히 기술 제품을 잘 다루는 밀레니엄 세대에 속한 직장인들이 보내는 여가 시간의 질이 저하되었다. 대개 이 시간은 대중 지향적인 디지털 환경에서 산만한 클릭을 하는 일에 소모된다. (중략)
가령 줄을 서거나, 드라마에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지기를 기다리거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릴 때 무료할 틈이 없도록 정신을 사로잡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규칙 2에서 주장한 대로 이런 행동은 산만함에 저항하는 능력을 약화하고, 정말로 집중하고 싶을 때 딥워크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72%)

 

다행히 아널드 베넷은 100년 전에 해법을 발견했다. 바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가 시간에 내 주의를 끄는 대상을 무작정 즐기지 말고 '일과 안의 일과'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중략) 따라서 저녁과 주말에 뭉엇을 할지 미리 정해 놓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체계적으로 즐기는 취미는 이 시간들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재료다. 구체적인 목표에 따른 구체적인 활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베넷식 독서, 즉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에 계획적으로 고른 일련의 책들을 읽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물론 운동을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략)
이 대목에서 여가 시간을 체계적으로 계획하는 일은 휴식이라는 목표에 어긋난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우려는 정신에 활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잘못 안 데서 기인한다.

열여섯 시간 동안 온전히 기운을 쓰면 일하는 여덟 시간의 가치가 줄어든다고? 그렇지 않다. 확신하건대 오히려 그 가치가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적인 사실은 정신이 어려운 일을 지속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정신은 팔이나 다리처럼 지치지 않는다. 정신이 원하는 것은 잠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휴식이 아니라 변화다.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정신에 의미 있는 과제를 부여하면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무작정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보다 더욱 충만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은 더욱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다. (72%)

 

37시그널스의 실험은 중요한 현실을 조명한다. 지식 노동자의 시간과 주의를 갈수록 지배하는 피상적 작업은 당장 보이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현실 말이다. (중략)
개인적인 생활에도 이 통찰을 적용해야 한다. 지금부터 제시하는 전략은 현재 일과에서 피상적 작업을 냉정하게 파악한 다음 최소한으로 줄여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딥워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일과에서 피상적 작업을 아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74%)

 

지식 노동자의 일반적인 일과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해가 종종 심하게 과소평가되고 중요성이 심하게 과대평가되므로 의구심을 갖고 피상적 작업을 대해야 한다. 피상적 작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딥워크가 당신이 발휘할 영향력을 결정한다. 따라서 딥워크를 온전히 활용하는 능력을 저해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피상적 작업을 제한해야 한다. (75%)

 

이 사례들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다. 바로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쓸지 크게 생각지 않고 일과 중 대부분을 '자동 주행 방식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다. 딥워크와 피상적 작업의 균형을 직시하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해야 가장 합리적일까?'라고 자문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사소한 문제들이 일과를 잠식하지 않도록 막기가 어렵다. (중략) 그 전략은 바로 일과를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주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정 관리용으로 마련한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를 펴라. 왼쪽 페이지에 두 줄마다 시간을 쭉 적어 내려가라. 이때 일하는 시간 전체를 기록해야 한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고 활동을 배정하라. 모든 시간 블록에 업무를 배정할 필요는 없다. 최소 시간 단위는 30분(즉 한 줄)으로 정하라. 상사의 이메일에 답하거나, 환급 서류를 제출하거나, 보고서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같은 사소한 과제는 일일이 블록에 넣지 않아도 된다. 대신 비슷한 일들을 포괄적인 과제 블록에 한데 넣는다. 이 경우 과제 불록에서 비어 있는 오른쪽 페이지로 줄을 그어서 완수하고자 하는 사소한 과제들의 목록을 기재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중략)
하루를 보내다 보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그럴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문제는 소요 시간을 잘못 예측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원래 계획한 일에서 방해를 받고 갑자기 새로운 과제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대여섯 번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마라. 목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해진 일정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할 일을 신중하게 정하는 것이다. 일과를 진행하면서 계획을 계속 바꿔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76%)

 

내가 제시하는 일정 수립의 핵심은 제약이 아니라 신중함이다. 이 단순한 습관은 하루 동안 잠시 시간을 들여서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라고 계속 자문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답을 경직된 태도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안긴다.
감히 주장하건대 이렇게 일정을 포괄적으로 수립하되 필요에 따라 맞추거나 변경하는 방식을 따르는 사람은 아무런 체계 없이 열린 상태로 하루를 맞는 과거의 '즉흥적인' 방식을 따르는 사람보다 창의적 통찰을 더 많이 얻을 것이다. 체계가 없으면 이메일, 소셜 미디어, 웹서핑에 매달리는 피상적 활동에 시간을 빼앗기기 쉽다. (중략)
요컨대 이 전략의 토대는 딥워크 습관을 기르려면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처음에는 이 조언에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시적인 기분과 외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과를 보내는 것이 분명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창조를 이루는 사람처럼 진정한 잠재력에 이르고 싶다면 이런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77%)

 

일과에 끼어든 덜 시급한 피상적 작업들에 엄격한 상한선을 두도록 요구한다. 이 한계는 상당한 양의 딥워크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79%)

 

바로 오후 5시 30분 이후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방침을 나는 고정 일과 생산성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시간 이후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목표를 정한 다음 그 안에 생산성을 발휘할 전략을 찾기 때문이다. (80%)

 

나도 비슷한 노력 덕분에 고정 일과 방식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가령 생산성과 관련된 말 중에 가장 위험한 대답인 '네'를 아주 신중하게 썼다. (중략)
효과가 좋았던 다른 전술은 확실하게 거절하되 이유는 모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핑계를 대지 않으면 상대방이 반박하지 못한다. 가령 나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강연 요청을 거절하면서 다른 출장 계획이 잡혀 있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상대방이 일정을 맞출 방법을 찾지 못하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고 그냥 "흥미롭기는 한데 다른 일정 때문에 안 될 것 같군요."라며 거절했다. 또한 미안한 마음에 마찬가지로 시간을 잡아먹는 다른 제안을 하고 싶은 욕구(가령 "위원회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제안 내용을 읽어 보고 의견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억눌렀다. 깔끔하게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런 제한이 없으면 느슨한 습관을 갖기 쉽다. (81%)

 

대다수 지식 노동 분야에서는 커피를 마시자는 제안을 수락하거나, 갑작스러운 통화에 동의하는 것처럼 따로 놓고 보면 무해한 피상적 작업을 거절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정 일과 생산성 방침을 따르기로 작정하면 시간을 귀하게 보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중략)
다시 말해서 고정 일과 생산성은 쉽게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폭넓은 영향력을 지닌 메타 습관을 만드는 방침이다. (82%)

 

피상적 작업을 초래하는 이 보편적인 요소는 대다수 지식 노동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면에서 특히 해롭다. 구체적으로 수신자가 명시된 방해 요소를 꾸준히 보내기 때문이다. (82%)

 

발신자 필터 방식을 처음 시도할 때는 나의 시간이 독자들의 시간보다 중요하다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그리고 사람들이 화낼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명확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83%)

 

서둘러 답신을 보내서 (일시적으로)수신함에서 없애고 싶은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빠른 답신은 단기적으로 작은 안도감을 제공한다. 메시지가 수반하는 책임을 발신자에게 되돌리기 때문이다. (84%)

 

저술가인 팀 페리스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소한 나쁜 일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습관을 길러라.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일을 할 시간을 결코 찾지 못한다." (중략)
이 방식이 수반하는 꺼림칙한 기분을 극복하면 보상을 누릴 수 있다. 이메일 과부하와 관련하여 흔히 하는 두 가지 말이 있다. 하나는 이메일을 보내면 더 많은 이메일이 오가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호하거나 무관한 이메일과 씨름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86%)

 

장담하건대 산만한 대중을 떠나 집중하는 소수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될 것이다. (중략)
많은 사람들은 신속한 이메일 교류와 소셜 미디어 활동에 따른 인위적인 분주함을 편안하게 느낀다. 그러나 몰입하는 삶을 살려면 이런 일들을 대부분 등져야 한다. 또한 능력을 다해 최선의 성과를 내려는 노력을 둘러싼 불안이 있다. (중략) 그러나 이런 편안함과 불안을 뿌리치고 온전한 지적 역량을 발휘하여 중요한 성과를 이루려 노력하면 앞서 그 길을 간 다른 사람들처럼 몰입이 생산성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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