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작고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눈이지만 얼어붙었을 때에는 얼마나 쓰라린 느낌을 주는지. 그건 사랑이 사라지면서 남기는 날카로운 상처와 같았다. (9)
크........
사랑을 만나고 만들던 기대와, 무참히 깨져버린 끝을 눈과 비유하다니요! ㅠ_ㅠ 작가님....♡
우리 아버지랑 나랑은 아주 달라, 하고 일영은 굳이 덧붙였다.
"나는 아버지를 못 닮아서 이렇게 됐지만."
경애는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제로섬 게임인 시소, 그리고 윈윈(이라고 해야할까.. 마이웨이라고 해야 할까)의 그네까지.
비유가 참 멋진 분.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가난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 종교, 정치, 국적의 차이, 집안싸움, 부모 반대, 언니 또는 형의 반대, 동생의 반대, 베프나 은사의 반대 혹은 기르는 고양이나 개의 반대, 윤리적 판단-불륜, 제삼자의 출현-같은 일종의 유형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35)
그렇게 고통을 듣기 위해 골똘해 있으면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소음 같은 것이 상상되었다. 아주 일상적인 소음일 것이었다. 냉각팬이 돌거나 의자가 끌리거나 때론 야근하던 직장 동료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직 안 갔어? 하는.
하지만 그 누군가는 지금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소음과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마치 공동처럼 모든 일상과는 상관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공동에는 너무 많은 중력이 가해지거나 아니면 아무런 중력도 가해지지 않아 스스로가 완전히 버려진 기분일 테고. 상수가 늘 충분히 가지고 있던 기분이었다. 그렇게 실연의 고통은 교활한 악당처럼 당사자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단 하나의 일상까지도 냉정히 제거한다는 걸 알기에 상수는 우리 언니들이 지금 이런 것들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해,라고 답장에 써주곤 했다. 친구에게 먼저 전화해 어떻게 지내, 하고 안부를 묻는 일, 미안함 없이 가족들을 보는 일, 씻거나 밥을 먹는 일, 수목드라마의 로맨스를 보면서 하하 웃는 일, 자동차세나 주정차위반 과태료 같은 돈을 제때 내는 일, 눈이나 비 소식에 마음이 아니라 출퇴근길만 걱정하는 일, 잠자리에서 울지 않는 일 혹은 잠을 자지 않고도 울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 (36)
아 되게 오래된 감정인데, 실연이라는 것 정말 섬세하게도 적어주셨네..
읽을 때도 지금 옮겨 적을 때도 숨이 턱턱막힐 만큼.
그렇게 산주가 결혼하고 삼년이 지나는 동안 경애는 언제든 아, 이런 것이 끝이구나, 정말 끝이다, 끝, 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로맨스가 종료됐다는 것은 느껴도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61)
그럴 수 있지. 로맨스는 종료되었지만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는 일.
경애는 인턴으로 일하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한 계절 동안 집에 틀어박혔다. 아주 긴 여름이었다. 9평 원룸에 누워 있으면 매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연이어서 쎄- 하고 울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겨우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96)
경애의 마음.
네 곁에 머무는 그 사랑의 기억, 사랑의 현존, 사랑의 공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럴 때 너가 찾고 싶어하는 건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이야. 되돌릴 수 없어. 너가 오로지 차지할 수 있는 건 그런 사랑에 참여했던 너 자신뿐이야. (99)
그리고 그 모든 예쁘고 환한 것들 사이에는 산주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언니가 말했듯이 산주라는 대상, 산주의 다정함과 산주의 체취, 산주의 감촉과 산주의 목소리, 산주라는 실감과 산주의 살아 있음은 이제 환영과 같은 자신의 기억이나 타인의 SNS에서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없었다, 이제 경애의 현실에서는. 죽어버린 것이었다. (101)
그래서 나는 이별을 힘들어했다.
그는 죽은게 아닌데 나에게서는 죽어버렸으니까. 없어져버렸으니까.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애가 들어간 욕실에서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애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건 경애 엄마도 알고 있었다. 엄마 나 회사 그만뒀어,라고 전화했을 때 이미 경애에게 또 넘어질 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104)
상수는 그 노래를 씨디플레이어로 들으면서 전철을 타고 부평에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거기에 은총이 있는 걸 알면서도 상수는 그동안 차마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115)
종현이와 관련해서 나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마주했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상수가 만난 여자들은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 비극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때마다 상수는 모든 잘못은 남자들의 뻔한 이기심에 있다고 확신했다. 상수가 십대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집단적으로 확인할 기회는 너무나도 많았다.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은 다른 신체는 없이 오로지 성기와 가슴만 지닌 존재처럼 여겨졌는데 그렇게 벗겨지고 지워진 얼굴들에 대한 시시덕거림이 은근하게 퍼져나갈 때면 상수는 내장기관 어딘가가 운동하면서 메스꺼워지곤 했다. 혐오스러웠다. (144)
안녕, 오늘도 무사한 아침이야.
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올려진 낱말 같아.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 (151)
상수는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무모함, 펼쳐질지 안 펼쳐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멘 채 중력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의 용기 같은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아드레날린과 옥시토신과 도파민 등이 실제로 분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표현은 좀 그렇지만 '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이 그토록 낭만적인 것은 이후 일어날 끔찍한 살인사건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서정적인 씬들을 앞부분에 배치하라는 트뤼포의 영화창작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랑 이후에는 잔혹한 파괴였다. (152)
그런 기술과,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 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1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는 생각이다.ㅋㅋㅋㅋㅋㅋ 끊임없이 성시로가 근면을 강요받는거 진짜 ㅋㅋㅋㅋ인정.
경애가 그냥 피조물이에요,라고 하자 상수는 피조물의 정확한 뜻이 뭐더라 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존재 같은 거구나, 존재."
"존재랑은 좀 다르죠. 있다는 것과 있게 되었다는 것의 차이가 있으니까." (156)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나는 여기.
있다는 것과 있게 되었다는 것의 차이라니. 서늘하다.
선배는 어느 겨울 경애를 불러 함께 여오하를 보고 차를 마신 적도 있었다. 경애와 선배는 산주에 관한 화제는 애써 피하며 그들이 봤던 프랑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왼쪽 눈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마비된 남자가 등장하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통제할 수 없는 육체를 지닌 자신의 처지를 깊은 바다에 잠긴 잠수종에 비유하는데, 선배는 "우리는 육체에 봉인되었지만 상상력과 기억의 힘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주었다. 그때 경애가 그 '봉인'이라는 말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붙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는 육체 너머의 것이 있다는 것, 어떤 사랑은 멈춰진 기억을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사라진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 한 번 살게 된다는 것. (161)
나는 아마 E와 처음 자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아마 꽤 괜찮은 파트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랬어? 무슨 근거로?
그렇지 않아? 나와 하는 게 별로야?
아니지, 전혀 아니야.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자자고?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그런데 그런 말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적으로 써야 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 이를테면 경배 같은 단어, 그런 단어는 자주 쓰지 않으니까 불편할 것이 없잖아. 숙고 같은 말도 있겠지, 그런 말 따위는 쓰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그런데 따뜻하다는 말은 어쩔 수가 없었어. 이 밥이 따뜻하다. 그런데 E가 죽고 나서는 따뜻하다,라고 생각하면 더이상 따뜻하지가 않아졌어, 따뜻하면 안되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러면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말을 삼키고 밥이 먹을 만하다고 정정하면서 그런 몸은 어떻게 되는 건가 생각했어. (163)
기억에 빼앗기는 말들이 있지.
나에겐 어떤게 있을까,
아마도.. 쪼꼼? ㅎㅎ
마음을 어떻게 폐기하느냐고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이 나 너랑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라고 말한 날이 있었고 당신은 결정했고 그렇게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자 정작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을, 양말까지 챙겨 신은 뒤였다고. 그러고 나서 데려다주겠다는 그 사람 차에 타지 않고 택시로 강변북로를 달려 돌아오는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
하진짜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느낌 진짜 알 것 같아서 너무 싫고 내 마음이 다 아릿했다.
우리 마음 폐기 하지맙시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그냥 잘 지내요. 진짜.
"그러면 뭘까요? 리베이트가 아니면요."
이야기가 그쯤으로 흐르면 조선생은 기술자인 제가 압니까? 하면서 발을 뺐다. 그러면서도 상수에게 슬쩍 이렇게 던져놓았다.
"사람 마음 다 똑같아요. 공팀장은 어떨 때 마음이 갑니까? 인간을 걷어내지 마세요. 내 경우에는 어떤 일이든 그렇습니다." (191)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과 깊은 유대를 맺거나 내가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무기력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200)
진짜 아주 얼마전이지만, 몇년 전의 나는 왜? 그렇게? 알고 싶어 했을까.
전자에만 천착했기 때문이겠지 후자는 미처 생각도 못한채.
상수는 경애가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다며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평소처럼 정신 차리라든가, 그거 정말 똥 밟는 일이에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럽니다, 성욕을 채우려면 어떤 사탕발림도 마다하지를 않아요, 아주 시를 쓰지요, 릴케가 따로 없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상수는 그렇게 양말 하나 벗지 않고 앉아 있던 산주 앞에서 경애가 느꼈을 모욕감을 떠올리며 조용히 분노했을 뿐이었다. 아마 경애가 그랬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 마음이 오므라들었다. 기가 죽고 축소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208)
똥-사탕발림-시-릴케 에서 진짜 빵터졌다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므라든 내 마음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온탕과 냉탕의 혼재 진짜ㅠ
유쾌한데 눈물이 맺히는 느낌?
웃고 났는데 슬퍼졌다.
내기준 이 책에서 차애 부분.
하지만 이런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정작 산주에게는 전할 수 없으니까 불행을 털실처럼 잘 말아서 이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224)
경애는 E가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싫었다. 영화를 본다는 건 러닝타임 위를 걸어 자기 마음속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가 자기만 본 영화에 대해 열을 올려서 이야기하면 경애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E가 그렇게 혼자 몰입했던 시간과 마음의 동선에 신경이 쓰이면서 서운해지곤 했다. 경애에게 등을 돌리고 어딘가로 다녀오는 일 같았다. 그래서 싸우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이 서운해, 너가 나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만지고 오는 것이 이상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또다시 거기를 다녀오는 듯해서 싫어,라고 말하면 되었지만 어린 경애는 그런 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사소한 문제들이 갈등으로 번져갔다. (231)
ㅎㅎㅎ
나도 종종 연애를 하면 경애의 어린 마음과 비슷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알 수 없었던 시간들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 나도 모르게 유치한 마음이 들곤한다. 그래서 경애의 저 마음이 너무 귀엽다. 나도 같이고 싶은데 그 시간들과 함께,
E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구로까지 경애를 데려다주곤 했다. 그렇게 왔다가 나가면 다시 돈을 내고 표를 끊어야 하니까 플랫폼에 앉아서 대화를 계속했다. 전철표는 세시간 동안 유효해서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있엇다. 물론 그것도 막차 시간에 따라서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E와 경애 앞으로는 전철들이 멈췄다 가고 무수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는데 둘이 이야기하는 순간은 그런 익명의 사람들 덕분에 더욱 특별해지는 느낌이었다. (232)
호찌민의 한국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벌든 불안이 의식의 어느 면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오과장도 이 도시에 대한 지긋지긋함을 지녔는데 그 역시 편향적인 의심에 가까웠다. 돈을 벌면 벌수록, 무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이상한 불안과 파괴의 정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 그렇게 마음이 굳어가는 것은 여기가 호찌민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으키는 마음 상태일지도 몰랐다. 창식씨가 손에 쥘 수도 없는 게임 머니에 안달하는 것처럼. (282)
"그래서 그놈, 아니, 그 사람에 관한 마음은 어때요?"
"그냥 있죠. 어떤 시간은 가는 게 아니라 녹는 것이라서 폐기가 안되는 것이니까요, 마음은."
상수는 자기가 했던 말을 되돌려받았는데도 경애가 막상 그렇게 말하자 마음이 아팠다. '언죄다'를 통해 오는 모든 편지들이 그를 슬프게 만들었지만 이렇게 육신으로 느껴지게끔 아프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상수는 실체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이란 이렇게 어떤 형상에 숨을 불어넣어 그의 일부를 갖는 것일까. 그래서 상수는 그동안 그런 일들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 상수가 경애에게서 가져와 하나씩 완성한, 상수의 마음속에서 걷고 말하고 먹고 마시는 경애라는 형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297)
또다시 봄이 오고 있다는 건 다른 어떤 것보다 공기가 먼저 말해주었다. 숨을 쉴 때마다 봄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갓 태어나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아기에게도 숨 쉬는 능력은 주어지니까.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오면서 인간이 가장 먼저 익히는 능력이니까.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아는 것, 무엇이 가까이 있고 무엇이 여기에 있지 않은지 숨을 쉬며 아는 것. 어쩌면 미유의 아기가 시계도 보지 않고 매번 같은 시간에 울 수 있는 건 그런 공기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경애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305)
일주일간 버텨보던 경애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연차를 세어보고는 열흘의 휴가를 냈다.
조선생이 창식씨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가장 먼저 집안의 먼지를 쓸고 빨래를 하게 했던 것을 떠올리며 경애는 아침이면 집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호찌민으로 가면서 집을 빼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해도 최후의 낙하점은 있어야 했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고통 속에 떠내려가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마치 환영처럼 아주 단순한 일도 차마 하지 못해 무기력하던 어느 여름의 기억들이 먼지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언니의 응원을 받아 겨우 문밖으로 나가 옥수수나 맥주를 사들고 왔던 시절. 생각해보면 경애가 파업 이후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306)
그리고 경애는 산주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날의 통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애의 엄마가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앞뒀던 날의 밤이었다. 그때 회사에서도 힘든 시간을 보내던 경애는 보호자 침상에서 자고 있다가 복도에 나가 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 복도는 밤이 되면 무섭도록 조용해졌다. 그렇게 아픈 것들이 아픈 것을 참고 어쩌면 좀더 나을지 모를 내일을 기대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경애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는지도 몰랐다. 지금 자기도 아프고 힘드니까, 사랑했고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 텅 빈 복도에서 선배, 엄마가 아파, 내일이 수술이라 무서워, 하는 자기 목소리가 울렸던 것을 경애는 기억했다. 십분도 안되어 통화는 종료되고 병실로 들어가자 자는 줄 알았던 엄마가 일어나서 산주랑 통화했니, 하고 물었던 것을.
"응, 했어."
"뭐라고 하던?"
"힘내래."
그 말은 불운을 겪은 사람을 위로하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엄마에게 전하는 순간 경애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병을 진단받고 수술할 때까지 황망해하는 엄마를 재촉해 병원이라는 트랙을 타고 수술까지 담담하게 준비해왔는데 그 순간만은, 산주가 힘을 내라는 명료한 위로를 전한 순간만은 견딜 수 없이 불행해진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을 읽는 엄마는 그 말 잘하는 서울 애가 뭐 그렇게 요령 없이 말했데, 하고 산주 흉을 보았다. (310)
진짜 마음 아팠던 부분.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경애는 집으로 돌아가 몇해 전처럼 <파업일기>를 썼다. 일기는 E에 관한 기록들을 정리해둔 블로그에 적었고 그렇게 해서 블로그의 카테고리 하나가 늘어나자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게 왔다가 스쳐 지나갔지만 경애는 방문자 기록에 남아 있는 아이디 중 하나가 산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경애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은 없었다. (316)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니까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만 이메일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습니다.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걸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시간의 의미가 타인에 의해서 판결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후략)." (320)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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