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근을 했다.
연말정산도 하고, 수빈이 계속장학금도 봐주고, 책팔기도 신청했더니 약 11시쯤.
생기부 점검을 시작했다.
내 일인데 부장님과 ㅂ부장님이 봐주신다는 게.. 마음이 불편해서 혼자 1학년 1~6반을 봤다. 오랜만에 기계적으로 뭔가를 응시하고 찾는 단순 노동을 하니 지난 11월 채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교감샘께서 맛있는 칼국수를 사주셔서 점심을 잘 먹었다. 사실 3시쯤 집을 갈까, 연습실을 갈까 고민했지만 그냥 4:30까지 하다가 연습실로 바로 가는 길이다.
4시 15분쯤 ㅂ부장님이 퇴근을 하시며, 내가 보고 있던 중앙 테이블 위로 책을 슬그머니 올려두셨다. 포스트잇에 쓰인 글을 말로 하셨나, 아니면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하셨나, 잘 기억이 안나지만.

ㅠㅠㅠㅠㅠㅠㅠ진짜 반칙아님 ??????!!!!
내가 이러니 어떻게 안 좋아하냐구요~!~!~!~!~!~!
하ㅠ
포스트잇에 “고통”이라는 말을 꾹 꾹 눌러 쓴 글자를 보고 목차를 펴보았더니, 첫 차례부터 14년 4월 16일 이야기였다.
아아 이거 보통 마음으로 열어서는 안 될 책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쪽지를 남기신 거구나.
오늘 그가 방학 전에 줬던 책인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다시 되돌려주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 같은 책 같다고, 영화 같았다고, 금세 읽었다고. 그랬더니 수준이 너무 낮았죠 하며 그가 웃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럼 이건 더 빨리 읽으실 거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를 또 건네주셨다.
그리고 나도 오늘 학교 오니 도착한 <공정함이라는 착각>을 띠지만 제거하고 건넸다. 도덕과 필독서냐며 웃기에 나도 웃었다.
퇴근을 하는데 비가 내리는 건지, 내렸던 비가 바람에 흩날리는 건지 모를 날씨였다. 바이올린도 이미 메고 있기 때문에 우산이 있지만 펴지 않았다. 이런 안개 같은 비는 우산도 소용이 없으니까.
학교 아래에 있는 초등학교를 지날 즈음에, ㅂ부장님과 나는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책을 권하는데 ‘그가 실망하면 어쩌지’하는 마음이 커서 오래 고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서, 읽고 나서 얼른 알려주고 싶은 사람은 ㅂ부장님이다. 아까 퇴근 길에 문득 ㅂ부장님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건 우리의 우정인 셈.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좋았던 부분을 공유하거나 하는 독후 과정은 없지만, 같은 책을 읽는 시간을 자체를 공유한다. 아마도 내 생각은 그렇다. 물어보진 못하지만 나도 이야기하진 않지만 ‘부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디가 좋았을까???’ 상상하며 읽게 되니까.
정말로 나는 이 학교에서 멋진 친구를 참 많이 만들게 된 것 같다.
내가 40세의 남성과 친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으며 64세의 여성과 친구가 될 줄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나도 벌써 28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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