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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문제 있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데도 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문제보다는 가능성이 눈에 더 잘 보인다. 얼른 회복해 여느 아이들처럼 마음껏 웃으며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려 깊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 (104)
그러니 희생을 하는 주체는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계속 누군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내가 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계속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러니 상대방 역시 자연스럽게 나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114)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노력을 공짜 취급하고, 심지어는 언어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면서도 계속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 사람이 부모이건 형제이건 배우자이건 자녀이건 간에, 스스로에게 '가족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굴레를 씌워서는 안 된다. 혹 가족 관계가 끊어지더라도 "나는 더 이상 학대당하는 자리에 계속 있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그 자리를 떠나도 괜찮다고 허락해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모순이듯이 나의 가치는 나부터 먼저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116)
좀 더 여유로운 자세, 연륜으로 지혜로워진 모습, 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즉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공통적으로 통하는 진정한 '미' 아닐까. 나는 그렇게 나의 중년을 살고, 더 아름다워진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126)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너무 나무라지 않으려고 한다. 단지 내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이 다를 뿐이라고 여기며, 부족한 부분은 다른 방법을 통해 메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132)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No"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요구에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서 이 일까지는 못하겠습니다"라든가 "저도 참여하고 싶은데 이 일은 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잘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십 컨설턴트이자 <에센셜리즘>의 저자 그렉 맥커운은 다른 사람의 부탁이나 초대에 거의 대부분 "No"라고 대답해야 하고,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소수의 일에만 "Yes"라고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일곱 가지 공손한 거절 방법을 제안했다. 여기에서 간단히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답하기 전에 좀 머뭇거린다. 3초 정도 생각하는 듯이 한 박자 쉬고 그다음에 대답한다.
둘째, 가급적 전화보다는 이메일로 답한다. 이메일로 거절하기가 더 쉬우므로.
셋째, 일단 스케줄을 체크해본다는 말로 보류하고 그 다음 거절한다.
넷째,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지금은 너무 바빠서 답장하기 곤란하다는 이메일 자동 답장을 만들어둔다.
다섯째, 상사에게 여러 업무를 받았다면 우선순위를 함께 논의하여 먼저 처리해야 할 일,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을 결정한다.
여섯째, 차를 태워달라고 하면 그 대신 차를 빌려주는 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아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일곱째, 그 일에 자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거절한다. (141)
이처럼 병은 아무런 예고와 이유 없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지만 인간으로서는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고 담담히 따르는 방법밖에는 없다. (145)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주어진 일에 임하는 자세, 예측하지 못한 불상사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자세 등은 부모의 태도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또 내가 경험한 많은 환자를 보며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그래서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아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으로 안정감과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인생에 주춧돌이 되는 가치와 마음자세를 함양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167)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편향에 묶여서 영영 그 굴레를 벗어날 순 없는 걸까? 흥미롭게도 많은 심리적 편향과 편견은 그러한 편견이 있따는 것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순간 자연적으로 줄어든다. 즉, 우리가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 편향이 어느 정도 저절로 교정된다는 뜻이다. (185)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경쟁자인 남을 밀어내고 그보다 더 앞서가야만 내 앞날이 더 윤택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전략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내가 남을 도와주고 남이 나를 도와주면서 가는 길이 더 의미 있다. 물론 남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더디더라도 함께 갈 때만이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또한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212)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을 때 불평불만에 차 있기보다는,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침착하고 조리 있게 요청할 줄 아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기술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230)
협상에 임하며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말을 되새기고, 또 "그렇게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모든 것은 협상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232)
모두가 힘들거나 안 된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용기가 있다'는 건 '겁이 없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겁은 나지만 용기를 짜내어 해본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할 땐 실패할까 봐 겁이 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실패할 때 하더라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으면 용기가 생긴다. (233)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이 호소하는 고통에 점점 익숙해지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나중에는 환자의 호소가 의미 없이 그저 공허하게 울릴 수도 있다. (243)
의사로서 20년을 살아온 나지만, 현대 의학으로 완벽히 진단하고 고쳐줄 수 있는 환자보다 그럴 수 없는 환자가 더 많다는 사실은 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면, 만약 아직 현대 의학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아마도 그런 이들에게는 환자와 그 가족의 고뇌를 깊이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이익benefit보다는 환자의 이익을 앞세우는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닐까. 죽음 앞에 선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그런 의사가 '더 큰 의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245)
불편할 만큼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바짝 말라버린 입을 벌려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는 도나의 모습은 그리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많이 외로워 보였다. 한 사람의 죽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오직 그 사람만의 몫. 누가 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위로하건 간에, 결국 그의 삶과 죽음의 참 의미는 오직 그 사람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255)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중략) 나는 주로 이렇게 한다.
바쁜 일상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소음이 적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간다.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 차분히 심호흡을 한다.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내게 주어진 선택의 길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그려본다. (261)
의식적으로 계속 무언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다 보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마음이 절로 누그러지기도 한다. 심지어 '왜 이렇게 나는 재수가 없지?' 하는 생각보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더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감사란 가만히 있어도 절로 드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내가 노력해서 생기는 사고와 마음자세라고 본다. (270)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두 가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데, 남이 더 잘난 것 같아서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아니면 내가 더 잘난 것 같아서 교만해진다는 것이라고('비참'과 '교만'의 앞 글자를 따면 '비교'가 된다). 두 경우 모두 내 삶의 가치와 질을 떨어뜨리고, 나의 성장에 해가 될 뿐이다. (280)
나는 나 자신과의 미팅을 다른 말로 '명상'이라고 본다. 세상 속에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외부로부터 오는 잡음을 끊어내고, 지금 여기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고 놓아 보내는 훈련이 바로 나 자신과의 미팅, 즉 명상이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 자신과의 미팅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이 맞다. 또 나에게 명상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생각을 가동하는 뇌를 끄고 잠시 쉬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285)
매슬로는 그가 죽은 뒤 출판된 글에서 자기실현보다 상위의 욕구인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진심에 집중하며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는 삶을 넘어서서 이타심,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 서로 하나 됨 같은 나를 '초월'하는 가치에 집중할 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즉,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참된 나'를 찾은 후에 오는,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초월'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초월의 개념은 매슬로와 동시대인이던 오스트리아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미 늘 강조해오던 것이었다. 더 나아가 프랭클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자기초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저절로 자기 밖으로 주위를 돌리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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