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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파티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 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24)

 

 


숲속 작은 집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시간이 거기 그냥 고이도록 놔둔 집주인의 자신감과 여유가 부러웠다. (54)

 

어디 얼마나 머물든 주변을 잘 정돈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자 자부였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독립 후 자취하며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좀더 잘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무언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단 실감이었다. (57)

 

지호에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학부 땐 그게 귀엽고 가끔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당당해 보여 끌렸는데, 결혼 후 같이 살다보니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58)

 

아마 나는 이국에서 마주한 노골적인 계급 차에 좀 쩔쩔맸던 것 같다. 물가 낮고 물건 저렴한 건 좋지만, 그걸 만드는 노동력이 싸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어색한. 그래서 아무도 추궁 않는 잘못을 해명하는 이처럼 사람 좋게 웃어가며 긴장했다. (66)

 

시내에는 원주민보다 관광객이 많았고 한국인도 자주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인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시치미와 드러냄, 감춤과 판별의 눈빛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가끔은 그들이 여행지의 마법을 깨뜨리는 듯해 언짢다가도 또 어느 땐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내 귀에 너무 잘 박히는 한국어가 신기해 고개를 돌렸다. (69)

 

 


좋은 이웃

시우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시우에게 좋은 일이잖아. 좀더 나은 일. 그런데도 시우 어머니가 '새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왜 흔쾌히 대답 못한 걸까? 지금보다 십오 분 더 멀어져서? 정말 그것 때문에? (130)

 

 


이물감

사다리 마지막 칸에 기적적으로 오른 자신과 달리 '요즘' 입사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신문에서 읽은 말로 앞 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뭘 굳이 읽지 않고도 언제든 쉽게 품을 수 있는 게 적의이기도 했다. 기태는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은행에 들어온 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태의 '고객'뿐 아니라 동기나 후배도 여럿 있었다. (159)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기태는 '아! 앞으로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받는 은따, 대우받는 꼰대가 되겠구나' 자책했다. 그렇지만 그날 기태를 괴롭히는 건 자신이 실언했단 사실이 아니었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 말했다는 거였다. (160)

 

 


레몬케이크

같은 이유로 기진은 오래전부터 부모의 통역을 맡아왔다.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선주와 경수는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었고, 관련 문자나 서류를 해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기진은 주위에 그런 어른이 꽤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기진의 후배나 동료들은 '그건 너무 옛날 어른, 옛날이야기가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요즘에도, 아니 우리 세대 부모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느냐'면서. 그때마다 기진은 자신에게 무척 가깝고 생생한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처럼 아득하고 낯선 일임을 실감했다. '같은 또래라지만 저 친구와 나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아마 앞으로도 쭉 다름 고민과 다른 돌봄, 다른 고독 속에서 살아가겠구나' 하고. (200)

 

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맛을 음미하며 지금 이 순간 홀로 집에 가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214)

 

 


안녕이라 그랬어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231)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당연한 얘기지만 긴 시간 엄마 옆에 머물며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만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 그랬다. (252)

 

 


해설 :: 신형철

<신자유주의와 동시대의 문학 문화>의 편집자들은 그런 신자유주의도 역사적으로 네 단계를 거쳐 전개됐음을 알려준다. 경제적인 단계, 정치-이념적인 단계, 사회-문화적인 단계, 그리고 존재론적인 단계가 있다고. 우리는 네 번째 단계를 살고 있다고 말이다. '존재론적 단계'라는 말 앞에선 좀 아득해진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이나 제도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신자유주의 그 자체'로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이후를 말하는 건 꽤 어려워진다. 이념이나 제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299)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나'는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잃어버린 건 집도 학생도 아니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142쪽) 자신의 모습이다. 그도 그것을 안다. 그런데 이 상실의 진정한 핵심이 다른 데 있음을 아는 건 우리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그런 나'만이 아니라 그런 나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나'다. 내가 가진 가장 고귀한 것이 훼손되고 있다는 자각은 고통스러운데, 그걸 막아낼 힘이 내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수치스럽다. (301)

 

문득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게 중요해졌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진실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이미 말한 거짓을 바로잡는 데 더 마음을 쓰기도 한다. 그날 로버트와 김은미가 그랬듯이.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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